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012년 7월 1일, 세종시의 행정구역은 옛 충청남도 연기군 전 지역, 공주시, 청원군 일부를 세종특별자치시로 편입, 개편하면서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가 본격 출범하였다.


우리나라는 과거 1970년대부터 수도 이전 움직임이 있었다. 방위전략상 위치가 취약한 지점에 있다는 점과, 끊임없이 증가하던 수도권의 인구로 인한 도시 과밀화에 의한 부정적인 요소를 방지하기 위해 현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인근지역에 수도이전 계획이 있었다. 이로부터 약 35년이 지난 지금, 기존 경기도 과천시에 있던 정부부처가 세종시로 옮겼다. 


최근 이전한 정부청사 이전과 개발과정과 취지가 비슷하지만, 1970년대 이후 수도권의 비대화가 더욱 심해졌다는 면에서 현재 국토균형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더 높아지는 시기다.


대한민국 설립 이래 처음으로 실현되는 행정부처의 이전, 그렇다면, 해외에서 세종시와 비슷하게 행정도시를 이전시킨 나라는 어디 있을까?



2)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곳, 터키



‘터키(Turkey)’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면서도 ‘터키란 국가는 어떤 국가인가?’란 질문에 일반인들이 쉽게 답하기는 힘든 나라다. 2002년 한․일 월드컵 3~4위전의 상대 국가였던 터키. 이로 인해 우리가 잘 몰랐던 형제의 나라라는 인식으로 한 발 더 가까이 왔지만, 아직까지 터키라는 나라는 궁금한 점이 더욱 많다. 


이번 행정수도이전 편을 다루면서 터키를 다룬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터키의 신뢰 있는 정치구조, 하나는 곧 5월 1일부터 한․터키 FTA(Free Trade Agreement:자유무역협정)가 체결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9번째로 체결한 것으로, FTA를 체결한 국가가 46개국으로 늘었다(최근 2013년 2월 21일, 한․콜롬비아 FTA 체결로 10번째 체결, 47개국으로 늘었음). 따라서 세계 여러 나라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다른 국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국가의 수도를 알아야 된다. 과연 터키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이며, 터키의 수도는 어떤 곳일까?



<세계사의 주요 무대, 터키의 역사>


우리나라도 매우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만 사실 오늘날 터키 지역의 역사는 우리가 흔히 아는 세계사의 중심무대였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곳, 이곳은 오래전부터 다양한 문명의 중심지이자 오랫동안 지중해 연안을 둘러싼 제국들의 주요 중심지였다. 따라서 터키라는 국가를 이해하려면 터키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야 된다.


터키(Turkey)는 투르크, 돌궐이라는 단어로도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터키의 민족을 투르크라 칭하며, 중앙아시아에서 활동했던 민족이기도 하다. 돌궐족은 6세기 중엽부터 약 200년 동안 당시 몽골과 중국 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활약한 투르크계 유목민족이다. 이들은 과거 중앙아시아 몽골 주변에서 유목민족으로서 살아왔던 이들은, 소아시아 주변에서 작은 부족국가를 이루며 살아왔다. 


이들 중 셀주크투르크 부족은 이슬람교로 개종하며 예전에 살아왔던 환경과 비슷한 고원지대인 아나톨리아 반도로 넘어와 비잔틴 제국(동로마제국:330~1453)에 대항하는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였다. 이들은 당시 11세기 중엽 비잔틴제국과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성지인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유명한 십자군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결국 약 200년간 7차례에 걸친 십자군전쟁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셀주크투르크는 이후 징기스칸으로 유명한 몽골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세력을 잃고 이후 다시 투르크족은 오스만투르크로 세력을 형성한 후 중세시대 세계에서 막강한 패권을 자랑하는 오스만제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 오스만제국의 최대 영토 (15~17세기)



술탄 오스만 1세는 1299년 오스만 왕국을 선언하고 이후 1326년, 동로마의 아나톨리아 최대 도시인 브루사를 점령하고 수도를 옮기게 되었으며, 1453년에는 마침내 비잔틴제국(동로마제국:330~1453)을 정복하였다. 중세시대, 이슬람 최대국가 오스만제국이 본격적으로 세계무대위에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이후 오스만 제국은 오랫동안 유럽남부와 북아프리카, 중동지역에서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프랑스혁명의 영향으로 인해 각 민족들의 독립 운동으로 인해 오스트리아, 아랍국가 그리고 이후 그리스의 독립으로 많은 영토를 잃게 되어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20세기에 들어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불가리아 등과 동맹국을 형성하여 전쟁을 주도했지만 1918년, 오스만제국은 항복을 하여 패전국이 되었다. 영토를 대부분 상실하고 이후 그리스의 침공을 받아 국가존망의 위기가 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 위기에 캐말 파샤 아타튀르크(Kemal Pasha Ataturk, 본명은 무스타파-Mustafa Kemal)라는 인물이 등장하게 된다. 캐말 파샤는 현재 터키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1차 세계대전 이후 궁지에 몰려있었던 국가에서 민족주의를 내세워 투르크계의 단결을 꿈꾸며, 그리스, 아르메니아 등의 침공을 물리치는 데 일등공신이 된다. 그렇게 하여 국민들에게 매우 높은 지지를 받게 된다. 

지지를 받은 캐말 파샤는 오스만제국의 허울에서 벗어나 아나톨리아 고원에 위치한 현재 터키의 수도인 앙카라(Ankara)에서 공화국을 수립하였으며, 기존의 술탄 제도를 폐지하여 민주정치의 실현을 위해 정치와 종교를 분리시켰다. 민족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인식시키고, 민족 위에 군림하던 제국을 민족이 함께 하는 공화국으로 바꾼 것이다. 따라서 현재 터키의 공식 명칭은 [Republic of Turkey] 이다.


 

▲ 캐말 파샤 아타튀르크와 동상. 현재 터키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우측 사진 제공자 : Google map - Ugur GUCLUTEN(ASUG)



<터키의 최대의 도시 이스탄불(Istanbul), 그리고 터키의 수도 앙카라(Ankara)>


‘터키’하면 가장 떠오르는 도시는 이스탄불(Istanbul)일 것이다. 이스탄불은 우리에게 다양한 이름으로도 유명하다. 기원전 660년인 그리스 시대에 비잔티움이라고 불린 곳으로서, 동/서양의 연결 지점으로 지리상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최근 공개석상에서 일반인들에게 터키의 수도를 물어본 결과 이스탄불이라는 답변이 많았다. 그러나 터키의 수도는 ‘앙카라(Ankara)’라는 곳이다. 


오랫동안 그리스 로마시대의 주요 도시, 혹은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담당했던 이스탄불은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이라는 명칭으로도 유명하다. 터키의 인구는 현재 UN기준으로 약 7,270만여 명이다. 그 중 이스탄불에 1,095만여 명, 수도인 앙카라에는 407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각각 서울과 부산과 비슷한 규모다. 그리고 터키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현재 연간 5년간 약 400여만 명씩 증가하고 있으며, 높은 경제성장과 함께 이들 도시들에도 더욱 많은 인구가 몰려들고 있다.



▲ 앙카라와 이스탄불의 인구. 출처 : 통계청, UN, 대만통계청



터키지역의 역사는 기원전 수 천 년 전부터 그리스 로마 시대를 거쳐 오스만제국까지 서방의 중심지 역사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들 제국들의 중심지에는 항상 이스탄불이 있었다. 이스탄불은 불과 1km의 바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두고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 지점이자 하나의 도시로서 공존하는 도시인 이스탄불, 지정학적 위치는 설명을 길게 하지 않더라도 그 중요성을 알 것이다. 그런데 왜 앙카라라는 도시를 수도로 선택한 것일까?

우선, 터키는 3%의 유럽지역과, 97%의 아나톨리아 고원의 아시아를 영토를 갖고 있다. 터키는 유럽인가? 아시아인가? 과거 수도였던 이스탄불 역시 유럽과 아시아가 공존하는 도시였다. 그러나 터키는 다수의 투르크계 민족에 쿠르드족 등 아시아계 민족이 다수를 차지하며, 많은 국민들이 이슬람교도다. 캐말 파샤는 술탄제의 폐해로 인한 오스만제국의 몰락을 느꼈으며, 많은 민족들도 여기에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터키, 국가 명칭부터 민족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명칭도 대한민국, 한국(大韓民國, 韓國)으로 국가명칭에 민족성이 나타난다. 


▲ 3%의 유럽과 97%의 아시아의 영토를 지닌 국가 터키. 

이스탄불은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 지점이며, 앙카라는 상대적으로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출처 : google map

 


<터키, 앙카라에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다>


캐말 파샤가 원했던 국가 아마는 민주정치의 실현을 통한 국민 모두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회일 것이다. 따라서 민족의 무궁한 발전과 영광을 위해 당시 오스만제국의 몰락 위기 속에서 민족성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국가와 민족을 지칭하는 언어가 상호 유사한 특징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민족성이란, 소속감과 사명감을 갖게 하여 국민의식 고양으로 국가의 정체성 확립, 소속감 증가로 자발적 사회 참여, 사명감 증가로 국민의식 고양으로 인한 국가 발전이 함께 따르게 된다. 이후 국난을 극복하고 아직까지 이슬람국가와 서방국과의 대립각을 세우는 구조 속에서 유연한 대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 갈등 속에서도 인류 보편적인 평화를 유지하며, EU가입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과 세계 여러 국가와의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교도인데도 세속주의를 선택하여 정치와 종교의 엄격한 분리를 추진한 캐말 파샤의 과감한 결정이 투르크계 민족의 또 다른 오늘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해에는 터키공화국 출범이 90주년이며, 곧 우리나라와 FTA를 체결하는 국가다. 

오래 전부터 ‘형제의 나라’라고도 불리는 터키, 터키는 6.25전쟁 당시 약 15,000명의 군대를 파병하였으며, 765명이 머나먼 이국땅에서 전사했다고 한다. 따라서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 가면 한국공원이라는 곳이 있다. 1971년 서울과 앙카라가 상호 자매결연으로 6.25전쟁 당시 역사적 관계를 기억하기 위해 앙카라에 한국공원이 건립되었으며, 우리나라에도 여의도 인도네시아 대사관 남서쪽에 앙카라공원이 있다.


 

▲ 터키 앙카라의 한국공원                             ▲ 서울 여의도 앙카라공원(인도네시아 대사관 옆)

출처 : wowturkey.com, google street view



우리는 과연 터키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에게 터키는 많이 들어본 나라지만, 제법 멀리 떨어진 국가인지라 관심 있게 보지 않는 이상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터키는 이슬람 국가다. 그러나 세계 여러 나라들과 우방을 유지하고 있으며, 공화국 출범 90년을 넘어 100주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며, 우리나라와의 관계도 올해부터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터키의 문화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사실 앙카라라는 도시는 브라질리아와 같이 거창하게 계획된 것이 아닌, 1차 세계대전과 오스만제국의 몰락,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민족운동의 결과로 이루어진 역사적 산물이 강하다. 따라서 유수한 역사를 지녔으며, 경제, 관광, 문화의 중심지인 이스탄불을 놔두고 앙카라로 수도를 지정한 것에는 단순한 수도 기능 이전을 통해 수도권을 분산시키는 것이 아닌, 과거 중앙아시아 고원을 호령하던  투르크계 유목민족, 그리고 중세 이후 아나톨리아 고원이라는 곳에서 살아왔던 터키 국민들을 위해, 또 다른 새로운 시도였으며, 현재 정치․문화․경제적으로 터키를 유지하게 한 결단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터키와 앙카라라는 곳은 도시의 물리적 공간보다는 터키 특유의 민족성, 문화의 이해를 통해 다가가면 더욱 가까이 와 닿을 것이다. 



[해외의 도시계획 - 행정수도 이전 편]



주지오(朱志悟) - 1987년 1월생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나 동아대학교 정치행정학부(행정학 전공)를 졸업하여, 동아대학교 도시계획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마친 후 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국내외 도시에 관심이 많으며, 현재 주 연구 분야는 도시정책, 부동산/주택 분야이다. 현재 ‘부산사랑의 도시 이야기’라는 도시․부동산 관련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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