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일, 대전마을어린이도서관협의회에서 역사기행을 갔습니다. 동학혁명 120주년을 기념해 동학혁명에 대해 기행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는데요. 동학혁명 하면 생각나는 것은 사회시간에 배운 녹두장군 전봉준이지만, 할아버지께 고조할아버지께서도 동학운동을 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농민이 국민이었기 때문에 누구든 함께 동학운동을 했을 것 같았습니다.









제일 먼저 동학농민혁명기념관으로 향했습니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은 2004년 5월 11일, 동학농민군의 최초 전승지인 황토현전적지 부근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에 개관했는데요. 동학농민혁명에 관련된 무기, 생활용품, 전적류을 전시 및 보존하고 있으며, 동학농민혁명의 전개 상황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전시관을 둘러보며,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기념관 내의 불빛 하나하나가 이름 없는 농민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네요. 









이어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송참봉 조선동네로 이동했습니다. 조선 시대의 마을을 재구성해 마을 전체가 초가집으로 이뤄진 송참봉 조선동네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친구들과 신나게 그네도 타며 놀았습니다.









다음으로 동학혁명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만석보터에 갔습니다. 물도 팔아먹었다고는 하지만, 백성의 노동력을 이용해 만든 보에서 가난한 농민에게 물세를 거뒀다고 하니 참 나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랏일을 하는 사람은 어려운 백성을 보살펴야 하는데, 횡포가 너무 심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고 하는데, 힘든 농민이 힘을 합쳐 싸웠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어 전봉준 장군이 고부농민봉기가 있기 5~6년 전에 이사와 훈장생활을 하다 고부농민봉기를 일으킬 때까지 살았던 전봉준 고택에 갔습니다. 녹두장군 전봉준의 유물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 집은 1894년 고부농민봉기 이후 안핵사 이용태에 의해 불타버렸으나 다시 보수해 사적 제283호로 지정해 보존되고 있었습니다. 힘에 맞서 용기 있게 나선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데,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힘없고 가난한 농민이 함께 했던 동학농민혁명에 그 때 내가 살았으면 앞장서서 활동할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하라는 대로 하지 않고 죽음을 각오하고 함께 할 수 있었을지가 궁금했습니다.









여러 가지 기념탑이 있었는데요. 동학농민혁명모의탑은 1968년 12월 주산마을에 사는 한 주민의 집에서 사발통문이 발견됐는데, 전봉준을 포함한 20명의 서명자 명단이 한자와 한글로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 근거로 이곳이 동학혁명의 시발점임을 기념하기 위해 탑을 세웠다고 해요.









무명동학농민군위령탑은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등이 지역 지도자와 함께 동학농민군을 주도했으나,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은 수많은 무명동학농민군의 넋을 기리기 위해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1994년 9월 11일 건립됐습니다.



지막으로 황토현전적지에 갔습니다.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전적지로, 사적 제295호이자 동학농민군이 정규군인 감영군을 격퇴시킨 승전의 장소입니다. 마치 녹두장군이 되어 싸움에서 이긴 것 같이 자랑스러웠던 곳이었습니다.



이번 기행을 통해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잘 알 수 있었고, 농민들이 처음에는 자신을 위해 다음에는 이웃사람을 위해 나중에는 나라를 위해 용기 있게 싸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불의를 보고 참지 않고 바르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나라를 위한 많은 위인이 있지만, 특히 죽음을 각오하고 나라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분은 정말 대단한 분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이름 없는 분들의 노력으로 이만큼 잘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하루였습니다.



앞으로도 역사를 볼 수 있는 유적지가 잘 보전돼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르게 공부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자료 1. <동학농민혁명>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고종 31) 전라도 고부의 동학접주 전봉준(全琫準) 등을 지도자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농민운동이다.



조선 후기에 처음 천주교가 들어왔을 때는 천주교를 ‘서학’이라고 하고, 평등사상을 중시하는 서학은 얼마 안 가 신도가 많아졌지만, 제사를 거부하고 신분제에도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탄압을 받았다. 그때 경주에 살던 양반 최제우는 우리 사회에 어울리는 종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동학’이란 민족 종교를 만들었다. 유교, 불교, 도교, 무속 신앙 등의 교리들을 합해서 만들었다. 중심이 되는 사상은 ‘인내천’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은 다 존중 받을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우리 전통에 맞으면서도 하층민을 존중하는 동학은 농민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정부도 서학을 억누르기 위해 동학을 지지해 주었지만, 차츰 동학을 믿는 사람이 늘어나자 최제우에게 동학을 그만두라고 했지만, 이를 거절하자 정부는 최제우를 죽이고 동학 관련 서적을 불태우며 탄압하기 시작하면서, 동학은 비밀리에 활동하였다.



동학을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동학은 종교를 넘어 사회 개혁 운동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신분제를 없애고 세금제를 고치라는 등의 요구를 하였다. 특히 갑오년(1894년)에는 거대한 사회 운동을 일으켰다. 계기는 고부민란으로, 동학과 상관없이 여느 농민 운동과 비슷하게 시작되었다. 고부 군수 조병갑은 강 상류에 이미 보(저수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하류에 새로운 보(만석보)를 쌓게 했고, 조병갑은 보가 다 지어지면 공짜로 물을 쓸 수 있게 해 주겠다며 농민들을 꾀었지만, 보가 다 지어지자 물세를 강제로 걷기 시작했다.



그동안 조병갑의 횡포에 화가 쌓였던 농민들은 이 일로 폭발하게 되었고, 전봉준의 아버지는 물세 걷는 일을 하지 말아 달라고 전하러 갔다가 얻어맞고 죽게 되자, 동학의 지도자였던 전봉준은 화가 나 마을 사람들과 동학교도와 함께 조병갑을 쫓아내고 만석보를 무너뜨렸다.



조병갑 대신 마을에 온 사또는 농민들에게 잘하겠다고 말해 일이 진정되는가 싶었는데, 정부에서 내려 온 관리가 오히려 동학 농민군에게 잘못이 있다며 몰아세우자 더 화가 난 사람들은 다시 일어났고, 전봉준은 사발통문을 돌려 다른 지역의 동학 지도자들까지 모아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



김개남, 손화중 등 동학 지도자들이 합세하면서 정읍, 태안, 부안에서까지 농민들이 몰려왔고, 이를 진압하려던 군대가 황토현에서 농민군의 함정에 빠져 무너지자 더 많은 마을이 힘을 합쳤고, 중앙에서 군인이 내려왔지만 장성에서 농민군이 다시 이겼으며, 농민군이 전주성까지 점령하자 정부는 동학군에게 화해를 청하고 ‘전주 화약’을 맺어, 전라도 지역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정부와 농민이 함께 여러 개혁을 하였다.



첫째, 동학교도와 정부는 서로 화해하고 공동으로 일을 할 것


둘째, 그동안 농민을 괴롭힌 탐관오리, 횡포한 부자들, 불량한 양반을 벌줄 것, 훌륭한 인재를 뽑아 쓸 것


셋째,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천민을 차별하던 여러 가지 문제를 폐지할 것


넷째, 남편이 바로 죽은 과부는 재혼하게 해 줄 것


다섯째, 잡세를 모두 없애고, 농민이 그동안 진 빚은 모두 없던 것으로 할 것


여섯째, 토지를 모두 거두어 골고루 나눌 것



청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조정의 내정을 간섭하고 일제의 침략에 대한 나라를 지키고자 2차 봉기가 일어나지만, 공주 우금치에서 패배하고 다른 지역에서도 패하였다. 전봉준을 비롯한 주요 지도자들이 체포되어 처형되고, 농민군의 잔존 세력은 시기와 조건에 따라 형태를 바꾸면서 지속적으로 투쟁해 왔다.




*동학농민혁명 관련 자료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동학운동 [東學運動]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네이버 지식백과] 동학 농민 운동 - 농민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꿈꾸다 (한국사 개념사전, 2010.6.4, (주)북이십일)

[[네이버 지식백과] 만석보터 (답사여행의 길잡이 1 - 전북, 초판 1994, 개정판 13쇄 2011, 돌베개)

네이버 지식백과] 동학농민혁명기념관 [東學農民革命記念館]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황토현전적지 [黃土峴戰蹟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자료 2. <해뜰마을어린이도서관>



마을 사람들의 자원 활동과 후원으로 운영되는 민간어린이도서관이다. 마을의 엄마들이 마을 안에 어린이들이 책과 함께 신나게 놀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들었는데 지금 8년 되었다. 2013년 태양광발전기가 설치되어 있어 태양빛으로 어린이들이 책을 보는 도서관이고, 자전거발전기가 있어 환경놀이를 할 때 내 힘으로 과일주스·팥빙수도 만들어 먹는다. 책놀이, 기행, 캠프, 환경특강 등 재미있는 것을 많이 한다.





참고자료 3. <대전마을어린이도서관협의회>



대전에는 해뜰마을어린이도서관 같은 마을어린이도서관이 16개가 되고 이 도서관들이 함께 협의회를 만들어 어린이들의 행복한 성장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 철도 노동조합이 후원하여 매년 역사기행을 간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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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진

    역사 공부를 많이 하셨네요.
    저도 해보고 싶은 프로그램이예요.
    멋진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4.11.06 20:01 [ ADDR : EDIT/ DEL : REPLY ]
  2. 어린이 기자님이 정리를 참 잘하셨네요! 정보를 얻기 참 잘 정리해두신거 같습니다^^

    2014.11.07 22:27 [ ADDR : EDIT/ DEL : REPLY ]
  3. 자료가 참 많네요! 열심히 기사쓰셨을 형민기자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멋진기사 잘 읽었어요^^

    2014.11.08 15:46 [ ADDR : EDIT/ DEL : REPLY ]
  4. 신혜연

    작년에 배웠는데도 잘 모르는 내용이 많네요.
    덕분에 좀더 알게 되었습니다.

    2014.11.10 22:16 [ ADDR : EDIT/ DEL : REPLY ]
  5. 박경준

    5학년 사회 교과서 같네요

    2014.11.11 19:32 [ ADDR : EDIT/ DEL : REPLY ]
  6. 박진

    전 그네를 타보고 싶네요.
    동학농민 운동... 얼마전에 배웠는데
    복습을 해서 좋네요.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4.11.14 20:20 [ ADDR : EDIT/ DEL : REPLY ]
  7. 대전 금동초 5 박나연

    저희도 동학농민운동 얼마전에 배웠는데...
    교과서보다 정리가 잘 되어있는 것 같네요!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4.11.17 07:45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