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것이라고는 모래 사장과 횟집 밖에 없었고 해병대 1사단의 존재에 경기가 사느냐 죽느냐가 결정되던 도시 포항. 그런데 수백 년 전에 이 포항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리라고 예언한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이름은 이성지. 풍수의 대가였던 그는 포항 일대의 황량한 모래밭을 일컬어 부르던 어룡사(魚龍沙)를 방문한 길에 “후일 이곳에 수만 명이 모여 살 것이다.” 아니 이런 사막 같은 모래밭에 어떻게 수만 명이 들어와 산단 말이냐, 그 말만큼은 믿지 못하겠다, 친구들이 코웃음을 치는 가운데 이성지는 이런 시를 읊는다. 


“어룡사에 대나무가 나면 가히 수만 명이 살 곳이니라. 서쪽 문명이 동방에 오면, 돌이켜 보니 모래밭이 없어졌더라.” (竹生魚龍沙 可活萬人地 西器東天來 回望無沙場)  (http://blog.posco.com/20 에서 인용)


따지고 보면 대나무 같이 곧은 제철소 굴뚝들이 들어서고 그것들은 서방의 철강 기술을 근거로 지어진 것이며 악명 높은 모래밭은 사람들의 터전으로 바뀌지 않았는가. 이성지의 예언은 맞아 떨어진 셈이다. 하지만 포항이 제철소를 유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선진국들의 입지 조사 결과에서도 포항은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 포항제철 전경(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



하지만 정부는 2년간의 고심 끝에 최종적으로 포항에 종합제철소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한다. 지리적으로 부산과 대구 등 대도시가 부근에 있어 노동력 확보가 쉽고, 건설 중이던 경부고속도로와 경부선 철도가 가까워 교통이 편리하며 주변 낙동강과 태화강이 지척에 있어 공업용수 확보에 어려움이 없으며, 조수 간만의 차가 적고 수심이 깊은 항만을 지녔다는 것이다. 


하나 더 중요한 요인을 들자면 안보적 우려였다. 인민군에게 밀려 낙동강 방어선까지 후퇴했던 6.25 전쟁의 쓰라림의 기억이 포항을 결정하게 했다는 주장이다. 포항도 인민군에게 함락되긴 했지만 그 시기가 상대적으로 짧았던 것이다. 혹자는 포항제철을 비롯, 남동임해공업단지 자체가 이 안보적 요소 때문에 건설됐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휴전 20년을 치닫고 있었지만 그만큼 전쟁의 상흔은 나라의 곳곳에서 시커멓게 발견되고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포항 제철 건설은 결정됐지만 이번에는 나라 밖에서 태클이 들어왔다. 회사간의 이견과 비관적인 전망 등으로 인해 해외 각국 8개 회사가 조직한 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가 일단 와해됐다. IBRD(국제부흥개발은행)의 보고서도 한국에 제철소는 가망이 없다고 판정했다. “한국의 제철소 건설은 엄청난 외환비용에 비추어 경제성이 의심된다. 노동•기술집약적인 기계공업을 우선하라”는 것이었다. 판 벌여놓으니 물주가 발을 빼는 형국. 포항제철 박태준 회장이 미국으로 날아가 IBRD를 설득했으나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당신의 애국심은 알겠지만 사업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미국에서 낭패를 보고 실의에 빠진 박태준의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은 대일청구권 자금이었다. 그러나 대일청구권 자금은 농•어업에만 투자할 수 있는 것으로 양국 국회의 비준이 끝난 상황이었다. 박태준은 일본으로 직접 가서 이 문제를 조정하고 일본 제철사의 지원까지 받아낸다. 이때 도움을 준 일본의 야하타 제철(후일의 신일본제철)에는 또 하나의 거짓말 같은 역사적 사연이 얽혀 있는데 그 제철소는 90여 년 전 청일전쟁 때 청나라의 배상금을 바탕으로 세워진 회사였다. 일본이 왕년의 천자(天子)의 나라를 무찌르고 아시아의 변방 국가에서 세계 열강의 반열에 오른 계기이자 상징이었던 야하타 제철소가 이번에는 왕년의 식민지였던 나라의 사활을 건 제철소 건설을 돕게 된 것이다. 



 

▲ 포항제철 건설현장 (출처: 국가기록원 http://www.archives.go.kr)



이렇게 영일만 허허벌판에 제철소의 씨나마 뿌릴 수 있게 되었을 때 박태준이 제창한 것은 ‘우향우 정신’이었다. 이 제철소를 만드는 돈은 선열들의 피땀 값이니 이걸 모래사장에 헛되이 쓸어 넣는다면 우리 역시 ‘우향우’해서 영일만 바다로 뛰어들어 죽자는 것이었다. 마침내 1970년 4월 1일 만우절의 거짓말 같은 일이 현실화된다. 한가한 어촌 마을과 진배없는 허허벌판 위에서 포항제철 기공식이 대통령과 부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렇게 연설한다. “....... 이제부터 본격적인 공장 건설을 시작하는 여러분들에게는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 더 어렵고 더 중요한 일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장 이하 전사원들이 일치 단결해서 우리 민족의 하나의 역사적 사업이 될 수 있는 이 포항 종합 제철 공장을 여러분들 손으로 완공한다는 긍지와 보람을 느끼고 이 공장을 훌륭한 공장으로 건설해 주기를 부탁해마지 않습니다.“ 


연설 도중에도 세찬 바닷바람에 실린 모래들이 행사장을 뒤덮을 듯 날아다녔고 참석자 중에는 이 공장이 과연 지어질 수 있을까 중얼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포항의 모래 바람은 수백 년 전부터 유명했다. 하루 종일 작업한 것이 자고 일어나면 모래투성이에 엉망이 되는 일도 다반사였고 박정희 대통령 자신 브리핑을 받다가 눈이고 코고 가리지 않고 들어가는 모래 때문에 재채기를 하지 않고는 못 배겼다고 하니 그 어려움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어느 날 박정희 대통령은 박태준 회장에게 그답지 않은 불안한 어투로 물었다고 한다. “남의 집 다 헐어놓고 제철소 되기는 되는 기가.”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천하의 박태준도 그날 위경련을 일으킬 만큼 신경이 곤두섰다고 한다. 그렇게 상황은 열악했고 조건은 험난했다. 




▲ 1973년 포항제철 (출처: 국가기록원 http://www.archives.go.kr)



그러던 중 마침내 1973년 6월 새벽이 왔다. ‘어룡사’(魚龍沙), 즉 바다의 용들이 펼쳐놓은 모래밭에 대나무 같은 제철소 굴뚝이 서고 사람들이 모여 뼈를 깎고 피와 땀이 범벅이 된 노력 속에 첫 쇳물이 쏟아져 나오는 날이었다. “박태준 회장 등 임직원들은 45m 높이의 작업대에 올라섰다. 용광로 군데군데 뚫린 손가락 굵기의 송풍구 사이로 벌건 쇳물이 끓고 있었다. 용광로 출선구(쇳물이 나오는 구멍)를 임시로 막아둔 진흙만 쇠파이프로 뚫으면 쇳물이 쏟아져 나와야 했다. 하지만 "뚝"하는 소리와 함께 쇠파이프가 두 동강이 났다. 박태준의 표정은 굳어졌다. 무거운 침묵 속에 벽 두께 2m가 되는 구멍을 산소불로 직접 뚫는 사투가 시작됐다. 2시간 30분이 지났을까. "펑"소리와 함께 오렌지색 섬광이 치솟았다. 용암 같은 황금빛 쇳물이 흘러나왔다. "나왔다. 만세!" 박태준은 두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불렀다.” (조선일보 2011년 12월 15일자) 


만세를 부르는 모습은 단 한 장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사진사 또한 쏟아져 나오는 쇳물에 감격한 나머지 쇳물만 내처 찍어대다가 미처 만세 부르는 사람들의 정경은 그 한 장을 찍는데 그쳤던 것이다. 미칠 것 같은 기쁨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들의 가운데에 박태준은 좀 어정쩡한, 또는 넋 나간 표정으로 서 있다. 후일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기쁨보다는 이제 시작이다, 고생이 더 남았다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랬다 실상 시작일 뿐이었다. 불모의 모래밭은 국제적으로도 알아주는 철강 지대로 변모했고 스승 일본을 능가하는 제철소로 화하여 그 굴뚝으로 ‘대나무숲’을 이뤘으며 그 굴뚝 아래에서 수만 명이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철판 하나 만들기 위해 발버둥치고 몇 번의 실패에 이를 악물던 수십 년 세월은 오늘날의 세계적 대기업 포스코와 그 모태인 ‘포항의 기적’으로 보상받았다. 


 


▲ 포항제철 작업 모습 (출처: 국가기록원 http://www.archives.go.kr)



상전벽해(桑田碧海), 즉 ‘뽕나무밭이 바다가 되다’라는 고사성어가 가장 단시일에, 가장 극명하게 현실화된 사례를 들자면 1960년대 이후의 대한민국은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것이다. 언젠가 6.25전쟁에 참전했던 캐나다 군 참전용사를 만난 적이 있다. 그때 그는 포스코 공장을 둘러보고 온 길이었다.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얘기했다. “당신들 모두는 기적을 이룬 사람들이다. 당신들 한국인들 모두. 나는 이제 한국에 왔던 것이 자랑스럽다. 죽어간 동료들도 그럴 것이다.” 그는 "All of you"를 유독 강조했다. 포항의 기적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포항제철 시리즈

> 포항제철 1편

> 포항제철 2편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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