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국토교통부 어린이기자단 김규태기자입니다.

 

관리 소홀로 아쉬움이 많았던 지난 남한산성 특집 1편에 이어 이번에는 남한산성 특집 제2편으로 서문에서 행궁까지를 직접 둘러보고 책을 통해 이곳의 역사를 알아봤습니다.

 

행궁은 임금이 궁 밖으로 나갔을 때 임시로 머무르던 곳으로 별궁 혹은 이궁이라고도 합니다. 고려 및 조선 시대의 역대 임금들은 전국에 행궁을 세워두고 지방순찰시 처소로 사용하거나 전란 발생시 피난처로 사용했습니다. 이번에 직접 둘러볼 남한산성의 행궁 역시 이러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입니다.


 

 

 

▲ 행궁 조감도

 

 

 

 

 

남한산성 행궁은 1624년(인조 2년) 7월에 착공하여 1626년 11월에 완공된 조선시대의 별궁 또는 이궁으로, 후금의 침입에 대비해 백제 때의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해 축조했습니다. 행궁은 유사시에 임금이 임시로 머무르던 궁궐의 하나로, 병자호란 당시에는 임시 궁궐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행궁 중에는 유일하게 종사(종묘와 사직이라는 뜻으로, '나라'를 뜻하는 말. 여기서는 선대왕의 위패를 모셨기 때문에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는 뜻)를 갖추었습니다.

 

원래는 상궐 73칸, 하궐 154칸 등의 총 3단 227칸으로 이루어진 행궁이었지만, 모두 불에 타서 없어지고 지금은 터만 남아있습니다. 지금의 산성호텔 뒤편의 언덕이 시작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일제강점기 때에는 면사무소가 있었다고 합니다. 


2001년 11월에는 이 행궁터의 서쪽 바깥 담장과 안쪽 담장 사이에서 초기 백제 시대의 토기조각이 발견되고, 2개의 저장용 구덩이 시설이 확인되면서 남한산성이 백제 영토였음이 증명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행궁은 2010년도에 복원된 모습입니다.

 

 

 

 

 

▲ 남한산성 행궁은 여기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오전 9시에 집을 나와 부모님과 남한산성으로 향했습니다.

 

 

 

 

 

▲ 서문에서 북문으로 가는 길

 

 

 

 

 

걷다쉬다를 반복하며 드디어 정상에 도착!

정상에서 김밥을 먹고 서문으로부터 약 0.7km떨어진 북문으로 향했습니다.

30분 정도 걸으니 북문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 북문을 왼쪽과 오른쪽에서 찍은 모습

 

 

  북문

   남한산성 북쪽 해발 365m지점에 있는 문으로, 이 문을 통해 세곡을 운반하였다.

   1624년(인조 2년)에 신축된 것으로 보이며, 1799년(정조 3년)에 성곽을 보수할 때 개축한 후 전승문이라 이름 붙였다.

   현재 편액은 걸려있지 않으며, 성문은 홍예기석 위에 10개의 홍예석을 쌓아 만든 홍예문으로 높이 3.65m, 폭 3.25m이다.

   성벽의 두께는 7.1m이고, 단층의 문루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주심포 양식의 민흘림 기둥을 세웠고, 겹처마를 

   두른 팔작지붕을 올렸다.

 

 

 

 

 

 

 

북문의 입구는 서문보다 더 컸습니다. 느낌만으로 약 2배 정도 더 큰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큰 문이 풀과 나무들에 뒤덮인 모습이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북문의 성벽 역시 덩굴과 풀, 나무들에 덮여있었는데요. 이런 북문의 모습을 보고있자니 덩굴과 풀, 나무가 제거된 말끔한 모습의 북문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 행궁 옆에 있는 천흥사 동종

 

 

 

 

 

북문에서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20분가량 걸어 행궁에 도착했습니다.

행궁 옆은 남한산성 그림그리기 대회가 열렸던 북문 주차장이 있고, 남한산성 종각의 천흥사 동종이라는 종이 있었습니다.

종 아래에는 동전이 수도 없이 많았는데요. 소원을 빌기 위한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이루고 싶은 것들이 참 많은가봐요.

 

 

 

 

 

▲ 정면에서 본 한남루의 모습

 

 

 

   한남루란?

   한남루는 상,하궐을 포괄하는 바깥쪽 담장의 정문에 해당하는 행궁 외삼문의 상루이다.

   1798년(정조 22년)에 광주 유수 홍억이 행궁 입구에 한남루라는 누문을 대문으로 세웠다.

   '한남루'란 한강 남쪽 성진의 누대라는 뜻이며 "남한지"의 '한남루기'에 잘 나타나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세운 2층 누문이다.

 

 

 

 

 

 

천흥사 동종을 지나 남한산성 행궁에 들어가기 위한 입장권을 받고 행궁으로 들어갔습니다.

행궁 입구의 이름은 한남루입니다.

 

 

 

 

 

▲ 연못(좌)과 임금님이 다녔던 어도(우)

 

 

 

 

 

행궁은 2010년에 복원이 완료되었다고 하는데요.


한남루를 지나 행궁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연못이 있었고 계단도 있었는데 가운데 계단이 다른 계단들보다 조금 위로 올라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가운데 계단이 임금님이 직접 밟고 올라가는 계단이었기 때문입니다.

 

 

 

 

 

▲ 외행전의 외부

 

 

 

 

연못과 어도를 지나자 외행전이 나타났습니다.


외행전 앞에서 문화해설사분이 행궁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설명에 의하면 외행전은 왕이 공식적인 업무를 보던 곳이라고 합니다.

 

 

 

 

 

▲ 통일신라 대형 건물터 전시관 외부모습(좌)과 천년을 이어주는 계단(우)

 

 

 

 

 

▲ 통일신라 대형 건물터 전시관 내부모습

 

 

 

 

 

외행전 오른쪽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건물이 있는데, 직접 내려가보니 그 계단 밑에는 천년 전의 모습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 건물이 통일신라 시기의 대형건물을 재현해 놓은 전시관이기 때문입니다. 


남한산성 행궁을 발굴할 당시, 통일신라시대의 무기와 식량을 보관하기 위한 군수창고로 추정되는 대형 건물터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자들의 논의 끝에 행궁을 복원하고, 외행전 마당에 통일신라시대의 건물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는 전시관을 세우기로 했다고 합니다.

 

1300년 동안 묻혀있던 통일신라시대의 건물을 흔적으로나마 직접 볼 수 있어서 감동적이었고, 천년을 이어주는 계단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 이위정의 편액(좌)과 후원(우)

 

 

 

 

 

외행전과 통일신라 대형 건물터 전시관을 지나 이위정으로 향했습니다. 이위정은 '군기의 집'이라는 의미로 활을 쏘기 위해 지은 정자입니다. 이위정의 편액(널빤지나 종이, 비단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건물이나 문루 중앙 윗부분에 거는 액자)은 추사 김정희가 썼는데, 2010년 행궁 복원 당시 함께 복원하여 이위정 내부에 걸어두었습니다. 경사가 심했던 이위정의 후원은 금원이라고도 하는데, 크기는 작았지만 자연과 참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후원 오른쪽에는 좌전이 있는데, 서울에 있는 종묘처럼 선대왕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만든 건물로 정전과 영녕전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한 번도 사용된 적은 없다고 합니다.

 

 

 

 

 

▲ 내행전의 모습

 

 

 

 

 

이위정을 지나 마지막으로 임금이 잠을 자는 침전으로 사용했던 내행전으로 왔습니다. 대청 가운데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일월오봉도와 야외용 의자인 교의가 놓여 있었습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47일간 머물며 굶주리고 고통받는 백성들을 생각하면서 얼마나 슬프고 괴로웠을지를 생각하니 본 기자의 마음도 아파왔습니다.

 

 


남한산성은 참 넓으면서 배울 것이 많았고, 지금까지 본 기자가 알고있던 역사가 1/100도 안되는 것임을 깨닫는 계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역사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서문에서 행궁까지의 여정을 마무리 했습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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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경준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4.10.26 22:33 [ ADDR : EDIT/ DEL : REPLY ]
  2. 김태규

    남한산성 모습이 정말 멋집니다^^ 기사 잘 보고 갑니다~

    2014.10.27 19:23 [ ADDR : EDIT/ DEL : REPLY ]
  3. 조유진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5.07.06 16:16 [ ADDR : EDIT/ DEL : REPLY ]
  4. 오구

    다양한 볼거리가 참 많은 곳 같아요ㅎㅎ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5.07.30 13:11 [ ADDR : EDIT/ DEL : REPLY ]
  5. 이단영

    수고하셨습니다!

    2016.08.11 11:32 [ ADDR : EDIT/ DEL : REPLY ]

 

 

날씨가 너무 좋아 산책도 할 겸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남한산성에 부모님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남한산성은 북한산성과 더불어 서울을 남북으로 지키는 산성 중 하나입니다.

 

신라 문무왕때 쌓은 주장성의 옛 터를 활용해서 1624년(인조 2년)에 만든 성으로, 해발 500m가 넘는 험준한 자연 지형을 따라 둘레 11.7km의 성곽에 4개의 대문과 5개의 옹성, 그리고 16개의 암문이 있습니다. 성 안에는 80여 개의 우물과 40여 개의 연못이 있어 물이 풍부하기 때문에 식량만 충분하다면 수만명의 병력을 오랫동안 수용할 수 있었던 전략적 요충지였다고 하네요.

 

 

2014년 현재, 남한산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우리 뿐만 아니라 세계가 함께 아끼며 보존해야 소중한 유적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남한산성 입구에서 올라가는 길

 

 

 

 

 

오전 9시쯤, 버스를 타고 남한산성 입구에서 내려 들어가보았습니다.

 

 

 

 

 

▲ 서문으로 올라가는 두 갈래 갈림길

 

 

 

 

 

남한산성하면 유명한 것이 바로 남한산성 둘레길인데요. 본 기자 역시 남한산성 둘레길을 가벼운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산성 둘레를 따라 걸으며 들려오는 새소리에 기분이 마냥 좋았습니다. 새소리와 함께 걷다보니 서문으로 올라가는 방향에 자연 그대로의 흙길과 계단으로 이루어진 두 갈래의 갈림길이 나왔습니다. 부모님과 저는 자연 그대로의 흙길이 좋아 흙길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 민달팽이와 남한산성에서 볼 수 있었던 식물들

 

 

 

 

 

흙길을 따라 걷다보니 민달팽이도 볼 수 있었고, 다양한 식물들 역시 함께 볼 수 있었습니다.

 

 

 

 

 

▲ 푹 패인 산길

 

 

 

 

 

남한산성 정상에 가까워질 때 쯤, 이상한 길이 있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버지께 여쭈어보니, 비가 많이 오면서 흙이 쓸려내려간 길이 원상복구가 되기 전에 등산객들이 밟고 지나다니고, 또 쓸려내려가는 것을 반복하다보니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해서, 그리고 남한산성을 더욱 보기 좋게 하기 위해서 조금만 더 신경써서 길 관리를 하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정상에서 바라본 남한산성의 모습(상)

▲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전경 표지판(좌), 전망대에서의 기자(우)

 

 

 

 

 

남한산성의 다양한 동,식물들과 어울리며 걷다보니 어느새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정상에 있는 전망대에서 사진도 찍고 잠깐 휴식을 취하다 서문으로 향했습니다.

 

 

 

 

 

▲ 서문의 외부 모습과 내부 모습

 

 

남한산성 서문은?

 

서문은 산성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정조 3년에 개축하여 우익문이라 불렀습니다.

서문은 산성의 북서쪽 모서리 부분인 해발 450m지점에 위치하며, 개구부와 문루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문의 바깥쪽에는 기와장이 깨진 채로 방치되어 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남한산성이 충분히 관리가 되지 않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 서문 앞 술파는 아저씨(좌), 방치된 기와들(우상), 서문 벽면 꺠진 기와(우하) 

 

 

 

 

 

그리고, 서문 앞에는 꺠진 기와 뿐만 아니라, 술을 파는 아저씨들도 있었습니다. 며칠 전에 TV뉴스에서 본 남한산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지만, 문화재 관리가 잘 되지 않고 있고, 노점상들이 술과 음식을 계속해서 팔고 있다고 했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뉴스에 보도되었으니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여전히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세계문화유산에서 술과 음식을 팔고 있는 곳은 한 곳도 없는 것 같았는데, 우리나라의 남한산성에서 술과 음식을 파는 것을 보니 아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 수어장대 앞에서 멋진 포즈와 함께 

 

수어장대는?

 

수어장대는 1624년(인조 2년) 남한산성을 쌓을 때 만들어진 4개의 장대 중 하나로 남한산성에서도 높은 곳인 청량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남한산성 축성 당시 동, 남, 북의 3개 장대와 함께 만들어진 장대로 처음에 단층누각으로 '서장대'라 부르던 것을 1751년(영조 27년)에 대 위에 누각을 증축해 2층으로 만들어 수어장대라 했다고 합니다.

 

 

 

 

 

서문에서 성벽을 따라 수어장대로 향했습니다.

 

 

수어장대는 크고, 화려하고, 튼튼하고, 엄숙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적힌 곳에 사람들이 앉아서 시끄럽게 떠드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계속해서 행궁까지 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다음 기회에 행궁에 가기로 하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11번째 세계문화유산인 남한산성!

등재된 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은 세계문화유산이라는 표지석이 없지만, 그래도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유산입니다.

세계 속의 남한산성, 지금부터라도 우리 모두 남한산성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게 어떨까요?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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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태규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4.10.27 19:24 [ ADDR : EDIT/ DEL : REPLY ]
  2. 조유진

    기사를 보니 저도 남한산성에 가보고 싶다는 굴뚝같아요.
    꼭 가봐야겠어요

    2015.07.06 16:16 [ ADDR : EDIT/ DEL : REPLY ]
  3. 오구

    꼭 가보고 싶은 곳인데 이렇게 기사로 먼저 만날 수 있어서 좋네요ㅎㅎ

    2015.07.30 13:11 [ ADDR : EDIT/ DEL : REPLY ]
  4. 이단영

    잘 보고 갑니다!

    2016.08.11 11:32 [ ADDR : EDIT/ DEL : REPLY ]

 

 

우리가 서울에서 부산에 내려갈 때면 이용하는 경부(서울~부산)고속도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속도로인데요. 물론 서울~광주간 고속도로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두개의 도시를 잇고, '아시아의 암스테르담'격인 부산항의 물자를 서울, 인천으로 다시 수송하는 중대한 업무를 가진 고속도로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경부고속도로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지금부터 경부고속도로에 대해 알아봅시다!

 

 

 

 

▲ 경부고속도로 사진 

 

 

 

경부고속도로는 1970년 7월 7일에 개통한 우리나라의 두 번째 고속도로이고, 고속도로번호는 1번입니다. 두 번째 고속도로라고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고속도로는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고속도로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구간은 서울 압구정에서부터 부산 구서동까지였으나, 2002년에 노선을 변경하면서 서울 양재에서부터 부산 구서동까지로 변경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고속도로이기도 합니다. 서울방향과 부산방향 각각 17개의 휴게소가 설치되어있는 고속도로입니다.

 

 

경부고속도로의 가장 큰 장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의 대부분을 잇고있다는 점입니다. '서울-수원-대전-구미-대구-부산'을 이어주는 핵심 라인을 통해, 전국 어디로든지 쉽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저도 지방에 있는 할머니댁에 갈 때면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합니다. 또, 서울에 갈 때에는 용서고속도로나 경부고속도로를 병행해서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집 근처에 동수원 IC(인터체인지)가 있어 대전, 진주, 부산에 갈 때 편리하게 갈 수 있습니다.

 

 

 

 

▲ 경부고속도로 준공 사진 

 

 

 

이렇게나 많이 이용했던 경부고속도로가 완성된 지 벌써 44년이나 지났다고 하니 무척이나 신기했습니다.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핵심 고속도로 역할을 해왔다고 하니 새삼 경부고속도로가 새롭게 보였습니다.

 

 

 

 

▲ 아시안 통합고속도로 1호선이 될 경부고속도로(AH1)와 6호선이 될 동해안고속도로(AH6) 

 

▲ 아시안 통합고속도로 표지판

 

 

 

 

경부고속도로는 앞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처럼 '일본-경부고속도로- 상하이-동남아-인도-터키'를 연결하는 아시안 통합고속도로 1호선에 포함됩니다. 즉, 일본에서 배를 이용해 부산으로 와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 중국과 인도로 넘어가는 아시아 횡단이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아시안 통합고속도로의 시작점이 될 경부고속도로의 주인은 누굴까요? 바로 한국도로공사입니다. 한국도로공사에서 경부고속도로의 소유권과 관리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단하죠?

 

 

 

 

▲ 아시안 통합고속도로 로드맵 

 

 

 

다가올 아시안 통합고속도로의 시작점이 될 대한민국 최고 고속도로인 경부고속도로, 더 많이 알고 이용합시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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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태규

    경부고속도로가 44년전에 개통했군요! 처음알게된 사실이었어요^^
    저도 다음부터는 더욱더 우리나라 교통에 대해 역사를 되짚어 보아야 겠어요^^
    교훈을 준 좋은 기사 잘 읽고 갑니다~

    2014.10.27 19:25 [ ADDR : EDIT/ DEL : REPLY ]
  2. DJ 강이안

    경부고속도로가 2번째 고속도로가 맞죠^^
    그런데 경부가 첫번째라고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아마도 1번이어서? 인 것 같네요

    2014.12.17 14:44 [ ADDR : EDIT/ DEL : REPLY ]
  3. 조유진

    유익한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5.07.06 16:15 [ ADDR : EDIT/ DEL : REPLY ]
  4. 오구

    좋은 정보 얻고갑니다~ 기사 잘 읽었어요! ㅎㅎ

    2015.07.30 13:10 [ ADDR : EDIT/ DEL : REPLY ]
  5. 이단영

    잘 보고 갑니다!

    2016.08.11 11:31 [ ADDR : EDIT/ DEL : REPLY ]

 

낙산사는 강원도 양양군 오봉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이며, 671년(문무왕 11년)에 의상대사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사찰입니다. 낙산사라는 사찰명은 관음보살이 상주하는 곳으로 알려진 보타낙가산에서 유래한 것이라 합니다. 천 년 고찰이었던 낙산사는 6.25 전쟁으로 많은 건물들이 소실되었다가, 1953년에 다시 지어졌습니다.

 

하지만, 2005년에 강원도 양양에서 일어났던 대형 산불때문에, 21채의 건물들과 보물 479호로 지정되어있던 낙산사 동종이 소실되어버렸습니다. 지금의 낙산사는 2005년 화재 이후 새로이 복원되어 여전히 아름다운 동해안 바닷가를 끼고 절경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비록, 여러 차례 소실의 아쉬움이 남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낙산사와 동해바다를 느끼기 위해 이 곳을 찾았습니다.

 

 

 

매표소

 

 

낙산사의 입장시간은 여름에는 오전 5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이고, 겨울에는 오전 5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입니다. 입장료는 성인 3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이었습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매표소에서 표를 산 후 낙산사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낙산사 다래원 

 

 

입구를 지나 조금 걷다보면, 낙산사 다래원이 나옵니다. 이 곳은 방문객들에게 차와 기념품을 파는 곳입니다. 

 

 

 

낙산사에서 바라본 동해바다 

 

 

점점 더 깊이 걸어들아가기 시작하면 오른쪽에 바다가 보이면서 마음이 확 트이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수관음상

 

 

 

외삼촌과 조카들과 함께 더 높이 올라가보았습니다. 멀리서 보였던 거대한 불상이 있는 곳까지 올라갔더니, 해수관음상이 서 있었습니다. 해수관음상은 높이 16m, 둘레 3.3m, 최대 너비 6m라는 크기를 자랑하고 있는데요. 가까이서 보니 정말로 거대했습니다. 단일 불상으로는 동양 최대의 크기라고 하는 이 불상은 1972년에 제작을 시작해 1977년 완성됐다고 하네요.


관음상은 대좌 위 연꽃 위에 서 있으며, 왼손에는 감로수병을 들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께로 들어올려 수인(手印)을 짓고 있습니다. 대좌의 앞부분은 쌍룡상, 양 옆에는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구요. 관음상 둘레의 108법률석은 2005년 산불 이후에 조성된 것이라고 합니다.  

 


 

불전함 밑 삼족섬

 

 

 

해수관음상 앞 복전함 밑에는 다리가 세 개 뿐인 전설 속 동물 두꺼비인 삼족섬이 숨어있습니다. 삼족섬은 세 발 달린 두꺼비를 말하는데요, 중국사람들에게 세 발 두꺼비는 매우 희귀한 것이므로 큰 행운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또한, 세발 달린 두꺼비는 입은 있지만, 항문이 없어 큰 재물로 인한 기쁨이 빠져나가지 않고 오래오래 유지된다고 믿습니다. 



해수관음상에서 두 가지 소원을 빌고 이 삼족섬을 만지면 빌었던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 역시 소원을 빌고, 삼족섬을 만졌답니다.

 

 

 

낙산해수욕장에서 아버지와 함께 

 

 

해수관음상을 뒤로하고 낙산사를 내려오면, 왼쪽에 낙산해수욕장이 길게 늘어져 있습니다. 낙산사 위에서 보던 동해바다를 직접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낙산해수욕장은 4km의 백사장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설악산에서 흘러내리는 남대천이 하구에 큰 호수를 이루고 있어 담수 역시 풍부하다고 합니다. 수심은 70m 앞바다까지 1.5m내외로 물놀이하기에도 안성맞춤이라고 합니다.

 

무척이나 뜨거울 것만 같은 올 여름, 동해바다를 계획하고 있다면 낙산사와 낙산해수욕장으로 가보는게 어떨까요?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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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경준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4.10.26 22:32 [ ADDR : EDIT/ DEL : REPLY ]
  2. 김태규

    기사 잘 읽었습니다~낙산해수욕장 사진이 멋지네요~
    저도 나중에 한번 가봐야 되겠습니다~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4.10.27 19:26 [ ADDR : EDIT/ DEL : REPLY ]
  3. 조유진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5.07.06 16:13 [ ADDR : EDIT/ DEL : REPLY ]
  4. 오구

    전체적으로 참 깔끔한 관광지네요~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5.07.30 13:08 [ ADDR : EDIT/ DEL : REPLY ]
  5. 이단영

    잘 보고 갑니다!

    2016.08.11 11:31 [ ADDR : EDIT/ DEL : REPLY ]
  6. 이단영

    잘 보고 갑니다!

    2016.08.11 11:31 [ ADDR : EDIT/ DEL : REPLY ]

세종시가 2개월 연속 최고 상승률 기록

 

 

 

2014년 5월 지가

 

 

국토교통부(장관 서승환)는 ’14.5월 전국 지가가 전월(’14.4) 대비 0.15% 상승하여 ’10.11월 이후 43개월 연속 소폭의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금융위기 발생 전 고점(’08.10) 대비 1.81% 높은 수준입니다.

 

 

<전국 월간 지가변동률 추이(%)>

 

<지역별 지가변동률(%)>

 


1. 행정구역별

 

권역별로는 수도권이 0.15%, 지방권은 0.15% 각각 상승하여 전월(수도권 0.18%, 지방권 0.18%)대비 상승폭이 소폭 축소되었습니다.

* 수도권:0.11%(14.1월)→0.14%(2월)→0.21%(3월)→0.18%(4월)→0.15%(5월)
* 지방권:0.10%(14.1월)→0.14%(2월)→0.17%(3월)→0.18%(4월)→0.15%(5월)

 

14개 시․도는 상승폭이 축소된 가운데 광주(0.04 → 0.16%), 충남(0.12 → 0.13%)은 전월 대비 상승폭이 확대되었습니다. 서울시(0.18%)의 경우 ’13.9월부터 9개월 연속 소폭 상승하였으며, 25개 자치구 모두가 상승하였다.

*서울:0.15%(‘13.9월)→0.21%(11월)→0.19%(14.1월)→0.29%(3월)→0.18%(5월)

 

지방은 세종시(0.491%)가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대구․제주(0.25%), 부산․울산(0.18%), 경북(0.17%), 광주(0.16%) 등도 평균 상승률(0.15%)을 상회하고 있습니다.

 

세종시(0.491%)는 서울~세종간 고속도로 조기 착공에 대한 기대감과 3생활권 주변 지역의 상승으로 전월(0.613%)보다 상승폭은 둔화되었으나, 전월에 이어 전국 시․군․구 중에서 가장 많이 상승하였으며, 경상북도 예천군(0.425%)은 도청 신도시 조성 사업(공정률 72%)에 따른 이주자 택지 거래 증가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 지가변동률 상위 5개 지역 >


 
반면, 가장 많이 하락한 지역은 인천 남동구(△0.088%)로 기존 구도심인 간석동 상업지역의 가격 하락, 논현동 일대 다가구주택의 저가 급매물 증가 등이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외 인천의 경우 부평구(△0.076), 강화군(△0.061)도 하락하는 가운데 당월 지가변동률은 0.07%로 전국 평균 지가변동률보다 낮았습니다.

 

 < 지가변동률 하위 5개 지역 >

 

 


2. 용도지역・이용상황별


용도지역별로는 계획관리지역(0.23%)과 주거지역(0.17%)순으로 상승폭이 컸으며, 다른 용도지역도 전월과 비교하여 상승폭이 모두 증가하였습니다.

 

<용도지역별 지가 동향(전월대비, %)> 

 


이용상황별로는 전(0.16%), 상업용(0.15%) 순으로 상승폭이 컸으며, 다른 이용상황도 전월과 비교하여 상승폭이 모두 증가하였습니다.

 

< 이용상황별(지목별) 지가 동향(전월대비, %) > 

 

 

 

2014년 5월 토지거래량

 

 

전체 토지거래량은 총 206,893필지, 176,878천㎡로 전년 동월(216,456필지,169,758천㎡) 대비 필지수 기준으로는 4.4% 감소하였고, 면적기준으로는 4.2% 증가하였습니다.

* 전월과 비교 시 필지수는 11.2% 감소, 면적은 0.8% 감소

 

(지역별) 17개 시․도 중 충북․경남․대전 등 5개 시․도만 거래량이 증가한 반면 울산․대구․강원 등 12개 시․도는 감소하였으며, 특히 울산(△35.6%)은 감소폭이 가장 컸습니다.


(용도지역별) 자연환경지역, 주거지역, 공업지역 등은 거래량이 줄어든 반면 미지정, 개발제한구역, 녹지지역 등은 증가하였습니다.

 

(이용상황별) 대지, 공장용지가 거래량이 줄어든 반면, 골프장 등 기타, 답, 전은 거래량이 증가하였습니다.

 

순수토지 거래량*은 총 86,003필지, 165,436천㎡로 전년 동월(83,614필지, 158,064천㎡) 대비 필지수 기준으로는 2.9% 증가하였고, 면적기준으로도 4.7% 증가하였습니다.

* 순수토지란 건축물 부속토지 거래를 제외한 토지만으로 거래되는 토지를 의미하며, 5월 전체 토지거래량의 필지수 41.6%, 면적 93.5%를 차지

* 전월과 비교 시 필지수는 5.9% 감소, 면적은 0.6% 감소

 

< 월간 토지거래량 추이(필지수 기준) > 


 

 

140626(석간) '14년 5월 지가동향 및 토지거래량(토지정책과).hwp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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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지리정보원, 1945년부터 52년 사이의 과거 항공사진 파일 무상 제공 중

 

6.25 한국 전쟁 발발 64주년을 맞아, 1945년 광복부터 1952년 전쟁 당시까지 촬영된 과거 항공사진에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국토지리정보원(원장 임주빈)은 1945년부터 52년 사이의 아날로그 항공사진 필름 5,923매를 디지털화하여 인터넷(http://air.ngii.go.kr)으로 서비스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국민 누구나 광복 직후부터 6.25 전쟁 당시의 우리 국토(남․북한) 모습을 생생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항공사진들은 1945년 광복 이후부터 촬영된 것으로, 1950년 이전에는 주로 남한 지역이, 전쟁 이후로는 주로 북한 지역과 휴전선 부근이 촬영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국토의 모습을 담은 유일한 자료로써 역사적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8.15 광복과 6.25 전쟁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소중한 정보가 될 것입니다.

 

 

 

 

위 사진은 1947년 서울 청량리역 부근의 항공사진이다. 당시 역 주변은 주로 논․밭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오늘날 상업지와 주거지가 밀집한 중심 시가지로 발전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950년 12월 6.25 전쟁 당시 부산항 일대의 항공사진이다. 당시 부산은 전쟁 및 원조 물자가 들어오는 항구이자, 대한민국 임시 수도로써 우리 국민들의 버팀목 역할을 단단히 해주었습니다.

 

 

 

이는 6.25 전쟁 당시 중부 전선의 최고 격전지로 꼽히는 철의 삼각지대 중 평강 부근의 항공사진이다. 빽빽이 박힌 포탄 자국을 통해 당시 처절했던 전투의 현장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인천 등과 더불어 6.25 전쟁의 요충지로 꼽히는 원산항 부근의 항공사진이다. 집중된 폭격으로 각종 시설이 파괴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위 항공사진들은 장기간(60년 이상) 보관에 따라 변색, 훼손이 진행되던 아날로그 필름을 특수 스캐너 등을 이용하여 디지털로 복원한 것으로, 미래창조과학부(장관 최문기)와 한국정보화진흥원(원장 장광수), 국토지리정보원(원장 임주빈)이 협업한 「국가DB사업」으로 추진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디지털화된 항공사진은 교육․언론․문화 등 한국 근현대사를 주제로 한 사회 전 분야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책임운영기관인 국토지리정보원은 우리 국토의 역사를 영원히 간직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1945년부터 69년의 항공사진 총 6만 9천매를 2017년까지 전면 디지털화 한다는 계획이며, 이렇게 디지털화된 항공사진 파일은 인터넷 「국토공간영상정보 서비스 (http://air.ngii.go.kr)」를 통해 국민 누구나 비용 부담 없이 무상으로 다운로드(또는 오프라인 제공) 받을 수 있습니다.

  

          

 

 

140625(조간) 광복부터 6.25 전쟁까지, 항공사진에 담겨있는 한반도 역사(국토지리정보원).pdf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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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사업시 도로확보 기준도 대폭 완화

 

 

기업의 다양한 투자 애로를 해소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도시관리계획이나 지구단위계획에 대한 변경 제한기간(5년)은 폐지하고 여건 변화에 따라 수시로 도시계획을 변경할 수 있게됩니다.

 

국토교통부(장관: 서승환)는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도시관리계획수립지침」및「지구단위계획수립지침」일부개정안을 마련하여 6.20일부터 20일간(6.20.~7.9.) 행정예고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지침 개정은 국토교통부에서 추진중인 「규제총점관리제」* 및 1차관이 주재하는 「규제개혁지원단 회의」에서 이 같은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기로 한 데 따른 것입니다. * 모든 규제를 중요도․파급효과 등을 고려하여 등급(16등급)․점수를 차등부여하고 규제개선시 등급이동․점수차감 등 실적 인정

 

 

 

 ※ 규제완화에 따라 반영된 등급 및 점수

 

   - 도시계획 5년 변경금지 완화 : 등급 B2 → 폐지(점수 56점 → 0점)

   - 지구단위계획수립 기준 완화 : 등급 동일(점수 38점 → 30.4점)

 

 

 

이번 지침 개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⑴ 도시관리계획의 변경제한이 원칙적으로 폐지됩니다.

 

① 현재는 도시관리계획*이 결정되면 5년 이내에 원칙적으로 변경할 수 없어 개발사업이 지연되거나, 적정용도로 사용이 곤란하는 등 문제가 있어, 앞으로는 지역여건 변화에 따라 5년 이내에도 수시로 변경할 수 있게 됩니다. * 용도지역·지구·구역 지정 및 변경, 기반시설설치․정비 및 개량

 

 

 

 < 사 례 >     

      
 ◇ 용도지역 변경 및 도시계획시설 변경에 애로

 ㅇ K市는 관리지역을 세분하여 농림지역으로 둘러싸인 일부 지역을 생산관리지역으로 결정하였으나, 이후 주변 농림지역이

     관리지역 추가세분에 따라 계획관리지역으로 결정되면서 대상지(생산관리지역)도 계획관리지역으로 변경할 것을 요구

     → 결정된지 5년이내여서 부득이 생산관리지역으로 존치되어 주변지역과 연계된 개발사업에 애로사항 발생

 

 ㅇ 민원인 A는 도시계획시설인 도로(중로2류 : 15m ~ 20m)가 여건에 비해 과도하게 결정되어 있어 도로 폭을 축소 및

     선형변경 요구 → 관할 지자체는 5년內 변경금지 규정을 이유로 검토 거부 

 

 


② 지구단위계획*의 경우도 결정 후 5년 이내에 원칙적으로 변경할 수 없어 사업추진에 애로가 많이 발생되나, 앞으로는 지역여건 변화에 따라 5년 이내에도 수시로 변경이 가능하게 됩니다. 지자체가 관할 구역의 일부에 대해 체계적·계획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기반시설, 건축계획, 환경, 경관 등에 관한 사항을 정하는 도시관리계획

  

 

  < 사 례 >    

      
 ◇ 지구단위계획 상 건축물 허용용도 및 기반시설 변경에 애로

 

   ㅇ V社는 신차 판매를 위해 사업부지를 매입하였으나, 지구단위계획상 중고차 판매만 허용되어 지구단위계획 변경

      (허용용도 : 자동차관련시설(매매장) → ‘판매시설’ 추가) 시도

      → 관할 지자체는 5년內 변경금지 규정을 이유로 변경에 부정적  

 

 


⑵ 현재는 지구단위계획 사업유형에 따라 일정규모 이상의 진입도로와 구역내 도로를 확보해야 하고, 연결도로도 일정 기준 이상이어야 하나, 앞으로는 다음의 기준에 따라 합리적으로 완화 됩니다.

 

① 진입도로는 구역면적의 규모에 따라 8m ~ 15m까지 차등 확보해야 하나, 앞으로는 최소 8m이상의 폭으로 하되 구체적인 규모는 교통성 검토 및 도시건축 공동위원회 심의를 통해서 결정하게 됩니다.

 

 

 

② 구역내 도로는 유형별로 6m ~ 8m를 확보해야 하나, 사업내용 또는 교통량 등 당해 지역여건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교통성 검토 및 공동위원회 심의를 통해서 결정하게 됩니다.

 

 


③ 진입도로와 연결되는 도로* 폭도 진입도로와 연계하여 합리적으로 완화(기타도로 12m 이상 → 진입도로 폭 이상)됩니다.   * 구역의 경계에서 국도․지방도․시도․군도, 기타 12m 이상의 도로

 

이렇게 제도를 개선할 경우 도로확보기준을 지역실정 및 개발여건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게 되어 기업의 도로확보 비용이 크게 감소 됩니다.

 

 

 

 

< 사 례 >

 

◇ 획일적인 진입도로 기준으로 지구단위계획수립 애로

 

 ㅇ A市 K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진입도로 약 900m 구간에 대해 도로 폭 확보기준에 따라 폭 10m 도로를 확보해야 하나,

     현황도로는 8m에 불과하여 2m 도로 폭 추가 확장 필요

     * 토지확보와 도로공사에 따른 사업기간 및 확장비용(공사비 약 3억원, 편입토지 보상비 제외)이 대폭 증가

 

 ㅇ 민원인 B는 공장설립을 위해 지구단위계획 수립을 추진하였으나 연결도로 기준이 맞지 않아* 포기

   * 진입도로와 연결되는 도로의 폭이 12m가 되어야 하나, 현재는 8m 도로가 있어 4m 추가 확보가 필요하여 토지매입비,

     사업기간 연장 등 고려시 사업성 악화 

 

 



⑶ 그 밖에 지구단위계획구역지정 대상을 확대하고, 완충녹지의 의무설치 기준을 임의기준으로 개선하며 도시관리계획 수립절차도 간소화 합니다.

 

① 현재 도로법상 접도구역*은 지구단위계획구역에 포함할 수 없도록 되어 있으나, 앞으로는 구역에 포함할 수 있게됩니다.* 도로 구조의 손궤 방지, 미관 보존 또는 교통 위험 방지를 위해 도로경계로부터 20미터 내에서 대통령령으로 지정(도로법 제49조)

이렇게 되면 최소부지기준(3만㎡)을 총족하지 못해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이 줄어 들고, 접도구역부지를 녹지용지 등으로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사업비용도 대폭 경감할 수 있게 됩니다.

 

 

< 사 례 >

 

 ◇ 지구단위계획구역 지정대상에 접도구역 제외시 문제점

 

 ㅇ 접도구역 포함 시 지구단위계획구역 지정(비도시지역의 경우 면적이 3만㎡ 이상이어야 구역지정 가능)이 가능하나,

     구역지정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어 면적 요건 충족을 위해 주변 토지를 매입해야 하는 상황 발생

 

  ㅇ A市 S지구단위계획 수립 시 접도구역을 지구단위계획구역에서 제외하여 지구단위계획구역內 사업부지의 효율적 활용

      저해(접도구역을 구역에 포함하여 그 목적에 맞게 녹지로 계획하면 사업부지內 녹지용지를 줄이는 대신 공업용지 등

      다른 용지로 활용 가능) 

 


 
 
<접도구역 관련 도면>


※ 접도구역을 지구단위계획구역 대상으로 포함하지 않을 경우, B 부지가 있음에도 추가로 C 부지를 매입해야하는 불합리 발생

 

※ 접도구역을 지구단위계획구역에 포함하면 접도구역(B)을 녹지용지로 활용하고 D부지를 공장용지 등으로 활용 가능

 

 ② 현재는 간선도로변에 완충녹지를 의무적으로 설치하여야 하나, 앞으로는 완충녹지가 필요한 경우(도로변 보존‧관리, 불필요한 차량 진‧출입 및 건축물 난립 방지 등
)에만 설치할 수 있도록 합니다.

 

 

< 사 례 >

       
  ◇ 지역여건 고려없이 도로변에 완충녹지 설치

 

 ㅇ H郡의 경우 고속도로에서 시가지로 접근하는 4차로 도로를 개설하면서, 지역 여건상 완충녹지 설치 필요성(소음방지,

     공해물질 차단, 불필요한 차량의 진출입 및 건축물의 난립 방지 등)이 적음에도 동 지침에 따라 완충녹지 설치
 
     → 도시계획시설로 결정된 후 장기미집행됨에 따라 건축물 건축 및 공작물 설치 등이 금지되어 개인의 재산권 침해

    (고충민원 다수 발생) 

 

 


③ 또한, 현재는 시장․군수가 도시관리계획을 입안하여 결정권자인 도지사에게 결정 신청할 경우 시군도시계획위원회 자문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나, 앞으로는 필요한 경우에만 받도록 합니다.

 

이러한 지침 개정안에 대해 의견이 있는 경우 7월 9일까지 우편, 팩스 또는 국토교통부 홈페이지(http://www.molit.go.kr) 법령정보/행정예고란을 통해 의견을 제출할 수 있습니다.* 의견제출처: 339-012 세종특별자치시 도움6로 11 국토교통부 도시정책과 (전화 : 044-201-3709 / 3714, 팩스 044-201-5569)

 

 

 

140618(조간) 도시계획 변경제한 폐지된다(도시정책과).hwp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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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면적 여의도 27배 증가, 지역별 면적순위 등 국민 궁금증 해소

 

 

국토교통부(장관 서승환)는 국토정책 수립과 행정업무 활용에 필수 자료인 ‘14년 지적통계연보를 발간한다고 12일 공식발표했습니다.

 

 

< 지적통계연보란? >    


      
1970년 최초 발간된 국가승인통계로 전국의 지적공부에 등록된 정보를 활용하여 1년 주기의 국토의 행정구역별, 지목별, 소유구분 등 현황을 수록 

 

 

올해는 국토의 면적, 지목, 소유자 등의 통계를 이해하기 쉬운 그래프로 구성하고, 수요자 중심의 다양한 토지정보를 수록하여 국토의 변화상을 한 눈에 확인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전 국토의 등록면적은 1년 새 여의도면적의 27배인 78㎢ 증가한 100,266㎢(’13년 말 지적공부등록 기준)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10년 전의 국토의 등록면적에 비해 여의도의 223.7배인 649㎢ 증가한 것입니다.

* 여의도 면적(윤중로 제방 안쪽): 2.9㎢  / * 독도 면적: 0.18㎢ (여의도 면적 대비 1/16 수준)

 

 

 ◇ 산업용지 확보를 위한 간척지 신규등록이 국토면적 증가 요인

 

 

 

  ▶ 국토면적 증가의 주된 요인은 산업용지 확보를 위한 간척지 신규등록(전남 고흥군의 고흥만 간척지 준공 30.8㎢,

     여의도 10.6배)이 가장 컸고, 광양제철소 원료부두 및 산단조성(1.2㎢)이 뒤를 이어...

 

  ▶ 이 외에도 미등록 토지등록 등 관리되지 못했던 토지를 정비하면서 매년 국토 면적이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번 지적통계를 살펴보면, 도로와 법인 소유 토지는 증가추세인 반면, 농지와 개인 소유 토지는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지적측량시장이 개방된 수치지역*의 현황이 추가로 수록되었습니다. * 수치지역: 도시(재)개발, 경지정리 등이 완료되어 경계점을 좌표로 등록한 지역

 

 

◇ 지난 30년간 도로 117.2% 증가, 농지 12.3% 감소

 

 

<최근 10년간 국토면적 증가 현황>

(단위: 년, ㎢)

 

 

<지난 30년간 도로 및 대지의 면적변동 추이>

(단위: 년, ㎢) 

* 국토이용ㆍ개발정책에 따른 고속도로 확충ㆍ신도시개발 등으로 지난 30년간 도로 117.2%(1,640㎢), 대지 66.9%(1,151㎢)로 증가 추세

 

 

<지난 30년간 농지, 임야의 면적변동 추이>

(단위: 년, ㎢)

* 이에 비해 농지(전ㆍ답)는 지난 30년간 도시화 및 산업화 등으로 인해 농지 12.3%(2,720㎢), 임야 2.9%(1,952㎢)가 감소

 

 

 

◇ 국토의 32.4%가 국·공유지, 최근 5년간 법인소유 토지 지속증가

 

 

<최근 5년간 국토의 소유구분별 토지현황>

 (단위: 년, ㎢)

* 국토의 소유현황은 민유지가 52.3%,  32.4%로 최근 5년간 국․공유지는 36.8% 증가했고 법인소유 토지는 9.1% 증가 추세

 

 

<최근 5년간 법인소유 토지 주요변동 추이>

(단위: 년, ㎢)

 

 

 

◇ 수치지역, 국토 면적 대비 4.7%(4,711㎢)로 꾸준한 증가세

 

 

<연도별 수치지역 등록현황>

(단위 : 필지, 천㎡, %)

* ‘04년부터 지적측량 시장이 개방된 수치지역의 경우 10년간 국토 면적 대비 ‘04년 3.4%(3,421㎢)에서 1.3% 상승한

   4.7%(4,711㎢)로 꾸준한 증가세

 

 

 

또한, 우리나라 극단지역 및 여의도 등의 현황을 재정리하여 자세하게 소개하였으며, 전국 251개 시군구별 면적순위를 함께 수록하여 지역현황을 비교해서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 자치단체 최대면적 경상북도, 최소면적 부산시 중구

 

현재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국토의 19%(19,028.9㎢)인 경상북도가가장 넓었으며,(가장 작은 곳은 세종특별자치시로 464.9㎢)기초자치단체 중 가장 넓은 지역은 강원도 홍천군(1,819.7㎢), 인제군(1,645.2㎢), 경북 안동시(1,521.9㎢)순이며, 가장 작은 곳은(부산 중구 2.8㎢) 입니다.

 

국토부는 공공·민간의 전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 지적통계연보를 공공기관, 도서관, 학교, 언론사 등 600여 기관에 900부를 배부하고, 자세한 내용은 온나라 부동산포탈, 국토교통통계누리, 통계청 e-나라지표, 국가공간정보포털에서 확인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140512(석간) 1년새 달라진 국토 모습, 지적통계로 한 눈에(지적기획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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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3월 지가

 

 

 

 

 

국토교통부(장관 서승환)는 ’14.3월 전국 지가가 전월(’14.2) 대비 0.20% 상승하여 ‘10.11월 이후 41개월 연속 소폭의 상승세를 이어갔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금융위기 발생 전 고점(’08.10월) 대비 1.47% 높은 수준입니다.

 

< 전국 월간 지가변동률 추이(%) >

 

< 지역별 지가변동률(%) >

 


1. 행정구역별

 

권역별로는 수도권이 0.22%, 지방권은 0.17% 각각 상승하였습니다. * 수도권:0.16%(13.11월)→0.15%(12월)→0.11%(14.1월)→0.14%(2월)→0.22%(3월) / * 지방권:0.15%(13.11월)→0.16%(12월)→0.10%(14.1월)→0.14%(2월)→0.17%(3월)

 

서울시(0.29%)는 ’13.9월부터 7개월 연속 상승하였으며, 25개 자치구 모두가 상승하였다. *서울:0.15%(13.9)→0.21%(10월)→0.21%(11월)→0.19%(12월)→0.19%(14.1)→0.21%(2월)→0.29%(3월)

 

< 지가변동률 상위 5개 지역 >

 

 

반면, 충남 천안서북구(∆0.108%)는 국제 비지니스파크 개발사업 무산에 따른 영향이 지속됨에 따라 가장 많이 하락하였습니다.

 

< 지가변동률 하위 5개 지역 >

 

 

2.용도지역・이용상황별


용도지역별로는 주거지역(0.26%)과 계획관리지역(0.21%)이 가장 많이 올랐으며, 여타 용도지역도 전월 대비 상승폭이 모두 증가하였습니다.

 

<용도지역별 지가 동향(전월대비, %) > 

 

 

이용상황별로는 골프장 등 기타(0.45%)와 주거용(0.21%)이 가장 많이 올랐습니다.

 

< 이용상황별(지목별) 지가 동향(전월대비, %) >

 

 

 

 

 2014년 3월 토지거래량

 

 

 

 


전체 토지거래량은 총 227,128필지, 173,776천㎡로 전년 동월(180,763필지, 175,003천㎡) 대비 필지수로는 25.6% 증가한 반면, 면적 기준으로는 0.7% 감소하였습니다. (* 전월과 비교 시 필지수는 10.8% 증가, 면적은 18.4% 증가)

 

세부 지역별 토지거래량(필지수 기준)을 보면 서울(56.6%)을 포함한 수도권의 거래량(43.2%)이 지방의 거래량(17.7%) 보다 증가폭이 높았습니다. 이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 시장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형성되어 주거용 건물에 대한 거래량이 높은 것에 기인합니다. (* 수도권 전체 거래량(80,765필지) 중 주거용 건물의 거래량은 66%(53,022필지))

 

순수토지 거래량은 총 88,055필지, 161,985천㎡로 전년 동월(81,799필지, 166,052천㎡) 대비 필지수 기준으로는 7.6% 증가한 반면, 면적 기준으로는 2.4% 감소하였습니다. (* 순수토지란 건축물 부속토지 거래를 제외한 토지만으로 거래되는 토지를
의미하며, 3월 전체 토지거래량의 필지수 38.8%, 면적 93.2%를 차지)

* 전월과 비교 시 필지수는 14.4% 증가, 면적은 19.8% 증가

 

 

< 월간 토지거래량 추이(필지수 기준) >

 

☞ 지가변동률과 토지거래량에 대한 상세한 자료는 ‘온나라 부동산정보 통합포털’(www.onnara.go.kr), ‘국토교통 통계누리’(stat.molit.go.kr) 또는 ‘R-ONE 부동산통계정보시스템’(www.r-one.co.kr)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40430(석간) '14년 3월 지가동향 및 토지거래량(토지정책과).hwp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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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기반형 2곳, 근린재생형 11곳, 주민주도형 도시재생사업 첫 발 내딛어


 

국토교통부(장관: 서승환)는 국무총리 소속 도시재생특별위원회 심의를 거쳐 도시재생선도지역*으로 13곳을 지정했다고 밝혔습니다.

* 도시재생이 시급하고 주변지역에 대한 파급효과가 높은 지역에 대해, 국가와 지자체의 시책을 중점 시행하는 지역
* 도시경제기반형 2곳, 근린재생형 11곳(일반규모 6곳, 소규모 5곳)

 

 

 

도시재생선도지역은 상향식 도시재생의 취지를 살리기 위하여 공모방식으로 진행하여 총 86개 지역이 신청하였으며, 문화․경제․복지․도시․건축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평가위원회가 서면․현장평가를 시행하고, 도시재생특위 심의를 거쳐 지정되었습니다.

 

쇠퇴하는 도시의 경제활력 회복과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한 도시경제기반형 선도지역은 부산과 청주 2곳이 지정되었고, 쇠퇴한 상업지역 및 주거지역을 재생하기 위한 근린재생형은 서울 종로구, 광주 동구, 영주시, 창원시, 군산시, 목포시(이상 일반규모 6곳), 대구 남구, 태백시, 천안시, 공주시, 순천시(이상 소규모 5곳) 등 11곳이 지정되었습니다.

 


 

1. 도시재생선도지역 지원계획

 

(일정) 5월부터 주민과 지자체 중심으로 구체적인 실행계획인 도시재생활성화계획을 수립하고, 9월경 계획 수립이 완료되면 바로 사업에 착수하여 `17년까지 4년간 시행됩니다.

 

(재정지원) 선도지역에 대해서는 계획수립비(0.5~2.0억원)와 사업비(60억원~250억원)가 4년간 국비로 지원되며, 금년에는 계획수립비 전부(13.1억)와 사업비의 20%(280억원)가 예산으로 책정되었습니다.

 

    (단위 : 억원/개소)

* ‘14년도는 총 사업비의 20% (경제기반 50억, 근린재생 12~20억) 지원

 

 

또한, 도시재생활성화계획 수립 과정에서 주민과 지자체가 도시재생과 연계가능한 각 부처의 사업들을 계획에 포함하여 지원을 요청하면, 도시재생특위의 심의를 거쳐 패키지로 지원함으로써 사업의 효과를 극대화할 계획입니다.

 

(행정․기술적 지원) 국토교통부는 도시재생지원기구로 지정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 국토연구원, 건축도시공간연구소 등 3개 전문기관과 함께 행정․기술적인 사항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근린재생형은 지역 도시재생지원센터 등 추진주체 구성과 주민교육 등에 대한 컨설팅을 통해 주민 스스로 지역의 자산을 활용하여 실행력 있는 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경제기반형은 현장여건 분석을 통해, 민간투자가 가능한 복합개발사업 등 앵커사업*을 지자체․주민이 발굴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 예) 역세권, 터미널 등 주변 개발, 이전 부지를 활용한 공공+민간 복합시설 등

 

 

 

2.선도지역 외 지자체 도시재생 지원계획

 

국토부는 금년에 우선 추진하는 선도지역 외의 다른 지자체에도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지원을 연차별로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금년에는 선도지역 외 지역의 주민․지자체가 도시재생사업을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주민과 지역의 역량강화를 중점 지원할 계획입니다. 이번 선도지역 공모에서 1차 서면평가를 통과한 지역은 주민 등을 대상으로 도시재생대학* 교육 프로그램을 국비로 지원하고, 그 외의 지역도 수요조사를 통해, 6~7월중 주민․지자체 공무원․현장 활동가 등을 대상(200여명)으로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 주민이 전문가 도움을 받아 직접 재생계획을 수립해 보는 프로그램

 

또한, 국토부와 도시재생지원기구는 지자체가 도시재생전략계획(기본구상)과 활성화계획(실행계획) 수립하는 과정에서 상시 상담 및 컨설팅을 시행합니다. 이를 토대로 내년 상반기쯤 주민․지자체가 도시재생계획을 수립하고 국고지원을 요청하면, 도시재생특위 심의를 거쳐 ’16년부터 매년 신규 도시재생사업 지원(매년 약 35개)을 추진해 나갈 계획입니다.

 

금번에 도시재생선도지역이 구체화됨에 따라 국정과제로 추진중인 중추도시생활권 등의 추진도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140429(조간) 도시재생선도지역 13곳 지정(도시재생과).hwp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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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대상「제2회 국토교통기술 아이디어 공모전」

 

국토교통부(장관: 서승환)가 주최하고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이 주관하는 「국토교통기술 아이디어 공모전」이 4월 21일부터 실시됩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되는 「국토교통기술 아이디어 공모전」은 국토교통기술을 기반으로 한 참신한 아이디어를 발굴함으로써 국민이 행복한 창조경제 실현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위해 기획되었습니다. 

 

공모분야는 「융복합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국토교통 관련 기술 아이디어」이며, 응모대상은 만 30세 이하의 국내외 대학생으로 4인 이내의 그룹 또는 개인으로 참여 가능합니다. 대상과 최우수 수상자에게는 국토교통부장관상이 수여되며, 수상자 모두에게 상금과 함께 정부의 지원으로 연구개발(R&D) 연계 및 제품 또는 기술로서의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 대상 500만 원(1개), 최우수상 300만 원(1개), 우수상 200만 원(2개), 후원기관상 100만 원(10개 내외)

 

 


1차 작품접수를 완료한 참가자들은 오는 5월 21일에 열리는 ‘2014 국토교통기술대전’ 행사에서 국토교통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만나 멘토링을 통해 실현가능성을 보완하게 됩니다.

*「2014 국토교통기술대전」은 국토교통 연구개발(R&D) 우수성과 전시 및 홍보의 장. 이 행사를 통해 국토교통 R&D 관계자 및 일반민간 기술교류를 촉진함으로써 국토교통기술의 현장적용 확대 및 기술거래 활성화 유도를 추진할 예정임

 

멘토링을 거쳐 보완된 아이디어 작품접수는 8월 11일부터 8월 15일까지 이며, 제출된 작품은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의 최종 심사를 거쳐 8월 22일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공모전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2014 국토교통기술대전」 홈페이지(www.techfair.kr)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기타 궁금한 사항은 공모전 사무국(031-389-6382~3, techfair@kaia.re.kr)으로 문의하면 됩니다.

 

 

 

140421(조간) 대학생 대상 제2회 국토교통기술 아이디어 공모전(미래전략담당관).hwp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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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 지적확정측량 규정 제정ㆍ공포

 

 

국토교통부(장관 서승환)는 4월 18일 부터 지적확정측량업무의 세부적인 처리 절차와 방법 등을 규정한 지적확정측량규정을 제정․시행한다고 밝혔습니다. 

 

지적확정측량은 도시개발사업 등에 의하여 택지 및 공장용지 등이 새롭게 조성된 지역의 지적공부(토지대장, 지적도 등)에 새로이 만들기 위해 실시하는 측량으로 매년 전국적으로 390여건에 약 4,500㎢(여의도 면적의 약 1,500배)이 시행됩니다. 그러나 지적확정측량에 대한 표준화된 규정이 없어 시ㆍ도별 자체지침에 따라 업무처리를 함으로써 측량 절차 및 검사 등에 대한 통일성과 효율성이 부족하였고, 지적확정측량 검사를 시ㆍ도지사만 할 수 있어 성과검사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사업이 지연되는 등 준공처리에 어려움이 많았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보완하기 위하여 지적확정측량규정을 제정하게 되었으며 그 주요내용은 지적확정측량 검사기관의 분리, 지적확정측량 처리절차 및 방법, 성과검사시 제출서류, 성과검사 기준 및 검사방법, 확정측량 성과도 발급 및 지적공부 정리 방법 등입니다.

 

본 규정의 시행으로 지적측량수행자(대한지적공사, 민간지적측량업체)는 전국적으로 통일된 기준에 의한 측량 시행 및 검사 요청이 가능해집니다. 특히, 성과검사 기관이 현재 시ㆍ도에서 시군구청으로 확대됨에  따라 보다 신속한 측량성과 검사가 가능해져 도시개발사업 등의 준공처리 기간도 단축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에 따라, 토지대장 및 등기부 등 각종 공부의 작성이 빨라져 국민과 기업에게 보다 빠른 행정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됩니다.

 

* 지적확정측량기간이 1년일 경우 검사기간이 당초 90일에서 60이로 30일 단축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지적확정측량규정을 운영하면서 발생되는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개선하여 국민과 기업에게 신속한 행정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140418(조간) 지적확정측량업무 기간 단축되고 절차도 통일된다(지적기획과).hwp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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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반환하는 용산공원 예정지를 다녀와서_ 신용우(글, 사진)

 


지금은 2014년 

일제가 이 강토를 송두리째 짓밟은 한일강제병합의 전초전으로 외교권을 빼앗으려고, 1905년 을사늑약을 맺은 지 109년이 되는 해다. 인간의 108번뇌를 한해에 하나씩 속죄하였다 해도 이미 마친 그 다음해


민족자존을 외치며 홑바지 저고리 차림의 농민들이 죽창을 들고 왜놈들과 맞서 조국의 자주권을 수호하려던 1894년 갑오동학농민혁명이 60갑자를 두 바퀴 돌아 120주년이 되는 갑오년


선열들의 자존을 위한 함성이 지금도 생생하게 노도처럼 들려온 까닭이던가하나 더하여, 잃어버린 우리 영토를 되찾자고 항상 외치던 내 소리가 들렸던 것일까뜻하지 않은 기회에 가보고 싶던 곳을 자세히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잃어버린 우리 땅

기껏해야 3,000년 역사의 중국이 요동이라 부르다가 지금은 만주라고 부르며 깔고 앉은, 우리의 고조선 이래 고구려와 대진국이 지배하던 땅, 구려벌, 그 땅


고작 1,500년의 역사밖에 간직하지 못한 일본이라는 나라가 메이지유신으로 근대 국가의 꼴을 갖추면서 제일 먼저 탐을 내던 땅, 유구한 우리의 역사를 짓밟기 위한 전진기지로 삼기위해 강제로 자신들의 땅으로 병합하고 지금도 우리가 그 땅을 돌려 달라고 할까봐 독도를 가지고 헛소리를 일삼는 대마도, 그 땅


아무리 줄여 잡아도 5,000년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가 숨 쉬는 우리 땅, 구려벌과 대마도를 수복하자고 외치는 내 소리가 들렸던 것일까구려벌이나 대마도처럼 멀리 있는 것도, 커다란 덩어리도 아니지만 아주 가까운 곳에 두고도 우리 땅인 것을 잊을 뻔한 땅일제가 을사늑약으로 밀고 들어오던 날부터만 계산해도 무려 109년이라는 긴 세월을 잊고 살았던 땅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 복판에 있으면서도 우리 주권이 미치지 못해 내 땅이면서도 내 땅이라고 말하지 못하던 땅.

내 땅을 내 땅이라 하지 못하고 내가 그곳에 살지 못하니 이 어찌 내가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으랴?”


조선 광해군 때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의 홍길동이 부르짖을 법한 소리지만 실제로 서울 한 복판에 존재하고 있는 현실이다다행히 반환되어 다시 찾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해야 할 땅이다.

 

용산 미군기지가 반납되면 그 곳에 들어설 예정인 공원에 관한 설명과 그곳에 남아있는 사료적 가치가 있는 것들에 대해 듣기위해,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 공원정책과장의 초대를 받고 국토부 용산공원조성 추진기획단 사무실에서 국토부 직원 몇 분과 합류를 해서 용산 미군기지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경이었다.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가기 위해 밤잠을 설치던 그 심정보다 더 설렜다. 지금이야 레저 문화가 발달하다 보니 가족 단위의 여행도 많지만 50대 중반의 나에게는 어릴 적 레저의 추억이 별로 없다. 기껏해야 냇가에서 천렵을 하는 형들이나 아버지 뒤에 깡통을 들고 쫓아다니며 붕어와 송사리를 담은 것이 전부일 뿐이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레저에 대한 어릴 적 추억으로는 당연히 소풍이나 수학여행이 우선이다. 그 중에서도 초등하교 때의 소풍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소풍가기 전날이면 내일은 제발 비가 오지 않게 해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를 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중요한 소풍의 추억보다 더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며, 우리를 안내 하기로 한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의 담당 주무관의 기초 설명을 듣는 순간 조금은 섭섭했다.


기지 안에 남아 있는 우리나라 유적은 조선시대에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기 위해 명산이나 커다란 하천 등지에 단을 수축한 후 국가에서 제를 지내던 산천단(山川壇)악해독단(嶽海瀆壇)’ 유적이 전부이고 나머지는 미군이 지었거나 아니면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이 고작이라는 거다설마 그럴까 하는 마음에 이동창 주무관이 잘 못 알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마저 들었다그러나 그런 바람도 잠시였다.


부대에 들어가기 위해 주민등록증을 내고 일종의 수속을 하는데 ! 정말 이곳이 내가 사는 대한민국의 영토가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의문이 드는 순간 설령 유적이 있다 손 치더라도 제대로 보존되었을 까닭이 없다는 슬픔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 밀려오던 슬픔은 차량을 이용해서 기지로 들어서는 순간 현실과 직면했다. 눈앞에 펼쳐진 넓은 미군기지의 모습은 유적 같은 것에는 신경도 안 쓸 그런 모습이었다. 그건 무슨 특별한 것을 보아서가 아니다. 그저 온 몸에 다가오는 느낌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제발 이번에는 내 직감이 틀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다시 한 번 들었다.

 


 

<그림 1> 미국관사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미군들이 체육시설로 쓰는 야구장과 축구장이다. 네 개가 있다고 했던 것 같다그리고 다음으로 보이는 것이 미군 관사로 쓰이는 집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이었다우리나라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전원주택이라도 되는 양 집 한 채가 넓은 면적을 편안하게 차지하고 있었다아마도 사병들은 막사를 이용할 테니 장교 내지는 간부 숙소인 듯싶었다.


*그림 1 : 참고로 이후에 게재되는 사진들이 차 안에서 이동하면서 찍은 사진들이라 상태가 별로 선명하지 못한 것들도 있다는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막사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미군들이 이용하는 편의 시설과 유치원 등이 있는 곳과 국내 각 미군기지와 연계하는 버스들이 다니는 버스터미널을 만날 수 있었다.(그림 2, 3)

 


 <그림 2 기지내 편의시설을 위한 건물들>

 <그림 3 편의 시설>



이어서 우리가 지난 곳은 삼각지와 녹사평역을 잇는 도로위로 놓인 고가도로다. 그 고가 도로는 이곳이 용산 공원으로 재탄생을 하면 지하통로로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아울러 지금은 물이 말라 건천으로 남은 기지내의 만초천의 지류 역시 청계천처럼 물이 흐르는 곳으로 만들 계획이라고도 했다.


눈에 보이는 씁쓸한 풍경에 비하면 계획이라고는 하지만 아주 듣기 좋은 말이었다.


그 때 눈에 들어 온 이상한 풍경이 있었다. 분명히 막사가 있는데 텐트를 치고 숙소를 만들어 놓고 그곳에서 생활하는 군인들이 눈에 들어 온 것이다.(그림 4) 우리가 의아해 하자 그곳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는 일행 중 한 명이 설명을 해 줬다.


<그림 4 : 훈련을 위해 온 미군을 위한 기지내 캠프>

 

우리 식으로 생각을 하자면 저 사람들은 일종의 예비군이라고 보면 됩니다. 예비군 훈련을 받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예비역이나 혹은 군인들 중에서 본토로 귀환했던 사람 중에서 한 미 연합 훈련 등을 위해 다시 왔는데 막사에는 지금 이곳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이 생활하고 있으니까 저렇게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훈련 중의 일부입니다.”


전방에서 군대생활을 육군 병장으로 마치고 예비군 훈련까지 착실하게 받은 나로서는 금방 이해가 가는 말이었다. 아울러 주한 미군이 주둔하는 목적이 무엇이며 이유는 무엇이고, 주둔 비 부담 비율이 어떻고 등등을 떠나, 자유와 평화라는 이름 아래 머나먼 남의 나라에 와서 고생하는 그들에 대한 경의로운 마음이 진심으로 우러나왔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어떤 논리를 내 세웠던 간에, 저 훈련에 참여한 병사들 개개인의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일단은 지구 반대편에서 자유와 평화 수호라는 명분을 위해 이곳까지 올 수 있는 결정을 했다는 것이 대단한 용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는 우리나라가 전쟁 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보기 때문에, 미군이 주둔한 곳에서는 우리나라를 최전방으로 취급 한다고 알고 있기에 더더욱 그랬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 번은 해볼 수 있는 일일 것 같지만 실제 그런 결정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군대 생활을 해 본 사람들, 특히 전방에서 군대 생활을 해 본 사람들은 내 말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실제 상황이라는 말과 함께 비상이 걸리면, 겉으로는 태연하고 용맹한 척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이게 또 뭔 일이냐고 마음을 조이곤 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하기야 우리 군대 생활할 때는 연일 북에서 대남방송을 쏟아 부으며 긴장도 많이 고조되기도 했던 때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군대는 군대고 전방은 전방이라는 원칙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차가 기지의 북쪽으로 가자 이 근방이 미군이 이전하면서 미국 대사관 부지가 될 것이라는 설명을 들으면서 그렇게도 고대하던 악해독단유적이 있다는 곳에 도착했다.


순간 나는 으악!’하고 비명을 지를 뻔 했다아니 단순히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목이 터지라고 소리쳐 대상도 없는 이에게 욕을 퍼 붓고 싶었다.


제게 무슨 일인가?


악해독단유적이라고 알려진 곳 한 쪽 귀퉁이에는 주춧돌 격으로 쓰였던 돌로 보이는 것과 기둥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돌 두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것도 돌에 남아있는 파인 자국은 콘크리트로 막아버린 채로 남아있었다.(그림 5) 그리고 반대편 귀퉁이에는 그나마 돌 한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그림 6)


 <그림 5 악해독단 유적1>

그림 6 악해독단 유적2>


그게 전부였다그 바로 옆 불과 2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미군이 막사를 지어 놓았고, 그들이 쉼터로 사용하기 위해 가져다 놓은 야외용 테이블은 그나마 남은 유적의 가운데 놓여 두 유적의 존재감을 흐리게 하고 있었다. 더더욱 테이블 주위에 놓였던 의자가 유적 코앞에서 나뒹구는 그런 풍경을 보니 눈에는 절로 눈물이 맺혔다.


행여 일행 중 누가 볼 새라 부끄러워 일부러 돌을 드려다 보는 척하며 허리를 숙이고 있다가 일행이 저만큼 가고 나서야 허리를 펴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부랴부랴 뒤 따랐다.


이게 무슨 일인가여기가 거기란 말인가?

109년 만에 만나면서도 미처 108번뇌도 다스리지 못하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만났기에 그 모습에 이리도 가슴이 미어진다는 말인가도대체 얼마를 더 가서 어떤 모습으로 만나면 이 가슴이 이리도 시리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 얼마나 먼저 어떻게 만났다면 이 가슴이 이리 저리지 않아도 되었단 말인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지 못하는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이리도 쓰라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인가? 그게 아니라면 이 나라에서 태어난 것이 무슨 죄이기에 이리도 가슴이 아파야 한다는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고 눈물이 자꾸 흘러 밑에서 잠깐 멈춰달라고 하고 차 안에서 다시 한 번 유적을 찍어 보았다.(그림 7)  내 눈에 보이지 않던 유적이 사진 속에는 나오지 않을까?’


저 축대에 있는 돌중에 옛날부터 그 자리에 있던 돌이 사진 속에서 나와 줄 것을 간절히 바라면서 사진을 찍었다. 내가 잘못 보아서 남겨진 유적을 보지 못한 것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막사 오른쪽 한 귀퉁이에 이미 보았던 유적의 흔적뿐이다. 그것도 막사 가 바로 코앞에 지어지는 바람에 막사를 지을 때 쓰다 남은 돌덩어리처럼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그림 8)


<그림 7 : ‘악해독단’ 유적지 밑에서 찍은 모습>

 <그림 8 : ‘악해독단의 흔적이 오른쪽 귀퉁이에 보인다.>


그러나 곧바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나마 저게 희망이다

흔적이라도 남아 있다는 것이 희망이다.

게다가 안내를 해 주던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의 담당 주무관이 아주 희망적인 말을 해 주었다.


현재 미군기지 안에 있는 건물이 약 1,000여 동인데 그 중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의 기초위에 그대로 지은 건물이 상당수 된다는 것이다. 미군이 일제가 쓰던 건물의 기초는 그대로 사용해서 건물을 지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제나 미군이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용산의 이 땅을 점유하면서 발굴을 안 해서 그렇지 더 많은 유적들이 반드시 묻혀있고 그것을 발굴할 것이라는 예고편으로 들렸다. 그 말을 한 가닥 희망으로 잡아서인지 그제야 텅 빈 것 같던 가슴에 아주 적게나마 무언가 차 오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쓸쓸하게 남은 악해독단유적의 사진을 찍으며 자리를 떠나는 순간, 그나마 돌 네 개라도 유적이 남았을 때 반환 받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가 없었다. 그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셔터를 한 번 더 눌렀다. 저 돌들마저 사라진 뒤라면 어찌 했을까를 생각하니 하느님 정말 감사합니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아울러,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악해독단의 유적이 방치된 것을 보면서 분명히 공원을 개발하다 보면 더 많은 유적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었다. 일제가 짓밟고 미군이 들어와서도 관리를 안 했는데도 저렇게 유적이 남아 있다. 그들에게는 유적 같은 것은 관심 밖이었던 것이니, 지하에 매몰되거나 아니면 건물을 짓는데도 상관하지 않았기에 건물 어느 부분에 숨겨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음먹고 찾으면 더 많을 것이다. 그 때는 그 소중한 것들을 잘 보존하는 것은 물론 우리의 아픈 역사와 함께 반드시 병행해서 남기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국토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에서 공원을 설계하고 또 앞으로 시공할 분들이 잘 챙길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분들도 역사와 문화를 외면한 개발이라는 것이 가져다 줄 것은 종국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기에 오늘 이런 기회를 나에게 주신 분들이다. 역사가 없는 민족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분들이니 훌륭하게 마무리 지어 주실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런 희망이 있기에 세상을 아름답게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악해독단유적을 보고 난 후부터 본격적으로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코스를 그렇게 잡았으니까 그런 것이겠지만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들은 빨간 벽돌로 지어진 것들이 대부분 이었다.(그림 9) 그 건물들에는 처마 밑에 일제의 상징인 별 마크가 새겨져 있었는데 미 8군 마크로 바꾼 곳도 있지만 미처 바꾸는 것을 잊은 곳도 있었다.(그림 10) 어차피 그들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으리라.


 

 <그림 9  일본군이 지은 건물로 미군 사무동으로 쓰인다.>

<그림 10 처마 밑의 별>



그런데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띠는 건물이 있었다.(그림11)


<그림 11 : 일본군사령부로 쓰던 주한미군사령부>


지금은 주한미군 사령부로 쓰이는 곳이라 더 가까이 가서 볼 수가 없어서 안에야 빨간 벽돌로 지어진 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겉은 빨간색이 아니다. 그러나 건물의 모양이나 윤곽으로 볼 때 빨간 벽돌 건물에 색을 칠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저 건물이 바로 일제 역시 자신들의 사령부로 쓰던 건물이라고 한다. 갑자기 그 건물 앞에서 거총 자세를 취하고 오가는 이들에게 독한 눈빛을 쏘아대는 일제 헌병들과 그 앞을 오가고 있는 일제 고위 장교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부끄러운 역사도 역사라지만 그 앞을 오가고 있는 일본 제국주의 고위 장교들에게 달려가서 실컷 후려패 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소리치고 싶었다.


강탈해간 우리의 시간들을 내 놓아라.

네놈들에게 우리의 아픈 과거를 보상하라고 하기도 싫다. 네놈들이 우리를 무력으로 짓밟던 그 이전 시절로 돌려보내라고 우기지도 않는다. 다만 네놈들이 왜곡하기 위해 말살시킨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찾을 수 있는, 이 나라 백성들보다 네놈들의 역사와 문화가 앞서있는 민족이라고 날조하기 위한 연구 자료로 사용하려고 강탈해 가서 감추어둔 우리의 근거들만이라도 내 놓아라.


잃어버린 시간 속에 묻혀버린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내 손으로 찾아야겠다.” 


그러나 그렇게 뒤끓던 울분도 잠시였다일제강점기에 감옥으로 쓰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그곳에서 무언가 기대를 했는데, 아뿔싸!


그곳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감옥을 둘러쌌던 담벼락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감옥을 둘러쌌던 담벼락 안에는 미군 막사가 여러 동 지어져 있었다. 외벽을 드나드는 출입구에서도 막사가 보인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나마 남은 담장의 입구도 마음대로 막아버리고 다른 곳을 헐어서 입구로 사용하고 있었다.(그림 12) 감옥 담장 내부 역시 미군들이 붉은 벽돌위에 시멘트벽을 발라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그림 13). [(그림 12)(그림 13)이 같은 담장의 내, 외부를 찍은 것이다.]


  <그림 12 : 감옥건물 외부담장 외벽>

  <그림 13 : 감옥건물 외부담장 내벽>



그곳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에 감옥으로 쓰인 흔적의 건물은 담장을 제외하고는 겨우 두 개 뿐이었다. 하나는 그 당시 간수들이 사용하던 곳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굴뚝까지 돌출 되어 있는 빨간 벽돌 건물로 미군 막사와 어우러져 있었다.(그림 14) 나머지는 감옥으로 추정되는 건물로 그 역시 겨우 하나 남았는데 그나마 미군이 건물을 증축해서 창고로 쓰는 것 같았다.(그림 15) 우리에게는 몹시도 아픈 추억이건만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한 채 이쪽과 저쪽 끝에 겨우 하나씩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림 14 간수들이 쓰던 것으로 추정되는 빨간 벽돌건물>

 <그림 15 감옥으로 추정되는 건물>



비록 얼마 남지 않은 흔적이나마 흔적을 보는 순간, 이곳을 일제가 감옥으로 썼던 곳이라면 분명 자국의 병사들을 가두기 위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그들이 악성 사상범이나 정치범으로 몰던, 우리의 독립투사들과 수많은 애국선열들 중에서도, 그들이 비밀리에 문초를 해야 했던 분들이 군 사령부인 이곳에서 못된 고초를 당하셨을 것이다. 그런 흔적이 있어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반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조금이나마 바랐는데 이건 아예 흔적도 없어진 것 같았다. 훗날 공원을 조성하면서 무언가 나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했지만 아쉬워 그냥 발길을 떼기 싫은 찰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옛 감옥으로 보이는 (그림 15)의 건물 바로 옆에 얼핏 보아도 예사 물건은 아니고 무슨 형틀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그림 16)


 

<그림 16 :  감옥건물 바로 옆에 있던 형틀(?)>


저게 혹시 우리 선열들을 고문하던 기구라면?’ 하는 끔찍한 생각과 함께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눌렀다. 언젠가 그림에서인지 아니면 사진에서인지 저런 틀을 가지고 고문을 하던 것을 보았던 기억이 나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게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난 현상인지 아니면 정말 보았던 것인지를 밝힐 수 있는 아무런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저것이 없어지지만 않는다면 훗날 공원 조성을 하면서 반드시 밝혀지리라. 그러기 위해서라도 저런 것들을 보호하기 위해 무언가 조처를 취해야 할 것 같았다. 지금까지 보아온 결과라면 우리나라 사람 누군가가 보호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저런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을 것 같았다.


담장 안으로 들어갔다가 이렇다하게 찾은 것도 없이 빈손으로 담장을 되돌아 나오는 것 같은 그 순간에도 선열들의 고통을 느낄 수 있고, 그분들이 울부짖는 것 같은데 그를 뒷받침할 흔적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 여간 마음상하지 않았다.


분명 내 귀에는 그분들의 울부짖음이 환청처럼 들리는데 그 어느 곳에도 흔적이 없다.


하기야 지금 이 곳은 아직 독립을 못한 땅이다. 시멘트 블록과 철조망으로 감싸여 내나라 주권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니 무슨 독립을 논하랴?


어차피 내 나라 전체가 미완의 독립이었다.


카이로와 포츠담 선언에 의해 남들의 손에 의해 주어진 독립이다 보니 제대로 주권도 찾지 못했다. 우리나라를 독립시킨 선언의 주체가 된 소련과 중국은 자기들이 불법으로 깔고 앉아있는 우리 영토를 돌려 줄 생각도 안했다. 우리나라의 주권을 찾아주는 대신 중국은 만주라고 부르면서 요동 땅을, 소련은 연해주를 불법으로 깔고 앉아 우리 고구려의 숨결이 숨 쉬는 구려벌을 강탈해 갔다. 그뿐인가? 자기들이 우리에게 독립을 안겨주는 대신 영토를 강탈하면서 잃어버린 대마도는 찾아 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게다가 소련과 미국이 동시에 연합국이라는 이름으로 같이 반도 안으로 들어오면서 우리 영토의 일부분에 해당하던 한반도마저 남북으로 갈려 일 만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다스리던 영토의 대부분을 잃어버렸다. 겨우 남은 것이라고는 휴전선 이남의 손바닥만 한 땅이 전부이거늘, 그 와중에 이렇게 내 땅임을 말할 수 없는 곳이 있었으니 순국선열들의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나는 내 귀에 들리는 그 울부짖음이 환청이 아니라 나를 질책하는 선조들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면서 아픈 마음을 추스를 길이 없었다.

 

이렇게 돌아보고 나면 울적해 질 것이기에, 그 울적한 마음을 달래 주려고 미리 계획한 것은 아닐 진대, 마치 가라앉은 기분을 달래주려는 것처럼 기지 내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는 둔치산에 올랐다. 이곳에서는 용산구청 신청사가 바로 코앞이다.(그림 17)


<그림 17 : 기지에서 본 용산구청 신청사>

 

멀리 이미 반환된 유엔사 부지도 보인다. 저 땅을 팔아서 이전비용 15조원을 댄다는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서 쓴 웃음이 나왔지만 그렇게라도 108번뇌를 다 하도록 디디지 못했던 우리 땅을 다시 디딜 수 있다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도 해 봤다.

 

돌아오는 길목에 미군들이 타 기지나 본국에서 왔다가 묵는 곳이라는 Dragon Hill Hotel(그림 18)의 이름이 용산(龍山)을 영어로 글자 그대로 번역해서 사용했다는 웃어야 하는지 아니면 아무 의미 없는 일로 치부해야 하는지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 설명을 들으면서 출구로 나섰다.


 <그림 18 : Dragon Hill Hotel>



2014227.

두어 시간으로 짧지만, 아마도 내 생에 절대 잊지 못할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서 선 곳은 바로 처음 들어가기 위해 수속을 하던 곳이다. 마치 외국에 갔을 때 입국 수속을 하고 출국 수속을 하는 기분이다. 주민등록증을 다시 받아 들고 선 곳은 두어 시간 전에 내가 섰던 그곳이다.  분명 여기가 거기임에 틀림이 없건만!


왜 이리도 오래고 긴 시간 후에 선 아주 낯선 곳으로 여겨진다는 말인가왜 이리도 아주 먼 곳을 다녀와서 오랜 만에 서 보는 곳처럼 여겨진다는 말인가

 

여기가 정말 거기라는 말인가?

멍한 기분을 가눌 수 없어 담배 한 대를 더 물고 나서 정신을 가다듬은 후에, 안내를 해 주신 분을 비롯한 모든 일행에게 수고하셨다는 말을 남기고 옥수역으로 향했다그분들이 했던 말을 그대로 믿고 싶었다.


아름다우면서도 시간과 공간이 어우러지는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공원을 만들겠다는 그 말대로 꼭 이뤄지기를 간절히 기도드렸다


오늘 설명을 하면서 앞으로 어떤 테마의 공원을 만들 것이라고 하던 그 말에서 나는 희망을 읽었었다. 그 희망이 나 하나의 희망이 아니라 이 땅에서 태어나고 이 땅에서 죽어가는 우리 모두의 희망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민족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희망 있는 미래를 살 수 있기에, 비록 108번뇌를 넘기고도 아직은 남이 점유하고 있는 곳이지만, 공원으로 다시 태어날 때는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면서 다가오는 우리의 후손들에게 찬란했던 우리의 숨결을 전해주는 그런 모습으로 태어나기를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드렸다.

 

곧 열차가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과 함께 용산의 밤은 내 곁에서 내일을 기약하고 있었다.

 

60갑자를 두 바퀴 돌아온 120년 전, 갑오년의 그 함성이 내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열차가 내 앞에 멈춰 서며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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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지적의 의미와 필요성,‘기념우표’로 공감대 넓혀


국토교통부(장관: 서승환)는 지적재조사’ 역사적 의미를 공유하고 필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기념우표”*가 나오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 우정사업본부에서 국내․외 행사, 역사적 사건, 인물 등을 기념, 홍보하기 위해 발행)



지적재조사 기념우표”는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져 100년 간 사용 중인 종이지적을 디지털 지적으로 전환함으로써 새로운 백년대계를 위한 초석으로서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알리고자 노력한 결과, 우표발행심의위원회 기념우표 대상사업으로 선정된 것으로국토교통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한 눈에 알기 쉽게 상징화하여  이해 관심, 흥미를 높일 수 있도록 기념우표를 발행 한 사례는 서울-부산 고속도로 준공 기념(1970년), 인천 국제공항 개항 기념(2001년), 고속철도 개통 기념(2004년) 등이 있습니다.(’14.3.20.자로 2종, 총 123만 장 발행)



 

국토교통부는 지 기초 인프라인 지적도가 고령화(100년 경과)로 인해 정확도가 떨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훼손, 변형되어 토지 분쟁 등 국민 불편과 막대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함에 따라,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지적재조사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11. 9월)하고, 시․군․구에 전담인력을 투입(178명)하여 2030년까지 디지털지적의 완성을 위한 지적재조사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경계분쟁관련 소송비용 연간 3천800억 원, 경계측량비용 연간 약 900억 원)




2013년까지 완료한 선행사업에서는 인공위공을 이용한 정확한 토지정보를 토대로 토지를 디자인한 결과 토지분쟁은 사라지고, 토지 정형화․건축물 저촉 해소를 통해 토지이용가치는 높아지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토지에 관한 종합적인 정보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첨단기술로 제작된 디지털 지적정보다른 공간정보와 융․복합 활용이 가능해 앞으로 국민의 요구에 한발 앞선 다양한 스마트 지적정보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번에 발행되는 ‘’기념우표‘’는 지적재조사사업을 추진하는 전국 시․군․구에서 사업안내서와 사업추진 동의서 등 토지소유자 및 이해관계인 대상 우편물 발송 대・내외 행사 등에 효과적으로 활용되어 국민적 공감대 넓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140320(석간) 100년 만의 새 지적도, 기념우표로 만난다(지적재조사기획단)[1].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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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각 국의 국토, 교통을 소개할 국토교통부 글로벌 대학생 기자단을 모집합니다.

 

2014년 4월~12월 해외 체류 중이거나 예정 중인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지원 가능합니다. 국토교통부와 함께 다양한 혜택과 경험도 쌓고 해외의 국토, 교통 정보를 흥미롭게 재미있게 전달 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면 지금 바로 지원하세요!

 

많은 관심과 지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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