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현대사에서 지울 수 없는 몇몇 거인(巨人)이 있다면 현대그룹의 창시자 정주영 회장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각양각색으로 다를 것이고, 그의 빛의 밝기만큼이나 그 그늘 또한 깊음도 사실이지만, 그가 한국 현대사에 크나큰 발자국을 남긴 거인이었음을 부인하기란 어렵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사업에 뛰어들어 “주판알 튕기지 말고 일단 갖다 퍼부어!”라고 호기롭게 외칠 줄 알았던 사업가였으며 이순신의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 지폐를 외국 은행가들에게 흔들어 보이며 “당신들보다 수백 년 앞서서 우리는 철갑선을 만든 사람들이야!”라고 배짱을 부렸던 간 큰 남자였고, 그의 입버릇처럼 “안돼? 해 봤어?”를 송곳처럼 들이밀면서 지레 포기하려는 사람들의 엉덩이를 찔러 대던 부지런한 경영자. 그의 이름이 소양강 댐 공사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 중력댐 방식 (출처:  http://www.damsafety.org)



1967년 현대건설은 건설부가 발주하는 입찰에 응했고 최저 가격을 써내 낙찰을 받는다. 그러고 나서 회의에 들어가보니 소양강댐이 콘크리트 중력(重力)댐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중력댐이란 댐 자체의 무게로 저수지의 물을 지탱하는 콘크리트 댐을 말하는 것이다. 일제 시대 지어진 수풍댐을 비롯, 한국에 건설된 댐의 대부분이 중력댐이었다. 구조이론이 간단하고 지진에 대한 안정성이 뛰어나다는 강점을 지닌 설계였지만 정주영이 보기에는 못마땅한 구석이 한 둘이 아니었다. 



 

▲섬진강댐/소양강댐(출처: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선 소양강댐은 섬진강 댐에 대하면 댈 것도 아닌 대규모인데 이걸 콘크리트 중력댐으로 만든다면 거기에 들어가는 막대한 콘크리트와 철근은 대관절 어디서 조달하느냐는 의문이 치밀었다. 1967년이면 오늘날 우람한 포스코 제철소가 들어서 있는 포항 해변에는 삭막한 모래사장과 싸구려 횟집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제철소도 없는데다가 그 무량대수(無量大數)같은 콘크리트는 또 어디서 조달할 것인가. 오래 갈 것도 없이 그 공급처는 일본 밖에 없었다. 

 

 이 소양강댐의 건설 자금은 식민 통치의 보상격으로 일본에 청구하여 받아낸 돈에 크게 의지하고 있었다. 그 한 많고 피맺힌 돈으로 댐을 짓는데 또 그 댐에 무한정으로 들어갈 재료비를 다시금 일본에게 뜸 잘 든 밥상으로 갖다 바쳐야 하는가. 정주영은 부아가 치밀었다. “설계비에 기초 자재비, 기술 용역비는 물론 철근, 시멘트, 엄청난 물량의 기자재 값까지 전부 일본으로 되돌아가게 하자는 속셈이 손에 잡힐 듯 보였다.” (정주영 저,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중에서) 

 



▲ 사력댐 방식 (출처: http://www.damsafety.org)



후일 유조선을 가라앉혀 간척사업을 전개했던 ‘정주영 공법’의 창시자의 머리는 분주하게 돌고 있었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그때 그의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은 우리나라 산하라면 어디나 차고 넘치는 모래와 자갈이었다. 댐은 재료에 따라 그 종류가 나뉜다. 우선 콘크리트 댐, 그리고 사암(沙岩)의 사(沙)자와 역암(礫岩)의 력(礫)자가 합쳐진 글자로 구성된 사력댐, 즉 모래와 자갈로 만든 사력댐이 그것이다. 현대건설은 태국에서 댐 건설에 입찰해 본 경험도 있어 전혀 댐 문외한은 아니었기에 그런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정주영은 당장 실무자를 파견하여 “해 봐”라고 지시한다. 조사 결과는 OK. 콘크리트 댐에 비해서는 그 경제성 면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용기 백배한 정주영은 동양 최대의 수풍댐 건설에 빛나며, 댐 건설에서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는 일본 유수의 대기업 일본공영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사력댐으로 합시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은 많았다. 일단 ‘관존민비’(官尊民卑) 문화가 만연하던 시절 근엄하기 짝이 없던 공무원들이 버티고 있었고 자부심으로 그득한 일본 설계사가 있었다. 이 국가적 대공사에 일본 회사가 설계해 주고 건설부 승인까지 난 댐을 자신들 마음대로 바꿔 보겠다고 나선 맹랑한 건설사가 그렇게 곱게 보일 리는 없었으리라. 먼저 공무원들의 호통부터 울려 나왔다. “뭘 어떻게 변경하자는 거요?” 기가 죽어버린 실무진들을 제치고 정주영이 열심히 설명했으나 일본공영의 반응은 “니가 댐을 알아?” 분위기였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지방도시 10여 곳의 상수도 건설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등 경제적 효과를 설명하던 정주영은 매우 참기 어려운 모욕을 당한다. 일본공영 부회장 하시모토의 극언이었다. “당신 어디서 댐 공부했나? 무식한 소리 하지도 마라.” 정주영은 그때의 심경을 이렇게 남긴다.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을 찔렀던 모양이다. “동경대 출신인 그가, 내가 학교 거의 공부를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내 기를 죽이자고 그렇게 나왔다고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식민지를 겪고 전쟁으로 온 국토가 초토화된 나라, 자본이라고는 식민지 시대를 헐값으로 보상받은 돈 밖에 없었고, 기술이라고는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이 다였으며, “뭘 아는” 사람, 또는 “어디서 공부한 사람”은 7년 가물의 콩만큼 귀했던 나라의 한계이자 슬픔이었다. 그렇게 사력댐을 하자고 고집하던 정주영 자신도 그 강철같은 신념의 한구석에는 과연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었을진대, ‘피 같은’ 자금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일제 시대 한국인들이 흘린 핏값 그 자체였던 대일 청구 자금을 집행해야 하는 공무원들 입장으로서도 머리가 터져 나갈 듯한 고민이었을 것이다. 자존심을 다친 듯 으르렁거리는 일본공영을 따르는 게 좋은 건지, 눈을 똑바로 뜨고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는 현대건설 사장을 믿을 것인지. 대세는 “대세를 따르자”는 것이었다. 대세란 당연히 일본의 설계대로 중력댐으로 밀자는 것이었다. 천하의 정주영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해 봤는데” 안 되는 걸 어쩌란 말인가. 그런데 문제는 전혀 엉뚱하게 풀렸다. 



▲소양강댐 전경(출처: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



건설부 장관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사력댐보다는 중력댐이 좋다는 식으로 보고하면서 말미에 단 사족이 뜻밖의 열쇠가 된 것이다. “현대 정 사장 주장대로 사력식으로 건설하면 자칫 큰 일 날 수 있습니다. 건설 도중에 큰 비라도 오면 댐이 무너져 서울이 다 물에 잠길 테고, 그럼 정권이 흔들립니다.” (스포츠 한국 2009.9.26) 현대 정주영이라면 익히 알던 박정희 대통령이 혹여 다른 선을 통해 정주영의 경제성 주장에 설득될까 봐 두려워 오금을 박은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말이 소양강 댐의 운명을 바꾼 한 마디가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Posted by 국토교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