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유산 경주 역사유적지구



가을이 한창인 요즘, 선선해진 날씨에 여행을 계획하기 무척 좋은 계절입니다. 저는 싱그러운 자연과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문화재를 동시에 만나볼 수 있는 곳, 바로 경주에 다녀왔습니다. 학창시절 수학여행지로 더욱 익숙한 곳이기도 한데요. 산뜻한 마음과 가벼운 발걸음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경주를 여행코스는 3가지로 구분되며 대릉원과 첨성대 등 시내 중심부를 기준으로 한 시내권, 월정교와 포석정 등이 포함된 남산권, 마지막으로 보문호를 중심으로 놀이공원, 관광호텔이 모여 있는 보문관광단지로 나뉩니다.  



  

▲ 낮과 밤에 바라본 첨성대의 모습



1.첨성대

경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 바로 첨성대입니다. 천문관측과 관련한 건축물로 2중 기단 위에 30cm 높이의 돌 27단을 쌓아 올렸고, 꼭대기에 우물 정(井)자 모양의 사각형 돌을 올렸다고 합니다. 구조와 구성은 물론 돌 하나에도 상징적 의미가 담겨있다고 하니 과학적이면서도 무척 신비로웠습니다. 천문관측을 위해 산 위가 아닌 평지에 세웠다는 것에 궁금증을 가지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지금과 달리 옛날에는 밤에 조명 등 인위적인 빛이 없어 평지에서도 천문 관측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 무열왕릉


2.무열왕릉

선도산 아래 자리 잡고 있는 무열왕릉은 삼국시대 말기의 능으로 신라 역대 능묘 중 피장자가 명확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능 바로 앞에 비석을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섯 마리의 용이 좌우에서 뒤엉켜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으로 중앙에는 ‘태종무열왕지비’라고 적혀있습니다. 문화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으니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어 무척 유익했습니다. 문화해설 시간을 미리 찾아보고 방문하는 것 또한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 불국사에 위치한 다보탑의 모습


▲ 약수터


3.불국사와 석굴암


경주 역사유적지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불국사와 석굴암입니다. 불국사는 751년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한 사찰로 다보탑, 석가탑, 청문교 등의 조형 하나하나에 신라 불교 미술의 뛰어난 조형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 석굴암 가는 길



석굴암 또한 거친 화강암으로 아름다운 부처의 모습을 표현한 것인데 통일신라 불교미술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답니다.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석굴암은 사진 촬영이 불가해 눈으로만 담고 왔습니다. 



▲ 석굴암 앞에서 바라본 전경



불국사와 석굴암이 위치해있는 토함산은 자연휴양림으로도 유명한데요. 울창하게 우거진 숲 사이로 부는 맑은 공기를 맞으며 흙길을 따라 걷다 보면 산속에 살고 있는 다람쥐들을 쉽게 볼 수 있답니다. 



▲ 동궁과 월지



4. 동궁과 월지

경주의 야경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동궁과 월지입니다. 동궁과 월지라는 지명보다 안압지로 우리에게 더욱 익숙한 곳입니다. 나라의 경사를 맞아 축하연을 거행했던 동궁은 문무왕 19년에 세워졌고, 월지는 동서남북 약 190m 규모의 인공 연못을 말하는데요. 조선시대에는 안압지로도 불리었다고 합니다. 사진 속 야경이 정말 멋지지 않나요?


이 외에도 수많은 문화재와 경주 세계문화엑스포공원 등의 볼거리가 가득합니다. 찬란했던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온전히 느낄 수 있어 무척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신경주역까지 KTX를 이용하면 약 2시간 소요되어 접근성도 무척 좋으므로 당일 여행을 계획하여 다녀오시는 분들도 정말 많았습니다. 





맑은 하늘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떠나는 경주여행, 한반도를 천 년 이상 지배했던 신라의 역사를 보고 느끼며 다시금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Posted by 국토교통부

 

 

KORAIL 내일로의 마지막 날이 밝았습니다! 먼저, 여행 일정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경주는 볼거리가 한 군데에 모여 있어서 도보 또는 자전거를 대여해서 여행하기 좋은데요.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 여행하는 것도 또 하나의 추억이 될 것 같네요^^

 

 

먼저, 첨성대로 출발하겠습니다! 경주역에서 첨성대까지는 자전거로는 5분, 버스로는 3정거장 정도입니다. 날씨가 좋다면 천천히 걸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첨성대는 불국사, 안압지와 다르게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답니다! 첨성대 근처에는 경주 석빙고, 경주역사유적월성지구 등 다양한 문화유산이 있으니 한 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첨성대에서 버스로 한 정거장 위치에 있는 국립경주박물관을 소개해드릴게요! 걸어서도 갈 수 있을만큼 첨성대와 가까이 있네요. 국립 박물관이므로 이 곳 또한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신라의 도읍지였던 경주라서 신라시대의 다양한 유물을 볼 수 있는데요. 이곳에는 다들 아시는 경주의 웃는 기와(얼굴무늬수막새), 에밀레종(성덕대왕신종)이 있답니다! 역사 교과서에서 보던 우리 문화 유산을 실제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는 놓칠 수 없겠죠?

 

 

이번에는 경주의 상징인 불국사로 가보겠습니다. 불국사는 입장료가 들지만 구경하고 나면 돈이 아깝지 않아요~

  

 

불국사 안에는 다보탑, 극락전 등 다양한 문화 유산이 있답니다! 불국사에서 석굴암까지는 거리가 있어 버스를 탔어요. 12번 버스를 탑승하시면 직행으로 석굴암으로 갈 수 있으니 참고하세요. 불국사와 석굴암은 가깝고도 먼 거리에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죠? 불국사 근처에는 많은 식당이 있는데요. 여행객들을 위한 관광상품도 구경하고, 식사도 하실 수 있답니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서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답니다^^

 


맛있는 식사를 마친 후, 야경이 아름다운 안압지로 출발합니다! 사실 안압지의 위치는 첨성대와 훨씬 가까운데요. 야경을 보기 위해서 해질 무렵에 다시 찾아갔답니다.

 

( 사진 출처 : 경주 문화관광 사이트 http://guide.gj.go.kr )

 

안압지는 신라시대 일종의 별장이었다고 합니다. 별장인 만큼 아름다운 연못이 자리잡고 있답니다. 낮에 오시면 연못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실 수 있어요! 안압지를 끝으로 경주여행을 마무리하고 포항으로 이동 했습니다.

 

( 사진 출처 : 경주 문화관광 사이트  http://guide.gj.go.kr )

 

포항과 경주는 바로 옆 지역이기 때문에 기차로 3정거장이면 도착한답니다! 포항역에 도착하면 호미곶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리는데요! 버스를 타고 1시간정도 가야했답니다. 하지만 호미곶에 한 번 도착하면 등대박물관, 근대문화역사거리까지 한 번에 볼 수 있어요~

 

 

포항 호미곶의 상징인 ‘상생의 손’ 입니다! 상생의 손은 새천년에 건축된 것으로, 상생의 두 손은 새천년을 맞아 화해와 상쇄의 정신을 담고 있답니다! 한 쪽 손은 바다에, 한 쪽은 육지에 있는데요. 그 크기가 엄청나답니다!

 

 

육지에 위치한 상생의 손 앞에는 일출불씨가 있는데요. 새천년을 기념해서 만든 상생의 손인만큼 1999년의 마지막 불씨와 2000년의 첫 불씨를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답니다!

 

 

호미곶의 바닷바람을 잔뜩 느끼고 맞은편에 있는 국립등대박물관에 갔습니다! 포항국립등대박물관은 우리나라 유일의 등대박물관으로, 우리나라의 모든 등대를 볼 수 있으며 입장료는 무료랍니다. 또한 등대의 역사를 직접 체험하고, 해양 관련 영화도 상영하니,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들러보세요!

 

 

등대박물관에서 버스를타고 조금만 가면 근대문화역사거리가 나온답니다! 이 곳은 일제시대의 가옥모습을 그대로 보존한 거리인데요.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촬영지로도 사용되었답니다! 이 거리는 관광객에게 개방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주민들이 사는 곳이니 조심조심 구경해주세요!


이렇게 내일로 여행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즐거운 여행을 뒤로하고 천근만근 무거운 몸으로 돌아가는 것에 한숨부터 나오신다구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준비한 내일로 이용 TIP 입니다!

 

기차에는 카페객차라는 곳이 있는데요! 이 곳은 승객분들이 지정된 자리 없이 카페처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이랍니다. 그러므로 기차에 탑승하자마자 가장 먼저 확인해 봐야하는 자리인데요! 자리가 나기 쉽고, 내일로 이용객들에게는 꿀 같은 자리랍니다~

 

만약, 카페객차에 자리가 없다면? 무궁화호에는 3호칸이 지하철처럼 마련되어 있구요. 새마을호에는 5호칸에는 자유석이 마련되어 있는데요! 이 곳도 내일로 여행객들이 착석하기 딱 좋은 자리겠죠?^^

 

또한 기차의 객실의 맨 앞쪽에는 콘센트가 배치되어 있어서 휴대폰이나 카메라를 충전할 수 있고, 객실의 맨 뒤쪽에는 다른 곳보다 공간이 넓어서 바닥에 앉는 것도 추천해드립니다!

 

그럼 즐거운 '내일로' 여행되세요!! 지금까지 KORAIL '내일로'편 기획취재를 맡은 대학생기자단 김연지(경기)입니다~

 

KORAIL 내일로 1탄 - ‘내일로 준비하기’편 

KORAIL 내일로 2탄 - '동해안'편

 

 

 

Posted by 국토교통부


인간이 집이라는 것을 짓고 건물을 세우기 시작한 이래, 망치를 휘두르고 못을 박으며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린 이후 “더 높은 곳을 향하여”는 동서고금을 통해 비슷한 욕망이었다. 하늘을 향해 쌓아 올리려다 그만 신의 벌을 받아 그때까지 함께 쓰던 언어가 통하지 않게 됐다는 바벨탑의 전설이나 지금도 이집트의 사막에 버티고 선 대(大) 피라미드들을 보면 그 뜨거울 소망의 단면을 짐작할 수 있거니와 마을과 마을, 나라와 나라는 보다 높은 건축물들을 짓는 경쟁을 자주 벌였고 그 유산은 세계 곳곳에 남아 있다. 



▲ 황룡사 9층탑 모형(출처: http://bit.ly/1cQkRL3)


고층 건물과는 별 인연이 없어 뵈는 것 같지만 우리나라에도 고층 건물을 지을 역량은 충분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지금은 볼 수 없는 황룡사 9층탑이 되겠다. 황룡사는 불국사의 8배나 큰 규모였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절 마당에는 또 9층으로 된 목탑 (말이 탑이지 이 황목조 9층 건물에 가까운)이 있었다. 한창 삼국 통일의 꿈을 키워가던 패기만만한 신라는 9층마다 나라의 이름을 쓰고 탑이 완성되면 그들이 다 신라에 조공을 올 것이라는 야무진 꿈을 꾸었다. 그러나 그렇게 수백 년을 버티며 경주 하늘을 찌르던 황룡사 9층탑에 운명의 날이 찾아왔다. 고려 중기 몽골의 침략군이 경주에 도착한 것이다. 그들은 거리낌없이 목탑에 불을 질렀다. 황룡사 목탑은 며칠 동안 불타며 경주 백성들의 가슴을 내려앉게 했다. 



▲ 황룡사구층목탑찰주본기(출처: 문화콘텐츠닷컴 http://www.culturecontent.com/main.do)



황룡사가 불타 없어진 이후 700여 년간 그 일대는 폐허가 된 채 무심한 후세들이 일구는 논밭과 집들로 뒤덮여 갔다. 그러던 중 1964년 마을을 철거하고 황룡사지 발굴을 시작해 많은 유물을 발굴하는 와중에 사리구를 간직했음직한 심초석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사리구는 없었다. 적잖은 실망을 했지만 2년 후 또 다른 기쁨이 찾아왔다. 발굴 당시의 조사위원이었던 황수영 박사는 누군가로부터 진귀한 물건을 감정해 달라는 연락을 받고 자세히 들여다보는 도중 그만 입이 벌어지고 말았다. 바로 잃어버렸던 사리구였던 것이다. 이 사리함에는 황룡사 9층탑의 규모가 자세하게 적힌 글이라 할 <찰주본기>가 적혀 있었는데 여기에 따르면 황룡사 목층탑의 높이는 무려 80미터. 오늘날 30층 아파트와 맞먹는 규모였다. 비록 신라 땅에 세워졌지만 백제 기술자에 의해 세워진 것이니 백제에도 유사한 기술이 있었을 것이고 그들은 하늘을 찌르는 탑과 건물들을 이 나라 곳곳에 세우고 있었을 터. 


그 이후 우리나라의 고층 빌딩의 역사는 그렇게 화려하지 않다. 높이보다는 넓이를 추구했다고나 할까. ‘아흔 아홉 칸 집’을 자랑하긴 해도 아흔아홉 자 높이를 자랑하는 건물은 없었다. 복층 건물이 지어지기 시작한 것은 구한말 이후였고 ‘고래등’같은 기와집만 부러워하던 한국인들은 하늘 향해 우뚝 서서 두 팔 벌린 듯 몇 층씩 쌓아 올리던 외국 공사관이며 성당이며 집들을 바라보며 경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한국에서 본격적인 고층 빌딩이 들어선 것은 한창 고속 성장을 누리던 1970년에 이르러서였다



 ▲ 삼일빌딩(출처: http://bit.ly/1c8q66Z)



김두식 회장이 설립한 삼미그룹의 모태인 대일목재공업이 1968년 사옥건물로 쓸 삼일빌딩을 짓기 시작해 1970년 완공한 것이다. 건물의 설계자는 서강대 본관, 프랑스 대사관, 올림픽 공원 평화의 문을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 건축가 김중업이었다. 건물을 31층으로 한 것은 일제 잔재를 청산한다는 3.1절의 의미도 개입되었다고 하는데 청계천변에 우람하게 선 삼일빌딩은 일대 장안의 화제가 된다. 시골 촌로들이나 꼬마들이 삼일빌딩 앞에 서서 그 층 수를 세는 모습은 흔했고 박정희 대통령도 즐겨 삼일빌딩 스카이라운지를 찾아 자신의 통치 아래 시시각각 변해 가는 서울의 모습을 굽어봤다고 전한다. 그러나 정작 건축가 김중업은 삼일빌딩의 설계비조차 받지 못했다고 한다. 


31층의 높이를 최소한으로 줄여서 빔을 뚫고 닥트를 배열하여 날씬하게 보이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끝내는 설계비조차 받지 못하고, 또한 엄청난 세금에 밀려 성북동 집까지 잃게 되었다. 이로 하여 급기야는 프랑스로 떠나야만 했으니 그 비운의 씨를 뿌린 장본이 바로 삼일로 빌딩이었다. (김중업,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 중) 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꼬장꼬장한 건축가였던 그는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가 일어나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불도저 시장 김현옥 물러가라!”를 외쳤고 청계천 빈민들을 아무 대책 없이 경기도 광주 단지에 수용한 상황에서 광주대단지 폭동이 일어나자 역시 시장 양택식을 격하게 비판했다. 이 시절 정부에게 그렇게 댓거리를 한 사람 치고 무사한 사람은 드물었다. 그는 무지막지한 세금을 두드려 맞고 프랑스로 도망치듯 떠나야 했고 박정희 대통령이 죽을 때까지 돌아오지 못했다. 


한때 서울 근대화의 상징과도 같았던 삼일빌딩은 현재 외국 기업의 소유다. 경영난에 몰린 삼미그룹이 1985년 삼일빌딩을 산업은행에 매각했고 2001년 산업은행은 502억 원을 받고 홍콩에 주소를 둔 스몰록인베스트먼트컴퍼니리미티드란 회사에 다시 팔았던 것이다. 이미 그에 필적하는 고층 건물들이 여럿 들어차 버렸기에 한때의 랜드마크이자 무려 16년 동안이나 서울 최고층을 지키던 삼일빌딩의 위용은 이미 옛날 얘기지만 그 검고도 날렵한 건물의 소유자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약간 씁쓸해지는 일이다. 우리의 역사 하나가 넘어간 느낌이랄까.



Posted by 국토교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