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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1.10 서울 속 금단의 땅으로 가는 용산 미군기지 버스투어


작년 1212일에 서울 용산구의 용산 미군기지를 탐방하는 용산기지 버스투어를 다녀왔습니다. 용산구에는 지도에도 나오지 않고, 일반인들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용산 미군기지가 있는데요. ‘용산기지 버스투어는 이 미군기지를 버스를 타고 둘러보는 투어입니다. 특별한 장소에 들어가 본다고 생각하니 기대가 되었습니다.

 

미군의 부지 반환 이전이라도 국민들이 용산기지를 직접 체험할 기회가 필요하다는 공감대 아래, 국토부를 중심으로 국방부, 서울시 및 미군이 협력해 용산기지 내부를 일반 시민들이 둘러볼 수 있는 용산기지 버스투어프로그램을 기획, 시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번 투어는 엄마께서 몇 달을 계속 신청하시다가 이번에 겨우 당첨이 되었는데요. 어렵게 당첨이 된 만큼 열심히 취재하겠다는 생각으로 갔습니다.

 

114년간 닫혀있던 용산 미군기지 내 주요 장소를 버스로 둘러볼 수 있는 용산기지 버스투어의 접수는 매달 용산문화원(www.ysac.or.kr) 홈페이지를 통해 인터넷 접수를 하고, 1회에 70명 이내로 무작위 추첨을 통해 참가자를 선정합니다. 투어 시간은 약 4시간 정도이고, 참가대상은 8세 이상 대한민국 국적 국민(외국 국적자 신청 불가)으로 동반 1인까지 신청 가능합니다. 미성년자는 보호자 동반 시 가능하며, 회차별 중복 신청은 절대 불가입니다.

 

용산 미군기지의 이름은 미군기지이지만, 사실 원래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전쟁에 사용하려고 만든 기지라고 합니다. 그러다 광복이 되고,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군들이 사용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먼저 용산공원 갤러리라는 곳에서 용산기지에 대한 설명을 들은 다음, 버스를 타고 출발하여 일본군 작전센터(사우스 포스트 벙커), 용산 총독관저 터, 일본군 위수감옥, 둔지산 정상, 한미연합 사령부, 조선시대 만초천, 한미 합동 군사 업무단, 일본군 병기지창, 조선시대 남단터를 방문하고, 드래곤힐 호텔에서 마무리하는 일정이었습니다. 투어는 모두 하차하진 않고, 하차지점과 사진 촬영이 가능한 지점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더 많은 곳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시간이 제한되어 아쉬웠습니다.


용산기지 버스투어 전, 설명


용산공원 갤러리


용산공원 갤러리 건물은 처음에는 조선 육군창고였다가, 나중에는 ‘USO’라는 미군위문협회 건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용산공원 갤러리로 이름을 바꾸어, 현재는 서울시와 주한미군의 공동역사관 및 용산공원 소통공간으로 운영 중이라고 합니다.

 

일본군 작전센터(사우스 포스트 벙커)

일본군 작전센터(사우스 포스트 벙커)는 용산기지 남서쪽에 위치해 일제강점기 일본군 사령부 작전센터로 사용됐던 건물이라고 합니다. 공원계획에서는 현재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고 창이 없는 벙커 모양의 저층부는 문화시설 등으로, 창문이 많은 최상층은 방문자 센터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밖에서 외관만 보고 내부에 직접 들어가 보진 못했는데, 건물 안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용산 총독관저 터

현재 주한미군 121병원이 있는 용산 총독관저 터는 일명 용산아방궁으로도 불렸던 용산 총독관저가 위치했던 곳입니다. 용산 총독관저는 6·25 전쟁 때 폭격을 맞아 방치되었다가, 1950년대 후반 미군 병원이 들어서면서 철거되었다고 합니다. 공원계획에서는 기존 121병원을 해체하고 총독관저 터와 그 앞에 위치했던 정원을 복원하고, 그 주변으로 문화시설과 수경시설을 배치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병원 건물이 있는 지금의 모습에서 병원 건물을 없앤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면 어떨지 궁금해졌습니다.


121병원


용산 위수감옥 - 하차 및 사진 촬영 가능

용산 위수감옥은 용산기지의 등줄기를 이루는 둔지산 자락에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국내에 남아있는 유일한 일본군 감옥으로 1909년에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군 감옥으로 사용되다가 광복 이후에는 미 7사단 구금소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감옥을 둘러싼 벽돌 담장과 일부 건물들이 당시 원형 그대로 남아있으며, 용산 총독관저 터와 함께 사우스 포스트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장소입니다. 감옥 담장에는 6·25 전쟁 당시의 탄흔이 그대로 남아있어 분단과 전쟁의 상흔을 잘 알 수 있는 장소입니다.

 

위수감옥의 건물에는 S, T 등 여러 숫자가 쓰여 있는데요. 숫자가 쓰인 건물은 영구 건물, S가 쓰인 건물은 반영구 건물, T가 쓰인 건물은 임시 건물이라고 합니다. 공원계획에서도 위수감옥의 역사를 전시하는 용도를 포함한 문화시설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감옥 건물 안이 전시실로 이루어진 서대문 형무소와는 다른 모습이어서 조금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위수감옥-1


위수감옥-2


둔지산 정상 - 하차 및 사진 촬영 가능

위수감옥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둔지산 정상에 이르게 됩니다. 둔지산은 용산 기지의 등줄기를 이루는 산으로 남산에서 이어지는 지맥의 일부입니다. 예부터 한강을 지키는 군부대가 둔을 치고 있는 곳이라서 둔지산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사실 둔지산 이름의 유래와 기원이 문헌상에서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다고 합니다. 둔지산 정상은 올라갔을 때 이태원과 남산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입니다. 정상에 올라가 이태원과 남산의 모습을 한눈에 보니 시원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둔지산 정상

 

한미연합군 사령부 - 하차 및 사진 촬영 가능

한미연합군 사령부는 한미동맹의 상징이자 한미연합방위태세의 심장부로 한미 부대를 통합지휘하기 위해 1978117일에 창설되었다고 합니다. 한미연합군 사령부 건물은 1970년대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의 지원을 받아 완성된 건물로 지붕은 한국전통 기와를 사용하고 벽체는 콘크리트 형태로 구성되어 1970년대 한국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공원계획에서는 건축물의 외관을 최대한 유지하고 건물 뒤편 만초천 지류의 보행 다리와 돌기둥에서 진입이 가능한 통로를 만들 계획이라고 합니다. 푸른빛을 띠는 기와의 색이 청와대의 모습을 연상케 했습니다.

 

한미연합군 사령부

 

조선시대 만초천 - 하차 및 사진 촬영 가능

만초천은 원래 인왕산에서 물줄기가 시작돼 한강으로 흐르는 약 7.7Km에 이르렀던 큰 하천이라고 합니다. 1960년대 복개가 진행되어 지금은 그 원형을 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용산 미군기지 내에 복개되지 않은 상태로 약 300m 구간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1960년대부터 복개공사를 시작하여 현재는 자취마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용산기지에 남아있는 만초천 지류는 옛 자연과 생태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자연문화유산입니다. 흐르는 물 위로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교와 석축 등이 남아있어 조선시대 옛 만초천의 물길을 상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무지개 홍 자가 들어가는 홍예교를 보니 수원화성의 화홍문이 떠올랐습니다.

 

만초천

 

한미 합동 군사 업무단

주한 미 합동 군사 업무단건물은 원래 용산기지 내 일본 육군 장교들이 머물렀던 장교 숙소로 1908년에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군 장교숙소로 사용되다가, 해방 직후 한국의 신탁통치와 임시정부수립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덕수궁에서 열린 미소공동위원회 당시 소련군 대표단의 수행원들이 머무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공원계획에서는 건축물의 원형을 회복하여 편의시설 및 관람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마치 호텔처럼 보이는 건물의 크기가 참 커 보였습니다.


주한 미 합동 군사 업무단

 

일본군 병기지창

일본군 병기지창은 일본군의 무기와 탄약을 보관하던 곳으로 인근의 육군창고와 더불어 일제강점기 병참기지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1908년 완공된 병기지창 건물은 현재도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당시의 역사를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내부를 리모델링하여 주한미군 사병 막사로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공원계획에서는 병기지창 일대의 배치구조를 복원할 수 있도록 마당을 계획하고 건물은 증축된 부분을 철거하고 원형을 회복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일본군 병기지창은 일본군 작전센터처럼 겉에서만 보고 안에는 보지 못했는데 안에는 어떤 모습 일지, 겉모습과 어떤 점이 다를지 궁금했습니다.

 

조선시대 남단터 - 하차 및 사진 촬영 가능

남단은 조선시대 한양도성 내 종묘, 사직단과 더불어 한양 도성 밖 성저십리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 제례시설로 하늘에 기우제를 지냈던 곳입니다. 이곳이 정말 조선시대에 남단이 있던 터인지는 아직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미군기지가 용산공원으로 바뀌고 정밀 발굴 조사 등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공원계획에서는 정밀 발굴 조사 및 원지형을 회복하고, 현재 구릉지에 남아있는 남단 유구(추정)를 보존할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고 합니다. 빨리 용산기지가 용산공원으로 조성되어 남단터의 진실을 알려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단터

 

드래곤힐 호텔 - 하차 및 사진 촬영 가능

드래곤힐 호텔에서 이 투어의 마무리를 했는데요. 드래곤힐 호텔은 원래 남산과 한강을 배경으로 둔지산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았던 둔지미 마을이 있던 곳이라고 합니다. 1908년경 일제의 용산기지 조성으로 이곳의 마을주민들이 전부 쫓겨나는 비극을 겪었는데요. 드래곤힐 호텔이 원래부터 용산기지 내에 있었던 것은 아니며 과거 미군 전용 숙박시설이었던 종로구 사직동의 내자호텔을 대신해 1980년대 말, 현재의 자리에 들어섰다고 합니다. 드래곤힐 호텔은 198710월에 기공해 19904월에 개장했다고 합니다. 현재 4성급 호텔 수준으로 394개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군이나 미군의 가족만 이용할 수 있는 호텔이라고 합니다. 이런 크고 멋진 호텔을 이용할 수 없다고 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투어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드래곤힐 호텔 안에서 간단한 간식을 먹으며 설문조사를 하였습니다. 원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와서 느낀 점 등을 발표하고 기념품을 받았습니다. 저도 국토부 어린이기자단으로 활동하며 느낀 점과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기념품을 받았는데요. 기념품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용산 삼각지와 미 7사단 보병연대 일대 전경을 담은 사진이었습니다.


드래곤힐 호텔

 

투어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용산기지에서 보았던 여러 역사적 장소가 계속 생각났습니다. 역사책이나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지만, 역사적 사건 속에서 큰 역할을 하는 장소를 제 두 눈으로 직접 보니 영광스러웠습니다. 빨리 이곳이 용산공원으로 조성되어 일반인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장소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 같은 어린이들이 듣기에는 해설사분이 하는 말씀이 조금 어려워서 아쉽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은 정보를 많이 알 수 있었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나중에 또 이런 프로그램을 하게 된다면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풀어서 해설해주는 프로그램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투어 프로그램은 2020년에도 계속된다고 하니, 다른 분들도 많이 참여하여 우리의 역사가 담긴 이곳을 방문하여 뜻깊은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산기지투어를 마치며

 

용산공원이 조성되기까지는 수개월, 수년이 걸리겠지만,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역사에 관심이 많은 우리 같은 일반 시민들이 힘을 모아서 뉴욕의 센트럴파크보다 더 멋지고 역사적인 공원이 조성되길 응원합니다. 용산공원의 조성을 앞두고 시행하는 용산기지 버스투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꼭 신청하셔서 다들 다녀와 보세요!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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