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프랑스의 휘브릴 사였다. 휘브릴 사는 무슨 욕심이었는지 휘청거리는 나라 조선에 들어와 1896년 서울에서 의주까지의 철도 부설권을 따냈다. 그리고는 서울에서 목포까지 내달릴 '경목선' 부설권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이 철도는 조선의 곡창지대인 논산평야와 호남평야를 관통하는 알토란 같은 노선이었고 조선 정부는 이를 거부한다. 그런데 경부선을 따낸 일본도 이 노선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심지어 경부선을 호남을 거쳐서 깔자는 건의까지 했다니 그 꿍심을 알만하다.


경목선, 즉 오늘날의 호남선만큼은 우리 힘으로 깔아보려는 움직임은 꽤 강력했다. 정부차원에서 '경목선' 부설을 시도하기도 했고 예산 부족으로 민간에게 넘어간 뒤에도 부설권은 한국인들로 이뤄진 '호남철도 주식회사'가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실제 공사에 들어갔지만, '국방상 중대한 기능을 하는 철로 건설을 개인에게 불하함은 곤란'하다는 일본의 개입으로 좌절하고 만다. 이제 철도의 완성은 일본의 몫이었다. 일본은 호남선을 시급히 완성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한국 최고의 곡창지대에서 나오는 쌀이었다.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1914년 1월 11일 3년 8개월 동안 구간 별로 시차를 두고 개통해온 대전과 목포간 철도 노선 가운데 전북 정읍과 광주 송정리를 잇는 9번째 철도구간이 완공됨으로써 ‘호남선’이라는 이름의 완성된 철도가 역사에 등장한다.


그러나 호남선의 경우는 그 출발부터 분위기가 서글펐다. 일본과 만주,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경부선과 경의선에 비해 노골적인 차별이 이뤄진 것이다. 일단 운행 횟수가 적었고, 여객의 수송보다는 쌀 같은 화물 수송이 중심이었기에 시설이 남루했고 기차 자체도 낡은 것이 투입됐다. 결정적으로 경부선, 경의선은 일본인도 많이 이용했지만 호남선은 상대적으로 '조센징 투성이'의 기차였다. 


“근일 철도에서 하는 일을 보면 아무리 지선이라도 경원선과 호남선에 대하여는 학대가 비상하여 똑같은 기차 삯을 내는데 어찌하면 철도길이 다르냐고 이와 같이 차별을 하는가 하는 생각이 자연히 승객의 마음에 일어난다.”


1920년대 동아일보 기사이니 미루어 짐작이 갈 것이다.


호남선의 서글픈 운명은 그 후로도 계속됐다. 일제의 쌀 수탈이 가속화되면서 고향을 떠나야 했던 농민들이 이불짐 싸 들고 만주라도 가려고 몸을 싣는 기차였고, 해방된 뒤에도 땅 파다가는 굶어 죽을 재간 밖에 없던 농민들, 또는 그 아들들이 열차 문간에라도 엉덩이를 붙이고 서울로, 서울로 가던 열차였다.



그래서일까 호남선은 유독 노래에 많이 등장한다. 

가수 안정애가 부르고 조용필이 리메이크하여 공전의 히트를 쳤던 노래 <대전 블루스>. 충청도 일원의 응원가로도 불리고 대전역 앞에 노래비도 서 있는 이 노래 가사에 등장하는 “대전발 0시 50분”은 목포행 호남선이었다. 그리고 0시 50분은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시간이다. 



 

▲출처: 코레일 뉴스 http://news.korail.com



1959년 2월 운행이 시작했던 제33열차는 밤 8시45분에 서울을 출발, 대전에 0시40분에 도착했고 목적지인 목포를 향해 0시 50분에 기적을 울렸던 것이다. 이 열차의 운행은 오래지 않아 중단됐고 0시 50분발 목포행 열차는 대전역에 남아 있지 않지만. 


1959년 어느 날 밤이었다. 대전에 출장 왔던 신세기레코드사 직원 최치수씨는 대전역에서 가슴을 울리는 풍경을 본다. 한 젊은 남녀가 눈물을 그렁그렁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밤 0시 40분 요란한 기적 소리가 울려 왔다. 연인 중 하나를 태우고 갈 기차였다. 그리고 눈물 어린 이별 속에 대전발 0시 50분은 떠난다. 최치수는 뭐에 얻어맞은 듯 여관방으로 달려들어갔고 노랫말을 써내린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이 노랫말을 본 작곡가 김부해씨의 머리 속에도 영감이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3시간 만에 노래 하나를 뚝딱 작곡해 냈다. 그것이 바로 <대전 블루스>다. 공전의 히트를 치며 신세기레코드사 사상 최고의 판매액을 경신하게 만든 이 노래는 호남선을 타고서 세상으로 나왔던 것이다. 


"나 떠나면 누가 할까 늙으신 부모 모실까 서울로 가는 길이 왜 이리도 멀으냐"고 김민기가 노래한 서울길도 필시 호남선을 타고 가는 길이었을 것이고, 해태 타이거즈를 응원하는 열혈 팬들은 신날 때는 "남행열차"를, 우울할 때는 "목포의 눈물"을 부르면서 기차 한 칸씩을 빼곡히 메우며 잠실벌과 광주를 왕복했던 것도 호남선이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이 철도만큼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실어냈던 철도가 있을까. 


해방 당시 인구의 1/3 내지 절반 가까이 타지로 실어낸 철도이지만, 이 철도가 복선화, 그러니까 일제가 3년 만에 후다닥 해치운 호남선 레일 옆에 레일 하나 더 까는데 36년의 세월이 걸렸다. 호남선 복선화가 완성된 것은 2003년 12월의 일이었던 것이다. 이 기구하고도 멍울진 역사를 돌아보다 보면 되면 구성진 노래 한 자락이 목구멍에 걸리게 된다. <비 내리는 호남선>




 ▲ 출처: 다음뮤직 http://bit.ly/18E99Rq  (이미지 클릭 시 노래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목이 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이 눈물을 흘려야 옳으냐

사랑이란 이런가요 비 나리는 호남선에 헤어지던 그 인사가 야속도 하더란다

다시 못 올 그 날짜를 믿어야 옳으냐 속는 줄을 알면서도 속아야 옳으냐

죄도 많은 청춘인가 비 나리는 호남선에 떠나가는 열차마다 원수와 같더란다

 


Posted by 국토교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