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9일, 전주 한옥마을 탐방과 함께 한지만들기 체험을 했습니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가장 먼저 간 곳은 이목대와 오목대였는데요. 태조 이성계는 황산대첩에서 왜구를 토벌한 뒤 이곳 오목대에서 개선잔치를 하며 새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을 다졌다고 합니다. 






▲ 오목대에서 바라 본 전주 한옥마을 풍경





그리고 이목대와 오목대의 가운데 글자인 '목'자는 목조대왕의 '목'자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목대와 오목대는 서로 떨어져 있어 다리가 있었지만,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이 전주 이씨의 맥을 없앤다고 연결된 길을 잘라 지금은 육교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목대는 자만마을이라고도 하며 자손이 이 마을에서 태어나면 번영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목조대왕구거유지'라고 고종이 직접 쓴 비석도 남아있습니다. 






▲ 500년된 당산나무






그리고나서 전주 한옥마을의 500년된 느티나무인 당산나무를 보러 갔습니다. 당산나무는 주로 팽나무와 느티나무를 쓰며, 마을의 안녕을 빌었다고 합니다.



당산나무 앞에서 전주 한옥마을이 만들어진 이야기를 들었는데,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한옥마을이 만들어진 것은 일제강점기 때부터인데, 나라를 망했지만 이 마을에는 일본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한옥을 한 채씩 만들었다고 합니다. 1970년대에 한창 아파트가 유행하고 있을 때에도 전주 한옥마을은 개발을 하지 않아 지금의 모습을 이뤄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700여 채의 한옥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 국제 슬로우시티로 지정돼 있습니다.






▲ 하마비





다음으로 조선 왕조를 건립한 것을 기념해 전주에 세웠다는 사적 제339호로 지정된 경기전으로 갔는데 경기전 앞에 하마비라는 비석이 떡하니 서있었습니다. 경기전은 태조의 어진을 봉안한 곳으로 왕조가 일어난 경사스러운 터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여기에 태조가 있으니 모두 말에서 내리고, 아무나 출입하지 말라고 세워둔 비석이 바로 하마비인 것이지요. 



경기전의 하마비가 일반적인 하마비와 비교했을 때 갖는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암수 두마리의 동물이 비를 받치고 있는 형태라고 합니다. 경기전으로 들어가면서 두리기둥을 봤는데, 역시 태조의 어진이 봉안된 곳이라 그런지 기둥하나도 궁궐의 양식이었습니다.






▲ 태조 이성계 어진





왕의 초상을 어진이라고 해서 어진전이라고도 불렸지만, 태종이 경기전이라는 이름을 따로 지어줬다고 합니다. 어진전은 전주 외에도 개경, 평양, 한양, 경주에도 있었지만 경기전만 남았고, 원래 태조의 어진을 27개 그렸지만 지금은 딱 하나가 남았다고 합니다. 이 어진은 13명의 화가가 나눠서 그렸는데, 제일 잘 그리는 사람이 얼굴을 담당했다고 하며, 어진을 그릴 때는 비단을 사용한 배채화 기법으로 그렸다고 합니다.






▲ 영화에 나온 대나무 숲





문 옆에는 수복청이라고 제사상을 준비하는 건물이 있었으며, 조금 더 깊이 들어가니 매화나무가 있었습니다. 매화나무는 호문목이라고 하는데 선비가 글을 읽는 것을 듣고 꽃을 피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경기전 안에는 대나무 숲이 있는데, 이 대나무 숲은 '왕이 된 남자'라는 드라마와 '역린'이라는 영화를 촬영했던 유명한 곳이라고 했습니다.





▲ 전주사고





또한, 경기전 안에는 세종 21년에 설치된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전주사고가 있었는데, 전주사고의 실록만이 임진왜란 때 남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조가 전주사고의 실록을 보고 4개의 사본을 더 만들었지만, 현재는 2개만이 남아있다네요.



조경묘는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이성계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옆에는 어진을 소장한 어진박물관도 있었는데, 이곳에는 어진을 옮길 때 쓰던 가마가 있었습니다. 엄청 길고 넓었던 가마였는데 이 가마를 신연이라 한다고 합니다. 어진은 피난을 갈 때에도 행렬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옮기기가 힘들다고 하며, 어진을 모신 건물의 정자각 돌추부에는 화재막이용 거북이 암수가 있습니다.



점심을 먹고 한지를 만들러 갔습니다.






한지만들기 체험 모습





한지를 만드는 방법은 이러했습니다. 먼저, 한지 틀을 이용해 닥나무물을 넣고 흔들어 한지의 기본 틀을 만듭니다. 그리고 틀 안에 있는 재료를 부직포 위에 올려놓은 후 원하는 꽃을 이용해 여러가지 방식으로 꾸며줍니다. 다시 한 번 앞의 과정을 반복한 뒤, 꾸며둔 한지를 다시 만든 한 겹의 한지로 덮어줍니다. 그 다음에 부직포를 기계로 탈수시킨 뒤 뜨거울 철판 위에 올려 말려주면 우리나라의 전통 한지가 완성됩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지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신 선생님이 무형문화재에 등록된 한지발장 유배근 선생님이셨습니다. 이번 체험을 통해 전주에 대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많은 전란 속에서도 어진과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지켜냈던 애국심과 국제 슬로우시티로 지정된 전주의 모습이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끝으로, 자유시간을 활용해 고종 황제의 손자인 황손 이석 할아버지를 만나뵀는데요. 짧게 인터뷰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석 할아버지 인터뷰>






▲ 이석 할아버지와 어린이 기자

 




어린이 기자 :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누구시고, 몇 번째 자손이신가요?


이석 할아버지 : 아버지는 의친왕이십니다. 아버지께서는 기골이 장대해 조선 왕실의 대를 잇기 위해 많은 자손을 두셨는데, 저는 11번째 아들이랍니다.


어린이 기자 : 조선 역대 왕 중 가장 좋아하는 왕은 어떤 분이신가요?


이석 할아버지 : 세종대왕님을 가장 좋아합니다. 무엇보다도 한글을 만드셨기 때문인데요. 그리고 광화문 앞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은 저와 효령대군의 얼굴을 합쳐 만든 것입니다.


어린이 기자 : 미래의 어린이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이석 할아버지 : 무엇보다도 어린이들은 역사를 소중히 생각해 역사 제대로 알기를 꼭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이번에 탐방한 전주 한옥마을은 말 그대로 전주에 있는 한옥마을인데요. 왜 전주에 한옥마을이 세워졌는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옛날 일제강점기 때 양곡 수송을 위해 전군가도가 생기면서 전주부성이 허물어지자 서문 밖 천민 거주지역에 모여 살던 일본인들이 성 안으로 들어와 상권을 형성하며 세력을 점점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교동에 살고 있던 이씨 선비들이 '여기에는 일본인이 들어올 수 없게 막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전주 이씨가 자신들의 조상이 조선의 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을 물리치자'는 생각이 다른 백성들보다 몇 배는 강했던 것 역시 한 몫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이어져 내려온 한옥마을이 지금은 800여 채가 넘는다니 참으로 놀랍죠? 게다가 2013년 기준으로 에버랜드를 찾은 관광객이 700만 명 이라면 전주 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은 600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해 보였습니다.






▲ 오목대(좌), 고종 황제가 세운 오목대 비석(우)





이목대는 태조 이성계의 5대 할아버지인 목조 이안사의 출생지라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그리고 태조 이성계가 고려 우왕 때 황산 전투에서 왜적에게 승리한 후 개경으로 돌아오다가 잠시 쉬어가면서 승전기념으로 지은 것이 오목대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고종 황제가 친필로 오목대에 '태조고황제주필유지'라는 비석을 세웠는데, 이 뜻은 태조가 머무른 장소라는 뜻입니다. 또 다른 오목대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로는 이곳에 오동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오목대라 이름을 정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 경기전 입구, 하마비, 홍살문





신분에 관계없이 말과 가마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라는 하마비를 지나 한옥마을로 들어갔는데요. 전주 한옥마을에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보관하고 있는 경기전, 전동성당, 어진 박물관, 그리고 부채 박물관 등이 있습니다. 



먼저, 경기전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봉안한 곳으로 사적 제339호로 지정돼있습니다. 홍살문을 거쳐 외삼문, 내삼문을 지나면 경기전이 나오는데, 지금은 보수 공사 중이라 직접 볼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때문에 경기전에 있던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현재 어진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어진 박물관에는 태조 이성계, 세종대왕, 영조, 정조, 철종, 고종, 순종의 어진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철종의 어진이 처음 본 것이라 색달랐습니다. 정조의 어진은 카리스마 넘치는 용안과 수염 때문에 아주 인상적이었고요.



여기서 잠깐! 임금이 쓰던 익선관은 매미의 날개를 본따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왜 매미의 날개를 본땄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매미의 습성을 보고 좋은 정치가가 되고자 했던 바람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매미의 5덕>


① 이슬만 먹고 사는 매미처럼 먹을 것을 탐내지 말자.


② 매미의 생김새를 따라 배우고 익혀 선정을 베풀자.


③ 남이 생산한 것을 먹지 않으니 염치가 있다.


④ 집을 짓지 않으니 겸손하다.


⑤ 철에 따라 허물을 벗고 때를 알아 물러날 줄 아는 절도가 있다.







여름에 정신없이 울어대기만 하는 줄 알았던 매미에게 이런 모습이 있는 줄은 몰랐죠? 과연 조선의 임금님들은 익선관을 쓸 때마다 매미의 교훈을 잘 새겼을까요?






▲ 전동성당의 외부와 내부





다음으로 전주 전동성당은 사적 제228호이며, 성당이 세워진 자리는 원래 전라감영이 있던 자리로 우리나라 천주교 첫 순교자가 나온 곳이기도 합니다. 「약속」이라는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의 슬픈 결혼식을 올리는 장소로 더욱 유명한 전동성당은 내부의 둥근 천장과 색색깔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웠습니다. 관광객은 성당 내부로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어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전주 한옥마을의 당산나무





세 번째로 전주 한옥마을의 당산나무는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오목대 길목에 우뚝 서있습니다. 이 당산나무는 500년도 더 지난 세월을 살아오면서 전주 한옥마을을 지켜왔다고 하는데요. 주민의 무병과 평온 무사를 기원하는 당산제가 매년 1월 15일 이곳에서 열리고 있고, 당산나무 등걸에는 당산제 때 소원을 적어 놓은 소원지가 끼워져 있는 새끼줄이 감겨 있습니다. 새끼줄에 묶여 있는 모든 소원이 다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전주 한옥마을 중에는 사람들의 눈에 잘 안보이는 곳에 폐가도 있었습니다. 폐가에는 거미줄이 여기저기 붙어있어 조금은 무섭고 으스스하기도 했는데요. 조금은 엉뚱하지만, 폐가를 공포의 집으로 만들면 어떨까하는 재미있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전주는 비빔밥으로 유명한데, 전주 한옥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이 비빔밥을 얼마나 자주 먹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이석 할아버지 댁에 방문했을 때 이 점을 못 여쭤봐서 아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무형문화재 유배근 한지발장과 함께하는 한지뜨기 체험을 했습니다. 한지를 만드는 방법은 총 8단계로 이뤄져 있습니다.






▲ 한지 제작 과정





① 한지에 꽃잎과 단풍잎, 줄기 등으로 어떤 모양을 만들지 생각하고 필요한 양만큼 물에서 건져올립니다.


② 지통에 담긴 닥나무물을 틀에 퍼서 놓고, 닥나무물이 평평하게 펴지도록 양 옆으로 흔들어줍니다.


③ 틀에 있는 닥나무물을 부직포 위에 잘 펴서 내려놓은 다음, 물기가 빠지도록 손바닥으로 발 위를 잘 밀어줍니다.


④ 미리 준비한 꽃잎과 줄기 등으로 한지 위를 꾸밉니다.


⑤ 다시 한 번 지통에 담긴 닥나무물을 틀에 퍼서 놓고, 닥나무물이 평평하게 펴지도록 양 옆으로 흔들어줍니다.


⑥ 틀에 있는 닥나무물을 꾸민 한지 위에 잘 펴서 내려놓은 다음, 물기가 빠지도록 손바닥으로 발 위를 잘 밀어줍니다.


⑦ 한지와 부직포의 물기를 짜줍니다.


⑧ 뜨거운 철판 위에 올려놓고, 한지의 물기를 완전히 말려줍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지는 물에 담궈도 잘 젖지 않고, 오랫동안 보관해도 잘 썩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지를 만드는 과정은 복잡했지만, 신기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나라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애국심을 더욱 강화하고, 반듯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며 전주 한옥마을 탐방을 마칩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