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국토교통부 대학생 기자단 최서진, 황외성 기자입니다

지난 919일 국토교통부 어린이 기자단들이 전주 한옥마을을 방문 했는데요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학생 기자단이 그 길을 함께 따라가 보았습니다.

이른 아침 양재역에서 출발한 버스는 오전
10시경 전주 한옥마을에 도착했습니다도착하자마자 한옥마을 탐방이 시작 되었는데요. 먼저 태조 이성계의 정기가 서려있다는 오목대로 향했습니다.



오목대는 1380년 고려 우왕 때 왜구를 물리친 태조 이성계가 승전잔치를 벌인 곳입니다. 조선왕조를 개국 하고 나서는 이곳에 정자를 짓고 오목대라고 이름을 정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본강점기 시절에는 조선의 맥을 끊는다는 일본군의 탄압으로 오목대의 중간에 길을 만들었다는 슬픈 역사도 함께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목대에서 내려와서 한옥마을 중심에 있는 전동성당으로 향했습니다
. 최초의 순교지로도 유명한 전동성당은 프랑스 신부인 보두네 신부가 순교의 뜻을 기르고자 부지를 마련했습니다.



서울에 있는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가 일제강점기에 설계해서 건물이 명동성당과 매우 흡사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군이 전주읍성을 헐면서 버린 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지었다고 하는데요. 아름답지만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 이였습니다.


이 붉은 벽돌을 이용해서 지은 건물은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한 건물로 전주읍성의 풍남문 인근 성벽에서 나온 돌로 주축돌을 삼았다고 합니다
.



호남지역 최초로 건립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전동성당과 대조적으로 그 앞에는 태조 이성계의 영전을 모시고 있는 경기전으로 향했습니다.



1410년 임금은 전주, 경주, 평양에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보관하고 제사를 하는 전각을 짓고 어용전 이라고 했습니다경기전은 이씨 성을 가진 이성계의 발상지로 전주 이씨인 이성계의 왕조인 조선의 발상지라고 여겨졌습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어진을 보니 늠름하고 위엄이 돋보이는 인상을 받았습니다점심식사 후 무형문화재 명인 유배근 선생님의 지도와 함께 한지발 체험을 했습니다.



한지발을 짜는 시간은 고됨의 연속이고 담양에서 사온 대나무를 일일이 얇게 깎아 좀이 슬지 않도록 소금을 넣어 5시간을 삶아 내야 하며 이를 다시 3번에 걸쳐 앏고 깔끔하게 다듬어야 비로소 발을 짜는 준비가 끝납니다.



일단 발을 짜기 시작하면 쉴 틈도 없다고 합니다말총을 일일이 엮어 짜는 전통 한지 발은 유배근 선생님이 더욱 정성을 쏟는 품목 이였습니다.

유배근 선생님은 판지의 우수성을 위해서 평생을 고민하며 우리 전통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한지를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국내 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 일본에서 한지만들기 체험에 대한 문의가 들어와서 일본에서도 우리 한지의 우수성과 명인의 솜씨를 널리 펼치고 있습니다.



어린이 기자들도 한지를 직접 만들어 보았는데요한지의 제작과정은 첫째 닥다무를 채집하고, 닥나무를 증기로 찌고, 질을 벗기는 작업 후에 물에 담가 불려서 겉 껍질을 벗깁니다.

그 후 잿물에 삶고 닥메로 두들기고 물통
(보걸이)에 넣어 잿물을 빼냅니다.



건져서 물기를 빼낸 후 표백통에 넣은 후 지통에 넣고 닥풀과 함께 혼합합니다.



다음 발로 뜬 다음에 철판에 만들어 완제품으로 창호지나 백선지 피지 등을 생산합니다열심히 집중해서 나만의 한지를 만드는 어린이 기자단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어린이 기자단들과 함께 하면서 어린이 기자단들의 취재열정에 저희도 더욱 더 취재를 열심히 해야 겠다고 생각했는데요. 앞으로도 어린이 기자단들의 활발한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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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세한 기사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014.09.30 22:4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법성진성은 영광군 법성면 진내리 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하지만 법성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 대부분 법성진성의 존재를 알지 못했어요. 

참 슬픈 일이 아닌가요?

역사를 담은 가치 있는 곳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간다는 사실이...
저 또한 법성이 원래 성이었다는 사실을 취재를 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숲쟁이에서 뛰어 놀 줄만 알았지 숲쟁이 주변을 주의 깊게 둘러보지 못한 제가 너무 바보 같았고, 이제라도 내 고장의 비밀을 알게 되어 기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법성진성의 남겨진 성벽을 둘러보며 법성의 특별함을 이 기사에 담아 보았습니다.


(출처 : 문화재청)

법성진성 안에는 조선시대 대부분의 유적들이 산재되어 있다고 합니다. 법성진성은 중종 9년(1514년)에 돌로 성을 처음 쌓았다고 ‘신증 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 ‘법성진 진지’의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처 : 법성포초등학교 100년사)




세월이 묻어나는 법성진성의 성벽입니다.



처음 법성진성의 성벽을 마주했을 때 가슴이 두근두근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가파른 언덕을 따라 이어진 법성진성의 성벽은 이끼가 끼고 군데군데 부서지고 성벽이 모습이 많이 변했지만 법성을 지켜주던 진성의 위엄과 아름다움은 아직도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법성진성 성벽을 따라 울창한 소나무가 줄을 지어 있습니다. 이 소나무 들은 거센 칠산바다의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입니다. 성벽 위 소나무 길을 따라 걷다보면 숲쟁이를 만날 수 있답니다!




법성진성 산 아래 바닷가에는 다랑가지 라는 큰 포구가 있습니다.당시에 법성포 앞 바닷물이 빠지면 갯벌 때문에 배가 들어오지 못하였는데, 이곳 월랑대 앞 다랑가지 콧댕이만 배가 접안할 수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눈꼽지고 뺏야운 놈은 얼씬도 못한다.” 는 곳이 이곳 다랑가지 콧댕이 였었고, 황금의 부두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1. 월랑대 올라가는 계단
옛날에는 이 계단 아래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지만 현재는 간척되어 마을을 이루고 있습니다.

2. 월랑대 벽에 새겨진 글

3. 월랑대의 제월정
630년 후기에 지었을 것으로 추정 되는 풍류정자. 

4. 제월정 터와 주춧돌
1957년 주민들에 의해 복원되었다가 1974년 화재로 모두 타버렸고 현재는 주춧돌과 터만 남아있습다.



법성포 동쪽에 있는 고개

옛날에는 법성포를 드나들려면 반드시 넘어야 했던 유일한 육로였다고 해요.

예전에는 이 큰 동짓재 마루에 노거수가 많았는데 어려운 시절에 마을 사람들이 겨울 땔감으로 베어 쓰려다가 직(稷:오곡을 관장하는 신의 형벌)을 맞아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시름시름 앓았다는 일화도 전래되고 있습니다.

저도 어릴 적 법성포초등학교를 다녔을 때 이 동짓재를 꼭 넘어야 초등학교를 갈 수 있었어요. 
집에서 꼬박 30분을 걸으며 언덕 옆에 자란 산딸기를 따먹고 친구들과 도란도란 동짓재를 넘었답니다! 그래서 동짓재는 저의 학창시절의 추억이 어린 소중한 공간입니다~!!




일제강점기 일제에 의해 지어진 콘크리트로 된 하굿둑

그 당시 멀리서 하굿둑을 보면 하얀색으로 보였다고 하여 흰다리라 불린다고 합니다.




소머리로 여겼던 대통재는 중국의 사신을 기다리는 고개라는 뜻으로 중국의 사신이 넘나들었던 고개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외에 법성에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지명이 많답니다. 
법성포는 오래전부터 풍수지리상 수중와우(水中臥牛:물가운데 누워있는 소)형국이라고 전래되었다고 해요. 대통재라는 곳은 소머리에 해당하는 곳이고, 숲쟁이는 소 허리에, 조아머리는 소 머리의 왼쪽편, 구시미는 소의 여물통 모습이라 하여 구시미로 불리우고 있다고 합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보면 조그마한 시골의 한 구석의 이름도 조상들의 커다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자신의 고장에 특이한 이름이 있다면 그 의미를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겟죠?

이상 문희아 기자였습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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