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성진성은 영광군 법성면 진내리 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하지만 법성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 대부분 법성진성의 존재를 알지 못했어요. 

참 슬픈 일이 아닌가요?

역사를 담은 가치 있는 곳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간다는 사실이...
저 또한 법성이 원래 성이었다는 사실을 취재를 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숲쟁이에서 뛰어 놀 줄만 알았지 숲쟁이 주변을 주의 깊게 둘러보지 못한 제가 너무 바보 같았고, 이제라도 내 고장의 비밀을 알게 되어 기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법성진성의 남겨진 성벽을 둘러보며 법성의 특별함을 이 기사에 담아 보았습니다.


(출처 : 문화재청)

법성진성 안에는 조선시대 대부분의 유적들이 산재되어 있다고 합니다. 법성진성은 중종 9년(1514년)에 돌로 성을 처음 쌓았다고 ‘신증 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 ‘법성진 진지’의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처 : 법성포초등학교 100년사)




세월이 묻어나는 법성진성의 성벽입니다.



처음 법성진성의 성벽을 마주했을 때 가슴이 두근두근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가파른 언덕을 따라 이어진 법성진성의 성벽은 이끼가 끼고 군데군데 부서지고 성벽이 모습이 많이 변했지만 법성을 지켜주던 진성의 위엄과 아름다움은 아직도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법성진성 성벽을 따라 울창한 소나무가 줄을 지어 있습니다. 이 소나무 들은 거센 칠산바다의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입니다. 성벽 위 소나무 길을 따라 걷다보면 숲쟁이를 만날 수 있답니다!




법성진성 산 아래 바닷가에는 다랑가지 라는 큰 포구가 있습니다.당시에 법성포 앞 바닷물이 빠지면 갯벌 때문에 배가 들어오지 못하였는데, 이곳 월랑대 앞 다랑가지 콧댕이만 배가 접안할 수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눈꼽지고 뺏야운 놈은 얼씬도 못한다.” 는 곳이 이곳 다랑가지 콧댕이 였었고, 황금의 부두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1. 월랑대 올라가는 계단
옛날에는 이 계단 아래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지만 현재는 간척되어 마을을 이루고 있습니다.

2. 월랑대 벽에 새겨진 글

3. 월랑대의 제월정
630년 후기에 지었을 것으로 추정 되는 풍류정자. 

4. 제월정 터와 주춧돌
1957년 주민들에 의해 복원되었다가 1974년 화재로 모두 타버렸고 현재는 주춧돌과 터만 남아있습다.



법성포 동쪽에 있는 고개

옛날에는 법성포를 드나들려면 반드시 넘어야 했던 유일한 육로였다고 해요.

예전에는 이 큰 동짓재 마루에 노거수가 많았는데 어려운 시절에 마을 사람들이 겨울 땔감으로 베어 쓰려다가 직(稷:오곡을 관장하는 신의 형벌)을 맞아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시름시름 앓았다는 일화도 전래되고 있습니다.

저도 어릴 적 법성포초등학교를 다녔을 때 이 동짓재를 꼭 넘어야 초등학교를 갈 수 있었어요. 
집에서 꼬박 30분을 걸으며 언덕 옆에 자란 산딸기를 따먹고 친구들과 도란도란 동짓재를 넘었답니다! 그래서 동짓재는 저의 학창시절의 추억이 어린 소중한 공간입니다~!!




일제강점기 일제에 의해 지어진 콘크리트로 된 하굿둑

그 당시 멀리서 하굿둑을 보면 하얀색으로 보였다고 하여 흰다리라 불린다고 합니다.




소머리로 여겼던 대통재는 중국의 사신을 기다리는 고개라는 뜻으로 중국의 사신이 넘나들었던 고개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외에 법성에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지명이 많답니다. 
법성포는 오래전부터 풍수지리상 수중와우(水中臥牛:물가운데 누워있는 소)형국이라고 전래되었다고 해요. 대통재라는 곳은 소머리에 해당하는 곳이고, 숲쟁이는 소 허리에, 조아머리는 소 머리의 왼쪽편, 구시미는 소의 여물통 모습이라 하여 구시미로 불리우고 있다고 합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보면 조그마한 시골의 한 구석의 이름도 조상들의 커다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자신의 고장에 특이한 이름이 있다면 그 의미를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겟죠?

이상 문희아 기자였습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