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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14 대한민국 지하철의 역사_2편



 ▲출처: 서메트로



1974년 8월 15일 지하철 1호선이 완공됐다. 그 동안 들어간 돈은 총 3백억. 서울 시 단위 토목공사로는 가장 큰 대역사였다. 하루 쓰이는 전기량이 팔당댐 발전량의 40퍼센트를 차지했으며 파낸 흙만 해도 7톤 트럭으로 47만 대 가량, 남산의 1/10 양이었다고 하니 당시 서울 시민에게 이 공사가 어느 정도의 규모로 다가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우선 경험 미숙으로 인한 고장과 연발착 사고는 시민들의 짜증을 자아냈다. 운행 시작 한 달 동안 연발착 사고가 497회에 달했다고 하니 더 말할 것이 없겠다. 그러나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것이 백 배는 컸다. 


우선 지하철은 인천 수원 의정부 등을 서울을 중심으로 묶어 놓았다. 지하철 1호선은 서울역에서 청량리까지의 구간이었다. 나머지는 죄다 ‘국철’이다. 즉 지하철공사 아닌 철도청 (요즘은 코레일) 관할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청량리를 벗어나고 서울역을 지나치고 만나는 철도는 죄다 경부선, 경인선, 그리고 경원선 (서울 - 원산을 잇던) 철도였다. 

 


▲ 지하철 1호선 중(출처: 서울메트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남영역으로, 청량리에서 회기역으로 가다 보면 잠깐 객차 내 불이 꺼지는 현상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 지하철 1호선과 국철의 전기 운용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이다. 


철도 전철화는 25,000볼트의 교류 전원을 사용해야 했고 지하철 1,500볼트의 직류 전원을 사용해야 했는데 기존 철도를 직류 전원에 맞추자면 유지비가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지하철에 교류 전원을 사용하자면 통화 장애가 발생하는 등 골칫거리가 많았다. 이 대안으로 나온 것이 열차의 전원을 끄는 것이었다. 기왕에 달리던 힘으로 열차가 달려나가는 사이 전원을 교체한다는 아이디어. 이런 우여곡절 끝에 지하철 1호선은 마치 거멀못처럼 서울을 중심으로 한 동서남북을 하나로 했고 그 지역의 인구들은 지하철 1호선에 실려 서울 도심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지하철 플랫폼에 서 있으면 움직이지 않아도 인파에 밀려 저절로 타게 된다.”거나 “서 있으면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 는 지옥철의 전설은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었지만 지하철 1호선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75년 8월 20일 동아일보 기사에서 전하듯, 출퇴근 시간은 붐볐지만 기타 시간에는 한산할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연계 교통망이나 다른 노선의 지하철 건설이 시급했던 이유였다. 그리고 이미 2호선 이후 지하철 계획도 수립돼 있었다. 2호선의 경우 서울의 서쪽 영등포에서 동쪽 왕십리를 잇는 직선 코스였다. 그런데 여기에 중대한 변형이 가해지게 된다. 그 주인공은 서울 시장이었다. 



▲ 지하철 2호선 노선도(출처: 네이버 노선도)

 


서울 지하철 시대 개막에 ‘올인’했던 ‘두더지’ 서울 시장 양택식의 후임은 구자춘이었다. 포병장교 출신으로서 5.16 군사정변에 가담했고 이후에는 경찰로 돌아 각지의 경찰국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특이한 이력의 구자춘 시장에게 ‘바람’을 불어넣은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홍익대학교 교수 김형만이었다.


 김 교수는 서울은 원래 4대문 중심의 단핵(單核)도시에서 기존의 도심과 영등포, 영동(영등포 동쪽 - 강남)을 중심으로 하는 3핵도시로 개발되어야 한다고 역설했고 구자춘 시장은 이 주장에 귀가 활짝 열렸다. 그리고 1975년 2월 대통령 초도 순시를 준비하던 구자춘은 서울시 지도 한 장과 색연필 하나로 역사를 창조(?)하게 된다. 


“구로공단을 지나야겠지?” 찌익~~~ 구로공단에서 강남으로 가다 보니 오늘날의 대학로에서 보금자리를 옮겨 온 서울대가 있었다. “서울대학교도 지나야 할 것 같고.....” “대학들이 밀집해 있으니 신촌도 지나야지.” 서울시 도시계획과장을 지낸 손정목의 저서에 의하면 그 단 20분만에 구자춘 서울 시장의 색연필은 오늘날의 지하철 2호선을 그려 냈다. 요즘 세상의 눈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권력의 전횡이었다. 특히나 순환선은 마구 짓는 것이 아니라 막 운행을 시작한 지하철 1호선 같은 단일노선이 원숙기에 접어든 뒤에나 고려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지만 누구도 이 포병 장교 출신의 시장의 아이디어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포병 장교의 노하우가 있어서 그런지 천만 다행히도 그 단시간의 결정에 비한다면 난공사 구간은 적었다고 하지만,. 



▲ 2호선 착공(출처: 국가기록원)



착공은 1978년이었고 2호선 타이틀을 단 첫 구간이 완성을 본 것은 1980년 10월이었다. 그런데 이 구간은 요즘의 본격적인 2호선이 아니라 2호선 지선으로 불리는 노선, 즉 신설동에서 종합운동장을 잇는 구간이었다. 


이후 노선은 슬금슬금 서울을 길게 감싸 안는 지하의 성벽처럼 동서로 확장됐고 시내 방향의 지하를 뚫으면서 2호선 노선의 큰형님(?)이라 원조라 할 신설동 - 성수 노선을 지선으로 전락시켰다. 서울대를 거쳐 신도림을 지나 당산철교를 넘어 신촌골을 통과하여 한양대를 지나 을지로를 관통해 온 지하통로가 서로 만난 곳이 을지로 입구 역이었고 48.8킬로미터, 지선까지 치면 60킬로미터의 지하철도 구간이 완성된 것은 1984년 5월이었다. 


지하철 2호선은 건설 후 28년 동안 ‘세계 최장의 순환 철도’였다. 2012년 베이징 지하철 10호선의 2공구 구간이 완성되고서야 그 타이틀을 넘겨 주었으니까. 



 ▲ 2호선 개통(출처: 국가기록원)


구자춘 시장의 노선 변경 덕분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지하철 2호선은 최대의 대박 노선으로서 지하철 공사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게 된다. 특히 당산에서 영등포를 거쳐 구로공단을 지나 강남으로 이어지는 노선의 혼잡도는 상상을 초월했고 국철과 2호선이 만나는 신도림역은 혼잡함의 대명사로 지금도 유명하다. 2012년 기준 2호선 이용 지하철 인구는 하루 2백만 명이 넘었으니 그 위력을 짐작할 하다. 그 후에 건설된 3,4호선이나 5호선과는 조금 다르게 최초의 지하철 1호선과 최대의 노선 2호선에는 그 역사 속에 많은 사연을 담고 있다. 다음 주에는 그 사연들을 좀 캐 보자.




대한민국 지하철의 역사_1편 보기 (http://korealand.tistory.com/2366)

▷ 대한민국 지하철의 역사_3편 보기 (http://korealand.tistory.com/2447)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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