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道路)!



길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로는 ‘사람이나 동물 또는 자동차 따위가 지나갈 수 있게 땅 위에 낸 일정한 너비의 공간’을 말한다. 



길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같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의식주를 해결할 재료를 구하거나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생활을 살아가기 위해서 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 근현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길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길은 수많은 과정을 통해 교통수단과 함께 지금까지 발전해왔다. 옛날에는 전주에서 한양까지 가려면 아마도 걸어서 며칠이 걸렸겠지만, 지금은 KTX로 1시간 30분(용산 기준)이면 가는 거리이다. 운송수단의 발달이 정말 눈부시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갑작스레 궁금해져서 옛날(조선시대~근대) 전주에 살던 양반들이 과거시험을 보러 갈 때, 어떤 루트를 통해서 갔을지 본 기자가 직접 답사해봤다.




전주에서 서울까지 거쳐야 할 코스 중 맨 처음은 바로 전주부성 성문을 빠져나가는 것이 아닐까? 


본 기자는 그 중 서문을 통해서 가는 코스를 골랐다. 아쉽게도 1907년 일제의 압력으로 근대적 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호남의 모든 성곽과 성문이 철폐될 때 이 곳, 서문도 무사하지 못했다고 한다(유일무이하게 고창읍성은 건설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현재는 다가동 파출소 앞 사거리를 중심으로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어 있다. 






▲ 서문이 있던 자리 (차이나타운 형성지역)                       ▲ 서문을 지나는 두 번째 코스, 숲정이 성지




서문을 통과하여 현재의 서문교회 뒤편을 지나 전주천을 따라 내려가다보면 숲정이를 지나게 된다. 숲정이는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곳으로, 1801년 말에 유항검의 가족이 모두 참수됐으며 1839년 5월에는 신태보 외 8명 정도가 참수된 곳이다. 그들이 죽은 이유는 단지 그들이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이라고 하니, 정말 놀라운 일 아닌가? 


현재 숲정이는 성지가 되어 1984년 9월 전라북도기념물 제71호로 지정되어 있다.


굳이 서문을 통해서만 숲정이 성지에 다다르는 것은 아니다. 북문(역시 모습을 알 길이 없다)을 통과하여 비석거리를 지나면 숲정이에 이르게 된다.






▲ 지금의 비석거리 자리다. 옛날에는 길이 넓어야 저 정도였다고 한다




비석거리는 전주 부성을 다스리거나 관아에서 일하던 현령·현감의 송덕비가 길게 진열되어 있는 거리이다. 그런데 진열되어 있어야 할 비석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도로를 정비하면서 한 곳에 모아 두어 보존 중이라고 한다. 


보존? 


후세에 길이길이 남아야 할 우리의 역사를 적은 기록을 알리지 않고, 어딘가에 한꺼번에 모아두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보존이라고 할 수 있을까? 본 기자에게 보존시킨다는 말은 우리의 역사를 알 길 없는 곳에 봉인해 둔다는 말처럼 들렸다. 안타까운 일이다. 




숲정이를 지나면 배고픈 나그네에게 반가운 곳이 등장한다. 일종의 휴게소와도 같은 떡전거리다. 유동인구가 많은 이 자리는 계속해서 발전했고, 현재는 고속버스터미널이 들어서 있다. 떡전거리는 소설 속에도 등장하는데, 바로 춘향전 속의 이몽룡이 장원급제하여 암행어사를 제수받고 전라감영으로 잠입할 당시 선택한 행로가 바로 이 곳이다.






▲ 숲정이 성지 추천대(楸川臺)의 모습                          ▲ 추천대에서 바라본 전경 (전주천)




떡전거리에서 사평리와 가련산을 지나면 추천대에 이르게 된다. 이순신 장군이 권율 장군 밑에서 백의종군하고 있을 때 추천대를 지나갔다는 일화가 있다고 한다. 또한 추탄 이경동(湫灘 李瓊仝, 뛰어난 문장가이자 행정 관료로써 성종의 신임을 받은 신하) 선생이 낚시를 한 곳이라고 추천대 앞에 세워진 비석이 말해주고 있다.



추천대와 신보리를 지나면 감수리에 도착하는데 감수리는 현재의 북전주역 부근이다.





▲ 지금은 열차 한 대 멈추지 않는 북전주역, 이곳이 옛날에 감수리 지역이었다




감수리를 지나고 평리를 지나고 한내에 이르면 이 길 또한 춘향전에서 암행어사 이몽룡이 남원으로 내려갈 때 지나간 것으로 유명하다. 평리를 지나고 한내를 건너 비비정을 왼쪽에 두고 북상하면 삼례역에 이르게 된다. 



비비정 위에서 바라본 경치 또한 절경이다. 



삼례역을 지나면 이제 전주를 벗어나게 된다. 기자는 여기까지 답사했다. 그러나 이것은 겨우 한양까지 10분의 1밖에 안 되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즉, 전주를 벗어나면 ‘고생길 시작’이라는 것이다.





▲ 평리마을 입석에 ‘춘향전에 이 도령이 한양 갈 때 밟고 간 다리’라고 새겨져 있다






▲ 사진 속의 다리는 삼례역과 연결된 철도이다. 이 얼마나 멋진 풍경인가!





▲ 비비정의 모습




이상으로 한양까지 가는 옛 길을 거닐어 보았다. 거닐면서, 엉뚱하게 보존된 사례도 직접 보았는데, 우리가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는 후손에게 역사를 알리고, 후세에 역사가 길이길이 남도록 영원토록 보존(保存)이 아닌, 보전(保全)해나가야 한다.





Posted by 국토교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