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 전에는 그냥 DMZ- 비무장지대라는 아주 얄팍한 지식만 가지고 있었다. 2박 3일이라는 여정으로 5학년 후배와 함께 각 학교에서 두 명씩 선발되어 광주지역의 5, 6학년 친구들이 함께하는 견학이었다. 


   


경기도 파주로 이동하면서 점심은 휴게소에서 김치찌개를 먹었다. 그리고 바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 도착하여 견학을 하였다. 오두산 통일전망대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오두산에 지상 5층, 지하1층 건물로 1992년에 세워졌다.


임진강 건너로 북측의 황해북도 개풍군 관산반도 주민들의 생활을 망원경으로 바라볼 수 있고 북측과 460M로 휴전선 155마일 중 비무장지대 폭이 가장 짧은 곳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북한의 다양한 실생활을 엿볼 수 있는 전시실이 있었고, 전망대에 올라가서는 망원경으로 북한 땅을 볼 수 있었다. 


통일 전시실에서 북한의 교과서와 문구류 등을 보았다. 실제 교실로 재현한 것을 보니 너무 신기했다. 북한에서는 외래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거의 우리말을 쓴다는 것이 가장 눈에 띄었다. 



    


둘째 날에는 도라 전망대와 도라산 역을 견학하였다. 도라 전망대에서는 망원경을 통해 개성의 김일성 동상과 개성공단, 송악선, 북측의 선전마을인 기정동 마을과 장단역을 볼 수 있었다. 도라산 역은 민간인 통제구역인 DMZ남방한계선에서 700여 미터 떨어진 남쪽 최북단 역이다. 


2002년 2월 20일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방문하여 세계적으로 주목을 끌었고 남북화해의 미완성 역이기에 많은 아쉬움을 남게 했다.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인 도라산 역에서 전망대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북한 땅을 보니 빨리 통일이 되었으면 하는 소원을 빌게 되었다. 남북 출입국 사무소에 가보니 공항 출국장처럼 생겼고, 다른 나라로 가는 출국이 아닌 ‘출경’, ‘입경’이라고 한다. 그것은 경계를 넘는다는 의미에서라고 했다. 같은 민족이지만 언제쯤 기찻길이 뚫려서 마음껏 저 북한까지 갈 수 있을지 정말 아쉬운 마음뿐이었다. 



  


점심 식사 후에는 임진각으로 향했다. 임진각은 1972년 7월 4일 남북공동성명 발표 이후 조성되었고 한국전쟁과 그 이후의 민족대립으로 인한 슬픔이 아로새겨져 있는 곳이다. 또한 망배단은 휴전선 북쪽에 고향을 가진 실향민들이 명절 때 고향을 그리워하며 북쪽에 계신 부모님께 배례하는 곳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 북쪽에 부모 형제가 있어 그리움과 서러움으로 눈물을 흘렸을지 실감이 났다. 


  


  



마지막으로 셋째 날에는 서대문형무소에 들렀다.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10월 21일 일제의 의해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개소되어 1945년 해방까지 한국의 국권을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한 분들이 수감되었고, 온갖 고문을 당한 곳이다. 그곳을 실제로 보니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너무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일본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왜 좋은 머리를 그런 곳에 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 민족이 뭐 그리 잘못을 했는지 저렇게 까지 해야 했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나라를 되찾으려던 그 독립 운동가들의 함성이 여기저기서 막 들려오는 것 같았고, 고문실에서는 비명소리가 금방이라도 나올 듯 했다. 마음이 아팠다. 이렇게 우리는 국권을 되찾을 수 있었고, 그 희생 속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기도 하고 지금의 자유를 너무 당연히 받아들였던 것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3일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처음 올 때 들었던 가볍고 설레었던 마음과는 달리 우리의 현실이 어느 시점인지를 알 수 있었기에 마음이 차분해졌다고나 해야 할까?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나도 철이 들어가나 보다. 


지금까지 해 본 견학과는 달리 많은 교훈을 얻었던 시간이었다. 더욱이 올해 광복 70주년이라고 광복절의 의미를 많이 떠올려보게 되었는데, DMZ 견학을 다녀와서인지 나는 통일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되는 값진 경험을 하고 온 것 같다. 


     











Posted by 국토교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