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는 산업단지 내 입주기업 근로자 등과 평택 이전 미군기지 내 한국인 근로자에 대한 주택특별공급, 주택 청약 시 입주금 납부 비율 개선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일부개정안을 11월 16일(월)부터 시행합니다.


이와 함께, 산업단지 근로자에 대한 특별공급 시 청약자격과 공급절차 등 세부사항을 정한 「산업단지 입주기업 종사자 등에 관한 주택특별공급 운영기준」을 제정(국토부고시), 이 날 함께 시행합니다.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산업단지 내 입주기업 근로자 등 주택 특별공급


산업단지 내 입주기업 근로자의 주거지원 등을 위해 입주기업, 연구기관 및 의료기관의 종사자 등*에게 1세대 1주택 기준으로 주택을 특별공급합니다.


    * 시·도지사가 인정하는 경우 입주기업에 대하여도 특별공급








② 평택 이전 미군기지 내 한국인 근로자 주택 특별공급


평택으로 이전 추진 중인 미군기지 내 한국인 근로자의 주거안정을 위해, 미군기지 근무 한국인 근로자 중 평택시장이 인정하는 자에게 1세대 1주택 기준으로 주택을 특별공급합니다.


③ 주택 청약 시 입주금 납부 비율 개선


현재 분양주택의 청약금은 계약금 20%, 중도금 60%이 상한이나(나머지 금액은 잔금(20%)) 초기 계약금 비중 축소로 계약금 마련 부담을 완화하고, 사업자도 소비자 주택구매력 향상에 따른 분양성 개선을 위해 계약금을 10%내로 받을 경우에는 중도금을 70%까지 받을 수 있도록 개선*합니다.







④ 지방이전 공공기관 특별공급 기한 연장


지방 혁신도시로 이전하는 공공기관에 대한 주택 특별공급 기한은 2015년. 그러나 그간의 일정 변경에 따라 2016~2018년 사이에도 이전이 계획되어 있어 형평성 차원에서 공급기한을 연장(‘15→’18)합니다.



「산업단지 입주기업 종사자 등에 관한 주택특별공급 운영기준」 제정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산단 내 입주하였거나 입주 예정인 기업*, 연구소, 병원, 교육기관의 직원에게 주택 소유에 관계없이 아파트 청약자격을 부여합니다. (동일 특별시·광역시·특별자치시·특별자치도 및 시·군 내 주택소유자는 제외)


입주기업 요건은 해당 산단에 입주(예정)하여 산업시설용지에 입주 가능한 업종을 영위하고, 상시 근로자가 10인 이상인 기업이어야 하고, 직원 뿐 아니라 입주기업에게도 특별공급 범위 내에서 청약자격을 부여하여 기숙사․관사 등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특별공급 물량은 민영주택 건설량의 50%(수도권 과밀억제권역은 30%) 이내에서 시장․군수․구청장이 수요조사 등을 거쳐서 설정합니다.


아파트가 건설되는 해당 산단 뿐 아니라, 같은 주택건설지역 내의 인근 산단에도 주택건설사업계획 승인권자가 근로자 지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특별공급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특별공급은 신규 개발되는 산단은 물론, 재생사업과 산단 계획 변경을 통해 주거용지를 마련 중인 기존 산단에도 모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3년간 산단 내에서 전국적으로 약 5만 3천호 가량의 민영아파트가 공급될 전망입니다.


    * 김포 시네폴리스일반산단, 구미 국가산단(확장단지) 등


국토교통부 종전에는 산단 개발이 주로 생산기능 위주로 이뤄졌으나, 최근에는 주거‧상업 등 자족기능을 갖추어 나가는 추세이기 때문에, 근로자의 주거 마련이 쉬워지면 안정적인 근무가 가능해지고 산단 경쟁력도 향상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번에 제·개정되는 법령 및 고시의 자세한 내용은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와 국토교통부 홈페이지*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 국토교통부 홈페이지(http://www.molit.go.kr) → 정보마당 → 법령정보





Posted by 국토교통부


미군이 반환하는 용산공원 예정지를 다녀와서_ 신용우(글, 사진)

 


지금은 2014년 

일제가 이 강토를 송두리째 짓밟은 한일강제병합의 전초전으로 외교권을 빼앗으려고, 1905년 을사늑약을 맺은 지 109년이 되는 해다. 인간의 108번뇌를 한해에 하나씩 속죄하였다 해도 이미 마친 그 다음해


민족자존을 외치며 홑바지 저고리 차림의 농민들이 죽창을 들고 왜놈들과 맞서 조국의 자주권을 수호하려던 1894년 갑오동학농민혁명이 60갑자를 두 바퀴 돌아 120주년이 되는 갑오년


선열들의 자존을 위한 함성이 지금도 생생하게 노도처럼 들려온 까닭이던가하나 더하여, 잃어버린 우리 영토를 되찾자고 항상 외치던 내 소리가 들렸던 것일까뜻하지 않은 기회에 가보고 싶던 곳을 자세히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잃어버린 우리 땅

기껏해야 3,000년 역사의 중국이 요동이라 부르다가 지금은 만주라고 부르며 깔고 앉은, 우리의 고조선 이래 고구려와 대진국이 지배하던 땅, 구려벌, 그 땅


고작 1,500년의 역사밖에 간직하지 못한 일본이라는 나라가 메이지유신으로 근대 국가의 꼴을 갖추면서 제일 먼저 탐을 내던 땅, 유구한 우리의 역사를 짓밟기 위한 전진기지로 삼기위해 강제로 자신들의 땅으로 병합하고 지금도 우리가 그 땅을 돌려 달라고 할까봐 독도를 가지고 헛소리를 일삼는 대마도, 그 땅


아무리 줄여 잡아도 5,000년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가 숨 쉬는 우리 땅, 구려벌과 대마도를 수복하자고 외치는 내 소리가 들렸던 것일까구려벌이나 대마도처럼 멀리 있는 것도, 커다란 덩어리도 아니지만 아주 가까운 곳에 두고도 우리 땅인 것을 잊을 뻔한 땅일제가 을사늑약으로 밀고 들어오던 날부터만 계산해도 무려 109년이라는 긴 세월을 잊고 살았던 땅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 복판에 있으면서도 우리 주권이 미치지 못해 내 땅이면서도 내 땅이라고 말하지 못하던 땅.

내 땅을 내 땅이라 하지 못하고 내가 그곳에 살지 못하니 이 어찌 내가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으랴?”


조선 광해군 때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의 홍길동이 부르짖을 법한 소리지만 실제로 서울 한 복판에 존재하고 있는 현실이다다행히 반환되어 다시 찾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해야 할 땅이다.

 

용산 미군기지가 반납되면 그 곳에 들어설 예정인 공원에 관한 설명과 그곳에 남아있는 사료적 가치가 있는 것들에 대해 듣기위해,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 공원정책과장의 초대를 받고 국토부 용산공원조성 추진기획단 사무실에서 국토부 직원 몇 분과 합류를 해서 용산 미군기지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경이었다.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가기 위해 밤잠을 설치던 그 심정보다 더 설렜다. 지금이야 레저 문화가 발달하다 보니 가족 단위의 여행도 많지만 50대 중반의 나에게는 어릴 적 레저의 추억이 별로 없다. 기껏해야 냇가에서 천렵을 하는 형들이나 아버지 뒤에 깡통을 들고 쫓아다니며 붕어와 송사리를 담은 것이 전부일 뿐이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레저에 대한 어릴 적 추억으로는 당연히 소풍이나 수학여행이 우선이다. 그 중에서도 초등하교 때의 소풍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소풍가기 전날이면 내일은 제발 비가 오지 않게 해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를 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중요한 소풍의 추억보다 더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며, 우리를 안내 하기로 한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의 담당 주무관의 기초 설명을 듣는 순간 조금은 섭섭했다.


기지 안에 남아 있는 우리나라 유적은 조선시대에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기 위해 명산이나 커다란 하천 등지에 단을 수축한 후 국가에서 제를 지내던 산천단(山川壇)악해독단(嶽海瀆壇)’ 유적이 전부이고 나머지는 미군이 지었거나 아니면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이 고작이라는 거다설마 그럴까 하는 마음에 이동창 주무관이 잘 못 알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마저 들었다그러나 그런 바람도 잠시였다.


부대에 들어가기 위해 주민등록증을 내고 일종의 수속을 하는데 ! 정말 이곳이 내가 사는 대한민국의 영토가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의문이 드는 순간 설령 유적이 있다 손 치더라도 제대로 보존되었을 까닭이 없다는 슬픔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 밀려오던 슬픔은 차량을 이용해서 기지로 들어서는 순간 현실과 직면했다. 눈앞에 펼쳐진 넓은 미군기지의 모습은 유적 같은 것에는 신경도 안 쓸 그런 모습이었다. 그건 무슨 특별한 것을 보아서가 아니다. 그저 온 몸에 다가오는 느낌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제발 이번에는 내 직감이 틀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다시 한 번 들었다.

 


 

<그림 1> 미국관사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미군들이 체육시설로 쓰는 야구장과 축구장이다. 네 개가 있다고 했던 것 같다그리고 다음으로 보이는 것이 미군 관사로 쓰이는 집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이었다우리나라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전원주택이라도 되는 양 집 한 채가 넓은 면적을 편안하게 차지하고 있었다아마도 사병들은 막사를 이용할 테니 장교 내지는 간부 숙소인 듯싶었다.


*그림 1 : 참고로 이후에 게재되는 사진들이 차 안에서 이동하면서 찍은 사진들이라 상태가 별로 선명하지 못한 것들도 있다는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막사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미군들이 이용하는 편의 시설과 유치원 등이 있는 곳과 국내 각 미군기지와 연계하는 버스들이 다니는 버스터미널을 만날 수 있었다.(그림 2, 3)

 


 <그림 2 기지내 편의시설을 위한 건물들>

 <그림 3 편의 시설>



이어서 우리가 지난 곳은 삼각지와 녹사평역을 잇는 도로위로 놓인 고가도로다. 그 고가 도로는 이곳이 용산 공원으로 재탄생을 하면 지하통로로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아울러 지금은 물이 말라 건천으로 남은 기지내의 만초천의 지류 역시 청계천처럼 물이 흐르는 곳으로 만들 계획이라고도 했다.


눈에 보이는 씁쓸한 풍경에 비하면 계획이라고는 하지만 아주 듣기 좋은 말이었다.


그 때 눈에 들어 온 이상한 풍경이 있었다. 분명히 막사가 있는데 텐트를 치고 숙소를 만들어 놓고 그곳에서 생활하는 군인들이 눈에 들어 온 것이다.(그림 4) 우리가 의아해 하자 그곳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는 일행 중 한 명이 설명을 해 줬다.


<그림 4 : 훈련을 위해 온 미군을 위한 기지내 캠프>

 

우리 식으로 생각을 하자면 저 사람들은 일종의 예비군이라고 보면 됩니다. 예비군 훈련을 받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예비역이나 혹은 군인들 중에서 본토로 귀환했던 사람 중에서 한 미 연합 훈련 등을 위해 다시 왔는데 막사에는 지금 이곳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이 생활하고 있으니까 저렇게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훈련 중의 일부입니다.”


전방에서 군대생활을 육군 병장으로 마치고 예비군 훈련까지 착실하게 받은 나로서는 금방 이해가 가는 말이었다. 아울러 주한 미군이 주둔하는 목적이 무엇이며 이유는 무엇이고, 주둔 비 부담 비율이 어떻고 등등을 떠나, 자유와 평화라는 이름 아래 머나먼 남의 나라에 와서 고생하는 그들에 대한 경의로운 마음이 진심으로 우러나왔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어떤 논리를 내 세웠던 간에, 저 훈련에 참여한 병사들 개개인의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일단은 지구 반대편에서 자유와 평화 수호라는 명분을 위해 이곳까지 올 수 있는 결정을 했다는 것이 대단한 용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는 우리나라가 전쟁 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보기 때문에, 미군이 주둔한 곳에서는 우리나라를 최전방으로 취급 한다고 알고 있기에 더더욱 그랬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 번은 해볼 수 있는 일일 것 같지만 실제 그런 결정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군대 생활을 해 본 사람들, 특히 전방에서 군대 생활을 해 본 사람들은 내 말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실제 상황이라는 말과 함께 비상이 걸리면, 겉으로는 태연하고 용맹한 척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이게 또 뭔 일이냐고 마음을 조이곤 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하기야 우리 군대 생활할 때는 연일 북에서 대남방송을 쏟아 부으며 긴장도 많이 고조되기도 했던 때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군대는 군대고 전방은 전방이라는 원칙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차가 기지의 북쪽으로 가자 이 근방이 미군이 이전하면서 미국 대사관 부지가 될 것이라는 설명을 들으면서 그렇게도 고대하던 악해독단유적이 있다는 곳에 도착했다.


순간 나는 으악!’하고 비명을 지를 뻔 했다아니 단순히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목이 터지라고 소리쳐 대상도 없는 이에게 욕을 퍼 붓고 싶었다.


제게 무슨 일인가?


악해독단유적이라고 알려진 곳 한 쪽 귀퉁이에는 주춧돌 격으로 쓰였던 돌로 보이는 것과 기둥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돌 두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것도 돌에 남아있는 파인 자국은 콘크리트로 막아버린 채로 남아있었다.(그림 5) 그리고 반대편 귀퉁이에는 그나마 돌 한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그림 6)


 <그림 5 악해독단 유적1>

그림 6 악해독단 유적2>


그게 전부였다그 바로 옆 불과 2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미군이 막사를 지어 놓았고, 그들이 쉼터로 사용하기 위해 가져다 놓은 야외용 테이블은 그나마 남은 유적의 가운데 놓여 두 유적의 존재감을 흐리게 하고 있었다. 더더욱 테이블 주위에 놓였던 의자가 유적 코앞에서 나뒹구는 그런 풍경을 보니 눈에는 절로 눈물이 맺혔다.


행여 일행 중 누가 볼 새라 부끄러워 일부러 돌을 드려다 보는 척하며 허리를 숙이고 있다가 일행이 저만큼 가고 나서야 허리를 펴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부랴부랴 뒤 따랐다.


이게 무슨 일인가여기가 거기란 말인가?

109년 만에 만나면서도 미처 108번뇌도 다스리지 못하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만났기에 그 모습에 이리도 가슴이 미어진다는 말인가도대체 얼마를 더 가서 어떤 모습으로 만나면 이 가슴이 이리도 시리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 얼마나 먼저 어떻게 만났다면 이 가슴이 이리 저리지 않아도 되었단 말인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지 못하는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이리도 쓰라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인가? 그게 아니라면 이 나라에서 태어난 것이 무슨 죄이기에 이리도 가슴이 아파야 한다는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고 눈물이 자꾸 흘러 밑에서 잠깐 멈춰달라고 하고 차 안에서 다시 한 번 유적을 찍어 보았다.(그림 7)  내 눈에 보이지 않던 유적이 사진 속에는 나오지 않을까?’


저 축대에 있는 돌중에 옛날부터 그 자리에 있던 돌이 사진 속에서 나와 줄 것을 간절히 바라면서 사진을 찍었다. 내가 잘못 보아서 남겨진 유적을 보지 못한 것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막사 오른쪽 한 귀퉁이에 이미 보았던 유적의 흔적뿐이다. 그것도 막사 가 바로 코앞에 지어지는 바람에 막사를 지을 때 쓰다 남은 돌덩어리처럼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그림 8)


<그림 7 : ‘악해독단’ 유적지 밑에서 찍은 모습>

 <그림 8 : ‘악해독단의 흔적이 오른쪽 귀퉁이에 보인다.>


그러나 곧바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나마 저게 희망이다

흔적이라도 남아 있다는 것이 희망이다.

게다가 안내를 해 주던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의 담당 주무관이 아주 희망적인 말을 해 주었다.


현재 미군기지 안에 있는 건물이 약 1,000여 동인데 그 중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의 기초위에 그대로 지은 건물이 상당수 된다는 것이다. 미군이 일제가 쓰던 건물의 기초는 그대로 사용해서 건물을 지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제나 미군이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용산의 이 땅을 점유하면서 발굴을 안 해서 그렇지 더 많은 유적들이 반드시 묻혀있고 그것을 발굴할 것이라는 예고편으로 들렸다. 그 말을 한 가닥 희망으로 잡아서인지 그제야 텅 빈 것 같던 가슴에 아주 적게나마 무언가 차 오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쓸쓸하게 남은 악해독단유적의 사진을 찍으며 자리를 떠나는 순간, 그나마 돌 네 개라도 유적이 남았을 때 반환 받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가 없었다. 그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셔터를 한 번 더 눌렀다. 저 돌들마저 사라진 뒤라면 어찌 했을까를 생각하니 하느님 정말 감사합니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아울러,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악해독단의 유적이 방치된 것을 보면서 분명히 공원을 개발하다 보면 더 많은 유적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었다. 일제가 짓밟고 미군이 들어와서도 관리를 안 했는데도 저렇게 유적이 남아 있다. 그들에게는 유적 같은 것은 관심 밖이었던 것이니, 지하에 매몰되거나 아니면 건물을 짓는데도 상관하지 않았기에 건물 어느 부분에 숨겨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음먹고 찾으면 더 많을 것이다. 그 때는 그 소중한 것들을 잘 보존하는 것은 물론 우리의 아픈 역사와 함께 반드시 병행해서 남기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국토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에서 공원을 설계하고 또 앞으로 시공할 분들이 잘 챙길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분들도 역사와 문화를 외면한 개발이라는 것이 가져다 줄 것은 종국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기에 오늘 이런 기회를 나에게 주신 분들이다. 역사가 없는 민족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분들이니 훌륭하게 마무리 지어 주실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런 희망이 있기에 세상을 아름답게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악해독단유적을 보고 난 후부터 본격적으로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코스를 그렇게 잡았으니까 그런 것이겠지만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들은 빨간 벽돌로 지어진 것들이 대부분 이었다.(그림 9) 그 건물들에는 처마 밑에 일제의 상징인 별 마크가 새겨져 있었는데 미 8군 마크로 바꾼 곳도 있지만 미처 바꾸는 것을 잊은 곳도 있었다.(그림 10) 어차피 그들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으리라.


 

 <그림 9  일본군이 지은 건물로 미군 사무동으로 쓰인다.>

<그림 10 처마 밑의 별>



그런데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띠는 건물이 있었다.(그림11)


<그림 11 : 일본군사령부로 쓰던 주한미군사령부>


지금은 주한미군 사령부로 쓰이는 곳이라 더 가까이 가서 볼 수가 없어서 안에야 빨간 벽돌로 지어진 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겉은 빨간색이 아니다. 그러나 건물의 모양이나 윤곽으로 볼 때 빨간 벽돌 건물에 색을 칠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저 건물이 바로 일제 역시 자신들의 사령부로 쓰던 건물이라고 한다. 갑자기 그 건물 앞에서 거총 자세를 취하고 오가는 이들에게 독한 눈빛을 쏘아대는 일제 헌병들과 그 앞을 오가고 있는 일제 고위 장교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부끄러운 역사도 역사라지만 그 앞을 오가고 있는 일본 제국주의 고위 장교들에게 달려가서 실컷 후려패 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소리치고 싶었다.


강탈해간 우리의 시간들을 내 놓아라.

네놈들에게 우리의 아픈 과거를 보상하라고 하기도 싫다. 네놈들이 우리를 무력으로 짓밟던 그 이전 시절로 돌려보내라고 우기지도 않는다. 다만 네놈들이 왜곡하기 위해 말살시킨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찾을 수 있는, 이 나라 백성들보다 네놈들의 역사와 문화가 앞서있는 민족이라고 날조하기 위한 연구 자료로 사용하려고 강탈해 가서 감추어둔 우리의 근거들만이라도 내 놓아라.


잃어버린 시간 속에 묻혀버린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내 손으로 찾아야겠다.” 


그러나 그렇게 뒤끓던 울분도 잠시였다일제강점기에 감옥으로 쓰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그곳에서 무언가 기대를 했는데, 아뿔싸!


그곳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감옥을 둘러쌌던 담벼락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감옥을 둘러쌌던 담벼락 안에는 미군 막사가 여러 동 지어져 있었다. 외벽을 드나드는 출입구에서도 막사가 보인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나마 남은 담장의 입구도 마음대로 막아버리고 다른 곳을 헐어서 입구로 사용하고 있었다.(그림 12) 감옥 담장 내부 역시 미군들이 붉은 벽돌위에 시멘트벽을 발라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그림 13). [(그림 12)(그림 13)이 같은 담장의 내, 외부를 찍은 것이다.]


  <그림 12 : 감옥건물 외부담장 외벽>

  <그림 13 : 감옥건물 외부담장 내벽>



그곳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에 감옥으로 쓰인 흔적의 건물은 담장을 제외하고는 겨우 두 개 뿐이었다. 하나는 그 당시 간수들이 사용하던 곳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굴뚝까지 돌출 되어 있는 빨간 벽돌 건물로 미군 막사와 어우러져 있었다.(그림 14) 나머지는 감옥으로 추정되는 건물로 그 역시 겨우 하나 남았는데 그나마 미군이 건물을 증축해서 창고로 쓰는 것 같았다.(그림 15) 우리에게는 몹시도 아픈 추억이건만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한 채 이쪽과 저쪽 끝에 겨우 하나씩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림 14 간수들이 쓰던 것으로 추정되는 빨간 벽돌건물>

 <그림 15 감옥으로 추정되는 건물>



비록 얼마 남지 않은 흔적이나마 흔적을 보는 순간, 이곳을 일제가 감옥으로 썼던 곳이라면 분명 자국의 병사들을 가두기 위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그들이 악성 사상범이나 정치범으로 몰던, 우리의 독립투사들과 수많은 애국선열들 중에서도, 그들이 비밀리에 문초를 해야 했던 분들이 군 사령부인 이곳에서 못된 고초를 당하셨을 것이다. 그런 흔적이 있어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반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조금이나마 바랐는데 이건 아예 흔적도 없어진 것 같았다. 훗날 공원을 조성하면서 무언가 나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했지만 아쉬워 그냥 발길을 떼기 싫은 찰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옛 감옥으로 보이는 (그림 15)의 건물 바로 옆에 얼핏 보아도 예사 물건은 아니고 무슨 형틀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그림 16)


 

<그림 16 :  감옥건물 바로 옆에 있던 형틀(?)>


저게 혹시 우리 선열들을 고문하던 기구라면?’ 하는 끔찍한 생각과 함께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눌렀다. 언젠가 그림에서인지 아니면 사진에서인지 저런 틀을 가지고 고문을 하던 것을 보았던 기억이 나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게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난 현상인지 아니면 정말 보았던 것인지를 밝힐 수 있는 아무런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저것이 없어지지만 않는다면 훗날 공원 조성을 하면서 반드시 밝혀지리라. 그러기 위해서라도 저런 것들을 보호하기 위해 무언가 조처를 취해야 할 것 같았다. 지금까지 보아온 결과라면 우리나라 사람 누군가가 보호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저런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을 것 같았다.


담장 안으로 들어갔다가 이렇다하게 찾은 것도 없이 빈손으로 담장을 되돌아 나오는 것 같은 그 순간에도 선열들의 고통을 느낄 수 있고, 그분들이 울부짖는 것 같은데 그를 뒷받침할 흔적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 여간 마음상하지 않았다.


분명 내 귀에는 그분들의 울부짖음이 환청처럼 들리는데 그 어느 곳에도 흔적이 없다.


하기야 지금 이 곳은 아직 독립을 못한 땅이다. 시멘트 블록과 철조망으로 감싸여 내나라 주권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니 무슨 독립을 논하랴?


어차피 내 나라 전체가 미완의 독립이었다.


카이로와 포츠담 선언에 의해 남들의 손에 의해 주어진 독립이다 보니 제대로 주권도 찾지 못했다. 우리나라를 독립시킨 선언의 주체가 된 소련과 중국은 자기들이 불법으로 깔고 앉아있는 우리 영토를 돌려 줄 생각도 안했다. 우리나라의 주권을 찾아주는 대신 중국은 만주라고 부르면서 요동 땅을, 소련은 연해주를 불법으로 깔고 앉아 우리 고구려의 숨결이 숨 쉬는 구려벌을 강탈해 갔다. 그뿐인가? 자기들이 우리에게 독립을 안겨주는 대신 영토를 강탈하면서 잃어버린 대마도는 찾아 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게다가 소련과 미국이 동시에 연합국이라는 이름으로 같이 반도 안으로 들어오면서 우리 영토의 일부분에 해당하던 한반도마저 남북으로 갈려 일 만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다스리던 영토의 대부분을 잃어버렸다. 겨우 남은 것이라고는 휴전선 이남의 손바닥만 한 땅이 전부이거늘, 그 와중에 이렇게 내 땅임을 말할 수 없는 곳이 있었으니 순국선열들의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나는 내 귀에 들리는 그 울부짖음이 환청이 아니라 나를 질책하는 선조들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면서 아픈 마음을 추스를 길이 없었다.

 

이렇게 돌아보고 나면 울적해 질 것이기에, 그 울적한 마음을 달래 주려고 미리 계획한 것은 아닐 진대, 마치 가라앉은 기분을 달래주려는 것처럼 기지 내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는 둔치산에 올랐다. 이곳에서는 용산구청 신청사가 바로 코앞이다.(그림 17)


<그림 17 : 기지에서 본 용산구청 신청사>

 

멀리 이미 반환된 유엔사 부지도 보인다. 저 땅을 팔아서 이전비용 15조원을 댄다는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서 쓴 웃음이 나왔지만 그렇게라도 108번뇌를 다 하도록 디디지 못했던 우리 땅을 다시 디딜 수 있다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도 해 봤다.

 

돌아오는 길목에 미군들이 타 기지나 본국에서 왔다가 묵는 곳이라는 Dragon Hill Hotel(그림 18)의 이름이 용산(龍山)을 영어로 글자 그대로 번역해서 사용했다는 웃어야 하는지 아니면 아무 의미 없는 일로 치부해야 하는지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 설명을 들으면서 출구로 나섰다.


 <그림 18 : Dragon Hill Hotel>



2014227.

두어 시간으로 짧지만, 아마도 내 생에 절대 잊지 못할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서 선 곳은 바로 처음 들어가기 위해 수속을 하던 곳이다. 마치 외국에 갔을 때 입국 수속을 하고 출국 수속을 하는 기분이다. 주민등록증을 다시 받아 들고 선 곳은 두어 시간 전에 내가 섰던 그곳이다.  분명 여기가 거기임에 틀림이 없건만!


왜 이리도 오래고 긴 시간 후에 선 아주 낯선 곳으로 여겨진다는 말인가왜 이리도 아주 먼 곳을 다녀와서 오랜 만에 서 보는 곳처럼 여겨진다는 말인가

 

여기가 정말 거기라는 말인가?

멍한 기분을 가눌 수 없어 담배 한 대를 더 물고 나서 정신을 가다듬은 후에, 안내를 해 주신 분을 비롯한 모든 일행에게 수고하셨다는 말을 남기고 옥수역으로 향했다그분들이 했던 말을 그대로 믿고 싶었다.


아름다우면서도 시간과 공간이 어우러지는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공원을 만들겠다는 그 말대로 꼭 이뤄지기를 간절히 기도드렸다


오늘 설명을 하면서 앞으로 어떤 테마의 공원을 만들 것이라고 하던 그 말에서 나는 희망을 읽었었다. 그 희망이 나 하나의 희망이 아니라 이 땅에서 태어나고 이 땅에서 죽어가는 우리 모두의 희망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민족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희망 있는 미래를 살 수 있기에, 비록 108번뇌를 넘기고도 아직은 남이 점유하고 있는 곳이지만, 공원으로 다시 태어날 때는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면서 다가오는 우리의 후손들에게 찬란했던 우리의 숨결을 전해주는 그런 모습으로 태어나기를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드렸다.

 

곧 열차가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과 함께 용산의 밤은 내 곁에서 내일을 기약하고 있었다.

 

60갑자를 두 바퀴 돌아온 120년 전, 갑오년의 그 함성이 내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열차가 내 앞에 멈춰 서며 문이 열렸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용산' 지명을 들으면 무슨생각이 드시나요? 군사기지? 남산? 아니면...이태원프리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오랜 기간 동안 군사기지로 인식되어 온 용산의 지난 백년의 기억과 흔적을 살펴보고 미래를 생각하는 사진전,「지난 세기의 기억과 흔적을 넘어.. 용산공원 展」을 마련했습니다. 

 


<용산공원전 공식포스터>

 

 

용산공원전은 11월 22일부터 12월 20일까지 한달 간 서울시청 시민청 지하1층에서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회는 본격적인 용산공원 조성사업에 앞서 지난 백년간 용산의 역사를 재조명 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소망하는 공원으로서의 무한한 잠재력을 발굴하여 널리 알리기 위한 국내 최초의 기획전이라고 합니다.

 

서울의 관문이자 한강의 지리적인 이점때문에 개항과 더불어 오늘날까지 군사기지로 인식되어 온 용산이 공원으로 변신을 하게 된 것은 2003년 한미 양국 간 군사기지의 이전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 용산공원화 계획이 추진되면서부터 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후 2006년 중앙정부에서는 용산미군기지 공원화를 선포하였고, 미군기지 이전이 완료되는 2017년부터 단계적으로 공원조성 공사를 시작해 2027년 사업을 완료한다는 계획을 세웠다고합니다.

 


 <국토교통부 용산공원기획단 홈페이지 - 국토교통부에서는 국민중심의 녹색공원을 조성하기위해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전시내용은 용산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는 연표, 용산의 공간변화를 읽을 수 있는 고지도 및 근현대지도, 일제강점기 군사기지의 모습을 전해주는 사진엽서와 조선군사령부 보도부에서 제작한 홍보영화, 미래 용산공원이자 현재 미군기지인 용산공원부지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낸 파노라마 사진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용산의 과거


 <용산의 과거 - ①군사령관 관저 전경(1910년대), ②용산 보병 병영 전경(1920년대),

③용산 삼각지전경(1940년대), ④한강철교와 용산 일대의 전경(1930년대) : (출처 : 서울시청)>

 

사진은 서울역사박물관과 용산구청,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사단법인민족문제연구소, 제주대학교사범대학 지리교육과 등에서 제공했으며, 현재 공원부지가 가지고 있는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을 전문작가가 직접 촬영했다고 합니다.  


용산공원전 관계자인 오해영 서울시 푸른도시국장은 “서울시의 미래 얼굴을 바꿀 용산공원이 서울시민의 희망을 담아 조성되도록 앞으로도 국토교통부와 함께 시민의 의견을 용산공원에 담아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용산의 현재 - ①옛 사진에서도 확인되는 수령 200년 이상의 느티나무 군락지

②모두 복개되어 사라졌지만 아직도 용산공원에 흔적이 남아있는 만초천과 홍예교 : (출처 : 서울시청 - ⓒ 임한솔)>

 


이번 전시는 미육군 용산지역 사령부의 협조로 용산공원 부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용산공원 부지 내·외부 경관을 담아 공개하는 첫 기획전으로, 용산공원 부지가 가지고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살펴봄으로서 공원으로서의 가치를 재발견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전시물을 통해 용산공원이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 근현대사의 한 축이 투영된 역사적 장소인 동시에 세계적인 도시공원으로서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Posted by 국토교통부


용산공원, 대한민국 녹색 허파로의 첫 걸음을 내딛다
용산공원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 확정

지금의 미군 용산기지는 2016년에 반환 예정이죠. 이 용산기지가 용산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남산과 한강이 용산공원을 통해 녹지와 수경 축으로 연결되고, 캠프킴 등 산재부지는 상업․업무․문화․주거 등의 복합용도로 개발될 예정인데요. 국토해양부는 9월 29일 제7차 용산공원조성추진위원회 심의를 거쳐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하는 ‘용산공원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을 10월 11일 확정․고시했어요.



용산공원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이 마련되기까지

용산공원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은 지난 5월 12일 지정된 용산공원정비구역을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조성・관리하기 위한 중장기 기본 정책방향을 담고 있어요. 여기서 용산공원정비구역이란, 공원조성지구(약 243만㎡), 복합시설조성지구(약 18만㎡), 공원주변지역(약 895만㎡)에 해당되지요.


                                                                      ▲ 용산공원 정비구역 ▲

이번 종합기본계획은 한국조경학회,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등 5개 전문기관이 2009년 10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국제심포지엄,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안을 마련하였어요. 2011년 2월 공청회와 2월부터 9월까지 관계기관 협의 등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확정되었고요.



용산공원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 주요 내용

                                                                  ▲ 용산공원 종합구상도 ▲

하나. 용산공원 조성 기본구상

용산공원 조성의 기본구상으로는 생태를 기본으로 하여 문화․역사 등 다양한 가치를 수용하는 ‘자연과 문화, 역사와 미래가 어우러지는 열린 국가공원’으로 비전이 설정되었죠. 이에 따라 부지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승화하고, 생태적 가치를 복원하며 녹색 국토환경과 미래 도시문화를 선도하는 명품공원으로 조성한다는 목표를 제시하였고요. 이러한 비전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공원의 구조, 공원의 성격, 공원의 조성・운영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10가지 추진전략을 설정하였답니다.


                                                   ▲ 용산공원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 10대 추진전략 ▲

공원조성 종합구상안에서는 먼저 남산~공원~한강의 단절된 남북 녹지축과 수체계를 복원하고, 공원의 녹지가 주변 도시지역으로 확산되도록 유도했어요. 경관은 숲․들․호․내․습지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 경관요소를 도입했고요. 공간구조와 시설은 공원의 지향가치 및 주변지역 여건 등을 감안해서, 생태축공원 등 6개의 단위공원으로 구분하되 유기적으로 연계하도록 했고요. 공원의 생태성․환경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건축물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했죠. 또 접근교통체계는 버스․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통한 이용 편의성을 극대화하고, 자전거 등 녹색교통 중심의 내부 순환동선체계를 구축하려 해요. 그리고 운영 프로그램을 위해 공원의 이념적 가치를 구현하고 자발적 참여를 통해 창작․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개발할 예정이랍니다. 민족․역사교육, 생태․문화체험, 도시농업, 자연관찰, 국제정원박람회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죠.


                                                 ▲ 광역 녹지축(북한산~남산~한강)의 중심, 용산공원 ▲

둘. 복합시설조성지구의 개발 방향

캠프킴, 유엔사, 수송부 등 복합시설조성지구는 2007년 11월 국방부와 LH간 기부 대 양여 협약에 다른 용산기지 이전재원 3.4조원을 마련하고, 신분당선 등 주변 개발과 연계한 지역거점 기능을 하도록 복합용도로 개발할 계획이에요. 캠프킴(자연녹지)․유엔사(3종주거)․수송부(2종주거)는 기부 대 양여 협약과 같이 모두 용적률 800% 이하 일반상업지역으로 변경할 계획이고요.
이 가운데 캠프킴은 용산국제업무지구와 구도심을 연결하는 지역거점으로 개발하고, 유엔사와 수송부는 신분당선 동빙고역 역세권 기능과 한남뉴타운의 중심 기능을 도모하며 이태원특구와 연계된 국제교류 거점으로 육성하려 해요.

셋. 공원주변지역 관리 방향

공원 주변지역은 남산그린웨이(남산~공원), 용산링크(국제업무지구~공원) 등 용산공원과 조화되는 개발을 유도할 것인데요. 인접지역 내 대규모 개발계획 수립 시 공원친화적인 용도의 개발을 지향하고, 난개발 방지를 위해 향후 서울시에서 도시관리계획 수립 때 용산공원과 조화되도록 긴밀히 협조할 계획이랍니다.

넷. 실행 계획

용산공원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은 환경치유, 조성재원 등 여건을 감안하여 장기적․단계적으로 조성․개방할 계획인데요. 1단계(2017년~2019년)로 식생이 양호한 부분의 원형 개방과 자연생태 회복을 유도하고, 2단계(2020년~2023년)로 공원 내 녹지․수체계 복원 등 본격 조성을 이룰 것이에요. 3단계(2024년~2027년)에서는 남산~공원~한강의 녹지축 연결 등 주변 개발을 마무리할 것이고요.

▲ 식생(좌측)과 건축(우측)

총 사업비는 기본설계를 통해 산출할 계획인데 약 1.2조원으로 추정되고요, 국가와 서울시 간 합리적인 분담비율은 향후 관계기관의 협의를 거쳐 공원 조성계획 수립 시 결정할 계획이랍니다. 공원 조성비용은 국가가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용산특별법 제42조에 따라 서울시도 일부 분담할 것이고요.




공원 설계 공모를 통한 공원 조성

국토해양부는 ‘용산공원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이 확정됨에 따라, 2016년 말 예정된 용산미군기지 이전 시기에 맞추어 2017년 공원 조성공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설계공모를 통한 기본설계(2011년 10월~2014년), 공원조성계획 수립(2014년), 단계별 실시계획(2016년부터) 등 후속 절차들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갈 계획이에요. 온 가족이 마음 편히 휴식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곳, 용산공원의 탄생이 벌써부터 손꼽아 기다려지네요!

 

국토해양부 '국토지킴이' 블로그는 댓글 및 트랙백 등을 통한 많은 분들의 참여를 환영합니다. 건전한 소통을 위해 국토지킴이 공지사항 내 '국토지킴이' 블로그 댓글 정책 안내참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여러분, 여의도 면적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 계시나요? 여의도 면적 크기는 2.4㎢ 인데요. 앞으로 몇년 후면 여의도 면적크기의 국가공원이 조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해요! 바로 지금의 용산기지 터에서 말이죠. 120년의 역사성을 가진 용산기지가 몇년 후 반환되면 그 터에 국가공원이 조성된다고 하는데요. 국토해양부에서 민족성과 역사성, 문화성을 가진 국가 공원으로 만들기 위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니, 얼마나 멋진 공원이 탄생할지 정말 기대가 됩니다. (미국의 센트럴 파크만큼이나 멋진 공원이 될까요? ^^) 어떻게 추진되고있고, 어떤 사항들이 공원조성에 포함되어 있는지 재미있는 웹툰으로 함께 살펴볼까요? ^^ 




어떠셨나요? 곧 국가공원에 대한 내용들이 확정.고시되면, 그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가차원의 아주 큰 공원이 있다는 것은 정말 자랑스럽고 뿌듯한 일입니다. 너무 기대가 되는데요. 어서 빨리 국가공원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Posted by 국토교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