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도시재생으로 미래를 담은 경주에 과거로 향하는 시간여행을 떠났습니다. 옛 신라시대의 유적지부터 역사문화탐방까지 다양한 것을 체험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여행의 꽃은 맛 기행, 멋 기행!

음식맛보기를 시작으로 여행을 시작했는데요. 저는 도예가인 아버지와 미술공예가 자녀가 함께 운영하는 가족식당인 농가맛집 '고두반'에 방문하였습니다. 이 곳은 농가 안에 위치해있으며 유명인들이 다녀간 곳이기도 합니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동화감성을 가진 부모님들도 좋아하는 미술공예품과 도예체험을 해 볼 수 있고 작품구입도 가능한 곳입니다.


경주에 위치한 농가맛집 고두반

 

맛있는 식사 후 스탬프 투어를 하였습니다


대릉원을 둘러보고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을 관측하던 천문대와 천마총에서의 금관의 장신구들의 웅장함을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안압지로 알려진 동궁과 월지를 둘러보았는데요. 동궁과 월지는 신라 왕국의 별궁터로,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을만큼 품격 있는 건축물입니다. 잔잔한 호수를 들여다보니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 온 걸 느꼈습니다. 



경주의 주요 유적지 앞에서 기념사진

 

경주의 도시재생, 어떻게 이루어질까?

경주시 도시재생과에 근무하고 계시는 송현정님과 인터뷰를 해보았습니다.

 

Q : 경주에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관광명소가 된 곳을 알려주세요.

A : 현재 경주시는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하는 단계로 도시재생사업으로 관광 명소화 된 곳은 없습니다. 추후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공간이 조성되고 사업이 진행되어 활성화되면 재방문 부탁드립니다.

 

Q : 경주는 3대가 함께 여행을 할 수 있는 여행지라고 생각합니다. 연령별로 추천 해 주고 싶은 곳이 있다면 간략하게 특징과 장점을 알려주세요.

A : 10-20대에게는 경주월드, 황리단길을 추천합니다. 각종 최신 놀이시설과 여름철에는 캘리포니아 비치 등이 있는 경주월드는 최근 각종 미디어를 통해 더욱 유명해 진 곳인데요. 많은 젊은 층이 찾고 있는 경주의 관광지입니다. 트렌디한 카페와 음식점이 밀집되어 있는 곳인 황리단길은 기존의 역사 문화 도시라는 경주의 장점외에 감각적이고 역동적인 경주를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30-40대에게는 동궁원과 교촌마을을 추천해드립니다. 동궁원은 옛 안압지였던 동궁과 월지에 기이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는 문무왕의 삼국사기 기록과 경주만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역사적 콘텐츠를 스토리텔링하여 현대적으로 재현한 곳입니다. 현재는 버드파크와 각종 식물이 있는 곳으로 넓은광장에서 공간 제약 없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경주 교촌마을에는 향교와 최씨 고택을 중심으로 전통한옥이 많이 남아 있으며, 인근에 첨성대, 월성, 계림 등 중요한 신라유적이 많이 분포하고 있어 신라 문화속의 조선 문화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떡 매치기, 한복체험 등 각종 전통 체험이 많아 가족단위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입니다.

50-60대에게는 옛날 소품들이 즐비한 추억의 달동네와 양남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을 추천합니다. 특히 양남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은 파도소리를 들으며 부채꼴 주상절리 (천연기념물 제536)를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입니다.


Q: 마지막으로 도시재생 사업의 특징과 효과에 대해 알려주세요. 그리고 어린이들이 좋아하고 공부에 도움되는 공간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리며, 어린이들이 견학 할 때 주의 할 점이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A : 도시재생이란 인구의 감소, 산업구조의 변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주거환경의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지역역량의 강화, 새로운 기능의 도입·창출 및 지역자원의 활용을 통하여 경제적·사회적·물리적·환경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도시재생사업은 위의 도시재생을 활성화시키기 위하여 이루어지는 사업입니다. 경주시 전체 곳곳에 많은 역사문화와 유적이 있는데요. 교과서에 나오는 곳을 찾아 방문해보는 곳도 학교공부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되며, 견학 시에는 보호자의 바른 인솔하게 안전하게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다양한 역사유적이 존재하는 곳, 경주

불국사에 대웅전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국보 제20호 다보탑과 왼쪽에 국보 제21호 석가탑이 서있는데요. 다보탑은 10원짜리 동전 뒷면에서도 볼 수 있듯이 복잡한 형태의 화려한 멋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아한 형태의 석가탑은 주변 건축물과 어우러져 다양성과 조화를 이루는 예술미를 보여줍니다. 그 외에도 불국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수많은 사리탑들입니다. 대웅전, 극락전, 비로전에서 다양한 사리탑을 전시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경주의 대표 유적지 석가탑과 다보탑

 

불국사는 삼국통일 이후 문화적 역량이 높았던 경덕왕 시절에 만들어졌는데요. 신라인의 강한 신앙심이 발달한 과학 기술과 뛰어난 건축, 예술적 감수성에 힘입어 현실화 되었습니다. 대웅전, 극락전, 비로전 세 영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대웅전 영역의 마당에 마주 보고 서 있는 석가탑과 다보탑은 불국사 건축의 백미입니다.

 

수업시간에 배웠던 다양한 유적이 있는 경주여행에서는 발달한 과학 기술과 건축 및 예술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통해 현재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이 과거 때부터 이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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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손꼽아 방학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며 부모님들은 어떻게 하면 보다 알차게 방학을 보내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실 텐데요. 



그래서 준비해 보았습니다. 다양한 체험과 배움이 가능한 곳, 여름방학에 가 볼만한 국토교통 현장체험학습장들을 지금부터 소개 할게요.:)



1. 다채로운 자연환경 현장체험학습장, 한국도로공사수목원





한국도로공사수목원은 도심에 익숙해져 있는 아이들이 자연환경을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여름 생태학교를 운영하여 아이들에게 식물에 대한 기초지식 및 퀴즈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진행하여 자연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줍니다.



2. 역사와 지리 교육 현장체험학습장,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박물관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박물관은 우리 선조들의 얼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고지도부터 측량, 지도제작 등에 관한 자료들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랍니다. 측량장비를 이용한 제작과정을 직접 볼 수 있고 생생한 체험 공간도 있어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와 지리를 교육을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3. 교통안전교육 안산 어린이 현장체험학습장



5월~7월에는 어린이 교통사고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시기라고 하는데요. 혹여나, 내 아이가 사고를 당하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있진 않으신가요. 그렇다면 안산 어린이 교통안전 현장체험학습장을 방문해보세요. 실내에서는 차내 안전 질서 교육을, 실외에서는 주행연습을 통해 올바른 교통안전 인식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습니다.




4.항공사고 예방 항공안전 현장체험학습장





항공안전 현장체험학습장은 최근 비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항공사고를 예방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설립되었다고 하는데요. 어린 아이들에게 항공사고 발생 시 탈출 행동 요령과 구명 용품 사용법을 직접 교육하고 체험하게 하여 항공사고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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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사과국수

    방학에 갈만한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2015.07.03 17:53 [ ADDR : EDIT/ DEL : REPLY ]
  3. 최승원

    좋은정보입니다. 방학동안 많이 이용하였으면 좋겠네요

    2015.07.03 18:00 [ ADDR : EDIT/ DEL : REPLY ]
  4. 김효민

    여름방학때 가면 좋을것 같아요~

    2015.07.03 23:56 [ ADDR : EDIT/ DEL : REPLY ]
  5. 유혜민

    즐기기도 좋고 교육도 되서 좋은거같아요!!

    2015.07.04 20:26 [ ADDR : EDIT/ DEL : REPLY ]
  6. 유혜민

    즐기기도 좋고 교육도 되서 좋은거같아요!!

    2015.07.04 20:26 [ ADDR : EDIT/ DEL : REPLY ]
  7. sysea47

    재미있는 체험활동도 하면서 여러가지 지식도 알아갈 수 있어 참 유익한 곳인 것 같네요.
    여름방학 때 꼭 한 번 가 보고 싶습니다^^

    2015.07.05 21:55 [ ADDR : EDIT/ DEL : REPLY ]
  8. jee

    가족들과 함께 가고픈 곳이들이네요

    2015.07.06 13:51 [ ADDR : EDIT/ DEL : REPLY ]
  9. 알찬정보 감사합니다!

    2015.07.06 17:12 [ ADDR : EDIT/ DEL : REPLY ]
  10. Nightshade

    우왕~! 꼭 한 번 가족들과 가보고 싶네요!

    2015.07.06 21:04 [ ADDR : EDIT/ DEL : REPLY ]
  11. wmfm

    유용한 정보 감사합니다~

    2015.07.07 08:50 [ ADDR : EDIT/ DEL : REPLY ]
  12. 따람

    유용한정보네요

    2015.07.07 16:11 [ ADDR : EDIT/ DEL : REPLY ]
  13. 앨리스심

    동생들과 꼭 가보고 싶습니다.
    정말 재미있겠어요.

    2015.07.08 23:23 [ ADDR : EDIT/ DEL : REPLY ]
  14. 씨앗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도 참 좋은 곳이네요~^^

    2015.07.08 23:57 [ ADDR : EDIT/ DEL : REPLY ]
  15. ㅎㅎ

    잘읽었습니다ㅎㅎ

    2015.07.09 09:09 [ ADDR : EDIT/ DEL : REPLY ]
  16. 오호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2015.07.09 11:3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7. 와우~좋은 정보네요^^

    2015.07.23 15:53 [ ADDR : EDIT/ DEL : REPLY ]
  18. 좋은정보네요

    2015.07.27 17:11 [ ADDR : EDIT/ DEL : REPLY ]
  19. 공룡

    제 동생들이 좋아할 것 같네요.

    2015.07.29 07:36 [ ADDR : EDIT/ DEL : REPLY ]
  20. urbanpark

    우와 어른인 저도 가보고싶어지는 곳이네요!!ㅎㅎ

    2015.08.23 01:33 [ ADDR : EDIT/ DEL : REPLY ]
  21. 도로공사 수목원은 가까운 전주에 있어서 몇 번 가보았는데 좋더라구요!

    2015.10.14 03:2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법성진성은 영광군 법성면 진내리 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하지만 법성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 대부분 법성진성의 존재를 알지 못했어요. 

참 슬픈 일이 아닌가요?

역사를 담은 가치 있는 곳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간다는 사실이...
저 또한 법성이 원래 성이었다는 사실을 취재를 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숲쟁이에서 뛰어 놀 줄만 알았지 숲쟁이 주변을 주의 깊게 둘러보지 못한 제가 너무 바보 같았고, 이제라도 내 고장의 비밀을 알게 되어 기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법성진성의 남겨진 성벽을 둘러보며 법성의 특별함을 이 기사에 담아 보았습니다.


(출처 : 문화재청)

법성진성 안에는 조선시대 대부분의 유적들이 산재되어 있다고 합니다. 법성진성은 중종 9년(1514년)에 돌로 성을 처음 쌓았다고 ‘신증 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 ‘법성진 진지’의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처 : 법성포초등학교 100년사)




세월이 묻어나는 법성진성의 성벽입니다.



처음 법성진성의 성벽을 마주했을 때 가슴이 두근두근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가파른 언덕을 따라 이어진 법성진성의 성벽은 이끼가 끼고 군데군데 부서지고 성벽이 모습이 많이 변했지만 법성을 지켜주던 진성의 위엄과 아름다움은 아직도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법성진성 성벽을 따라 울창한 소나무가 줄을 지어 있습니다. 이 소나무 들은 거센 칠산바다의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입니다. 성벽 위 소나무 길을 따라 걷다보면 숲쟁이를 만날 수 있답니다!




법성진성 산 아래 바닷가에는 다랑가지 라는 큰 포구가 있습니다.당시에 법성포 앞 바닷물이 빠지면 갯벌 때문에 배가 들어오지 못하였는데, 이곳 월랑대 앞 다랑가지 콧댕이만 배가 접안할 수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눈꼽지고 뺏야운 놈은 얼씬도 못한다.” 는 곳이 이곳 다랑가지 콧댕이 였었고, 황금의 부두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1. 월랑대 올라가는 계단
옛날에는 이 계단 아래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지만 현재는 간척되어 마을을 이루고 있습니다.

2. 월랑대 벽에 새겨진 글

3. 월랑대의 제월정
630년 후기에 지었을 것으로 추정 되는 풍류정자. 

4. 제월정 터와 주춧돌
1957년 주민들에 의해 복원되었다가 1974년 화재로 모두 타버렸고 현재는 주춧돌과 터만 남아있습다.



법성포 동쪽에 있는 고개

옛날에는 법성포를 드나들려면 반드시 넘어야 했던 유일한 육로였다고 해요.

예전에는 이 큰 동짓재 마루에 노거수가 많았는데 어려운 시절에 마을 사람들이 겨울 땔감으로 베어 쓰려다가 직(稷:오곡을 관장하는 신의 형벌)을 맞아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시름시름 앓았다는 일화도 전래되고 있습니다.

저도 어릴 적 법성포초등학교를 다녔을 때 이 동짓재를 꼭 넘어야 초등학교를 갈 수 있었어요. 
집에서 꼬박 30분을 걸으며 언덕 옆에 자란 산딸기를 따먹고 친구들과 도란도란 동짓재를 넘었답니다! 그래서 동짓재는 저의 학창시절의 추억이 어린 소중한 공간입니다~!!




일제강점기 일제에 의해 지어진 콘크리트로 된 하굿둑

그 당시 멀리서 하굿둑을 보면 하얀색으로 보였다고 하여 흰다리라 불린다고 합니다.




소머리로 여겼던 대통재는 중국의 사신을 기다리는 고개라는 뜻으로 중국의 사신이 넘나들었던 고개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외에 법성에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지명이 많답니다. 
법성포는 오래전부터 풍수지리상 수중와우(水中臥牛:물가운데 누워있는 소)형국이라고 전래되었다고 해요. 대통재라는 곳은 소머리에 해당하는 곳이고, 숲쟁이는 소 허리에, 조아머리는 소 머리의 왼쪽편, 구시미는 소의 여물통 모습이라 하여 구시미로 불리우고 있다고 합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보면 조그마한 시골의 한 구석의 이름도 조상들의 커다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자신의 고장에 특이한 이름이 있다면 그 의미를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겟죠?

이상 문희아 기자였습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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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름다운 관광지로만 떠올리는 제주!

 

 

하지만 이번에는 많은 아픔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제주의 특별한 지역을 소개합니다.

 

 

바로 '제주 알뜨르 비행장'인데요.

 

 

이름조차 생소한 이곳은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알뜨르라는 이름은 아래를 뜻하는 제주도 사투리인 '알'과 들판을 뜻하는 사투리인 '뜨르'가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알뜨르를 보며 이곳이 아름다운 제주의 송악산 아래에 위치해서 지어진 이름은 아닐까 추측해보기도 했습니다.

 

 

알뜨르 비행장은 서울의 여의도 넓이만한 비행장으로,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을 폭격하기 위한 전략기지로 활용했습니다.

 

 

 

 

 

▲ 알뜨르 비행장의 격납고들

 

 

 

 

자동차를 타고 한참을 달리다 보니 들판 곳곳에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둥근 지붕의 구조물들이 보였는데요.

 

 

 

 

 

▲ 알뜨르 비행장의 제주 할머니

 

 

 

 

차에서 내려 밭에서 일하고 계신 할머니께 여쭤보니 비행기 격납고라고 하셨습니다. 덧붙여 1920년대 중반에 일본 사람들이 전쟁을 하기 위해 이 곳 모슬포 사람들을 강제로 데려다 만든 곳이라고도 설명해주셨습니다. 이 때 제주도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하는데요. 아픈 역사를 생각하니 정말로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지금도 이곳을 보기 위해 찾아온다고 할머니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 '제로센' 비행기를 보관하고 있는 격납고

 

 

 

 

 

▲ 격납고 안의 '제로센' 비행기

 

 

 

 

현재 알뜨르 비행장에는 일본이 만든 38개의 격납고 중 20개가 남아있는데요. 20개의 격납고 중 한 곳에는 '제로센'이라는 비행기가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이 비행기는 일본의 '가미가제 특공대'가 사용했던 비행기라고 합니다.

 

 

이렇듯 제주는 일제강점기 때의 아픔 뿐만 아니라, 몽골의 침략과 제주 4·3사건까지 많은 아픔이 있었던 곳입니다.

 

 

하지만 이를 보상하기라도 하듯 2005년에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되었는데요.

 

 

다음에 제주도에 갈 기회가 있다면, 제주 전쟁역사평화박물관에도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다가올 광복절을 맞이하며 제주에 여행가는 사람들도 제주도의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제주도의 아픈 역사도 함께 찾아가본다면 더 의미있는 여행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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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태규

    즐거웟겟네요^^ 제주도에 이런곳도 있다니~

    2014.10.24 18:23 [ ADDR : EDIT/ DEL : REPLY ]
  2. 박경준

    제주도의 슬픈 역사..

    2014.10.26 23:16 [ ADDR : EDIT/ DEL : REPLY ]

교통광장환승통로캐노피 설치환승거리날씨 불편 줄어

 

 

올해 천안역과 신탄진역에 교통광장이 조성되고, 조치원역에 환승통로가, 울산역과 청주역에는 캐노피(canopy)가 설치됩니다.

 

국토교통부(장관 서승환)는 철도 이용객이 보다 편리하고 빠르게 철도역에 접근하고 철도역에서 버스, 택시, 승용차, 자전거 등으로 보다 쉽게 갈아탈 수 있도록 철도역 환승동선을 개선하는 환승동선개선사업의 2014년 대상사업을 확정했습니다.

* 철도역 환승동선 개선사업 : 철도 이용객의 환승 편의를 제고하기 위해 2009년부터 교통광장 조성(환승시설 재배치, 진입로 설치 등), 자전거 주차장 구축 및 캐노피를 설치



<교통광장 조성 및 자전거 주차장 구축 사례>


  교통광장 조성


 전주역(개선 전)

 전주역(개선 후)

 

 

 

 천안역(개선 전)

  천안역(개선 후)



 자전거 주차장


 서대전역

태화강역 

밀양역 


규모 : 지상 3층, 지하 2층

주차가능대수 : 162대

 규모 : 지상 3층, 지하 2층

주차가능대수 : 168대

 규모 : 지상 3층, 지하 2층

주차가능대수 : 208대


 

2014년 사업대상 역을 선정하기 위해 201310월부터 지자체를 대상으로 수요조사를 실시하고, 20143월 국토교통부철도공사공단지자체 합동으로 현지실사 등을 거쳐 5개 사업대상 역(57억 원)을 확정하였습니다.


세종시 조치원역은 역의 서측(침산리)에 거주하는 주민(조치원읍 인구의 약 70%, 3만 명)의 역사이용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역사 맞이방(2)에서 서측 버스정류장 방면을 직접 연결하는 환승 통로를 설치합니다버스정류장까지 거리는 당초 191m에서 75m로 단축되고, 환승시간또한 기존 3분대에서 1분대로 개선됩니다.

 

신탄진역과 천안역은 상시 교통체증 해소 및 대중교통 환승 편의를 위해 교통광장(버스택시승용차 베이, 캐노피)을 조성하여 환승거리를 기존 100m, 75m에서 52m, 55m로 개선됩니다. 

* 교통광장 조성 : 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버스정류장을 철도역 앞으로 이동, 역사 진입로, 승객대기실 및 캐노피 설치 등

 

울산역과 청주역은 역사 입구에서부터 버스택시 정류장까지 이동통로에 눈, , 햇빛 등을 가려주는 캐노피를 설치하는 사업을 추진합니다.

 

조무영 철도정책과장은 이번 사업을 통해 철도역 연계교통 및 환승체계가 구축되면 대중교통수단간 환승거리가 단축되어 철도를 포함한 대중교통의 이용이 사업 이전보다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철도역 환승동선 개선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철도이용객에게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 나아갈 계획이라고 밝히며 편리하고 빠른 철도의 많은 이용을 당부하였습니다.




140414(조간) 천안,조치원,울산 등 5개 철도역 환승 편리해져(철도정책과).hwp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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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완전좋아

    2018.03.03 07:33 [ ADDR : EDIT/ DEL : REPLY ]


미군이 반환하는 용산공원 예정지를 다녀와서_ 신용우(글, 사진)

 


지금은 2014년 

일제가 이 강토를 송두리째 짓밟은 한일강제병합의 전초전으로 외교권을 빼앗으려고, 1905년 을사늑약을 맺은 지 109년이 되는 해다. 인간의 108번뇌를 한해에 하나씩 속죄하였다 해도 이미 마친 그 다음해


민족자존을 외치며 홑바지 저고리 차림의 농민들이 죽창을 들고 왜놈들과 맞서 조국의 자주권을 수호하려던 1894년 갑오동학농민혁명이 60갑자를 두 바퀴 돌아 120주년이 되는 갑오년


선열들의 자존을 위한 함성이 지금도 생생하게 노도처럼 들려온 까닭이던가하나 더하여, 잃어버린 우리 영토를 되찾자고 항상 외치던 내 소리가 들렸던 것일까뜻하지 않은 기회에 가보고 싶던 곳을 자세히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잃어버린 우리 땅

기껏해야 3,000년 역사의 중국이 요동이라 부르다가 지금은 만주라고 부르며 깔고 앉은, 우리의 고조선 이래 고구려와 대진국이 지배하던 땅, 구려벌, 그 땅


고작 1,500년의 역사밖에 간직하지 못한 일본이라는 나라가 메이지유신으로 근대 국가의 꼴을 갖추면서 제일 먼저 탐을 내던 땅, 유구한 우리의 역사를 짓밟기 위한 전진기지로 삼기위해 강제로 자신들의 땅으로 병합하고 지금도 우리가 그 땅을 돌려 달라고 할까봐 독도를 가지고 헛소리를 일삼는 대마도, 그 땅


아무리 줄여 잡아도 5,000년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가 숨 쉬는 우리 땅, 구려벌과 대마도를 수복하자고 외치는 내 소리가 들렸던 것일까구려벌이나 대마도처럼 멀리 있는 것도, 커다란 덩어리도 아니지만 아주 가까운 곳에 두고도 우리 땅인 것을 잊을 뻔한 땅일제가 을사늑약으로 밀고 들어오던 날부터만 계산해도 무려 109년이라는 긴 세월을 잊고 살았던 땅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 복판에 있으면서도 우리 주권이 미치지 못해 내 땅이면서도 내 땅이라고 말하지 못하던 땅.

내 땅을 내 땅이라 하지 못하고 내가 그곳에 살지 못하니 이 어찌 내가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으랴?”


조선 광해군 때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의 홍길동이 부르짖을 법한 소리지만 실제로 서울 한 복판에 존재하고 있는 현실이다다행히 반환되어 다시 찾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해야 할 땅이다.

 

용산 미군기지가 반납되면 그 곳에 들어설 예정인 공원에 관한 설명과 그곳에 남아있는 사료적 가치가 있는 것들에 대해 듣기위해,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 공원정책과장의 초대를 받고 국토부 용산공원조성 추진기획단 사무실에서 국토부 직원 몇 분과 합류를 해서 용산 미군기지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경이었다.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가기 위해 밤잠을 설치던 그 심정보다 더 설렜다. 지금이야 레저 문화가 발달하다 보니 가족 단위의 여행도 많지만 50대 중반의 나에게는 어릴 적 레저의 추억이 별로 없다. 기껏해야 냇가에서 천렵을 하는 형들이나 아버지 뒤에 깡통을 들고 쫓아다니며 붕어와 송사리를 담은 것이 전부일 뿐이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레저에 대한 어릴 적 추억으로는 당연히 소풍이나 수학여행이 우선이다. 그 중에서도 초등하교 때의 소풍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소풍가기 전날이면 내일은 제발 비가 오지 않게 해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를 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중요한 소풍의 추억보다 더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며, 우리를 안내 하기로 한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의 담당 주무관의 기초 설명을 듣는 순간 조금은 섭섭했다.


기지 안에 남아 있는 우리나라 유적은 조선시대에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기 위해 명산이나 커다란 하천 등지에 단을 수축한 후 국가에서 제를 지내던 산천단(山川壇)악해독단(嶽海瀆壇)’ 유적이 전부이고 나머지는 미군이 지었거나 아니면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이 고작이라는 거다설마 그럴까 하는 마음에 이동창 주무관이 잘 못 알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마저 들었다그러나 그런 바람도 잠시였다.


부대에 들어가기 위해 주민등록증을 내고 일종의 수속을 하는데 ! 정말 이곳이 내가 사는 대한민국의 영토가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의문이 드는 순간 설령 유적이 있다 손 치더라도 제대로 보존되었을 까닭이 없다는 슬픔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 밀려오던 슬픔은 차량을 이용해서 기지로 들어서는 순간 현실과 직면했다. 눈앞에 펼쳐진 넓은 미군기지의 모습은 유적 같은 것에는 신경도 안 쓸 그런 모습이었다. 그건 무슨 특별한 것을 보아서가 아니다. 그저 온 몸에 다가오는 느낌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제발 이번에는 내 직감이 틀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다시 한 번 들었다.

 


 

<그림 1> 미국관사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미군들이 체육시설로 쓰는 야구장과 축구장이다. 네 개가 있다고 했던 것 같다그리고 다음으로 보이는 것이 미군 관사로 쓰이는 집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이었다우리나라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전원주택이라도 되는 양 집 한 채가 넓은 면적을 편안하게 차지하고 있었다아마도 사병들은 막사를 이용할 테니 장교 내지는 간부 숙소인 듯싶었다.


*그림 1 : 참고로 이후에 게재되는 사진들이 차 안에서 이동하면서 찍은 사진들이라 상태가 별로 선명하지 못한 것들도 있다는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막사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미군들이 이용하는 편의 시설과 유치원 등이 있는 곳과 국내 각 미군기지와 연계하는 버스들이 다니는 버스터미널을 만날 수 있었다.(그림 2, 3)

 


 <그림 2 기지내 편의시설을 위한 건물들>

 <그림 3 편의 시설>



이어서 우리가 지난 곳은 삼각지와 녹사평역을 잇는 도로위로 놓인 고가도로다. 그 고가 도로는 이곳이 용산 공원으로 재탄생을 하면 지하통로로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아울러 지금은 물이 말라 건천으로 남은 기지내의 만초천의 지류 역시 청계천처럼 물이 흐르는 곳으로 만들 계획이라고도 했다.


눈에 보이는 씁쓸한 풍경에 비하면 계획이라고는 하지만 아주 듣기 좋은 말이었다.


그 때 눈에 들어 온 이상한 풍경이 있었다. 분명히 막사가 있는데 텐트를 치고 숙소를 만들어 놓고 그곳에서 생활하는 군인들이 눈에 들어 온 것이다.(그림 4) 우리가 의아해 하자 그곳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는 일행 중 한 명이 설명을 해 줬다.


<그림 4 : 훈련을 위해 온 미군을 위한 기지내 캠프>

 

우리 식으로 생각을 하자면 저 사람들은 일종의 예비군이라고 보면 됩니다. 예비군 훈련을 받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예비역이나 혹은 군인들 중에서 본토로 귀환했던 사람 중에서 한 미 연합 훈련 등을 위해 다시 왔는데 막사에는 지금 이곳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이 생활하고 있으니까 저렇게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훈련 중의 일부입니다.”


전방에서 군대생활을 육군 병장으로 마치고 예비군 훈련까지 착실하게 받은 나로서는 금방 이해가 가는 말이었다. 아울러 주한 미군이 주둔하는 목적이 무엇이며 이유는 무엇이고, 주둔 비 부담 비율이 어떻고 등등을 떠나, 자유와 평화라는 이름 아래 머나먼 남의 나라에 와서 고생하는 그들에 대한 경의로운 마음이 진심으로 우러나왔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어떤 논리를 내 세웠던 간에, 저 훈련에 참여한 병사들 개개인의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일단은 지구 반대편에서 자유와 평화 수호라는 명분을 위해 이곳까지 올 수 있는 결정을 했다는 것이 대단한 용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는 우리나라가 전쟁 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보기 때문에, 미군이 주둔한 곳에서는 우리나라를 최전방으로 취급 한다고 알고 있기에 더더욱 그랬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 번은 해볼 수 있는 일일 것 같지만 실제 그런 결정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군대 생활을 해 본 사람들, 특히 전방에서 군대 생활을 해 본 사람들은 내 말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실제 상황이라는 말과 함께 비상이 걸리면, 겉으로는 태연하고 용맹한 척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이게 또 뭔 일이냐고 마음을 조이곤 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하기야 우리 군대 생활할 때는 연일 북에서 대남방송을 쏟아 부으며 긴장도 많이 고조되기도 했던 때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군대는 군대고 전방은 전방이라는 원칙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차가 기지의 북쪽으로 가자 이 근방이 미군이 이전하면서 미국 대사관 부지가 될 것이라는 설명을 들으면서 그렇게도 고대하던 악해독단유적이 있다는 곳에 도착했다.


순간 나는 으악!’하고 비명을 지를 뻔 했다아니 단순히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목이 터지라고 소리쳐 대상도 없는 이에게 욕을 퍼 붓고 싶었다.


제게 무슨 일인가?


악해독단유적이라고 알려진 곳 한 쪽 귀퉁이에는 주춧돌 격으로 쓰였던 돌로 보이는 것과 기둥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돌 두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것도 돌에 남아있는 파인 자국은 콘크리트로 막아버린 채로 남아있었다.(그림 5) 그리고 반대편 귀퉁이에는 그나마 돌 한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그림 6)


 <그림 5 악해독단 유적1>

그림 6 악해독단 유적2>


그게 전부였다그 바로 옆 불과 2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미군이 막사를 지어 놓았고, 그들이 쉼터로 사용하기 위해 가져다 놓은 야외용 테이블은 그나마 남은 유적의 가운데 놓여 두 유적의 존재감을 흐리게 하고 있었다. 더더욱 테이블 주위에 놓였던 의자가 유적 코앞에서 나뒹구는 그런 풍경을 보니 눈에는 절로 눈물이 맺혔다.


행여 일행 중 누가 볼 새라 부끄러워 일부러 돌을 드려다 보는 척하며 허리를 숙이고 있다가 일행이 저만큼 가고 나서야 허리를 펴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부랴부랴 뒤 따랐다.


이게 무슨 일인가여기가 거기란 말인가?

109년 만에 만나면서도 미처 108번뇌도 다스리지 못하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만났기에 그 모습에 이리도 가슴이 미어진다는 말인가도대체 얼마를 더 가서 어떤 모습으로 만나면 이 가슴이 이리도 시리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 얼마나 먼저 어떻게 만났다면 이 가슴이 이리 저리지 않아도 되었단 말인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지 못하는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이리도 쓰라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인가? 그게 아니라면 이 나라에서 태어난 것이 무슨 죄이기에 이리도 가슴이 아파야 한다는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고 눈물이 자꾸 흘러 밑에서 잠깐 멈춰달라고 하고 차 안에서 다시 한 번 유적을 찍어 보았다.(그림 7)  내 눈에 보이지 않던 유적이 사진 속에는 나오지 않을까?’


저 축대에 있는 돌중에 옛날부터 그 자리에 있던 돌이 사진 속에서 나와 줄 것을 간절히 바라면서 사진을 찍었다. 내가 잘못 보아서 남겨진 유적을 보지 못한 것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막사 오른쪽 한 귀퉁이에 이미 보았던 유적의 흔적뿐이다. 그것도 막사 가 바로 코앞에 지어지는 바람에 막사를 지을 때 쓰다 남은 돌덩어리처럼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그림 8)


<그림 7 : ‘악해독단’ 유적지 밑에서 찍은 모습>

 <그림 8 : ‘악해독단의 흔적이 오른쪽 귀퉁이에 보인다.>


그러나 곧바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나마 저게 희망이다

흔적이라도 남아 있다는 것이 희망이다.

게다가 안내를 해 주던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의 담당 주무관이 아주 희망적인 말을 해 주었다.


현재 미군기지 안에 있는 건물이 약 1,000여 동인데 그 중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의 기초위에 그대로 지은 건물이 상당수 된다는 것이다. 미군이 일제가 쓰던 건물의 기초는 그대로 사용해서 건물을 지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제나 미군이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용산의 이 땅을 점유하면서 발굴을 안 해서 그렇지 더 많은 유적들이 반드시 묻혀있고 그것을 발굴할 것이라는 예고편으로 들렸다. 그 말을 한 가닥 희망으로 잡아서인지 그제야 텅 빈 것 같던 가슴에 아주 적게나마 무언가 차 오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쓸쓸하게 남은 악해독단유적의 사진을 찍으며 자리를 떠나는 순간, 그나마 돌 네 개라도 유적이 남았을 때 반환 받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가 없었다. 그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셔터를 한 번 더 눌렀다. 저 돌들마저 사라진 뒤라면 어찌 했을까를 생각하니 하느님 정말 감사합니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아울러,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악해독단의 유적이 방치된 것을 보면서 분명히 공원을 개발하다 보면 더 많은 유적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었다. 일제가 짓밟고 미군이 들어와서도 관리를 안 했는데도 저렇게 유적이 남아 있다. 그들에게는 유적 같은 것은 관심 밖이었던 것이니, 지하에 매몰되거나 아니면 건물을 짓는데도 상관하지 않았기에 건물 어느 부분에 숨겨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음먹고 찾으면 더 많을 것이다. 그 때는 그 소중한 것들을 잘 보존하는 것은 물론 우리의 아픈 역사와 함께 반드시 병행해서 남기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국토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에서 공원을 설계하고 또 앞으로 시공할 분들이 잘 챙길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분들도 역사와 문화를 외면한 개발이라는 것이 가져다 줄 것은 종국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기에 오늘 이런 기회를 나에게 주신 분들이다. 역사가 없는 민족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분들이니 훌륭하게 마무리 지어 주실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런 희망이 있기에 세상을 아름답게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악해독단유적을 보고 난 후부터 본격적으로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코스를 그렇게 잡았으니까 그런 것이겠지만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들은 빨간 벽돌로 지어진 것들이 대부분 이었다.(그림 9) 그 건물들에는 처마 밑에 일제의 상징인 별 마크가 새겨져 있었는데 미 8군 마크로 바꾼 곳도 있지만 미처 바꾸는 것을 잊은 곳도 있었다.(그림 10) 어차피 그들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으리라.


 

 <그림 9  일본군이 지은 건물로 미군 사무동으로 쓰인다.>

<그림 10 처마 밑의 별>



그런데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띠는 건물이 있었다.(그림11)


<그림 11 : 일본군사령부로 쓰던 주한미군사령부>


지금은 주한미군 사령부로 쓰이는 곳이라 더 가까이 가서 볼 수가 없어서 안에야 빨간 벽돌로 지어진 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겉은 빨간색이 아니다. 그러나 건물의 모양이나 윤곽으로 볼 때 빨간 벽돌 건물에 색을 칠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저 건물이 바로 일제 역시 자신들의 사령부로 쓰던 건물이라고 한다. 갑자기 그 건물 앞에서 거총 자세를 취하고 오가는 이들에게 독한 눈빛을 쏘아대는 일제 헌병들과 그 앞을 오가고 있는 일제 고위 장교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부끄러운 역사도 역사라지만 그 앞을 오가고 있는 일본 제국주의 고위 장교들에게 달려가서 실컷 후려패 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소리치고 싶었다.


강탈해간 우리의 시간들을 내 놓아라.

네놈들에게 우리의 아픈 과거를 보상하라고 하기도 싫다. 네놈들이 우리를 무력으로 짓밟던 그 이전 시절로 돌려보내라고 우기지도 않는다. 다만 네놈들이 왜곡하기 위해 말살시킨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찾을 수 있는, 이 나라 백성들보다 네놈들의 역사와 문화가 앞서있는 민족이라고 날조하기 위한 연구 자료로 사용하려고 강탈해 가서 감추어둔 우리의 근거들만이라도 내 놓아라.


잃어버린 시간 속에 묻혀버린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내 손으로 찾아야겠다.” 


그러나 그렇게 뒤끓던 울분도 잠시였다일제강점기에 감옥으로 쓰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그곳에서 무언가 기대를 했는데, 아뿔싸!


그곳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감옥을 둘러쌌던 담벼락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감옥을 둘러쌌던 담벼락 안에는 미군 막사가 여러 동 지어져 있었다. 외벽을 드나드는 출입구에서도 막사가 보인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나마 남은 담장의 입구도 마음대로 막아버리고 다른 곳을 헐어서 입구로 사용하고 있었다.(그림 12) 감옥 담장 내부 역시 미군들이 붉은 벽돌위에 시멘트벽을 발라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그림 13). [(그림 12)(그림 13)이 같은 담장의 내, 외부를 찍은 것이다.]


  <그림 12 : 감옥건물 외부담장 외벽>

  <그림 13 : 감옥건물 외부담장 내벽>



그곳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에 감옥으로 쓰인 흔적의 건물은 담장을 제외하고는 겨우 두 개 뿐이었다. 하나는 그 당시 간수들이 사용하던 곳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굴뚝까지 돌출 되어 있는 빨간 벽돌 건물로 미군 막사와 어우러져 있었다.(그림 14) 나머지는 감옥으로 추정되는 건물로 그 역시 겨우 하나 남았는데 그나마 미군이 건물을 증축해서 창고로 쓰는 것 같았다.(그림 15) 우리에게는 몹시도 아픈 추억이건만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한 채 이쪽과 저쪽 끝에 겨우 하나씩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림 14 간수들이 쓰던 것으로 추정되는 빨간 벽돌건물>

 <그림 15 감옥으로 추정되는 건물>



비록 얼마 남지 않은 흔적이나마 흔적을 보는 순간, 이곳을 일제가 감옥으로 썼던 곳이라면 분명 자국의 병사들을 가두기 위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그들이 악성 사상범이나 정치범으로 몰던, 우리의 독립투사들과 수많은 애국선열들 중에서도, 그들이 비밀리에 문초를 해야 했던 분들이 군 사령부인 이곳에서 못된 고초를 당하셨을 것이다. 그런 흔적이 있어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반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조금이나마 바랐는데 이건 아예 흔적도 없어진 것 같았다. 훗날 공원을 조성하면서 무언가 나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했지만 아쉬워 그냥 발길을 떼기 싫은 찰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옛 감옥으로 보이는 (그림 15)의 건물 바로 옆에 얼핏 보아도 예사 물건은 아니고 무슨 형틀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그림 16)


 

<그림 16 :  감옥건물 바로 옆에 있던 형틀(?)>


저게 혹시 우리 선열들을 고문하던 기구라면?’ 하는 끔찍한 생각과 함께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눌렀다. 언젠가 그림에서인지 아니면 사진에서인지 저런 틀을 가지고 고문을 하던 것을 보았던 기억이 나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게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난 현상인지 아니면 정말 보았던 것인지를 밝힐 수 있는 아무런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저것이 없어지지만 않는다면 훗날 공원 조성을 하면서 반드시 밝혀지리라. 그러기 위해서라도 저런 것들을 보호하기 위해 무언가 조처를 취해야 할 것 같았다. 지금까지 보아온 결과라면 우리나라 사람 누군가가 보호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저런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을 것 같았다.


담장 안으로 들어갔다가 이렇다하게 찾은 것도 없이 빈손으로 담장을 되돌아 나오는 것 같은 그 순간에도 선열들의 고통을 느낄 수 있고, 그분들이 울부짖는 것 같은데 그를 뒷받침할 흔적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 여간 마음상하지 않았다.


분명 내 귀에는 그분들의 울부짖음이 환청처럼 들리는데 그 어느 곳에도 흔적이 없다.


하기야 지금 이 곳은 아직 독립을 못한 땅이다. 시멘트 블록과 철조망으로 감싸여 내나라 주권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니 무슨 독립을 논하랴?


어차피 내 나라 전체가 미완의 독립이었다.


카이로와 포츠담 선언에 의해 남들의 손에 의해 주어진 독립이다 보니 제대로 주권도 찾지 못했다. 우리나라를 독립시킨 선언의 주체가 된 소련과 중국은 자기들이 불법으로 깔고 앉아있는 우리 영토를 돌려 줄 생각도 안했다. 우리나라의 주권을 찾아주는 대신 중국은 만주라고 부르면서 요동 땅을, 소련은 연해주를 불법으로 깔고 앉아 우리 고구려의 숨결이 숨 쉬는 구려벌을 강탈해 갔다. 그뿐인가? 자기들이 우리에게 독립을 안겨주는 대신 영토를 강탈하면서 잃어버린 대마도는 찾아 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게다가 소련과 미국이 동시에 연합국이라는 이름으로 같이 반도 안으로 들어오면서 우리 영토의 일부분에 해당하던 한반도마저 남북으로 갈려 일 만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다스리던 영토의 대부분을 잃어버렸다. 겨우 남은 것이라고는 휴전선 이남의 손바닥만 한 땅이 전부이거늘, 그 와중에 이렇게 내 땅임을 말할 수 없는 곳이 있었으니 순국선열들의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나는 내 귀에 들리는 그 울부짖음이 환청이 아니라 나를 질책하는 선조들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면서 아픈 마음을 추스를 길이 없었다.

 

이렇게 돌아보고 나면 울적해 질 것이기에, 그 울적한 마음을 달래 주려고 미리 계획한 것은 아닐 진대, 마치 가라앉은 기분을 달래주려는 것처럼 기지 내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는 둔치산에 올랐다. 이곳에서는 용산구청 신청사가 바로 코앞이다.(그림 17)


<그림 17 : 기지에서 본 용산구청 신청사>

 

멀리 이미 반환된 유엔사 부지도 보인다. 저 땅을 팔아서 이전비용 15조원을 댄다는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서 쓴 웃음이 나왔지만 그렇게라도 108번뇌를 다 하도록 디디지 못했던 우리 땅을 다시 디딜 수 있다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도 해 봤다.

 

돌아오는 길목에 미군들이 타 기지나 본국에서 왔다가 묵는 곳이라는 Dragon Hill Hotel(그림 18)의 이름이 용산(龍山)을 영어로 글자 그대로 번역해서 사용했다는 웃어야 하는지 아니면 아무 의미 없는 일로 치부해야 하는지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 설명을 들으면서 출구로 나섰다.


 <그림 18 : Dragon Hill Hotel>



2014227.

두어 시간으로 짧지만, 아마도 내 생에 절대 잊지 못할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서 선 곳은 바로 처음 들어가기 위해 수속을 하던 곳이다. 마치 외국에 갔을 때 입국 수속을 하고 출국 수속을 하는 기분이다. 주민등록증을 다시 받아 들고 선 곳은 두어 시간 전에 내가 섰던 그곳이다.  분명 여기가 거기임에 틀림이 없건만!


왜 이리도 오래고 긴 시간 후에 선 아주 낯선 곳으로 여겨진다는 말인가왜 이리도 아주 먼 곳을 다녀와서 오랜 만에 서 보는 곳처럼 여겨진다는 말인가

 

여기가 정말 거기라는 말인가?

멍한 기분을 가눌 수 없어 담배 한 대를 더 물고 나서 정신을 가다듬은 후에, 안내를 해 주신 분을 비롯한 모든 일행에게 수고하셨다는 말을 남기고 옥수역으로 향했다그분들이 했던 말을 그대로 믿고 싶었다.


아름다우면서도 시간과 공간이 어우러지는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공원을 만들겠다는 그 말대로 꼭 이뤄지기를 간절히 기도드렸다


오늘 설명을 하면서 앞으로 어떤 테마의 공원을 만들 것이라고 하던 그 말에서 나는 희망을 읽었었다. 그 희망이 나 하나의 희망이 아니라 이 땅에서 태어나고 이 땅에서 죽어가는 우리 모두의 희망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민족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희망 있는 미래를 살 수 있기에, 비록 108번뇌를 넘기고도 아직은 남이 점유하고 있는 곳이지만, 공원으로 다시 태어날 때는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면서 다가오는 우리의 후손들에게 찬란했던 우리의 숨결을 전해주는 그런 모습으로 태어나기를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드렸다.

 

곧 열차가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과 함께 용산의 밤은 내 곁에서 내일을 기약하고 있었다.

 

60갑자를 두 바퀴 돌아온 120년 전, 갑오년의 그 함성이 내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열차가 내 앞에 멈춰 서며 문이 열렸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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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경관 조성사례 발굴을 통해 경관 향상에 기여


국토교통부(장관: 서승환)는 우수 경관 조성사례의 발굴․홍보를 통한 지역의 경관개선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2014 대한민국 경관대상’ 3월 3일부터 3월 25일까지 공모합니다.



올해로 4번째 시행하는 ‘대한민국 경관대상’은 가로, 광장, 공원, 하천 및 오픈스페이스 등 공공공간과 주변 건축물, 자연환경 등이 잘 어우러진 사례를 발굴하여 국민에게 널리 알리고자 기획되었습니다.


이번 공모는 지자체, 공공기관, 시민단체, 기업, 개인 등 경관향상기여한 자는 누구나 응모 가능하며, 시가지경관․역사문화경관농산어촌경관․자연경관․공공디자인5개 경관유형특별상으로 구분하여 실시됩니다.


5개 경관유형별로는 지역의 경관자원을 보전․관리․형성하기 위한 노력과 그 결과로 조성된 우수한 경관을 대상으로 공모하고, 특별상은 경관향상에 기여한 활동 중에서 매년 주제를 선정하여 시상하는데, 올해의 주제도시 경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간판에 대한 우수사례를 발굴하기 위해 ‘간판이 아름다운 거리’로 정하였습니다.


참가신청은 대한민국 경관대상 홈페이지(http://www.k-scape.or.kr) 통해 이루어지며, 기타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출된 작품은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오는 5월 16일 제2회 국토경관의 날발표 및 시상할 예정이며, 당선자에게는 국토교통부 장관상 또는 관련 학회장상*과 함께, 해당 지역에 부착하여 홍보할 수 있는 동판도 수여됩니다.

* 국토교통부 장관상 6점 / 한국경관학회․한국도시설계학회․한국공공디자인학회 학회장상 10점


또한, 상을 수상한 지자체가 국토부에서 실시하는 “국토환경디자인 시범사업*”에 응모할 경우에는 가산점도 받을 수 있습니다.

* 지역경관 향상을 위해 전문가 지원을 통해 건축물, 공공공간 디자인 등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수립하는 사업(‘09~’13년까지 28개소, 총 162억원 지원)


국토교통부는 ‘대한민국 경관대상’을 통해 일반 국민들에게 경관의 중요성을 널리 알려 경관향상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 2013 대한민국 경관대상 수상작


140303(석간) 2014 대한민국 경관대상 공모(건축문화경관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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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회장의 불도저 같은 추진력은 박정희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도 가능하지 않다고 여겼고 그래서 별 응원도 받지 못했던 태국의 고속도로 사업을 따내 해외 건설의 물꼬를 튼 현대건설의 정주영의 이름값은 이미 꽤 높았다. 소양강댐을 중력댐으로 하자는 일본공영 측의 의견에 동조한 건설부, 수자원공사는 혹여 박정희 대통령이 정주영의 사력댐 주장에 혹할까 봐 불안해 했다고 한다. 정주영 회장의 증언에 따르면 건설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직접 나선 것도 이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건설부 장관이 현대 측의 입장을 보고서 말미에 달아 청와대에 전달했다는 설도 있다.) 

 

“각하. 모래, 자갈로 댐을 짓다가 홍수라도 나면 춘천이 아니라 수도권이 물에 잠깁니다.” 그런데 ‘홍수’나 ‘수도권’ 같은 말이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심기를 자극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말을 다 듣고 나더니 장관을 바라보면서 이런 질문을 했다. “장관 말대로라면 콘크리트 댐이 완성된 다음 몇 십억 톤의 물이 가둬져 있을 때 북한이 댐을 폭격하면 어떻게 되는 거요?” 

 


 

▲모네댐/ 에델댐 (출처: http://bit.ly/11g5s0O)



아마도 박정희 대통령은 1952년 전쟁 중 UN군 공군이 감행한 수풍댐 폭격 작전이나 영국 공군에 의해 수행된 독일의 모네댐, 에델댐 폭격을 떠올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UN군의 수풍댐 공격으로 북한은 전력의 90퍼센트를 상실했고 지도부가 공황 상태에 빠졌다고 전해지거니와 만약 댐 자체가 터졌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참화가 일어났을 테고 독일의 댐 폭파는 루르 공업지대에 실제로 심대한 타격을 안겨 주었던 것이다. 소양강 댐은 당시로서는 최북단에 건설되는 댐이었다. 북한이 우세한 국력을 바탕으로 수시로 남한을 위협하던 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머리 속에 ‘안보’라는 전혀 새로운 요소가 끼어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더구나 박정희 대통령은 포병 출신이었다. 

 

“자갈 모래로 된 사력댐이면 포격을 맞아도 풀썩 튀어 올랐다가 주저앉고 말겠지만 만수가 된 콘크리트 댐이 깨져 나가면 무슨 일이 발생하겠소?” 

 

분위기는 180도로 바뀐다. 건설부와 수자원공사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각하의 뜻’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고, 소양강댐 설계 문제는 다시 ‘신중한 검토’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그 즈음 정주영 회장은 소양강댐을 거의 포기한 채 다른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청와대발 후 폭풍의 영향권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정주영 회장에 따르면 술을 억병으로 먹은 다음 날 위에 탈이 나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별안간 팔순을 넘긴 일본공영 회장이 들이닥쳤다고 한다. “현장 재조사 결과 암반이 약해서 콘크리트 댐보다는 사력댐이 낫겠습니다. 가격도 20퍼센트 정도까지는 떨어질 수 있겠습니다. 정사장님이 옳았습니다.” 불도저 정주영의 신화가 또 한 벽돌 쌓이는 순간.  

   


 

▲소양강댐 건설현장/ 박정희 대통령 공사장 시찰(출처: 국가기록원)



마침내 1967년 4월 15일 소양강댐 건설 시작의 종이 울렸다. 1973년 10월15일 완공될 때까지 5년 6개월의 세월과 290억 원의 공사비용이 들어간 대역사. 댐을 만드는 데 들어간 자갈과 흙은 13.5톤 덤프트럭으로 150만 여 번을 실어 날라야 할 정도였고, 당시 국민 1인당 7가마씩 돌아가는 양이었다.  소양강댐이 수용할 수 있는 물은 29억 톤으로 상암 월드컵 경기장을 600번 채울 수 있었으며, 수도권 주민 2,000만 명의 1년간 사용량이었다. 이 물 자체로 20만kw의 전력을 생산할 뿐 아니라 그 물로 하류의 의암•청평•팔당에 있는 3만4,000kw짜리 발전소 세 곳도 돌린다. (스포츠한국 2009.9.28) 

 

박정희 대통령은 1973년의 준공식에서 이렇게 말하며 흥분했다. “여기, 또 하나 우리 인간이 대자연에 엄청난 도전을 하여 인간의 의지로서 자연을 극복하고 개가를 올린 산 증거를 우리는 눈앞에서 보고 있습니다. …이 댐은 사력(砂礫) 공법의 댐으로는 동양에서 가장 큰 댐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공사가 우리의 기술자들에 의해서 우리의 기술로서 이렇게 훌륭하게 되었다는데 대해서 나는 기쁨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동양 최대의 댐 앞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은 정주영 뿐이 아니다. 그의 독려 하에 매일 1천여 명의 인력이 투입되었고 작업은 새벽 6시에서 오후 6시까지 12시간 내내 이어졌다. 산을 깎고 언덕을 발라내는 난공사 속에 흙더미에 깔리고 발을 헛디뎌 벼랑으로 떨어지고 폭발에 날아간 사람이 서른 일곱 명에 달했다. 물론 이것도 공식적인 수치일 뿐이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공사에서 공식 사망자는 77명으로 기록되고 있지만 그 건설의 주역들 스스로 “수백 명이 죽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당시로서는 오지 중의 오지였던 소양강댐 공사 현장에서 죽어간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현장에서 죽어갔으되 위령비에 이름 석 자조차 올리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생면부지의 고장에 와 목숨을 걸고 일했던 수많은 노동자들이야말로 소양강댐이라는 대역사의 주인들이었다. 



▲소양강댐 (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이들은 바로 소양강 주변에서 살던 주민들. 평생의 터전이 수몰지구로 지정되어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던 1만 8천 명의 주민들의 한숨 또한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소양강댐은 분명 거대한 역사(役事)이자 역사(歷史)의 한 장이었지만 지금까지 돌아본 소양강댐의 건설 과정에서도 우리는 ‘개발독재’의 유령을 만나고, “토건 세력과 국가의 의지가 폭력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의 원형을 발견하게 된다. (한겨레21 2012.10.12일자) 국가 시책 앞에서 자신의 생활 터전을 ‘당연히’ 그리고 별 보상도 없이 내주고 생판 낯선 땅에서 맴돌다 스러져간 민초들의 사연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흡사 재방송처럼 전국 방방곡곡으로부터 전해지는 것이다. 

 

과거는 전설로 남지만 전설은 현실을 덮지 못한다. 500년에 한 번 있는 홍수에도 끄떡없다던 소양강댐은 의기양양한 완공 이후 불과 11년만이었던 1984년 대홍수 때 1차 위기를 맞는다. 최고 홍수위인 200.4미터에 2.6미터 모자란 197.7미터의 수위를 기록했던 것이다. 그 뿐이 아니었다. “500년에 한 번 홍수”란 400밀리미터 정도의 강우량을 염두에 둔 표현이었지만 2002년 8월 31일 태풍 루사는 강릉 지역에 하루 877밀리미터의 폭탄 같은 비를 퍼부은 바 있다. 그 호우가 소양강댐 일대에 들이부어진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사력댐은 박정희 대통령의 기대한 바 폭격에는 강할지 모르나 홍수에는 유난히 약한 댐인데 말이다. 이 같은 자연의 도전에 대해 국토해양부와 한국수자원공사는 2010년 홍수에 대비한 방류능력 증대를 위해 설치한 직경 14m, 길이 1.2km의 월류형 터널식 여수로를 완성함으로써 응전을 했다. 그러나 또 다른 도전은 이어질 것이고 소양강댐과 그를 지키는 사람들은 또 다른 현명한 응전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역사는 소양강 물과 함께 흐를 것이다. 

 

2011년 38년 만에 소양강댐 정상부가 공개됐다. 그 해에 잠깐 들러 소양호를 내려다보던 소회는 매우 복잡미묘했던 기억이 난다. 참으로 평온해 보이는 물과 산과 하늘이었으나 그 평온함 속에 숨은 역사는 결코 평온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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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에서 공개되는 세종보, 그 역사의 현장으로 가다.



지난 9월 24일 4대강 살리기 사업지구의 16개 보 중 금강의 세종보가 일반에 최초로 공개 되었습니다. 국토해양부 5기 기자단이 되고 공식적인 첫 행사라 설렘을 가지고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번에 선발이 된 국토해양부의 어린이 기자단, 주부모니터, 그리고 저희 대학생 기자단 학생들이 과천 정부청사에서 모였습니다.

출발 하기 전 간식거리와 물을 주셨습니다. 특히 물병에 관심이 갔습니다. 작고 귀여운 K-water라는 생수였는데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물은 한국 수자원 공사에서 제공하는 ‘병물 수돗물’이였습니다. 수돗물의 냄새나 맛이 느껴질 것 같던 생각과는 달리 깨끗하고 산뜻한 물 맛이였습니다. 


▲ 이게 바로 K-water 랍니다.

과천 정부 종합 청사에서 떠난 지 어언 2시간 후 창밖으로 세종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 이제부터 행복도시 세종시의 모습입니다’ 라는 국토해양부 사무관님의 말씀과 함께 모두 창밖을 내다 보았습니다. 이번 년도 12월에 완공이 되는 첫 마을의 모습과 아직 건설 중인 세종시를 보니 '이 곳이 어떻게 변화 될까?’ 앞으로의 완성된 도시의 모습이 기대되었습니다. 

               ▲ 세종시 건설 중인 모습 중이예요.

행사장으로 가기 전 우리는 먼저 홍보관에 들렸습니다. 

▲ 세종보 설명을 듣는 국토해양부 기자단의 집중된 모습이 보이시나요?

공개되는 세종보와 세종시의 대략적인 설명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시장 한 곳에 완성이 된 세종시의 모습을 만들어 놓은 모형이 있었는데 미리 세종시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세종보는?



보(洑)란 큰 물그릇을 만드는 것입니다. 물의 저장량을 늘리고 수위를 조절하여 수질을 개선하는 일을 하고, 소수력발전으로 전기를 공급합니다. 또한 어도를 설치하여 어류의 이동을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사람과 자연을 동시에 생각 하는 사업의 일환입니다.


특히 세종보라는 이름은 도시명칭국민공모를 시행해 결정이 된 세종시의 상징성을 부여하고 세종시의 랜드마크성을 강화하도록 한글의 자음 모양으로 디자인이 되었습니다.

홍보관에서 설명을 듣고 행사장으로 가기 전 금강에서 카약과 요트를 탔습니다. 앞으로 이 금강은 도시민을 위한 휴식과 여가공간으로 탈 바꿈 된다고 하는데요.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존(zone)이 따로 마련이 되었습니다. 카약과 요트를 체험하는 행사가 한강에서도 진행이 된다고 하니 참여해보셔도 좋을 듯 싶네요.


                                                   ▲ 하늘과 강, 두 곳 다 레져를 즐길 수 있답니다!▲

금강 주변으로 자전거 도로가 형성이 되어 자전거를 타는 어린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금강은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로 시민에게 친숙한 수변공간이 될 것입니다. 


▲ 행사장의 모습과 시민들의 모습이 보이네요.


드디어 행사장에 도착!

본격적인 행사 전이였지만 연 만들기, 페이스페인팅과 같은 다채로운 체험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공식 행사 외에 주민들이 직접 참여를 할 수 있는 것을 마련해 주었는데 시민들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참석한 시민들은 연을 만들어 하늘 위로 날리기도 하고,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어서 코스를 둘러보았습니다.

예상된 참석 인원은 약 2000명이였지만 실제는 그보다 더 많은 시민들이 참석한 것 같았습니다. 그만큼 이 세종보 공개에 관심이 높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행사에 참석하신 내빈분들의 모습이예요.

국토해양부 장관을 비롯한 인근 시장, 군수 등 관련 내빈분들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본격적인 개방식을 진행하였습니다. 환영사를 비롯하여 축사들이 이어지고, 그 사이 노을은 물러가고 어둠이 깔리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버튼식을 하였는데요.

이렇게 금강의 세종보가 불꽃과 함께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 버튼을 누르기 전, 정말 긴장이 되었답니다.

개방식이 끝나고 집에 가는 버스에서 앞으로 세종시가 완공이 되면 다시 들리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자전거를 타며 금강의 정취를 느껴봐야겠어요. 세종보가 만들어 지고 공개가 된 자리에 함께하니 역사 속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생태적으로 자연을 생각하여 지어진 세종보, 이 금강은 앞으로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겠지요. 행사에 참여하셨던 시민들의 관심을 보아도 앞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나머지 4대강에 해당되는 보와 수변 공간들이 궁금해지네요~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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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불꽃이 아름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해양 레저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2011.10.26 10:25 [ ADDR : EDIT/ DEL : REPLY ]
  3. 대전시민

    저도 세종보 행사때 참여했었는데,
    볼거리가 많은 건 아니지만 완성되고 주변이 꾸며지면
    나들이로 괜찮겠더라고요^^

    2011.10.26 10:56 [ ADDR : EDIT/ DEL : REPLY ]
    • 대전시민님~ 안녕하세요. 세종보 행사를 참여하셨었군요!! 아직 세종시가 만들어지고 있는 단계라서 그런것 같아요. 첫마을 입주가 시작되고 대전시민님 말씀대로 주변이 꾸며지면 나들이 장소로 좋을 것 같아요~

      2011.10.26 12:30 [ ADDR : EDIT/ DEL ]
  4. k-water 생수병 참 귀여운데요?
    디자인도 깔끔한게 제스탈 ㅎㅎㅎㅎㅎ

    2011.10.26 12:28 [ ADDR : EDIT/ DEL : REPLY ]
  5. 이진영

    오후~~~~ 한나 멋있다잉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잘읽엇어잉ㅋ

    2011.10.26 13:21 [ ADDR : EDIT/ DEL : REPLY ]
  6. S.B.S

    다른 보에서는 환경적으로 문제가 발생해서 물고기가 떼죽음 당하고 물에서 악취가 난다고 하던데
    세종보는 깨끗한가 보네요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관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2011.10.26 16:12 [ ADDR : EDIT/ DEL : REPLY ]
    • 안녕하세요~? S.B.S 님 그 다른보는 강정 고령보로 알고 있구요~ 네 저도 지속적으로 관리가 되어 만들어진 목적이 잘 이루어지도록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011.10.26 17:11 [ ADDR : EDIT/ DEL ]
  7. 써니

    음~~ 잘쓰셨네용ㅋㅋ 잘읽고갑니다 다음 기사도 기대할게요^^

    2011.10.26 17:09 [ ADDR : EDIT/ DEL : REPLY ]
    • 안녕하세요? 써니님 :) 잘 보셨다니 다행이구요. 다음 기사도 기대해주세여. 날씨가 참 춥네여 감기 조심하시구 예쁘게 물들여진 가을 낙엽을 보며 가을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아 :)

      2011.10.26 17:12 [ ADDR : EDIT/ DEL ]
  8. 지갱

    세종보가 마음에 드네요 . 환경에 많은 피해가 없도록 관리가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세종시 변화가 궁금해지는데
    다음기사도 기대가 되요~^^하난이님 !! ㅎㅎ

    2011.10.26 17:29 [ ADDR : EDIT/ DEL : REPLY ]
    • 안녕하세요? 지갱님 지갱이라는 아이디가 참 귀엽네요!!^^*네! 환경에 피해가 없고 환경친화적인 세종보가 되어야겠지요:) 저는 도시공학과라서 그런지 세종시의 변화도 궁금해집니다. 새롭게 도시를 짓는다는 것은 참 멋지고 어려운 것 같아요. 네 다음기사도 기대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날씨가 추우니 감기 조심하시구요

      2011.10.26 17:32 [ ADDR : EDIT/ DEL ]
  9. 할파

    생생한 기사네요.

    K-Water? 오 신기신기

    늘 아리수만 보다가.
    기사를 보니 하루종일 취재하신거 같은데 열정을 가진 기자님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 다음 기사도 기대할께요.

    2011.10.26 19:06 [ ADDR : EDIT/ DEL : REPLY ]
  10. 서울시민

    글 잘보고 갑니다~

    실제로 못 본게 아쉽네요.

    2011.10.27 15:57 [ ADDR : EDIT/ DEL : REPLY ]
  11. 리히

    몰랐던 부분을 알게되었네요.좋은 기사 보게해주어서 도움 받고갑니다.

    2011.10.27 18:48 [ ADDR : EDIT/ DEL : REPLY ]
  12. c.y.o

    완성된 세종시의 모습이 기대되네요~ 기사 잘 보았어요^^

    2011.10.27 19:07 [ ADDR : EDIT/ DEL : REPLY ]
    • c.y.o님 안녕하세여 ~ 네 저도 앞으로 세종시의 모습이 기대되여. 후에 새종시 첫마을 입주와관련된 기사를 써보려 합니다.그때도 봐주세여 감사해여!!

      2011.10.27 22:09 [ ADDR : EDIT/ DEL ]
  13. bird

    기사 잘 보았습니다.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었네요. 좋은 기사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2011.10.28 15:00 [ ADDR : EDIT/ DEL : REPLY ]
  14. 지나

    사진으로 보니까 한번쯤 가고싶은 곳이네요~
    생태복원에 초점을 맞춘 만큼 수질을 잘 관리해서 문제가 없도록 하는게 중요할것 같아요
    기사 잘보고갑니다~~^^

    2011.10.29 10:48 [ ADDR : EDIT/ DEL : REPLY ]
    • 안녕하세요? 지나님 !! 네~ 앞으로의 관리가 지속되어 생태계 환경에 좋은 영향이 미치도록 해야겠지요~ 감사합니다. 추운데 감기 조심하세요~

      2011.10.29 20:37 [ ADDR : EDIT/ DEL ]
  15. 효니

    우와 기사 잘 봤습니다아아 ^0^
    다음기사도 기다리다 꼭 보겠습니당 ^_^ㅎ

    2011.10.30 00:11 [ ADDR : EDIT/ DEL : REPLY ]
  16. 코미

    세종보까지 갔다 오시느라고 수고 많으셨네요~~

    저도 세종보의 하늘과 강에서 레포츠 즐기러 한번 꼭 가봐야겠네여 ^^

    2011.10.30 16:44 [ ADDR : EDIT/ DEL : REPLY ]
  17. 이쏘

    기사를 읽으니까 직접 세종보 행사장에 다녀온 기분이에요~^.^!!
    그리고 K-water, 너무 귀엽고 신기해요~~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1.10.30 20:27 [ ADDR : EDIT/ DEL : REPLY ]
  18. 매진이

    오 저도 가보고 싶어염 !
    잘봤습니당 !
    생수병이 이뻐여.. -_-;;ㅋㅋㅋㅋㅋㅋ

    2011.10.31 18:32 [ ADDR : EDIT/ DEL : REPLY ]
    • 안녕하세요~매진이님~ 가을 단풍이 떨어지기 전~세종시 세종보 가보시는건 어떠실지요~ 생수병이 너무 귀엽죠! :) 날이 추워지네요. 감기 조심하시구요~ 감사해요

      2011.11.01 18:15 [ ADDR : EDIT/ DEL ]
  19. 듀듀

    정성스레 써준 기사 너무 잘 읽었어요.^^
    다음 기사가 기다려지는걸요 :)
    앞으로도 유익한 기사 부탁해요^^

    2011.11.01 16:42 [ ADDR : EDIT/ DEL : REPLY ]
  20. 박완

    세종시에 대해서는 많이 듣고 관심이 있었지만, 세종보에 대해 처음 들었는데 감사합니다 ^^

    2011.11.02 00:45 [ ADDR : EDIT/ DEL : REPLY ]
  21. 가을햇살

    따뜻한 봄이 되면 세종시에 스포츠를 즐기러 가야겠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2011.11.08 19:04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