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고층빌딩'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12.11 대한민국 고층건물의 역사 2편 (1)
  2. 2013.12.05 대한민국 고층건물의 역사 1편 (1)


31빌딩이 들어서기 이전 8층짜리 반도호텔, 17층짜리 세운상가아파트가 서울의 ‘마천루’였던 시절은 점점 전설이 되어 간다. 도대체 언제 그랬냐는 듯 고도 성장기 서울의 스카이라인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다. 시내에는 롯데호텔을 비롯하여 고층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삼일빌딩 높이가 114미터였는데 70년대 초 중반쯤 되면 100미터를 넘는 빌딩들이 10여 개나 될 정도였다. 31층을 훌쩍 넘길 빌딩도 충분히 가능했지만 서울 중심부 지역에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는 데에는 여러 제약이 많았다. 그 가운데 하나는 ‘대통령 경호’의 문제였다. 서울 중심부에 고층 빌딩이 지어진다면 거기서는 청와대가 훤히 내려다보이게 되고 누군가 로켓포라도 반입한다면 청와대가 직격을 맞게 된다는 논리였다. 그런 의미에서 청와대 경호실은 롯데호텔 고층의 북면(北面) 창을 봉쇄했다고 한다. 


그러나 15년 동안 서울의 최고층을 지켜오던 삼일빌딩의 아성이 무너지는 날이 왔다. 35층이라든가 37층 정도로 겨우 삼일빌딩을 웃도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차원의 높이를 지닌 빌딩이 우리 곁으로 왔던 것이다. 바로 여의도에 우뚝 서서 지금도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는 63빌딩이 그것이다. 



 


63빌딩의 주인은 신동아그룹의 최순영 회장이었다. 70년대 말과 80년대 초반, 많은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대한축구협회장’으로 기억한다. 원래 신동아그룹은 대한제분을 근간으로 커 왔던 ‘빵 파는 기업’이었지만 최순영 회장은 선친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그룹을 물려받으면서 전방위로 그룹을 확장시키는 와중에 초고층 빌딩을 짓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그 출발은 종교적인 이유였다. 


“대한생명 사옥은 7층이었습니다. 이 건물을 크게 확장하여 짓기 위해 6개월 동안 저와 열심히 기도한 결과 아내를 통하여 여의도에 60층 높이로 지으라는 응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의도에 땅을 사고 건축허가를 내려 했는데 서울시청이고 청와대고 모두 고개를 저었다. 15층 이상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역시 국회가 있고 ‘5.16 광장’ (여의도 광장)이 있어서 툭하면 군사 퍼레이드나 반공 결의대회가 벌어지고 대통령이 무시로 참석하던 여의도에 웬 60층 빌딩이냐는 것이 거절의 이유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박정희 대통령 시대가 가고 5공화국이 왔다. 최순영 회장은 절대 권력의 전환기에 또 한 번 초고층 건물의 꿈을 이루려고 동분서주한다. 


“간신히 두 번째로 높은 분을 만났습니다. 육군회관 식당에 가서 그 분에게 사정을 말하고 사진을 한 장 보여주자 그 분이 "왜 허가가 안 나는지" 오히려 저에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여의도가 내려다보여 안보에 지장이 있을까 봐 안 해주는 것 같다"고 하자 그 분 대답이 "보이긴 해도 여의도와 청와대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총알은 안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허가는 다음 날 나왔다. 


그래서 여의도 강변에 우뚝 선 63빌딩은 착공된다. 지상 60층, 지하 3층의 63층이었지만 당시로서는 미국 대륙을 제외하고는 그 이상 높은 빌딩이 없던 시절이었다. 얼마 전 드라마 <추적자>에서 좀 뜬금없이 63빌딩 층수가 화제가 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총론적으로 보면 지상 60층이 맞는다고 한다. 60층 전망대에서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그 위층이 있는 거 아니냐는 반론도 있지만 그건 전망대 수가 실상 59층이기 때문에 그렇다.. 죽을 4자가 겹치는 44층을 뺐기 때문이다. 


 

▲ 78년도와 최근의 63빌딩 지역의 항공사진(출처: 브이월드)


착공은 1980년. 미국의 SOM사하고 국내 건축가 박춘명씨가 설계를 맡았고 총 공사비는 1800억이 들어갔다. 한국 건축과 건설의 자부심이 응축된 빌딩이어서 그랬을까 63빌딩은 튼튼하게 지어졌다. 강도 7의 지진과 초속 40미터의 강풍에도 버틸 수 있게 설계됐고 몇 년 전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을 때 골조는 120년은 족히 갈만큼 튼튼하다는 평가를 얻을 정도였다. 


벽면을 장식한 황금빛 유리도 화제였다. 바라보는 방향과 태양의 각도에 따라 사뭇 다른 색깔로 빛을 발하는 63빌딩의 자태는 서울의 ‘랜드마크’라 불리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아우라 속에 여러 우스개 소리가 태어나는데 그 가운데 가장 인기를 끌었던 농담은 이런 것이었다.


“63빌딩이 황금색으로 지어진 이유가 있다. 전쟁이 나면 국회의사당 돔이 짝 갈라지면서 레이저 빔 발사대가 뜨고 거기서 레이저가 발사되면 63빌딩의 황금빛 몸체에 반사돼 한강을 내리쬐고 그러면 한강이 쫙 갈라지면서 마징가 z가 출동한다.”



그런데 애초에 63빌딩이 지어질 때 이 유리판을 납품한 곳은 미국의 어느 회사였는데 그만 그 회사가 부도가 나 문을 닫았다고 한다. 다행히도 수천 장의 예비 유리를 장만하고 있어 빌딩의 황금빛은 축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브이월드로 본 63빌딩과 주변 모습


원래 여의도 자체가 지반이 약한 곳이라 기초공사도 무지 힘들었고 공사 소음 때문에 당시 세력가들이 많던 여의도 주변 아파트 주민들이 집값 떨어진다고 아우성도 많았지만 1985년 7월 27일 완공된 63빌딩, 남산보다 1미터 낮은 그 어마어마한 높이는 남산타워 이상 가는 서울의 명소가 됐다. 이 장관 앞에 발끈하면서 “우리도 하자!”고 나섰던 뜻밖의 존재가 있었다. 북한이었다. 라이벌 의식에 불타오른 북한은 63빌딩을 압도하는 100층 이상의 유경 호텔을 세우려다가 수십 년 동안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도 시샘했던 이 63빌딩을 보기 위해서, 당시로서는 유수의 볼거리이던 수족관과 아이맥스 영화관, 그리고 무엇보다 60층 높이에서 내다보인다는 인천 앞바다를 보기 위해서 사람들은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또 63빌딩에 위치한 크리스탈 볼룸이니 그랜드 볼룸이니 하는 행사장들은 기라성 같은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와 스타들의 기자회견장, 결혼식장의 단골 장소였다. 김희애 이찬진 부부나 유호정 이재룡 부부, 얼마 전의 하하처럼 유명인사들의 결혼식장도, 프로야구 선수 협의회 같은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63빌딩은 이제 동양 최고는 고사하고 한국 최고의 자리에서도 밀렸다. 31빌딩과 마찬가지로 빌딩의 주인은 원래의 주인에서 다른 기업에게로 넘어갔다. 하지만 분명히 더 높은 빌딩도 있고 더 많은 층수를 지닌 건물도 있으나 한강을 굽어보며 위엄 있고 씩씩하게 서 있는 황금빛의 빌딩은 여전히 ‘한국 최고’의 후광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 어느 새 세워 진지도 30여 년. 아빠 손을 잡고 63빌딩 꼭대기에 올라 탄성을 지르던 꼬마들이 장성하여 자신의 아이들 손을 잡고 63빌딩 전망대를 찾고 있다. 어쩌면 그 아이들의 아이들에게도 63빌딩은 최고의 구경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이미 63빌딩은 그 정도의 역사성을 획득했다고 하면 과언이 될까.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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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한번 멋~진 63빌딩을 가 보고 싶네요

    2014.10.25 18:36 [ ADDR : EDIT/ DEL : REPLY ]


인간이 집이라는 것을 짓고 건물을 세우기 시작한 이래, 망치를 휘두르고 못을 박으며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린 이후 “더 높은 곳을 향하여”는 동서고금을 통해 비슷한 욕망이었다. 하늘을 향해 쌓아 올리려다 그만 신의 벌을 받아 그때까지 함께 쓰던 언어가 통하지 않게 됐다는 바벨탑의 전설이나 지금도 이집트의 사막에 버티고 선 대(大) 피라미드들을 보면 그 뜨거울 소망의 단면을 짐작할 수 있거니와 마을과 마을, 나라와 나라는 보다 높은 건축물들을 짓는 경쟁을 자주 벌였고 그 유산은 세계 곳곳에 남아 있다. 



▲ 황룡사 9층탑 모형(출처: http://bit.ly/1cQkRL3)


고층 건물과는 별 인연이 없어 뵈는 것 같지만 우리나라에도 고층 건물을 지을 역량은 충분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지금은 볼 수 없는 황룡사 9층탑이 되겠다. 황룡사는 불국사의 8배나 큰 규모였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절 마당에는 또 9층으로 된 목탑 (말이 탑이지 이 황목조 9층 건물에 가까운)이 있었다. 한창 삼국 통일의 꿈을 키워가던 패기만만한 신라는 9층마다 나라의 이름을 쓰고 탑이 완성되면 그들이 다 신라에 조공을 올 것이라는 야무진 꿈을 꾸었다. 그러나 그렇게 수백 년을 버티며 경주 하늘을 찌르던 황룡사 9층탑에 운명의 날이 찾아왔다. 고려 중기 몽골의 침략군이 경주에 도착한 것이다. 그들은 거리낌없이 목탑에 불을 질렀다. 황룡사 목탑은 며칠 동안 불타며 경주 백성들의 가슴을 내려앉게 했다. 



▲ 황룡사구층목탑찰주본기(출처: 문화콘텐츠닷컴 http://www.culturecontent.com/main.do)



황룡사가 불타 없어진 이후 700여 년간 그 일대는 폐허가 된 채 무심한 후세들이 일구는 논밭과 집들로 뒤덮여 갔다. 그러던 중 1964년 마을을 철거하고 황룡사지 발굴을 시작해 많은 유물을 발굴하는 와중에 사리구를 간직했음직한 심초석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사리구는 없었다. 적잖은 실망을 했지만 2년 후 또 다른 기쁨이 찾아왔다. 발굴 당시의 조사위원이었던 황수영 박사는 누군가로부터 진귀한 물건을 감정해 달라는 연락을 받고 자세히 들여다보는 도중 그만 입이 벌어지고 말았다. 바로 잃어버렸던 사리구였던 것이다. 이 사리함에는 황룡사 9층탑의 규모가 자세하게 적힌 글이라 할 <찰주본기>가 적혀 있었는데 여기에 따르면 황룡사 목층탑의 높이는 무려 80미터. 오늘날 30층 아파트와 맞먹는 규모였다. 비록 신라 땅에 세워졌지만 백제 기술자에 의해 세워진 것이니 백제에도 유사한 기술이 있었을 것이고 그들은 하늘을 찌르는 탑과 건물들을 이 나라 곳곳에 세우고 있었을 터. 


그 이후 우리나라의 고층 빌딩의 역사는 그렇게 화려하지 않다. 높이보다는 넓이를 추구했다고나 할까. ‘아흔 아홉 칸 집’을 자랑하긴 해도 아흔아홉 자 높이를 자랑하는 건물은 없었다. 복층 건물이 지어지기 시작한 것은 구한말 이후였고 ‘고래등’같은 기와집만 부러워하던 한국인들은 하늘 향해 우뚝 서서 두 팔 벌린 듯 몇 층씩 쌓아 올리던 외국 공사관이며 성당이며 집들을 바라보며 경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한국에서 본격적인 고층 빌딩이 들어선 것은 한창 고속 성장을 누리던 1970년에 이르러서였다



 ▲ 삼일빌딩(출처: http://bit.ly/1c8q66Z)



김두식 회장이 설립한 삼미그룹의 모태인 대일목재공업이 1968년 사옥건물로 쓸 삼일빌딩을 짓기 시작해 1970년 완공한 것이다. 건물의 설계자는 서강대 본관, 프랑스 대사관, 올림픽 공원 평화의 문을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 건축가 김중업이었다. 건물을 31층으로 한 것은 일제 잔재를 청산한다는 3.1절의 의미도 개입되었다고 하는데 청계천변에 우람하게 선 삼일빌딩은 일대 장안의 화제가 된다. 시골 촌로들이나 꼬마들이 삼일빌딩 앞에 서서 그 층 수를 세는 모습은 흔했고 박정희 대통령도 즐겨 삼일빌딩 스카이라운지를 찾아 자신의 통치 아래 시시각각 변해 가는 서울의 모습을 굽어봤다고 전한다. 그러나 정작 건축가 김중업은 삼일빌딩의 설계비조차 받지 못했다고 한다. 


31층의 높이를 최소한으로 줄여서 빔을 뚫고 닥트를 배열하여 날씬하게 보이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끝내는 설계비조차 받지 못하고, 또한 엄청난 세금에 밀려 성북동 집까지 잃게 되었다. 이로 하여 급기야는 프랑스로 떠나야만 했으니 그 비운의 씨를 뿌린 장본이 바로 삼일로 빌딩이었다. (김중업,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 중) 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꼬장꼬장한 건축가였던 그는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가 일어나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불도저 시장 김현옥 물러가라!”를 외쳤고 청계천 빈민들을 아무 대책 없이 경기도 광주 단지에 수용한 상황에서 광주대단지 폭동이 일어나자 역시 시장 양택식을 격하게 비판했다. 이 시절 정부에게 그렇게 댓거리를 한 사람 치고 무사한 사람은 드물었다. 그는 무지막지한 세금을 두드려 맞고 프랑스로 도망치듯 떠나야 했고 박정희 대통령이 죽을 때까지 돌아오지 못했다. 


한때 서울 근대화의 상징과도 같았던 삼일빌딩은 현재 외국 기업의 소유다. 경영난에 몰린 삼미그룹이 1985년 삼일빌딩을 산업은행에 매각했고 2001년 산업은행은 502억 원을 받고 홍콩에 주소를 둔 스몰록인베스트먼트컴퍼니리미티드란 회사에 다시 팔았던 것이다. 이미 그에 필적하는 고층 건물들이 여럿 들어차 버렸기에 한때의 랜드마크이자 무려 16년 동안이나 서울 최고층을 지키던 삼일빌딩의 위용은 이미 옛날 얘기지만 그 검고도 날렵한 건물의 소유자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약간 씁쓸해지는 일이다. 우리의 역사 하나가 넘어간 느낌이랄까.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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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휴...그걸 왜 홍콩의 회사에 넘겨가지고!!
    제발 다시 우리것의 소유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네요

    2014.10.25 18:40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