칭다오를 검색하면 '중국 속의 작은 유럽'이라는 수식어를 쉽게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칭다오는 유럽 중에서도 특히 ‘독일’의 분위기가 많이 나는데, 너무 상반되는 이미지인 중국과 유럽사이에 이런 수식어가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은 칭다오 속에 남아있는 독일의 흔적들에 대해 소개합니다. 

 


 

 

칭다오 전 지역 중에서도 '시베이구'에서 독일의 느낌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시베이구에는 기독교당, 영빈관, 맥주박물관, 신호산공원 등 여러 관광지가 있는데 이 곳이 모두 독일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그럼 왜? 어떻게? 독일의 영향을 받게 된 것일까요?

 

1888년 독일군은 적극적으로 식민지 개척을 실현 중이었습니다. 이미 차지한 땅이 많고 경제적인 가치가 있는 곳을 찾던 독일군은 중국에 식민기지를 물색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은 입구가 좁지만 만의 안쪽 넓이가 넓은 칭다오의 자오저우만을 후보지로 삼았습니다. 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방어 기지로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황해 수운의 요충지였습니다. 마침내 1895년 독일군은 칭다오를 점령했습니다.


지금은 아름다운 유럽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알고 보면 굉장히 깊은 사연을 가지고 있는 도시이죠?

 


  

 

당시 칭다오에 주둔한 독일군은 맛있는 맥주를 마시기 위해 칭다오에 맥주공장을 세웠습니다. 그것이 지금껏 남아 유명한 칭다오 맥주가 된 것입니다. 중국은 독일의 옥토버페스트처럼 매년 칭다오맥주축제를 열고 있는데요! 이도 독일의 영향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칭다오 천주교당입니다. 1932년부터 2년간 공사하여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천주교당도 역시 독일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하는데요. 붉은색 첨탑이 멀리서도 잘 보인답니다.

천주교당 주위에는 조약돌길이 조성되어 있고 성당도 고딕양식으로 세워져 전형적인 독일 건물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보실 곳은 영빈관입니다. 이 곳은 독일 총독관저로 쓰였습니다. 총독관저는 총독이 집무를 보고 사람들을 만나는 접견실과 가족과 손님들이 머무는 곳이 있습니다. 


1905년부터 시작해서 1908년까지 무려 3년이나 걸려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영빈관은 단단한 석재와 빨간 벽돌 등으로 독특하고 매우 아름다운 외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는 신호산 공원입니다. 신호산은 약 98m 정도의 높이의 산입니다. 독일의 식민지 시절 독일군이 이곳을 가장 먼저 점령하고 무선 방송탑을 세웠다고 합니다. 지금 신호산공원은 전망대로도 유명한데요!

  


 

 

사진에서 보듯 신호산 공원의 전망대에 올라가면 잔교, 기독교당, 영빈관, 천주교당 등 매우 이국적인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신호산 전망대에 올라가서 풍경을 보면 정말 이곳이 중국인지 독일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랍니다!

 


 

 

마지막으로 보실 곳은 칭다오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잔교입니다.

잔교는 길이 약 40m, 폭은 8m정도로 칭다오 맥주의 라벨이기도 하지요! 

1890년대 청나라가 해군 화물 접안 기지로 건설했고, 칭다오의 선착장 역할을 했답니다. 독일 강점기 시절에 군수물자 운송 장소였으며 선박 검역소로도 이용되었답니다.

 

독일을 닮은 칭다오.

중국 속의 작은 유럽이라고 불리지만 식민지였다는 슬픈 사연을 갖고 있었단 사실! 이제 아셨죠?

눈으로 보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만, 숨은 이야기도 안다면 더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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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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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님 2013.12.11 17: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익한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