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흥취가 깊어진 지난 10월, 가족들과 함께 전라남도 담양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담양은 관방제림(천연기념물 제366호), 죽녹원, 소쇄원, 메타세콰이아 길, 가사문학관을 비롯한 여러 문화 유적지와 대나무로 유명한 도시다.


그중 소쇄원(명승 제40호)은 한국의 대표적인 민간원림으로 1530년경에 양산보가 만든 별서원림이다. 별서란 선비들이 세상을 떠나 자연 속에서 생활하기 위한 곳이다. 


양산보는 스승인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능주로 유배되고 사사(賜死)되자 세속의 뜻을 버리고 고향인 창암촌에 소쇄원을 조성하였다.


이후 송순, 김인후 등의 도움을 받고 그의 아들인 자징과 손자인 천운 등의 3대에 걸쳐 완성되면서 후손들의 노력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옛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원림’은 ‘정원’과 무엇이 다를까? 원림과 정원을 같은 뜻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중국과 우리나라에선 원림을, 일본에서는 정원을 주로 선호한다고 한다. 정원은 주택에서 사람이 인위적으로 조경한 것이고, 원림은 동산과 숲의 자연스러운 상태를 그대로 조경 대상으로 삼아 자연과 더불어 집과 정자를 배치한 것이다. 소쇄원은 최대한 자연을 있는 그대로 활용한 원림이다



▲ 시냇물을 막지 않고 담벼락 밑으로 그대로 흐르게 했다.



마침, 문화재 해설을 하고 계신 해설사분의 설명으로 소쇄원 곳곳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소쇄원의 주요건물


<대봉대>


소쇄원 입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이곳은 대봉대이다.


좋은 소식을 전해준다는 '봉황새를 기다리는 동대(桐臺)'라는 뜻으로 귀한 손님을 맞기 위해 이곳에서 기다린다고 한다.



▲ 대봉대 <출처 : 소쇄원 홈페이지>


대봉대 지나면 동백나무와 애양단이라고 불리는 담이 있는데 겨울에도 볕이 많이 드는 양지바른 곳으로 양산보 선생이 날씨가 좋을 때 노모를 모시고 나와 머리에 동백기름을 바르고 어머니와 머리를 맞대 이가 옮겨오도록 했다는 얘기가 전해오는 곳이다. 양산보 선생의 효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제월당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 이라는 뜻의 제월당은 주인이 거처하면서 학문에 몰두하는 공간이다. 왼쪽에 구들방과 여름에 시원하게 열 수 있는 문이 두 개 있는 대청마루와 아래에 마당이 있다.


대청마루에 올라가 주인의 마음으로 앉아 보라고 권하셔서 대청마루에 올라앉아 아래 풍경을 내려다보니 자연과 더불어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다스렸을 옛 선비정신을 떠올리게 한다.


천정 벽에는 우암 송시열이 쓴 현판글씨, 하서 김인후의 소쇄원사십팔영등 많은 선비의 시와 기록이 걸려 있다.


제월당 마당을 지나 낮은 담장으로 난 협문을 지나면 소쇄원의 중심 정자인 광풍각이 나온다.



▲ 광풍각 <출처 : 소쇄원 홈페이지> 



‘비 온 뒤에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의 사랑방이다.

이곳은 손님을 맞아 담소를 나누고 학문을 토론하는 곳이다.




푸른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다른 정자에 비해 낮게 지어져 있는데, 이는 폭포 소리가 잘 들리기 위함이라고 한다. 광풍각 마루 가운데에는 1칸짜리 작은 온돌방이 있고 이방은 3개의 방문이 있는데 문이 들어열개문이다.


문을 접고 들어 올려 걸쇠에 걸면 마루도 넓게 트인 통마루가 된다.


광풍각 바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계곡에는 작은 폭포가 있는데 요즘 비가 많이 오지 않아서 아쉽게 볼 수 없었다.


대나무 숲길, 속을 파낸 통나무 파이프로 계곡의 물을 끌어들여 만든 작은 연못, 흐르는 물길 위로 쌓은 담장, 작은 외나무다리, 흙과 돌로 쌓은 담장 모두 자연 그 자체였다.


소쇄원은 조선 중기 선비들의 정치, 학문, 사상 등을 논하던 구심점 역할을 한 곳이다.


소쇄란 ‘맑고 깨끗하다’는 뜻으로 당시 사대부의 규범을 지키고자 하는 양산보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마지막 유언으로 이곳을 남에게 팔지도 말고, 원래의 모습을 보존할 것이며, 어리석은 후손에게는 물려주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담양 소쇄원에서 선비의 마음으로 거닐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Posted by 국토교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