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토교통을 빛낸 위인을 만나다.


시간을 거슬러 국토교통의 빛낸 위인을 만나는 가상 인터뷰! 


세번째 위인은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 선생님입니다





▲ 젊은 시절의 안창남 선생님 (사진출처 : 연합뉴스) 


 


[기  자]

안녕하세요? 저는 국토교통부 어린이 기자단의 이주훈기자라고 합니다.



[안창남]

안녕하세요? 안창남입니다.



[기  자]

저는 이번기사를 쓰면서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됬습니다. 많은 친구들도 선생님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국토교통부 어린이 기자들을 위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창남]

하하하. 그건 너무 어려운 부탁인데요 제가 제 소개를 하는건 너무 쑥스럽습니다.



[기  자]

그럼, 제가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선생님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 안창남 (1901 ~ 1930)



일제강점기였던 1901년 3월 19일 서울시 종로구에서 출생하였다. 


1916년 용산 연방장에서 펼쳐진 미국인 조종사 아트스미스의 비행곡예쇼를 보고 비행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1919년 19살이 되던 해 일본으로 건너가 비행학교에 입학하여 석달만에 졸업을 한다. 20살에는 뛰어난 비행실력을 인정받았고 21살에는 일본민간비행사시험에서 공동 1등을 차지한다.


1922년 일본의 도쿄에서 오사카까지의 우편 비행대회에 유일한 조선인으로 출전하여 2등을 하고 일본에서도 그 실력을 널리 인정받게 된다.


안창남 선생님은 우리나라에서는 개벽이라는 잡지에 실려 대외적으로 유명해지게 되었는데, 그보다 안창남을 유명하게 한 것은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비행사가 우리나라 여의도항공을 최초로 비행한 비행쇼였다. 이때 서울의 인구가 30만이었는데 그의 비행쇼를 보려고 여의도에 5만이 모였다고 하니 그 관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만하다. 당시 식민지 치하의 조선인들은 이 비행쇼를 보면서 스스로 조선에 대한 자긍심과 긍지를 갖고 독립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안창남은 편안한 비행기 조종사의 길을 잠시 접어두고 독립운동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는 중국에서 대한독립공명단을 결성, 이 단체의 주축이 되어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이처럼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노력을 하던 그는 1930년  29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비행사고로 중국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사, 하늘을 나는 비행을 통해 일제에 묶인 조선인의 희망을 다시 품게해준 독립투사, 그가 바로 안창남이다. 

 




[안창남]

그렇게 길게 소개를 해주니 오히려 더 쑥스러워지네요. 



[기   자] 

별말씀을요. 선생님은 우리나라에 없는 비행조정기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에 건너갔고 결국 비행사가 되셨잖아요. 또 우리나라 최초로 우리나라 항공을 날아본 비행사이신데, 처음으로 하늘을 날았던 그 때. 기분이 어떠셨었나요?



[안창남]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제가 다니던 일본의 항공학교에 고장으로 폐물이 되어 버려져 있던 비행기가 꽤 있었습니다. 전 이를 고치고 꾸며서 금강호를 만들어서 비행했죠. 정말 신났습니다. 


저는 미국과 일본에게 우리나라의 하늘을 먼저 내어준 것이 모욕이라고 생각했었어 요. 그래서 제가 가진 기술로 우리나라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행복했어요. 특히 비행중에 서대문 형무소 상공을 날아갈 때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서대문 감옥에 갇힌 우리 조선인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이 이 배행기를 보면서 이 비행기의 조종사인 내 뜻과 마음도 그들과 같이 대한민국의 자주독립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기  자]

당시의 비행사는 돈을 많이 벌수 있는 좋은 직업이고, 선생님께서는 뛰어난 비행조종기술로 일본에서도 천재 비행사라고 인정을 받으셨는데.. 갑자기 중국으로 가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안창남] 

일본 관동대지진 당시 무고하게 죽어가는 조선인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독립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더욱 굳게 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에 가서 비행학교를 세우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여건이 마땅치않아 중국으로 갔죠. 중국 산시성의 옌시산이라는 통치자를  만나서 중국인들과 조선인들에게 나의 기술을 가르치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해 줬습니다.


또 나의 동지인 최양옥과 함께 대한독립공명단의 주축이 되어 조선독립을 이끌기에는 중국이 훨씬 편했습니다. 



[기  자]

세계가 인정한 뛰어난 비행기술과 독립운동을 위해 큰 일을 해내고 계셨는데 너무 짧은 인생을 사셨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돌아가신 후에 우리나라를 보시니까 어떠셨습니까?



[안창남]

조선이 독립되어서 참으로 기쁩니다. 조선독립을 위한 나의 노력은 작은 것이지요. 온 국민이 힘을 모아 이뤄낸 일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 맘먹고 진지하게 노력하면 나른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앞장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미국과 일본이 잘하는 비행기술을 배웠지만, 일본에서 인정받는 조종사가 된 것은 우리민족이 무엇이든 잘할 수 있다는 힘을 증명한 것입니다. 어려운 시대에도 세계에 자신의 능력을 보여준 조상들을 잊지 않고 우리의 후손들도 자신의 능력을 세계 곳곳에서 발휘하길 바랍니다.


 

[기  자]

선생님을 알게되서 정말 좋았습니다. 항공분야에서도 우리나라를 빛낸 분이 계셨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오늘 인터뷰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금 강 호

안창남이 우리나라 여의도 항공을 날았던 비행기로 80마력의 작은 비행기로 곡예도 가능.

원래는 고장이 나서 일본의 오쿠리비행학교 창고에 버려져 있던 비행기를 안창남이 직접 조립하고 색칠하였음. 당시에는 태극기를 쓸수 없어서 한반도를 그렸고 꼬리부분에는 금강산을 그려넣었었다고 한다. 금강호라는 비행기 이름도 한자로 써 넣음






▲ 사진출처 : 동아일보



[자료출처]

네이버
KBS 역사스페셜 [떴다 보아라 안창남]
역사인물신문1 / 이광희 / 웅진닷컴
연합뉴스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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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창남을 모르셨던 분들에게 정보가 되시길 바래요

    2014.09.29 22:24 [ ADDR : EDIT/ DEL : REPLY ]
  2. 김태규

    안창남에 대해서 잘 소개해주신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4.10.24 18:27 [ ADDR : EDIT/ DEL : REPLY ]
  3. 박경준

    새로운 위인을 알았네요. 감사합니다.

    2014.10.26 23:14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