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허브, 미래의 중심인 새만금



선선한 바람이 불고 들판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가을입니다. 오늘은 가을철 가족들과 나들이하기 좋은 색다른 여행지를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바로 전라북도 군산에서부터 부안까지 걸쳐있는 새만금방조제인데요. 단순한 방조제의 역할뿐만 아니라 관광지로도 거듭나고 있는 곳입니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새만금방조제


새만금은 길이 33.9km로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기네스북에 올랐습니다. 새만금은 서울 2/3 면적에 해당한다고 하는데요. 특히 전라북도 군산, 김제, 부안을 연결하고 있으며, 서해와 맞닿아있어 중국과의 무역도 원활하게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새만금을 대해 무역도시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점치고 있습니다.

 



새만금 투자전시관에 있는 새만금 미디어테이블



새만금은 새만금방조제를 1991년 착공하여 2010년 준공된 이후 주거, 산업, 상업/업무, 관광, 농업, 기반시설, 환경/생태용지 등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원활한 교통을 위해 새만금신항만, 남북도로, 동서도로, 새만금-전주고속도로, 새만금-대야철도, 군산공항 등 육해공의 모든 교통시설을 건설 중입니다. 아직 개발 중인 새만금, 하지만 지금도 볼거리가 정말 많은데요. 새만금에는 어떤 볼거리가 있을까요?

 

 


섬과 섬을 이어주는 새만금방조제


33.9km의 새만금방조제를 따라가는 도로 및 자전거도로



군산 비응도에서 시작되는 새만금방조제에는 주말이나 휴가철에 많은 교통량이 몰리기 때문에 곳곳에 쉼터가 있습니다. 방조제를 따라 바다를 바라보는 풍경은 아주 좋은데요. 이렇게 군산 비응도에서 출발하다 보면 야미도가 나옵니다.



새만금방조제로 육지와 이어진 야미도

 


야미도는 방조제 건설 전까지 파도가 거세 육지로 나갈 교통이 없어 제한이 많았던 곳입니다. 방조제가 건설되면서 육상 교통으로 수산물을 수송할 수 있어 큰 혜택을 받은 지역이기도 합니다. 야미도에는 새만금 미래관과 새만금 오토캠핑장이 있습니다.

 


야미도에 있는 새만금 오토캠핑장



새만금 오토캠핑장에는 2017년부터 매년 새만금 노마드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습니다. 유목민을 뜻하는 노마드를 붙여 캠핑 축제를 열고 있는데 올해에는 815일부터 18일까지 4일간 진행됐습니다.



고군산군도로 연결된 도로와 새만금방조제가 만나는 신시도

 


야미도에서 좀 더 남쪽으로 가면 고군산군도가 있는 신시도가 나옵니다. 방조제로 연결되면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곳이기도 한데요. 그래서 교통량이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많은 관광객이 휴식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새만금휴게소가 있으며, 새만금방조제 준공 기념탑이 있습니다.



신시전망대에 있는 새만금방조제 준공 기념탑



조금만 더 밑으로 가면 신시배수갑문이 있습니다. 배수갑문은 방조제를 건설하여 해수와 내수가 차단된 지역에서 바다 쪽으로 배수를 하기 위해 만든 시설물입니다. 새만금방조제에는 신시배수갑문 외에도 가력도에 있는 가력배수갑문 등 총 2개의 배수갑문이 있습니다.

 

새만금방조제에 설치된 배수갑문 2곳 중 1곳인 신시배수갑문



신시배수갑문을 통과하면 전라북도 김제시로 행정구역이 바뀌면서 한국농어촌공사 새만금33센터가 보입니다. 새만금33센터라고 명명한 것은 새만금 방조제의 길이 33km, 전망대의 높이 33m를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신시배수갑문의 관리를 맡고 있습니다.



한국농어촌공사 새만금33센터와 전망대의 모습



새만금33센터에서는 전망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는데요. 제가 방문한 날은 날씨가 정말 화창해서 새만금의 모든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새만금33센터 전망대에서 바라본 새만금의 모습



새만금33센터 반대쪽에는 새만금 무궁화공원이 있습니다. 새만금방조제는 이런 공원이 많이 조성되어 있는데요. 자전거도로가 활성화되어 자가용을 이용하는 관광객뿐만 아니라 자전거를 이용한 라이딩도 많아 이런 휴게공간이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새만금33센터 반대편에 있는 새만금 무궁화공원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면 새만금신항만과 새만금 동서도로가 만나는 곳, 그리고 새만금-대야철도가 건설 예정인 부지가 있습니다. 항만과 철도가 생기고 도로가 뚫리면서 산업이 활성화되고 근처에 들어올 국제협력용지가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새만금신항만과 새만금 동서도로 연결부지



계속 남쪽으로 가다 보면 가력배수갑문이 나오면서 전라북도 부안군으로 행정구역이 또다시 바뀝니다. 그러면서 가력도에 진입하게 되는데요. 가력도에는 멀리서도 보이는 큰 규모의 풍력발전기 2기가 있습니다. 201412월에 준공되어 1.5MW 규모로 1,500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가력도 풍력발전소의 모습



가력도에도 휴식공간이 있는데요. 가력도 생태공원, 새만금 공원 등 쉴 수 있는 공간이 널찍하게 마련되어 있으며, 농구장이나 배드민턴장 등 간단하게 체육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조성되어 있습니다.



가력도에 있는 새만금 공원



가력도는 원래 2개의 섬으로 북가력도와 남가력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력배수갑문을 설치하면서 기존의 북가력도가 수면 아래로 잠기게 되어 지금은 남가력도만 남았습니다. 가력도에도 항구가 발달하여 많은 어선이 드나들고 있습니다.

 


가력도에 있는 가력도항

 


여기서 남쪽으로 더 가면 부안군 육지와 만나면서 새만금방조제가 끝납니다. 끝자락에는 새만금 홍보관을 운영 중이기도 합니다.

 


새만금 끝에 있는 새만금 홍보관




해수욕부터 레저까지!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고군산군도


새만금은 아직 개발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찾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최근 많은 방문객들이 몰리는 곳이 있는데요. 아까 설명한 고군산군도입니다. 고군산대교를 비롯한 여러 다리가 고군산군도의 주요 섬을 육상으로 이어주고 있습니다.

 


고군산군도 주요 섬을 이어주는 고군산대교

 


군산시에서도 고군산군도의 관광지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 중인데요. 2층 버스가 군산 비응항에서 야미도, 신시도,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까지 운행 중이었습니다. 2층 버스는 단순히 관광지로 수송하는 개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자체에서 관광 요소 중 하나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군산 비응항에서 신시도까지 왕복 운행하는 군산 992층 시내버스

 


고군산군도에서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선유도입니다. 선유도 자체가 관광자원일 만큼 다양한 즐길 거리가 많은데요. 서해의 특징인 갯벌이 선유도에도 있어서 가족 단위 관광객이 많이 찾고 있었습니다.



선유도 갯벌의 모습



선유도 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모습

 


뿐만 아니라 젊은층이나 커플들이 다양한 레저활동을 즐길 수 있기도 한데요. 패러글라이딩, 수상레저, 짚라인 등입니다.


 

선유도 레저시설인 짚라인을 이용하는 관광객

 


선유도 수상레저를 즐기고 있는 관광객



선유도의 모습을 위에서 볼 수 있는 패러글라이딩

 


고군산군도는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지만 아직 교통이 불편합니다. 섬이다 보니 도로가 많지는 않은데요. 대신 환경까지 생각한 작은 소형 동력차가 많이 보였습니다. 동력차뿐만 아니라 자전거도 대여하여 많은 관광객이 이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고군산군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형 동력차




새만금이 궁금하다면? 새만금 투자전시관


이렇게 상업이나 주거, 농업, 관광 및 레저 등이 다양한 시설들이 모여있는 새만금의 투자유치를 위해 서울역 인근(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372 KDB생명타워 21)에는 새만금 투자전시관이 있습니다. 20144월부터 종로에 개관했었는데요. 올해 봄에 새롭게 서울역 앞으로 이전했습니다.



서울역 앞에 있는 새만금 투자전시관의 투자상담실과 접견실



새만금 투자전시관은 새만금을 직접 가보지 않더라도 새만금에 대한 정보나 투자에 대한 상담을 받을 수 있는데요. 일반인도 견학의 목적으로 방문이 가능합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평일에만 방문이 가능하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개방되어 있습니다. 다만, 방문 전 이틀 전에 예약은 필수입니다.

 



새만금 투자전시관 이용안내

- 이용시간 : ~금 평일 오전 9~ 오후 6

- 문의전화 : 02-6388-7103



위치 



 


올 가을 가족, 연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색다른 여행지로 새만금방조제와 주변의 여러 섬들을 추천해드렸는데요. 이번 가을은 선선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새만금 여행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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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동자동 45 KDB생명타워 21층 | 새만금개발청 새만금투자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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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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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땅에 대한 집착의 역사는 그 유서와 내력이 웅숭깊고 방대하다. 더 넓은 땅을 위하여 수없는 전쟁이 일어났고 “단 한 뼘의 땅”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런데 때로 그 땅을 넓히기 위한 전쟁의 상대는 ‘자연’이기도 했다. 바다를 메우고 호수를 흙으로 덮어 땅을 만들고 싶었던 ‘간척’의 역사 또한 유구한 것이다.


삼국시대에도 그 흔적이 일부 보이기는 하지만 간척 사업이 공식적으로, 그리고 국가적 사업으로 행해진 것은 고려 시대였다. 몽골의 파도와 같은 공세에 밀려 강화도로 피난 갔던 고려 조정은 식량 부족에 직면했다. 남부 곡창 지대에서 세미(稅米)를 실어 나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원래 강화도 인구에다가 육지로부터 피난 온 사람들까지 더해진 인구를 감당하기에는 강화도 땅은 너무 좁았다. 고려 고종 25년이었던 1248년 강화도 연안을 간척하여 농지를 확보하라는 어명이 떨어진다. 이 간척 사업은 이후로도 몇 차례 반복되어 강화도의 지도를 바꾼다. 

 



▲강화도(출처: 구글맵 http://maps.google.co.kr)



오늘날 강화도의 지도를 보면 고구마처럼 뭉툭한 모양이다. 하지만 13세기만 해도 강화도는 우리가 서해안의 지형을 두고 지리 시간에 배운 바, ‘리아스식 해안’의 전형이었다. 들고 나고가 끝이 없는 반도와 만의 연속, 그리고 그 일대에 점점이 박힌 섬들까지. 오늘날의 강화도는 700년에 걸친 부단한 간척의 결과였다. 


그 시대의 간척 사업은 그야말로 인간의 살덩이 같은 노고와 하염없는 시간의 투입의 산물이었다. 갯벌에 통나무를 박아 토사가 쌓여 제방 구실을 할 때까지 몇 년을 기다렸다가 배후지를 건조하는 방식으로 행해지는 간척이었으니 그야말로 ‘우공이산’(愚公移山 - 우공이 산을 옮김)에 필적하는 자연과의 싸움이자 공존이었다. 한 뼘의 갯벌이 새로 생겨야 비로소 한 뼘의 농토가 생기는 이치였기에 바다의 갯벌과 인간의 땅은 나란히 넓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일본 제국주의가 이 땅을 강점하고 나아가 대륙 침략의 야욕을 들이밀면서 한국에서의 간척 사업은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바다보다 낮은 땅 네덜란드로부터 간척 기술을 배워 온 일본은 조선의 바다를 메우고 흙과 바위를 쏟아 붓는 대규모 간척 사업을 벌였다. 그렇게 넓힌 농토에서 나는 쌀을 군량미로 쓰겠다는 심산이었고 넓어진 항구를 통해 대륙 침략의 길을 닦겠노라는 의도였다. 


1917~38년에 걸쳐 일제는 총 12만 3,458m, 농지 1정보당 3.02m에 해당하는 방조제를 축조했으며, 오늘날 ‘지평선이 아스라하게 보이는 유일한 곳’ 호남평야의 상당 부분은 이 과정을 통해 이뤄진 간척농지이다. 간척은 갯벌이 있고 리아스식 해안이 있는 서해안에서 활발했는데 전남 강진에서도 그 실상은 극명하게 드러난다. 전남 강진읍에서 칠량쪽으로 나가다 보면 군동 하신마을과 ‘합섬’이라는 지명이 나타난다. 이 ‘합섬’은 원래 바다 한 가운데 솟아 올라 있던 섬이었다. 이 섬을 둘러쌌던 바다와 갯벌은 간척 사업으로 사라졌고 오늘날은 그 이름으로만 왕년에 자신이 섬이었음을 알리고 있을 뿐, 논바닥 가운데 솟아오른 야산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간척 사업 이전의 계화도 (출처: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



생선 비린내를 찾는 고양이처럼 간척이 가능한 지역을 찾던 일본인들이 전쟁 말엽 주목했던 곳이 전북 부안이었다. 부안에서 4킬로미터 떨어진 바다에 떠 있던 계화도를 잇는 방조제를 착공한 것이 1944년이었다. 일제는 섬진강 상류에 댐을 건설하여 그 물로 간척지의 농업용수를 충당하고 낙차를 이용한 수력 발전까지 가동할 야심 찬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일본이 곧 패망하면서 계획은 한낱 꿈으로 돌아가고 만다. 일본인들이 착공했던 댐은 20년 동안 산골짝의 흉물로 남아 있었다. 이 댐을 다시 짓고 간척지를 이용, 국토를 넓히겠다는 야심에 다시금 불을 지핀 것은 박정희 정권 당시의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때였다. 


“정부는 61년 칠보발전소와 섬진강댐 건설 착수와 함께 계화도 간척사업을 한데 묶어 동진강지역 종합개발 수리간척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 사업에 대한 건교부와 농림부 관련 공무원들의 대부분은 사업성공 여부에 회의를 가져 시행에 고개를 저었다. (중략) 특히 그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간척사업의 선진국 네덜란드의 용역사도 타당성 조사보고서에 공사불가능 판정을 내렸을 정도였다.” (새전북신문 2003년 11월 11일) 


그러나 댐 건설은 강행됐다. “하면 된다.”는 신념이 발휘된 것은 좋았으나 졸지에 차오르는 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섬진강변 주민들의 슬픔은 지극히 안된 일이었다. 집들은 제대로 철거되지도 않은 채 물에 잠겼고 주민들은 인근 부대 막사에서 살거나 움막을 지어야 했고 학생들은 학교를 잃고 나무 그늘에서 수업을 해야 했다. 댐과 간척지에 투입된 사람들은 국토건설단원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는데 그들은 전국에서 잡혀온 부랑자와 깡패들이었다. 아무 법적 근거 없이 부랑자와 깡패라는 이유로 강제로 삽을 들어야 했고 감독들이 총을 차고 공사를 지휘하는 상황에서 이의를 제기할 용감한 시골 사람들은 드물었다. 


국토건설단원을 비롯한 근로자들의 피해도 컸다. 특히 바다에 둑을 쌓는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 작업이었던 간척지 공사는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난공사였다. 1차 방조제 준공 직전 급류에 상당 부분이 쓸려 나간 순간은 실로 아득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돌망태기에 돌을 담아 광산에서 쓰는 트롤리에 담아서는 계곡물처럼 빠르게 흐르는 바닷물에 쏟아붓기를 멈추지 않은 끝에 1966년 1차 방조제가 완성됐다. 그 공사에 참여한 노동자 김원용 할아버지의 증언은 자못 긍지에 차 있다. 


“불가능하다는 일을 해낸 거야. 해양청과 수시로 무전으로 통화를 하면서 바닷물이 들어오면 철수하고 나가면 다시 흙을 쏟아 붓고 하기를 반복하는데, 바닷물이 한번 들어왔다 나가면 쏟아 부은 흙의 3분지 1은 쓸려 나가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지만 그래도 계속하니까 메워지더라구. 지금도 지나다 보면 마음이 뿌듯해.” (오마이뉴스 2009.12.16) 



 

▲섬을 잇는 계화도 간척지(출처: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



그렇게 만들어진 땅이 여의도의 10배가 된다는 계화도 간척지였다. 그리고 이 넓지만 황량한 땅에 처음 이주한 사람들은 바로 섬진강댐으로 수몰된 2700여 세대의 마을 사람들이었다. 방조제는 완성됐고 평야는 눈 앞에 드러났지만 그건 소금 평야였다. 심심산골에서 태어나 평생 바다를 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었던 사람들은 그 소금 평야를 파헤치며 방조제의 영향으로 바뀐 환경 속에서 사라져 가는 조개와 백합을 캐며 생존을 이어갔다. 그들은 고향 섬진강 상류에서 끌어온 물로 소금기를 없애며 한때 바다였던 땅을 옥토로 바꾸어 나갔다. 어떤 이는 절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고 이주권을 푼돈에 팔아 넘기고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도 많았지만 계화도는 끝내 육지가 되어 전국적으로 유명한 쌀 ‘계화미’의 산지가 된다. 


1978년 세워진 계화도 간척 준공 기념탑에는 노산 이은상이 쓴 헌사가 새겨져 있다. “‘서해의 조수가 밀려들면 파도소리만 요란하고 조수가 물러나면 아낙네들 조개 줍던 여기가 오늘은 씨 뿌리고 김 매고 벼 향기 무르익은 양지옥토로 바뀌어질 줄 어느 뉘가 알았으랴. 이것은 박 정희 대통령의 특별분부를 받들어 우리 지식, 우리 기술 강인한 의지와 끈기로 불모지 갯벌을 이와 같이 개척해 놓은 것이다. 이 어찌 민족의 자랑스런 업적이 아니겠는가.”


이 헌사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 기본적으로 갯벌은 불모지가 아니었다. 갯벌은 못 쓰는 뻘밭이 아니라 바다의 숨구멍이요 온갖 해양자원의 요람이요 원래 계화도에 살던 사람의 삶의 터전이었다. 그리고 바다를 육지로 바꿔 놓은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분부’ 때문이라기보다는 불가능에 가까운 공사에 몸을 던져야 했던 수많은 노동자들, 산골짝에서 실려와 소금밭을 일궈야 했던 농민들, 갯벌을 잃고 바다에만 삶을 매달아야 했던 계화도 원주민들의 피와 땀과 눈물 때문이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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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공 후 2년, 대한민국의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한 새만금 방조제. 얼마 전에는 새만금 신항만의 기공식이 열린 그곳에 국토해양 대학생기자단이 다녀와 보았습니다.



새만금 방조제 


33.9km로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 (기네스북 등재, 2010.8.2)

총 공사기간: 19년 (1991.11~ 2010.4)

총 소요재원: 2조 9,490억원

동원된 인원: 연 247만 3,747명

동원된 장비: 연 93만 5,667대

방조제에 투입된 토석량: 1억 2천 3백만㎡ (경부고속도로 418km를 13m높이로 쌓을 수 있는 양)



 간단히 말하자면 새만금 방조제는 서해에서 군산과 부안을 연결하는 방조제입니다. 군산 비응항에서 출발하여 신시도, 가력도를 거치면 부안에 닿을 수 있습니다. 군산에서 출발하여 부안에 도착하기까지 새만금 방조제의 모든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군산 비응항에서는 한적한 어촌의 분위기와 바다 내음을 물씬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랑거리인 만큼 곳곳에 관광안내소가 위치해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있습니다.



<군산 비응항에 위치해 있는 새만금 관광 안내소 (좌), 군산 스탬프 투어 책자 (우)>



새만금 방조제를 즐기는 수단은 자동차와 자전거, 도보가 있지만, 자전거로 왕복한 결과 자전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새만금 방조제는 자전거도로가 차도와 분리되어 안전하게 자전거 여행을 즐길 수 있습니다. 주변에서 쉽게 자전거 대여점을 찾을 수 있으며 자전거 여행객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관광객을 위한 쉼터와 휴게소가 일정 거리마다 있어 드라이브 및 자전거 이용객이 큰 어려움 없이 관광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자전거 대여점과(좌) 차도와 분리되어 있어, 자전거로 안전하게 바다를 보며 달릴 수 있는 자전거 전용도로(우)>



비응항에서 11.4km를 달리면 야미도, 그리고 2.7km를 더 가면 신시도가 나옵니다. 새만금방조제에는 바다를 테마로 한 여러 곳의 쉼터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만난 쉼터는 돌고래 쉼터로 자전거 여행객들과 드라이브하던 가족들이 쉬고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신시도에 가는 길에는 새만금 오토캠핑장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으며, 이제 막 도착한 가족, 연인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새만금 방조제 쉼터 중 빼놓을 수 없는 돌고래 쉼터와(좌), 새만금 오토캠핑장 입구 [2012년 6월 한국관광공사 가볼만한 캠핑여행지로 선정](우)>



신시도에 도착하였습니다. 신시도에서는 가봐야 할 곳이 바로 방조제의 ‘랜드마크’ 새만금 준공 기념탑과 규모가 가장 큰 배수갑문인 ‘신시 배수갑문’입니다. ‘새만금 준공 기념탑’은 ‘약속의 터전’을 상징하며 세계 최장 33km 방조제의 상징성을 표현하기 위해 높이와 폭이 모두 33m로 되어 있습니다. 주변에는 분수대와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어 잠시 휴식을 취하며 기념촬영을 하기에 적합한 장소입니다.



<새만금 준공 기념탑>



준공기념탑을 지나면 거대한 다리 ‘신시대교’가 눈에 들어옵니다. 신시대교에는 폭 30m, 높이 15m, 무게 500t의 거대한 갑문이 20개가 설치되어있으며, 필요시 열고 닫아 간척지 내부의 물을 조절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신시대교와 신시 배수 갑문>



<갑문을 여닫아 간척지 내부의 수위를 조절하는 배수갑문의 모습>



신시도를 지나면 도로 옆에 빨간 집이 하나 눈에 들어옵니다. 서커스를 떠올리게하는 붉은색의 건물은 새만금 상설공연장이라고 합니다. 지난 4월부터 공연을 시작하였고, 특히 올해는 전주 세계 소리축제 조직위원회가 운영을 맡아 새만금의 명소로 자리 잡을 것인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내부에서 음악소리가 흘러 나오는 것으로 보아 공연 중인 것 같았습니다.



<새만금 상설공연장과(좌), 공연장 옆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우)>



새만금 상설 공연장을 지나 3곳의 쉼터 (바람쉼터, 소라쉼터, 너울쉼터)를 지나면 가력대교와 가력배수갑문이 나옵니다. 가력 배수갑문은 신시배수갑문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갑문의 수(16개)가 다른 것이 차이점입니다.



<소라쉼터와(좌), 가력대교 및 가력 배수 갑문 입구(우)>



먼 거리를 달려 왔습니다. 방조제의 끝자락, 부안에는 새만금 홍보관이 위치해 있습니다. 아직 임시홍보관으로서, 완성될 홍보관을 대신하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새만금 사업에 대한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으며 사업에 대한 사항들을 조감도와 사진으로 알아보기 쉽게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새만금 종합 홍보관이 지어지고 있는 동안 임시로 대체하고 있는 새만금 임시 홍보관>

 


2010년 4월 27일에 완공된 이후 하루 평균 1만9천여 명이 방문, 지난 6월 3일로 총 방문객이 1,500만명을 돌파하였습니다. 본격적인 휴가철과 가을 나들이철을 맞이하게 되면 전년 방문객 이상이 새만금을 다녀갈 것이라고 하네요. 신항만 사업뿐 아니라 오토캠핑장, 야간통행허가, 새만금 상설공연 등 다양한 체험과 볼거리를 통하여 동북아 경제중심지뿐만아니라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발돋움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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