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한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니다. 그 시대의 역사는 그 시대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 흐름의 맨 앞에 서는 사람은 있다. 그가 반드시 위대한 사람은 아닐지라도, 또는 선량한 사람은 아닐지라도 그 의지와 창의는 다른 사람들의 등을 떠밀고 어깨를 빌리고 손발을 움직이게 만든다. 유조선까지 끌고 와 초속 8미터로 흐르는 바닷물을 막아 보려 했지만 실패하고 유조선이 저만치 밀려간 풍경 앞에서 아연실색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다시 예인선을 부르라”고 호령하던 현대그룹 회장 정주영 역시 그랬다.




▲ 유조선 공법(출처: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 http://bit.ly/19AUhFF)



“물탱크 채워!” 22만 6천 톤의 육중한 폐유조선이 점차 물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그 몸체가 해저에 닿으면서 해수의 흐름은 완연히 그 기세가 꺾였다. “지금이다!”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단 이틀 만에 지긋지긋하던 물막이 공사가 이뤄졌고 290억의 공사비와 36개월의 공사기간이 절약됐다. 본격적인 간척 사업이 전개됐다. 새로이 육지가 될 운명이었던 서산 A,B 지구의 넓이는 여의도의 33배, 1억5537만㎡(4700만평)의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일대의 해안선은 110킬로미터에서 8킬로미터로 10배가 넘게 줄어들었다.


그렇게 흙을 쏟아 부어 바다를 육지로 만들었다고 해서 금방 쓸 수 있는 땅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최소 수 백 만년 동안 바다였던 곳의 소금기를 빼는 데에도 몇 년의 세월이 들어갔다. 그 지난한 작업이 끝난 후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지평선과 수평선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거대한 평원이었다. 우리나라 전체 농지 면적의 1%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벼농장.


  

 

▲현대서산농장 (출처: http://www.hdfnd.co.kr/)



<광야에서>를 노래하면서도 진짜 ‘광야’는 만주 벌판 쯤에서나 봐야 했던 한국인들에게 그 광막한 땅덩이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풍경이었다. 비행기에서 농약을 뿌려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푸른 벼들의 바다는 그때까지 한국인에게는 외국에 가서나 눈 여겨 볼 수 있는 일종의 신천지였던 것이다. 정주영 역시 가난한 농민의 자식으로서 땅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다. 


“타고난 농사꾼이었던 그는 세심하게 작황을 살폈다. 제대로 추수가 안된 곳이 눈에 띄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한 직원은 “한번은 그가 B지구의 풀 속에서 추수가 안된 보리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농사꾼이 어디 곡식을 남겨두는 법이 있느냐’며 내리 30분 동안 혼이 났다. A지구에 가서 무논에 벼 포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서야 화가 누그러졌다”라고 말했다. 윤석용 영농작업부장은 “그분은 곡식을 무척 아꼈다. 벼를 뽑아 보고 뿌리의 생육 상태를 본 다음에는 반드시 다시 심어 놓게 했다. 이삭을 세어 볼 때도 모가지를 뽑았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지기 일쑤였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 2000.11.30) 뿐만 아니라 “시험 영농이 있었던 1985년부터 15년 동안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5시에 전화로 ‘영농 현황 보고’를 받았다. 장비들의 작업 위치가 어디인지, 송아지가 새로 몇 마리나 태어났는지, 논에 물은 충분히 차 있는지, 그는 이것저것을 꼬치꼬치 캐어 물었다”고 하니 가히 상상이 간다.


땅에 대한 집착은 그가 바로 이 땅의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트라우마일지도 몰랐다. 그 자신 “서산농장의 의미는, 수치로 나타나는, 혹은 시야를 압도하는 면적에 있지 않다. 서산농장은 그 옛날 손톱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돌밭을 일궈 한 뼘 한 뼘 농토를 만들어가며 고생하셨던 내 아버님 인생에 꼭 바치고 싶었던, 이 아들의 때늦은 선물이다.” (<이 땅에 태어나서> 정주영)라고 말하고 있거니와, '내 땅' 한 마지기란 지주 앞에서 죽는 시늉도 하고 돌밭 자갈밭 가리지 않고 곡괭이질을 손바닥에 피가 나도록 했던 수백만 농민들의 가슴에 엉킨 한이요 숨길을 막은 가래요 토해 내고 싶은 핏덩이였다. 이는 또한 그 자식들이 이 악물며 꿈꾸던 "내 집 한 칸"의 소망으로 이어졌다. 바다를 평야로 만드는 간척은 그래서 희망일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톨스토이의 우화 하나를 떠올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하루 해가 떠 있는 동안 내달려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출발점으로 돌아온다면 간 거리만큼의 땅을 주겠다는 말에 우화 속 주인공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를 외치며 가능한 멀리까지 나아간 뒤 출발점으로 돌아오기 위해 전력을 다해 달리다가 숨에 차 쓰러져 죽고 만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의지가 욕심으로 화하고 소박한 희망이 대박의 탐욕으로 변할 때 행운은 악운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는 교훈을 배운다 . 



 

▲ 출처: 공간정보 오픈플랫폼 http://map.vworld.kr/map/maps.do#



우리는 많은 땅을 얻었다. 호남평야의 너른 들, 서산 앞바다를 메우고 생긴 서산 농장, 그리고 서울 시민들의 생활 쓰레기를 몽땅 받아 안고 있는 김포 매립지까지. 5톤짜리 바윗돌을 공깃돌 부리듯 하는 그 무지막지한 바다를 돌과 흙으로 메우고 유조선으로 물을 막고,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옮기고 바꾸면서 한국인들은 그 역사에 없던 거대한 땅덩이를 국토에 편입시켰다. 이는 불가능을 가능케 했던 대단한 용기의 소산이었다고 치하할 만하다. 그러나 아울러 그 광대한 땅은 그 넓이만큼의 풍성한 갯벌과 간척지에서 생산되는 쌀만큼이나 값진 황금 어장을 소멸시키고 생겨난 것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인구는 많고 땅은 좁은” 콤플렉스에 갇히던 시절로부터 벗어 난지는 이미 오래고, ‘내 땅’에 목숨을 걸던 시대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롭다. 그렇다면 이제는 험한 바다를 메우던 용기와 아울러 과연 우리 국토를 더욱 효율적으로, 그리고 후손들에게도 유익하도록 가꾸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할 때에 도달하지 않았을지.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에 감격하고 스스로를 고무할 때도 있었으나 이제는 뽕나무 밭은 뽕나무 밭대로, 푸른 바다는 푸른 바다대로 우리가 발 딛고 노 저어 살아야 할 터전으로 삼아야 할 때가 아닐는지. 일제 시대 이래 간척의 역사는 20세기를 관통하고 장악했다. 이제 21세기의 대한민국은 또 다른 역사(役事)를 필요로 할 것이다. 용기와 집념에 더하여 신중한 지혜와 미래를 위한 슬기가 곁들여진, 그리고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새로운 역사 말이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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