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많이 와서 생활에 불편함이 많은 요즘, 저는 우리의 생활과 뗄 수 없고 주거 환경에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수돗물에 대해 궁금함이 생겨 서울에 있는 수도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물과 환경전시관 앞 기념사진




물과 환경에 대해 알 수 있는 물과 환경전시관



첫 번째로는 물과 환경전시관을 방문했습니다. 물과 환경전시관에는 자연환경과 인간 생활을 통해 물의 소중함을 이해하고, 물을 아끼고 보호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먼저, 지구에 있는 물의 양은 1385백만정도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중 바닷물이 97%135천만이고 나머지 3%35백만가 민물로 존재한다고 합니다. 민물 중 69% 정도인 24백만는 빙산 · 빙하 형태이고 지하수는 29%1천만정도이며 나머지 2%1백만가 민물호수나 강, 하천 늪, 등의 지표수와 대기층에 있습니다. 이 민물이 바로 지구에서 이용되는 가장 값진 수자원이 됩니다. 우리는 그중 일부를 생명을 유지하고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수돗물로 공급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물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1~2%만 부족해도 심한 갈증을 느끼고 5% 정도 부족하면 혼수상태, 12% 정도 부족하면 생명을 잃기 때문입니다. 전시관에는 `사람은 걸어 다니는 물통`이라고 적혀 있는 수분 측정기가 있었습니다. 손바닥 모양 판에 내 손바닥을 대면 수분측정이 되어 화면에 나타났습니다. 손바닥만 닿아도 수분측정이 되는 것이 신기했고, 내 몸의 수분량을 알 수 있어 재미있었습니다




수분측정기 체험




 물을 정화하고 저장하는 역할을 알 수 있는 숲으로 가다



`숲으로 가다` 코너에서는 물을 정화하고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 숲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숲의 중요한 역할은 물을 정화하는 질적인 생산기능과 더욱더 많은 물을 숲에 저장하였다가 천천히 내보내는 양적인 생산기능에 있습니다. 그래서 숲이 발전하면 할수록 물을 저장하였다가 천천히 내보낼 수 있는 기능이 증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숲은 자연의 댐, 즉 녹색 댐이라고 불립니다.

 



가정에서 물 아껴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안내판



선진국보다 물을 많이 쓰는 우리나라 국민이 가정에서 물을 아끼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한 가정에서 하루에 1인당 사용하는 가정용수의 양은 약 175L인데, 그중 화장실, 주방, 욕실, 세탁용으로 이용되는 물이 165L입니다. 여기에서 사용되는 물은 절수제품이나 기구를 설치하고 사용습관을 바꾸기만 하면 20~60%까지 절약할 수 있습니다. 샤워 시간 줄이기, 절수형 샤워헤드 사용, 한 번에 모아 빨래, 설거지통 이용, 절수용 변기 수조 설치 등이 그 예입니다. 이 전시관을 나오며 귀한 물을 앞으로는 함부로 낭비하지 않고 아껴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수도박물관 본관 건물 앞에서 한 컷

 



물 사용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는 본관



그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박물관 본관 건물이었는데요. 우리나라 최초의 정수장인 뚝도수원지 제1 정수장 시설물 중 송수펌프실을 본관으로 만들었답니다. 그래서 옛날 기기 일부가 그대로 벽면, 바닥에 전시되어 있었고 문화재로 지정된 만큼 건물도 옛 모습이었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물장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수돗물 공급 전에는 물장수라는 직업이 있었고, 상수도 시설이 도입되고 각 마을에 공동수도가 설치되면서 물장수들은 사라졌답니다. 물을 팔러 다녔다는 직업이 있었다는 것이 매우 신기했고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수입이 많아 인기직종이었다는 것을 알고 더욱더 놀라웠습니다. 전시장 바닥에는 사진으로 보는 수도 100년사라는 사진들이 전시되었었는데 그 시대의 모습 그대로 볼 수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수도 100년사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서울 시민의 식수는 우물과 샘물에 의존하였으나 우물물의 부족 현상과 콜레라의 만연으로 상수도 시설의 필요성이 절실하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상수도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전차와 전기를 한국에 도입했던 미국인 콜브란(C.H.Collbran)과 보스트위크(H.R.Bostwick)가 발 빠르게 움직여 1903129일 고종황제로부터 상수도의 부설 경영에 관한 특허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이 특허권을 영국인들이 설립한 대한수도회사에 넘기고, 대한수도회사는 다시 콜브란과 보스트위크에게 공사를 맡겨서 1906년 뚝섬에 정수장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공사는 콜브란과 보스트위크가 들여온 기술과 송수관, 배수관, 펌프 등 모두 외국산 제품으로 완성되었는데요. 송수관, 배수관을 90,543m 지하에 매설하는 대공사였습니다. 공급되는 물은 한강 물을 끌어다 썼고 정수처리방법은 완속여과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완속여과 방식이 무엇일까 궁금하여 전시장 바깥에 있는 완속여과지에 갔습니다. 완속여과지는 고운 입자의 모래층에 물을 천천히 통과시켜 불순물을 걸러내는 정수시설입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완속여과 방식은 원수의 수질이 양호한 경우 정수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수돗물을 생산할 수 있는 친환경 정수시설입니다. 장치가 간단하고 운전 및 유지 관리가 쉬운 방식이나 넓은 면적의 부지가 필요하고 생산효율이 매우 낮은 단점이 있어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정수방식입니다. 완속여과지 안에 들어가 봤습니다. 아래로 내려가 보니 반지하처럼 어두웠지만 넓고 시원해서 좋았습니다. 거의 111년 전에 이런 시설이 있어 85~95% 세균 제거 효과가 있는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완속여과지 입구() 외부와 내부(아래)



이런 시설들을 다 완성하고 드디어 190891`경성 수도 양수공장(뚝도 정수장 제1수원지 옛 이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정수장이 탄생하였는데요. 사대문 안과 용산 일대의 주민 12만여 명에게 하루에 필요한 물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곳 뚝섬 지역에 최초의 근대 정수장이 들어선 이유는 1900년대 당시 청계천과 중랑천이 생활하수로 인해 수질 오염이 심각했기 때문에 오염이 적고 유량이 풍부한 뚝섬 지역에서 맑은 물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또한 완성된 수돗물을 각 지역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증기터빈이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증기터빈을 돌리기 위한 땔나무와 숯의 집산지가 인근 뚝섬 나루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곳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정수장이 만들어졌습니다.




시가지배수로 지도 체험



취수, 침전, 여과, 정수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수돗물은 이곳 송수실에 설치되어 있던 모터 펌프의 동력을 이용하여 뚝도수원지 제1 정수장에서 3.3km 떨어진 79m 높이의 대현산 배수지로 보내졌는데요. 자연유하방식으로 광희문을 거쳐 서울 시가지로 들어와 을지로 5가 부근에서 다시 4개 구간으로 나누어져 사대문 안과 용산 일대에 공급되었습니다. 터치스크린으로 시가지 배수로를 볼 수 있어 그때의 수돗물 길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두펌프와 각종 기계류


 

야외전시장에는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보고 작두펌프로 시원한 물을 퍼 올려 보며 추억의 상수도 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 1900년대부터 최근까지 수돗물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데 사용되었던 각종 펌프류, 수도관류, 기계류 등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경성수도양수공장(뚝도정수장 제1수원지 옛 이름) 모형 



이렇게 많은 역사를 통해 지금의 수돗물이 생겼고, 우리가 물을 얼마나 편하게 쓰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현재도 우리에게 필요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고 계시는 분들께 감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소중한 수돗물도 아껴 쓰면서 말입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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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와 울산광역시를 잇는 7번 국도에는 경남 양산시가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 3대 사찰인 통도사가 위치한 양산시는 태백산맥의 지맥에서 뻗어난 천성산과 원효산의 높은 산지가 북부를 바치고 있다. 원효대사가 당나라에서 온 1,000여명의 승려를 화엄경으로 교화하여 모두 성인으로 만들었다는 전설에서 이름 붙여진 천성산에는 최근 닫혀있던 비밀의 문을 깨고 일반인에게 공개된 곳이 있다. 





부산도시철도 1호선 노포동역에서 내려 1번 또는 1-1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린 곳 법기수원지다. 한적한 시골마을 끝에 위치한 법기수원지는 최근 들어 활기를 띠고 있다. 축조된 당시부터 2011년까지 80여 년간 상수원 보호를 위해 출입이 엄격하게 금지되었지만 2011년 7월 15일, 80년간 닫혀있던 비밀의 문이 열리고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법기리에 위치한 법기수원지는 천성산 아래에 위치한 수원지로 1927년 착공을 시작으로 1932년에 축조되었다. 수영강의 지류인 법기천의 발원지이며 부산 노포동, 순두구동 전역 및 청룡동, 남산동 일원의 약 7천여 세대의 식수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총저수량은 1,570천 톤이며 유역면적 6.85km2이다. 무엇보다 전체 680만m2 면적 중 댐과 수림지 2만m2에 한하여 전격 개방되었다.





법기수원지는 수원지 생태 보호를 위해 제방과 수림지 일부 지역만 공개되었다. 저수지 둘레길과 수변구역은 인근 지역의 식수원으로 이용되기 때문에 일체의 접근을 통제하고 있다. 또 고성방가나 흡연이 금지되며 가방이나 음식물 반입을 통제하고 있어 입구에 마련된 사물함에 보관하여 출입하게 된다. 하계(4월~10월)는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되며 동계(11월~3월)는 오전8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출입이 가능하다.





입구를 통해 처음 법기수원지를 들어서면 히말리아 시다가 줄지어 서 있고, 그 뒤로는 아토피와 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편백나무가 피톤치드를 뿜어내고 있다. 




법기수원지 수림지내에 조성되어 있는 대표적 나무로는 편백, 히말리아시다, 벚나무, 반송 등 총 7종이 있다. 그 중에는 낙뢰로 고사한 나무도 있으며, 약 90여년 추정되어 보호수로 지정된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수원지 내 모든 나무는 댐 건설 당시 심어진 나무들로서 수령이 80여 년에서 130년 이상 된 나무다. 





입구를 지나 가로수 길을 따라 걷다보면 124계단의 하늘계단이 나온다. 하늘계단을 올라가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법기수원지의 댐이다. 법기수원지는 1932년 일제 강점기 시절에 축조된 댐이다. 콘크리트가 아닌 흙으로 쌓아 올린 댐은 길이가 총 260m, 높이가 21m에 이른다. 2011년 전체 680만m2 중 댐과 수림지가 위치한 2만m2에 한하여 전격 개방함으로서 공개된 수원지는 새로운 손님을 맞았다. 





사선으로 가로지른 계단을 올라 댐 마루에 서면 우아한 모습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법기 반송이 7그루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댐 건설 당시 20명이 목도하여 댐 위로 옮겨 심었다고 하며 심을 당시 이미 수령이 50년 이상 된 것이라 지금의 나이를 짐작케 한다.



호수면 우측에 하늘색 지붕으로 높이 솟아 있는 것이 취수탑이다. 우리나라 취수탑 중 가장 오래된 취수탑으로서 댐 아래에 위치한 석조 건축구조물로 돼있는 취수터널로 연결 돼 있다. 취수터널출입구 상부에는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이었던 사이토 마코토가 쓴 ‘원정윤군생’이 돌에 새겨져 있다. ‘깨끗한 물은 많은 생명체를 윤택하게 한다.’라는 뜻으로 사이토 마코토가 직접 새겼다. 당시 총독이었던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투척한 사건이 강우규 의사 항일의거 사건이다. 


이처럼 법기수원지는 일제강점기 시절의 아픈 역사적 상처까지 간직한 채 남겨져 있다. 비록 일제의 주도하에 댐 건설이 진행 되었지만 실제 댐 건성의 주역은 우리의 선조들이며 우리의 근대 문화유산이다. 





비밀의 문이 열리고 공개된 법기수원지에는 멈춰진 역사가 호수에 아로 새겨져 간직되고 있다. 높이 솟은 편백나무에는 다람쥐가 뛰어 다녔고, 호수에는 오리가 떠 다녔다. 나무에는 새가 날라 다녔고 그 옆에는 신민들이 있었다. 법기수원지의 80여 년간 때 묻지 않은 자연이 아픈 역사를 이겨낸 우리들을 위로해 주고 있다. 본격적인 겨울이 오기 전, 여러 분들도 자연과 하나 된 법기수원지에서 자연을 경험해 보기 바란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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