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5월 14일 한 뮤지컬이 대학로 학전 소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독일의 폴커 루트비히원작의 '리니에 아인스(Linie 1)'의 번안판이었던 <지하철 1호선>이라는 뮤지컬이었다. 독일 통일 전 서베를린 지하철 1호선을 무대로 시골에서 올라온 독일 처녀와 그 승객들의 사연을 소재로 ‘베를리너’들의 애환을 담아낸 작품이다. 1986년 초연했고 각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뮤지컬이었다.

 

▲ 지하철 1호선(출처: 극단 학전)



이를 90년대 한국의 사연으로 엮어낸 것이 저 유명한 노래 <아침이슬>의 작곡가 김민기였고 그의 <지하철 1호선>은 이후 2008년 막을 내릴 때까지 무려 4000회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롱런한다. 관객의 호응도 호응이려니와 원작자 폴커 루트비히가 내한하여 공연을 보고 “가장 잘 옮겨진 작품”이라며 로열티를 면제해주기까지 했으니 그 작품성이야 더 말하는 것이 무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지하철 1호선>이 막을 올릴 때쯤이면 지하철은 4호선까지 있었고 서울을 지하로만 관통하는 5호선이 한창 공사 중일 때였다. 그 가운데 구태여 ‘지하철 1호선’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 이유는 지하철 1호선이 우리 나라 서민들의 풍경화를 그리는 데 가장 적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하철 2호선은 그 노선에 대학교도 많고 강남, 선릉, 역삼 등 새롭게 떠오른 번화가를 지나고 3호선은 이미 90년대 초반에도 유명했던 ‘압구정’을 필두로 신도시를 관통하는 지하철 노선이었다. 반면 1호선은 인천과 수원에서 의정부에 이르는 그 기나긴 노선과 역 곳곳마다 90년대 아니 어쩌면 우리 시대에까지 걸쳐서 으리으리하거나 세련된 동네와는 별로 인연이 없다. 


구로공단에 출근하기 위해 눈 비비며 올라타던 지하철이었고 서울역에 내린 시골 처녀 총각들이 오가는 차들과 번화한 건물에 현기증을 느끼는 곳이었고 가진 것이라고는 경로우대권 뿐이던 노인들이 그나마 그분들의 공간이라 할 종각 파고다 공원까지 타고 가던 곳. 그리고 저 유명한 ‘588’이 엄존하던 시절의 청량리 역, 재수생들로 그득해지던 노량진 역까지 사연이야 무궁무진하게 뽑아지지 않았을까. 가장 먼저 생겼지만 다른 노선의 지하철이 자랑하는 에스컬레이터 하나 없는, 한때 영화를 누렸으나 지금은 퇴락한 듯한 분위기까지 곁들여진다면 독일의 <지하철 1호선>을 번안하는데 다른 지하철 노선을 생각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 지하철 1호선(출처: 극단 학전)



한국의 <지하철 1호선>은 연변에서 온 선녀라는 여자를 이야기의 중심축에 놓는다. 선녀라는 여자는 중국에서 사랑을 나눈 ‘제비’를 찾아 임신한 채 서울을 찾지만 그녀가 만나는 서울은 꿈에 부풀어 상상하던 그 서울이 아니었다. 그녀가 만나고 엮이는 지하철 1호선 속의 군상들, 창녀, 가짜 운동권 학생, 포장마차 할머니, 그 단속반, 가출소녀, 자해공갈범, 잡상인, 전도사, 깡패, 등 별의 별 군상들은 글자 그대로 한 시대 서울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지하철 1호선’이었다. 그리고 90년대만이 아닌 70년대, 80년대와 2000년대에도 큰 차이가 없는 ‘진짜 서민들의 발’ 지하철 1호선이었다. 



 ▲ 출처: http://bit.ly/1a3dwZn



예나 지금이나 각 역의 혼잡도 비교에서 부동의 1위를 놓치지 않는 전철역이 있다. 신도림역이다. 그 이유는 1호선과 2호선의 환승역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헬 게이트’라고 하여 지옥에 비유되기까지 하는 이 신도림역의 하루 평균 환승객 수는 약 36만 명이고, 승•하차 인원 12만 명으로서 거의 50만 명에 달하는 이용객이 이 역에 발을 디딘다. 수원과 인천에서 오는 인파가 서울로 들어와 동서로 갈라지는 관문 역할과 인천과 수원으로 나가는 출구 역할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보면 순환선 2호선의 출발점이자 종점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신도림에서 나가고 들어오는 2호선에도 사연은 많다. 


지하철 2호선은 연대 뿐이 아니라 가히 고3들에게는 꿈의 노선이라고 부를만한 노선이었다.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 건국대, 경기대, 한양대, 서울교대 등등이 그 노선에 버티고 있었으니 “2호선 타고 학교 가자.”는 머리띠를 매는 것도 과히 틀린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이름이 그냥 붙여진 것은 아니었다. 

 


▲ 지하철 노선도(출처:네이버)



최초로 역명으로 대학이 사용된 것은 교대역이 처음이었는데 각 학교와 학생들은 전철역에 자신의 학교 이름을 붙이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원래 동교역이었던 전철역은 홍대입구역으로 바뀌었고 화양역은 건대입구역이 됐다. 건대생들은 이를 위해 몇 차례의 데모도 불사하며 그 이름을 쟁취했다. 그러나 신촌역은 연세대와 서강대의 팽팽한(?) 대결 속에 그냥 신촌역으로 낙찰을 봤다고 전한다. 


또 2호선은 가장 많은 승객을 실어 나르는 노선이기에 각종 사건 사고가 많이 발생하기로 유명하다. 성추행 피해가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노선이었고 소매치기들이 제일 활개를 쳤던 주 무대였고 지하철 수사대의 눈초리가 가장 매서운 노선도 2호선이었다. 경찰은 "2호선에서 소매치기 범죄가 많이 발생한 것은 이용객이 많고 혼잡하며 역내는 범인의 도주가 용이하고 혼잡한 동선으로 범죄가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아마도 가장 가엾은(?) 소매치기는 작년 (2012년) 크리스마스 이브, 춥고 배고프고 갈 곳도 없어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소매치기를 하다가 경찰에 덜미를 잡힌 소매치기일 것이다. 그 지갑에 단돈 100원이 들어 있어서 ‘피해액 100원’이었는데 하필이면 그 소매치기의 생일은 크리스마스였다고 한다 


어느 지하철 어느 역이 그렇지 않을까마는 지하철 2호선의 각 역은 거의 모든 역이 사연 한 아름씩을 안고 있다. 대학생들이 많이 타는 전철 노선이었지만 그들같이 유복하지 못했던 또 다른 젊은이들은 구로공단역에서 내려 일자리를 찾아야 했고 봉천 신림역은 봉천동 신림동 고갯길만큼이나 팍팍한 오늘을 넘어 미래의 달빛을 움켜쥐리라 바지런히 움직이던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닳고 닳았고 오늘날 대림역은 내리자마자 여기가 한국인지 중국인지 헛갈리는 한자간판의 홍수에 휩쓸려 있다.


산에 올라 내려다보는 서울은 넓다. 하지만 그 땅 밑 역시 넓은 세상이다. 거미줄처럼 얽힌 노선과 역들은 사람들로 붐비고 연인들은 이별하고 잡상인들은 장사를 하고 단속반은 호각을 불고 학생들은 수다를 떨고 피곤한 사람들은 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빈 자리를 찾아 눈을 빛낸다. 지하철은 그 모두를 품고 달리며 그들의 고단한 하루를 시작하고 맺는다. 가끔은 전철을 타면 문득 문득 지난 추억들과 흘러간 역사와 잊혀진 인물들에 대해 생각하는 틈을 가져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대한민국 지하철의 역사_1편보기 (http://korealand.tistory.com/2366)

▷ 대한민국 지하철의 역사_2편보기 (http://korealand.tistory.com/2420)



Posted by 국토교통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완전좋아

    2017.05.07 09:28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