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우리나라는 열강들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성들을 축조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성 중에는 역사적 사건의 중요한 배경이 된 곳도 있고, 오랫동안 전해오는 이야기의 무대가 된 곳도 있습니다. 남한산성과 진주성, 그리고 낙안읍성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요. 오늘은 각 성지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알아봅시다. 



I 난공불락의 요새 남한산성



▲ 남한산성(출처: 남한산성문화관관사업단)



때는 병자호란.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는 강화가 함락되고 먹을 것이 부족하자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나가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하게 됩니다. 청나라 왕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굴욕을 당한 것인데요. 그 누구도 침략하지 못했던 단단한 남한산성의 문을 열고 나가 절을 했던 인조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 47일간의 기억을 쓴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


해발 500미터가 넘는 험준한 지형에 구축된 성벽은 적이 쉽게 공격할 수 없는 천혜의 요새였습니다. 우리나라 산성 가운데 가장 잘 정비된 곳으로 우리나라 성곽 축조기술의 최고수준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 남한산성(출처: 남한산성문화관관사업단)


남한산성은 신라 문무왕 때 축성되어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까지 견고함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조선시대 여러 임금들의 관심을 받은 남한산성은 인조, 숙종, 영조, 정조 때의 다양한 축성기법의 표본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종묘와 사직을 모두 갖춘 곳으로 남한행궁은 부수도의 역할도 했습니다.




논개가 일본 장군을 끌어안고 몸을 던진 진주성


 

▲ 진주성 (출처: 진주시청 http://bit.ly/1bA5T9S)



왜장을 끌어안고 물에 뛰어든 기생 논개 이야기 아시나요? 구전에 따르면 논개는 양반가의 딸로 장수현감 최경회의 후처였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에서 진 최경회는 남강에 투신자결을 하고, 이후 일본 장수들이 자축연회를 벌이자 논개는 기생으로 위장하여 참석합니다. 복수의 칼날을 갈던 논개는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가 술에 취하자 남강으로 꾀어내 손가락 마디마디 가락지를 끼고 적장을 껴 안은 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 논개와 논개가 남강으로 뛰어든 촉석루 의암 (출처: 진주시청 http://bit.ly/1bA5T9S)



진주성은 내성의 둘레1.7km, 외성의 둘레 약 4km인 성으로 위에 설명한 것처럼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이 벌어진 곳입니다. 성의 북쪽으로는 3개의 연못을 파서 연결하고, 성의 외곽으로는 못을 파서 남강에 연결되도록 했습니다. 즉 성에 접근하려면 반드시 물을 건너야만 하도록 성을 축조한 것입니다. 



 

▲ 진주성(출처: http://jjphoto.co.kr/)



진주성은 백제시대의 거열성의 터였던 곳으로 원래 토성의 형태였던 것을 고려 때 왜구의 침범을 막기 위해 석성으로 고쳐지었다고 합니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 범위가 너무 넓어 수비가 곤란해 내성을 쌓았고 그 뒤 포루 12개를 증축, 이후 광해군 시절 성 수축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지금의 모습이 완성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진주성은 단지 건축물이 아니라, 진주시민들의 기개와 절개가 담긴 상징적인 곳인데요. 촉석루에 서서 흐르는 남강을 바라보면 마치 과거 속으로 장수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을까요?^^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만나는 낙안읍성 민속마을


 ▲ 낙안읍성 민속마을(출처: 순천시)


두 성의 이야기에서 과거로 여행을 떠난다면 낙안읍성 민속마을은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입니다. 

'민속촌인가?' 라는 생각이 들만큼 과거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순천 낙안읍성 민속마을은 조선시대의 읍성으로 1,410미터의 성곽 안에 290여 동의 초가집이 있고 120세대 28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마을입니다. 

 


▲ 낙안읍성 민속마을(출처: 낙안읍성민속마을)


낙안읍성도 처음에는 토성으로 담장을 이뤘으나 조선 중기 석성으로 개축하였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허술한 당장 하나 없이 마을을 이뤄가고 있습니다. 마치 마음씨 착한 흥부가 살고 있을 것 같은 노란 초가집의 지붕은 그 시절 백성들의 생활모습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 낙안읍성 민속마을(출처: 낙안읍성민속마을)


이 곳에서는 짚풀 공예와 대장간 등을 체험할 수 있어 전통가옥의 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데요. 아파트에 익숙한 어린이들에게 집과 주거문화를 경험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건축물이라고 해서 단순히 벽돌과 흙으로 이루어진 곳은 아닙니다.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채워져야 건축물이 완성됐다고 할 수 있는데요. 오늘 소개해드린 3곳뿐 아니라 과거의 건축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곳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으며 과거의 건축물과 친해져 보는 것은 어떨까요?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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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센트럴 파크, 런던의 4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하이드 파크 등 세계의 유명한 도시에는 빠지지 않고 도시를 대표하는 공원이 있습니다. 서울에는 어떤 공원이 있을까요?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을 따라 마련된 시민 공원이 있고, 억새풀이 멋진 풍경을 만들어내는 하늘공원도 있죠.



해외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잔디밭에 앉아서 책을 읽는 사람들, 누워서 한낮의 햇빛을 즐기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요, 이렇게 공원은 마음껏 휴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쁜 도심의 생활 속에서 여유를 찾게 해줍니다. 

 



제가 있는 스페인에는 특이한 형태와 유래를 가진 공원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시우다델라(Ciudadela)인데요, 스페인어로 방어벽, 요새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유래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세계 여러 도시에 시우다델라(방어벽)가 존재하는데요, 이곳은 원래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설치된 건축물입니다. 스페인의 르네상스 시기를 거치면서 이 성벽이 점차 정교하고 미적인 요소를 포함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팜플로나의 시우다델라의 경우에는 스페인의 최고 전성기 때의 왕인 펠리페 2세(Felipe II)가 1571년에 명령하여 건축을 시작했고 17세기에 이르러 완성됩니다. 이 성벽은 20세기까지 방어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물리적으로 영토를 놓고 다투는 전쟁이 더 이상은 일어나지 않자 본래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고, 1964년에는 완전하게 군사적 기능을 상실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팜플로나의 시우다델라는 다양한 문화생활을 뒷받침하는 공원으로 완벽하게 탈바꿈합니다. 


 


위의 지도를 보시면 팜플로나 도시 전체의 거의 한 가운데에 시우다델라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 어느 곳에서도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도시 내에서 가장 큰 공원으로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어 다양한 문화행사가 개최됩니다. 



 

공원의 모습입니다. 한 편에는 사슴들이 있어 아이들의 눈길을 끕니다. 도시의 번화가와도 가깝기 때문에 평소에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자연스럽게 시민들의 생활과 어우러지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공원 바깥 쪽에는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누구든지 쉽게 자전거를 빌려 탈 수 있고, 아침이나 저녁에는 조깅을 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이 보입니다.



 

저녁이 되면 조명을 밝혀서 새로운 경관을 만들어냅니다. 성벽의 모습을 확인하기에는 밤의 경관이 더 멋진 것 같습니다. 




한편 여름마다 이곳에서는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문화행사가 개최되는데요, 지난 여름에도 여러 가지 문화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저도 행사 중 하나로 공원에서 하는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한여름 밤에 공원에 모여 낭만적인 영화를 보고 나니 제 기분까지 행복해지는 경험이었습니다. 그 밖에도 미술 전시회가 열리기도 하고, 음악 파티가 열리기도 합니다.


 



 

과거에 성벽으로 쓰였던 역사적인 건축물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시민 누구나 찾을 수 있도록 이곳을 공원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요즘은 날씨가 부쩍 추워졌는데요, 이럴 때일수록 집에서 웅크리고만 있기 보다는 근처의 공원으로 나가서 간단하게 몸을 풀어주는 것도 좋겠죠?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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