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빌딩이 들어서기 이전 8층짜리 반도호텔, 17층짜리 세운상가아파트가 서울의 ‘마천루’였던 시절은 점점 전설이 되어 간다. 도대체 언제 그랬냐는 듯 고도 성장기 서울의 스카이라인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다. 시내에는 롯데호텔을 비롯하여 고층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삼일빌딩 높이가 114미터였는데 70년대 초 중반쯤 되면 100미터를 넘는 빌딩들이 10여 개나 될 정도였다. 31층을 훌쩍 넘길 빌딩도 충분히 가능했지만 서울 중심부 지역에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는 데에는 여러 제약이 많았다. 그 가운데 하나는 ‘대통령 경호’의 문제였다. 서울 중심부에 고층 빌딩이 지어진다면 거기서는 청와대가 훤히 내려다보이게 되고 누군가 로켓포라도 반입한다면 청와대가 직격을 맞게 된다는 논리였다. 그런 의미에서 청와대 경호실은 롯데호텔 고층의 북면(北面) 창을 봉쇄했다고 한다. 


그러나 15년 동안 서울의 최고층을 지켜오던 삼일빌딩의 아성이 무너지는 날이 왔다. 35층이라든가 37층 정도로 겨우 삼일빌딩을 웃도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차원의 높이를 지닌 빌딩이 우리 곁으로 왔던 것이다. 바로 여의도에 우뚝 서서 지금도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는 63빌딩이 그것이다. 



 


63빌딩의 주인은 신동아그룹의 최순영 회장이었다. 70년대 말과 80년대 초반, 많은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대한축구협회장’으로 기억한다. 원래 신동아그룹은 대한제분을 근간으로 커 왔던 ‘빵 파는 기업’이었지만 최순영 회장은 선친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그룹을 물려받으면서 전방위로 그룹을 확장시키는 와중에 초고층 빌딩을 짓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그 출발은 종교적인 이유였다. 


“대한생명 사옥은 7층이었습니다. 이 건물을 크게 확장하여 짓기 위해 6개월 동안 저와 열심히 기도한 결과 아내를 통하여 여의도에 60층 높이로 지으라는 응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의도에 땅을 사고 건축허가를 내려 했는데 서울시청이고 청와대고 모두 고개를 저었다. 15층 이상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역시 국회가 있고 ‘5.16 광장’ (여의도 광장)이 있어서 툭하면 군사 퍼레이드나 반공 결의대회가 벌어지고 대통령이 무시로 참석하던 여의도에 웬 60층 빌딩이냐는 것이 거절의 이유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박정희 대통령 시대가 가고 5공화국이 왔다. 최순영 회장은 절대 권력의 전환기에 또 한 번 초고층 건물의 꿈을 이루려고 동분서주한다. 


“간신히 두 번째로 높은 분을 만났습니다. 육군회관 식당에 가서 그 분에게 사정을 말하고 사진을 한 장 보여주자 그 분이 "왜 허가가 안 나는지" 오히려 저에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여의도가 내려다보여 안보에 지장이 있을까 봐 안 해주는 것 같다"고 하자 그 분 대답이 "보이긴 해도 여의도와 청와대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총알은 안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허가는 다음 날 나왔다. 


그래서 여의도 강변에 우뚝 선 63빌딩은 착공된다. 지상 60층, 지하 3층의 63층이었지만 당시로서는 미국 대륙을 제외하고는 그 이상 높은 빌딩이 없던 시절이었다. 얼마 전 드라마 <추적자>에서 좀 뜬금없이 63빌딩 층수가 화제가 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총론적으로 보면 지상 60층이 맞는다고 한다. 60층 전망대에서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그 위층이 있는 거 아니냐는 반론도 있지만 그건 전망대 수가 실상 59층이기 때문에 그렇다.. 죽을 4자가 겹치는 44층을 뺐기 때문이다. 


 

▲ 78년도와 최근의 63빌딩 지역의 항공사진(출처: 브이월드)


착공은 1980년. 미국의 SOM사하고 국내 건축가 박춘명씨가 설계를 맡았고 총 공사비는 1800억이 들어갔다. 한국 건축과 건설의 자부심이 응축된 빌딩이어서 그랬을까 63빌딩은 튼튼하게 지어졌다. 강도 7의 지진과 초속 40미터의 강풍에도 버틸 수 있게 설계됐고 몇 년 전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을 때 골조는 120년은 족히 갈만큼 튼튼하다는 평가를 얻을 정도였다. 


벽면을 장식한 황금빛 유리도 화제였다. 바라보는 방향과 태양의 각도에 따라 사뭇 다른 색깔로 빛을 발하는 63빌딩의 자태는 서울의 ‘랜드마크’라 불리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아우라 속에 여러 우스개 소리가 태어나는데 그 가운데 가장 인기를 끌었던 농담은 이런 것이었다.


“63빌딩이 황금색으로 지어진 이유가 있다. 전쟁이 나면 국회의사당 돔이 짝 갈라지면서 레이저 빔 발사대가 뜨고 거기서 레이저가 발사되면 63빌딩의 황금빛 몸체에 반사돼 한강을 내리쬐고 그러면 한강이 쫙 갈라지면서 마징가 z가 출동한다.”



그런데 애초에 63빌딩이 지어질 때 이 유리판을 납품한 곳은 미국의 어느 회사였는데 그만 그 회사가 부도가 나 문을 닫았다고 한다. 다행히도 수천 장의 예비 유리를 장만하고 있어 빌딩의 황금빛은 축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브이월드로 본 63빌딩과 주변 모습


원래 여의도 자체가 지반이 약한 곳이라 기초공사도 무지 힘들었고 공사 소음 때문에 당시 세력가들이 많던 여의도 주변 아파트 주민들이 집값 떨어진다고 아우성도 많았지만 1985년 7월 27일 완공된 63빌딩, 남산보다 1미터 낮은 그 어마어마한 높이는 남산타워 이상 가는 서울의 명소가 됐다. 이 장관 앞에 발끈하면서 “우리도 하자!”고 나섰던 뜻밖의 존재가 있었다. 북한이었다. 라이벌 의식에 불타오른 북한은 63빌딩을 압도하는 100층 이상의 유경 호텔을 세우려다가 수십 년 동안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도 시샘했던 이 63빌딩을 보기 위해서, 당시로서는 유수의 볼거리이던 수족관과 아이맥스 영화관, 그리고 무엇보다 60층 높이에서 내다보인다는 인천 앞바다를 보기 위해서 사람들은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또 63빌딩에 위치한 크리스탈 볼룸이니 그랜드 볼룸이니 하는 행사장들은 기라성 같은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와 스타들의 기자회견장, 결혼식장의 단골 장소였다. 김희애 이찬진 부부나 유호정 이재룡 부부, 얼마 전의 하하처럼 유명인사들의 결혼식장도, 프로야구 선수 협의회 같은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63빌딩은 이제 동양 최고는 고사하고 한국 최고의 자리에서도 밀렸다. 31빌딩과 마찬가지로 빌딩의 주인은 원래의 주인에서 다른 기업에게로 넘어갔다. 하지만 분명히 더 높은 빌딩도 있고 더 많은 층수를 지닌 건물도 있으나 한강을 굽어보며 위엄 있고 씩씩하게 서 있는 황금빛의 빌딩은 여전히 ‘한국 최고’의 후광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 어느 새 세워 진지도 30여 년. 아빠 손을 잡고 63빌딩 꼭대기에 올라 탄성을 지르던 꼬마들이 장성하여 자신의 아이들 손을 잡고 63빌딩 전망대를 찾고 있다. 어쩌면 그 아이들의 아이들에게도 63빌딩은 최고의 구경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이미 63빌딩은 그 정도의 역사성을 획득했다고 하면 과언이 될까.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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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한번 멋~진 63빌딩을 가 보고 싶네요

    2014.10.25 18:36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