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1일 금요일, 국토교통부 어린이 기자단은 전주 한옥마을에 다녀왔습니다. 

어린이 기자단에게 우리 전통문화의 자산인 한옥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전주 한옥마을로 현장탐방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개학을 앞두고 여름방학 마지막을 알차게 보낼 수 있어서 저 또한 유익한 시간이 되어 아주 뿌듯했습니다.


광화문역에서 버스로 3시간 정도 달려 전주 한옥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전주 한옥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어린이 기자단은 먼저 석갈비와 냉면으로 점심식사를 해결하였습니다.


전주 석갈비가 유명한 줄 모르고 먹었는데, 아주 유명한 만큼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어린이 기자단은 1조와 2조로 나뉘어 탐방을 하였습니다. 조별로 탐방 코스는 달랐습니다. 저는 1조로, 1조가 다녀온 코스를 설명 드리겠습니다.


저희 1조는 먼저 전주 한옥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한옥마을 최고의 전망대인 오목대 전망대에서 아름다운 한옥마을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전망대를 내려와 전주 전통 한지원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전주 전통 한지원에서 한지 제조 과정도 보고, 알록달록 곱고 예쁜 색의 한지와 한지로 만든 다양한 상품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전동성당으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 전동성당 내부


전동성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손꼽히는 전주의 대표 여행지라고 합니다. 전동성당은 호남지역의 서양식 근대 건축물로는 가장 오래된 성당이기도 하지요.


웅장하고, 멋진 전동성당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감탄을 하게 되었는데요.

어린이기자단 탐방으로 이번 기회에 볼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전동성당을 나와 다음 코스로 간 곳은 경기전입니다.


▲ 경기전 하마비



​경기전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곳입니다.


경기전 앞에서 하마비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마비는 조선시대 종묘 및 궐문 앞에 세워놓은 석비로 말을 타고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은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글이 적혀있습니다.


경기전 내에는 태조 어진을 봉안한 국내 유일의 어진박물관이 있습니다.




어진박물관에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어진과 어진봉안 때 쓰였던 가마, 용선, 홍개 등의 의식구를 소장ㆍ전시하고 있습니다. 


어진박물관은 태조어진을 비롯해 관련 유물을 영구보존하고, 어진을 봉안하고 보존한 역사를 담아 경기전의 가치를 드높이는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어진박물관은 지상 1층, 지하 1층의 한옥으로 건축되어있습니다. 지상에는 어진실만 있는데, 태조어진 진본을 비롯하여 영조ㆍ철종ㆍ고종ㆍ순종 어진 모사본과 세종과 정조 표준영정을 모시고 있습니다.


지하는 상설전시실(역사실, 가마실)과 기획전시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역사실에는 어진이안통, 용두, 『조선왕조실록』(복제본) 등을 전시하고 있으며, 가마실에는 어진을 이안하는데 쓰인 신연, 향정자, 채여, 가교 등을 비롯한 가마류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어진박물관에서는 조선시대 왕들의 초상화도 볼 수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도 봤는데 어진박물관에 있는 이성계의 초상화가 진짜라고 합니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있는 이성계의 초상화에는 곤룡포를 입고 있지만 

이 곳 초상화에는 청룡포를 입고 있어 다른 곳과의 차이를 나타냅니다.


마지막으로 어린이기자단은 공예 체험으로 ‘와당 연필꽂이 만들기’를 하였습니다. 한지를 이용하여 멋진 연필꽂이를 완성하는 것으로 모든 일정을 마쳤습니다.


전주 한옥마을도 둘러보고 전통문화 체험까지 할 수 있어 아주 유익하고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가족들과 전주 한옥마을로 다시 오고 싶습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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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페르마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5.09.10 21:00 [ ADDR : EDIT/ DEL : REPLY ]
  2. 앨리스심

    자세한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5.09.10 21:55 [ ADDR : EDIT/ DEL : REPLY ]
  3. sysea47

    석갈비 사진 보니 군침이 흐르네요 ㅋㅋ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5.09.11 23:11 [ ADDR : EDIT/ DEL : REPLY ]
  4. G2

    정말 맛있어보이네요 ㅠㅠ

    2015.09.15 23:00 [ ADDR : EDIT/ DEL : REPLY ]
  5. 연필꽂이가 상당히 예쁘게 만들어졌네요.

    2015.09.16 09:5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기사 잘봤어요..

    2015.09.16 13:23 [ ADDR : EDIT/ DEL : REPLY ]
  7. Nightshade

    전주 석갈비가 정말 맛나보여요.

    2015.09.16 15:39 [ ADDR : EDIT/ DEL : REPLY ]
  8. 별빛페넥여우

    전동성당의 내부 진짜 아름답네요^^ 잘 읽었습니다.

    2015.09.16 17:30 [ ADDR : EDIT/ DEL : REPLY ]
  9. 젼젼

    정말 맛있어보여요ㅠㅠㅠㅠ 기사 잘 읽고 갑니다!!

    2015.09.22 01:49 [ ADDR : EDIT/ DEL : REPLY ]
  10. 전주를 여러번 갔지만 역시 한옥마을이 짱!

    2015.10.10 19:1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1. urbanpark

    우와 음식이 맛있어보여요!

    2015.10.10 19:43 [ ADDR : EDIT/ DEL : REPLY ]


지난 8월21일 국토교통부 어린이 기자단은 8월 현장탐방으로 전라북도 전주시에 있는 전주한옥마을에 갔다 왔습니다. 탐방은 1조와 2조로 나누어 진행되었으며, 각 조별로 가는 곳이 달랐기 때문에 저는 2조가 간 곳으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전주한옥마을에 도착한 뒤 왕이 되기 전 장군 시절에 이성계가 일본 왜구를 토벌하고 같은 전주이씨 친척들을 모시고 잔치를 벌였다고 알려진, 전주한옥마을 경치를 잘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한 오목대전망대에서 전주한옥마을 전경을 보았습니다.


▲ 오목대에서 바라본 전주한옥마을 전경


시원한 바람과 좋은 풍경을 뒤로하고 오목대 다음으로 간 곳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보관되어 있는 경기전입니다. 경기전 입구에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보관되어 있으니 예를 갖추라는 의미로 신분을 막론하고 말에서 내리라는 하마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하마비를 지나고 입구 안으로 들어가면 악귀가 들어오지 말라는 홍살문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홍살문을 지나고 경기전 내부로 들어가니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 경기전 내부에 봉안되어 있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


경기전 우측에는 조선왕조실록이 보관되어 있었던, 현존하는 유일한 실록보관소인 전주사고가 위치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어진박물관이 있습니다. 어진박물관에는 어진에 대한 것들뿐만 아니라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한양에서 전주까지 올 때의 모습들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주목판서화관에서 연필꽂이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 완성된 연필꽂이



연필꽂이 체험을 마치는 것으로 8월 현장탐방이 모두 끝났습니다. 벌써부터 다음 9월 현탐방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8월 현장탐방이 재미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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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 경험하셨네요

    2015.09.10 17:34 [ ADDR : EDIT/ DEL : REPLY ]
  2. sysea47

    즐거운 탐방 같아요~~

    2015.09.11 22:43 [ ADDR : EDIT/ DEL : REPLY ]
  3. 앨리스심

    멋진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5.09.11 23:57 [ ADDR : EDIT/ DEL : REPLY ]
  4. 오목대에서 바라본 한옥마을 풍경이 아름답네요!

    2015.09.16 08:43 [ ADDR : EDIT/ DEL : REPLY ]
  5. G Pro

    사진 잘 찍으셨네요^^

    2015.09.16 11:44 [ ADDR : EDIT/ DEL : REPLY ]
  6. 좋은 곳에 다녀오셨네요..ㅎㅎ

    2015.09.16 13:41 [ ADDR : EDIT/ DEL : REPLY ]
  7. 전주에서 참 좋은 체험을 했군요!

    2015.10.10 01:59 [ ADDR : EDIT/ DEL : REPLY ]






안녕하세요?! 국토교통부 대학생 기자단 최서진, 황외성 기자입니다

지난 919일 국토교통부 어린이 기자단들이 전주 한옥마을을 방문 했는데요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학생 기자단이 그 길을 함께 따라가 보았습니다.

이른 아침 양재역에서 출발한 버스는 오전
10시경 전주 한옥마을에 도착했습니다도착하자마자 한옥마을 탐방이 시작 되었는데요. 먼저 태조 이성계의 정기가 서려있다는 오목대로 향했습니다.



오목대는 1380년 고려 우왕 때 왜구를 물리친 태조 이성계가 승전잔치를 벌인 곳입니다. 조선왕조를 개국 하고 나서는 이곳에 정자를 짓고 오목대라고 이름을 정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본강점기 시절에는 조선의 맥을 끊는다는 일본군의 탄압으로 오목대의 중간에 길을 만들었다는 슬픈 역사도 함께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목대에서 내려와서 한옥마을 중심에 있는 전동성당으로 향했습니다
. 최초의 순교지로도 유명한 전동성당은 프랑스 신부인 보두네 신부가 순교의 뜻을 기르고자 부지를 마련했습니다.



서울에 있는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가 일제강점기에 설계해서 건물이 명동성당과 매우 흡사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군이 전주읍성을 헐면서 버린 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지었다고 하는데요. 아름답지만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 이였습니다.


이 붉은 벽돌을 이용해서 지은 건물은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한 건물로 전주읍성의 풍남문 인근 성벽에서 나온 돌로 주축돌을 삼았다고 합니다
.



호남지역 최초로 건립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전동성당과 대조적으로 그 앞에는 태조 이성계의 영전을 모시고 있는 경기전으로 향했습니다.



1410년 임금은 전주, 경주, 평양에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보관하고 제사를 하는 전각을 짓고 어용전 이라고 했습니다경기전은 이씨 성을 가진 이성계의 발상지로 전주 이씨인 이성계의 왕조인 조선의 발상지라고 여겨졌습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어진을 보니 늠름하고 위엄이 돋보이는 인상을 받았습니다점심식사 후 무형문화재 명인 유배근 선생님의 지도와 함께 한지발 체험을 했습니다.



한지발을 짜는 시간은 고됨의 연속이고 담양에서 사온 대나무를 일일이 얇게 깎아 좀이 슬지 않도록 소금을 넣어 5시간을 삶아 내야 하며 이를 다시 3번에 걸쳐 앏고 깔끔하게 다듬어야 비로소 발을 짜는 준비가 끝납니다.



일단 발을 짜기 시작하면 쉴 틈도 없다고 합니다말총을 일일이 엮어 짜는 전통 한지 발은 유배근 선생님이 더욱 정성을 쏟는 품목 이였습니다.

유배근 선생님은 판지의 우수성을 위해서 평생을 고민하며 우리 전통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한지를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국내 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 일본에서 한지만들기 체험에 대한 문의가 들어와서 일본에서도 우리 한지의 우수성과 명인의 솜씨를 널리 펼치고 있습니다.



어린이 기자들도 한지를 직접 만들어 보았는데요한지의 제작과정은 첫째 닥다무를 채집하고, 닥나무를 증기로 찌고, 질을 벗기는 작업 후에 물에 담가 불려서 겉 껍질을 벗깁니다.

그 후 잿물에 삶고 닥메로 두들기고 물통
(보걸이)에 넣어 잿물을 빼냅니다.



건져서 물기를 빼낸 후 표백통에 넣은 후 지통에 넣고 닥풀과 함께 혼합합니다.



다음 발로 뜬 다음에 철판에 만들어 완제품으로 창호지나 백선지 피지 등을 생산합니다열심히 집중해서 나만의 한지를 만드는 어린이 기자단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어린이 기자단들과 함께 하면서 어린이 기자단들의 취재열정에 저희도 더욱 더 취재를 열심히 해야 겠다고 생각했는데요. 앞으로도 어린이 기자단들의 활발한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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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세한 기사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014.09.30 22:4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후백제의 수도이며 조선왕조의 초석이 되었던 전주 한옥마을과 주변 문화 유적지를 지난 9월 19일 국토교통부 어린이 기자단이 방문했습니다. 친절했던 문화해설사분의 안내로 탐방이 이뤄졌는데요. 문화해설사의 설명에 의하면 전주 한옥마을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1930년을 전후로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마을을 만들어 나간 것이 그 시작점이라고 합니다. 비록 나라는 빼앗겼지만, 정신은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우리의 선조들이 한옥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오늘날 전주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도심 속에 700여 채의 한옥군락이 형성된 도시로 알려질 수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방문했던 이목대는 태조 이성계의 4대조 할아버지인 목조대왕 이안사가 태어나 살았던 곳으로 전주 이씨의 발상지입니다. 결과적으로 태조 이성계의 본향인 전주는 조선의 근본이 된 땅이자 나라를 건국한 근원지였던 것인데요. 오목대는 이안사가 풍광을 즐기며 노닐던 곳이자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격퇴하고 이곳에 들러 전승 축하 잔치를 벌인 곳으로 유명합니다. 이목대와 오목대에는 고종황제의 친필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오목대 탐방로에는 500년된 느티나무인 당산나무가 서있었습니다. 전주 한옥마을 주민들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주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는데요. 전주 한옥마을은 자신의 문화와 향기를 지켜낸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마을이라는 의미인 국제 슬로시티 인증도 받았다고 합니다.









하마비는 신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비 앞으로 지나갈 때에는 누구든지 말에서 내리라는 의미를 담고있는 표석입니다. 이 경기전 앞 하마비는 암수 한쌍의 동물이 비를 받치고 있는 독특한 형태이고, 웅장하고 품위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태종 10년에 건립한 경기전은 조선의 건국자인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셔놓은 곳입니다. 백성들에게 고려에서 조선으로 나라가 바뀌었고, 왕씨에서 이씨로 임금의 성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전국 여섯 개의 도시(평양, 경주, 개경, 한양, 영흥, 전주)에 어진을 모셨다고 합니다. 태종 때 어용전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는데, '경사스러운 이 땅에 임금님을 모셨다.'는 의미의 경기전으로 세종대왕이 개명했다고 합니다.









신분제 사회인 조선 시대에는 집을 지을 때 규제가 엄격했다고 하는데요. 지름 50cm인 둥근 '두리기둥'은 궁궐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두리기둥이 많은 경기전은 단순한 사당의 개념이 아닌 왕이 사는 궁궐을 의미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두리기둥 밑에 하얀 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은 구름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 공간부터는 천상으로 이어지는 의미라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 전국의 진전이 피해를 입었는데요. 그러나 경기전 어진은 전쟁 중에도 전주의 많은 선비들이 7년동안 정읍의 내장산에서부터 북한에 있는 묘향산까지 이동하며 끝까지 지켜냈고, 현재는 국보 제317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전주사고는 조선왕조실록 등의 역사책을 보관하는 곳입니다. 임진왜란 직전까지 전국 4대 사고(전주, 충주, 성주, 서울)에 똑같은 복사본을 보관했는데, 왜군이 모두 태워버렸다고 합니다. 유일하게 전주사고의 실록만 남았는데, 그 이유는 역시 전주의 선비들이 조선왕조의 발상지라는 자부심이 강해서 어진과 실록을 목숨걸고 지키려 노력했던 결과라고 합니다. 현재 유네스코 기록 분야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태조의 60세 때 모습이며, 27개가 그려졌지만 현재 전주 어진만 남아있다고 합니다. 어진은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사람만의 분위기를 잘 표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13명의 화가가 함께 궁궐에서 생활하며 정숙한 마음으로 길일에만 조금씩 태조의 어진을 그려나갔다고 하는데요. 3개 조로 나눠 어진을 그렸고, 그 중 가장 실력 좋은 사람이 얼굴을 그렸다고 합니다.



어진은 기름종이로 본을 떠 비단에 옮겨 그렸는데요. 비단 뒷면에 색을 칠하는데, 한올씩 비단에 색을 넣기 대문에 오랜 시간 동안 그렸다고 합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입체감이 느껴지고 사실적으로 표현하는데 이러한 채색법은 우리만의 독특한 초상화 화법으로 '배채법'이라고 합니다. 어진을 그렸을 당시에는 포토샵과 같은 컴퓨터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 그대로 그리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태조의 어진에서 곤룡포가 파란색인 이유는 조선의 건국자라는 의미, 즉 시작의 의미를 표현한 색이라고 합니다. 다른 임금들은 모두 빨간색을 입었는데 태조만 파란색의 곤룡포를 입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지요. 조선 시대의 왕들은 매미의 5가지 장점을 닮아야 좋은 임금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매미 모양의 모자인 익선관을 쓰고 있습니다.





 

옛사람들은 매미를 가장 고고하고 신령한 곤충으로 생각해 최고의 지덕을 가진 곤충이라고 예찬했다. 문(文), 청(淸), 염(廉), 검(儉), 신(信)은 매미의 다섯 가지 덕목인데, 왕이 정사를 보기 위해 모자를 쓸 때 매미의 오덕을 생각하며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야만 했다. 오덕의 교훈은 매미의 입이 마치 선비의 갓끈과 같이 곧게 뻗은 것처럼 왕은 배우고 익혀 선정을 베풀어야 하며, 매미가 이슬이나 나무진을 먹고 사는 것처럼 청결해야 하고, 농부가 가꾼 곡식이나 채소를 해치지 않는 것처럼 청렴해야 하며, 다른 곤충과 달리 집이 없는 것을 본받아 검소해야 하며, 늦가을이 되면 때를 맞춰 죽을 정도로 절도를 지키는 것을 배워 신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출처 : 『익선관의 교훈』, 최요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서울에서 전주까지 가마를 타고 왔는데, 이를 '어진 가마'라 한다고 합니다. 임금님이 행차하듯 어진도 똑같이 200~300여 명이 8일 동안 모셔왔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요. 어진을 옮길 때 평상시에는 가마를 타지만, 임진왜란과 같은 유사시에는 '흑장통'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어진을 말아서 옮겨다니며 피난시키기 위해 사용된 것인데요. 조선왕조 519년 동안 27분의 어진을 그렸지만 현존하지 않고, 어진박물관에 전시된 것만 남아있습니다. 즉, 우리가 알고있는 세종대왕의 모습은 추상화인 셈이지요.









전동성당은 1908년에 땅을 사서 1931년 까지 지은 건물이며, 호남 최초의 서양식 근대 건물입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을 바탕으로 비잔틴 양식이 가미된 것인데요. 이곳에 성당을 지은 이유는 신해박해 때 윤지충, 권상현이 처형을 당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을 통해 윤지충, 권상혁 두 순교자는 복자가 됐습니다. 전동성당은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랑스 신부의 작품인데요. 마치 엄마의 자궁 속처럼 신비롭고 편안하며 따뜻한 느낌을 주는 것이 로마네스크 양식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무형문화재 한지발장 명인인 '유배근'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한지만들기 체험을 했는데요. 꽃잎 등 재료를 고르고, 닥나무 물을 양쪽으로 흔들어 평평하게 만든 뒤 물기를 빼줍니다. 그 위에 재료들로 꾸미기를 하고 다시 닥나무 물을 평평하게 펴서 올려준 다음, 꾸민 한지 위에 붙여줍니다. 물기를 말린 후 철판 위에서 천천히 말리면 한지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한지만들기 체험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대한 황실 '승광재'가 있었습니다. 고종황제의 손자이자 의친왕의 아들인 이석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곳이었는데요. 한지 만들기 체험을 기다리며 한 번 방문하고, 이후에 다시 한 번 방문해봤습니다.  비록 이석 할아버지를 만날 수는 없었지만, 승광재를 조용히 둘러볼 수 있었는데요. 예전에 TV에서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이라는 노래를 부른 가수로도 활동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승광재 입구에 있는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라는 강의 제목을 보며 아픈 역사의 산 증인이신 이석 할아버지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역사를 아직은 잘 모르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집안의 큰 어르신을 잘 모시지 못했다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졌는데요.



역사공부를 열심히 하면 세상을 보는 지혜가 생긴다는 말을 부모님께 자주 들었습니다. 승광재를 방문한 이후 우리의 소중한 역사를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될 수있었습니다.









울에 위치한 북촌 한옥마을은 도시와는 다른 평안함을 주는 곳이라 가족과 함께 자주 방문했던 곳입니다. 북촌 한옥마을과는 다른 모습의 작은 시골 마을일 것이라 생각하며 방문했던 전주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문화 유적지이자 힐링의 공간이었습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한옥의 아름다움에 빠져들 수 있었는데요.



특별히 많은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천천히 한옥마을 주변을 걸어다니거나 앉아만 있어도 마음이 평안해지고 즐거웠습니다. 그래서인지 국제 슬로시티라는 말의 의미가 더욱 와닿았는데요. 어진과 조선왕조실록을 지키려는 피나는 노력과, 나를 빼앗겼지만 정신마저 빼앗기지는 않겠다는 의지로 한옥마을을 만든 전주 선조들의 애국심에 큰 감동을 받았던 탐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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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박나연

    전주한옥마을에 대해 자세히 올려놓으셨네요.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4.09.24 17:02 [ ADDR : EDIT/ DEL : REPLY ]
  3. 박나연

    전주한옥마을에 대해 자세히 올려놓으셨네요.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4.09.24 17:03 [ ADDR : EDIT/ DEL : REPLY ]
  4.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4.09.24 17:5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전주가 많이 멀었지만 간것이 후회 되지는 않네요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4.09.24 21:56 [ ADDR : EDIT/ DEL : REPLY ]
  6. 강이안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4.09.24 21:59 [ ADDR : EDIT/ DEL : REPLY ]
  7. 박준성

    좋은 정보와 기사내용 감사합니다. 특히 한지만들기 체험은 저도 꼭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어렵지 않았나요?(^^)

    2014.09.24 23:37 [ ADDR : EDIT/ DEL : REPLY ]
  8. 조은경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정성껏 기사 작성를 하셨네요~

    2014.09.25 00:05 [ ADDR : EDIT/ DEL : REPLY ]
  9. 김규태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4.09.25 17:32 [ ADDR : EDIT/ DEL : REPLY ]
  10.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4.09.25 17:42 [ ADDR : EDIT/ DEL : REPLY ]
  11. 김유진

    저도 작년에 다녀왔었습니다. 정말 우리 한옥이 아름답더군요. 이번탐방은 멀어서 가지 못했지만 이렇게 규민기자의 기사를 보니 직접 다녀온 것처럼 생생합니다. 기사 잘 읽었어요~^^

    2014.09.25 17:55 [ ADDR : EDIT/ DEL : REPLY ]
  12. 한지 체험과 모든 활동이 재미있었습니다.
    기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4.09.25 21:5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3. 전하진

    잘 읽었습니다. ^^

    2014.09.25 22:59 [ ADDR : EDIT/ DEL : REPLY ]
  14. 오현경

    좋은 기자 잘읽었습니다 ~ ! 역시 우리의 전통인 한옥은 지금도 이쁘고 아름답네요. 다시 한번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 ^^

    2014.09.26 16:27 [ ADDR : EDIT/ DEL : REPLY ]
  15. 공다현

    재밌었겠어요^^
    저도 가고 싶었는데....

    2014.09.27 19:31 [ ADDR : EDIT/ DEL : REPLY ]
  16. 이준석

    역시 규민기자네요^^
    규민기자! 멋진 기사 잘 보고 가고요...ㅎㅎ
    그리고 앞으로도 멋진 기사 부탁드려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2014.09.27 23:33 [ ADDR : EDIT/ DEL : REPLY ]
  17. 5학년 강이안

    기사 잘 쓰시네요.....
    잘 읽었습니다.

    2014.09.28 20:41 [ ADDR : EDIT/ DEL : REPLY ]
  18. 전하진

    기사도 잘쓰시고, 사진도 잘 찍으셨다.ㅎㅎ

    2014.10.12 23:51 [ ADDR : EDIT/ DEL : REPLY ]
  19. 김태규

    기사 잘 읽었습니다~ 정보도 많고 사진도 잘찍으셨고...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4.10.13 21:35 [ ADDR : EDIT/ DEL : REPLY ]
  20.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4.10.21 21:3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1. 박경준

    기사 잘 읽었습니다. 잘 쓰시네요.

    2014.10.26 23:53 [ ADDR : EDIT/ DEL : REPLY ]





지난 9월 19일, 전주 한옥마을 탐방과 함께 한지만들기 체험을 했습니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가장 먼저 간 곳은 이목대와 오목대였는데요. 태조 이성계는 황산대첩에서 왜구를 토벌한 뒤 이곳 오목대에서 개선잔치를 하며 새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을 다졌다고 합니다. 






▲ 오목대에서 바라 본 전주 한옥마을 풍경





그리고 이목대와 오목대의 가운데 글자인 '목'자는 목조대왕의 '목'자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목대와 오목대는 서로 떨어져 있어 다리가 있었지만,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이 전주 이씨의 맥을 없앤다고 연결된 길을 잘라 지금은 육교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목대는 자만마을이라고도 하며 자손이 이 마을에서 태어나면 번영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목조대왕구거유지'라고 고종이 직접 쓴 비석도 남아있습니다. 






▲ 500년된 당산나무






그리고나서 전주 한옥마을의 500년된 느티나무인 당산나무를 보러 갔습니다. 당산나무는 주로 팽나무와 느티나무를 쓰며, 마을의 안녕을 빌었다고 합니다.



당산나무 앞에서 전주 한옥마을이 만들어진 이야기를 들었는데,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한옥마을이 만들어진 것은 일제강점기 때부터인데, 나라를 망했지만 이 마을에는 일본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한옥을 한 채씩 만들었다고 합니다. 1970년대에 한창 아파트가 유행하고 있을 때에도 전주 한옥마을은 개발을 하지 않아 지금의 모습을 이뤄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700여 채의 한옥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 국제 슬로우시티로 지정돼 있습니다.






▲ 하마비





다음으로 조선 왕조를 건립한 것을 기념해 전주에 세웠다는 사적 제339호로 지정된 경기전으로 갔는데 경기전 앞에 하마비라는 비석이 떡하니 서있었습니다. 경기전은 태조의 어진을 봉안한 곳으로 왕조가 일어난 경사스러운 터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여기에 태조가 있으니 모두 말에서 내리고, 아무나 출입하지 말라고 세워둔 비석이 바로 하마비인 것이지요. 



경기전의 하마비가 일반적인 하마비와 비교했을 때 갖는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암수 두마리의 동물이 비를 받치고 있는 형태라고 합니다. 경기전으로 들어가면서 두리기둥을 봤는데, 역시 태조의 어진이 봉안된 곳이라 그런지 기둥하나도 궁궐의 양식이었습니다.






▲ 태조 이성계 어진





왕의 초상을 어진이라고 해서 어진전이라고도 불렸지만, 태종이 경기전이라는 이름을 따로 지어줬다고 합니다. 어진전은 전주 외에도 개경, 평양, 한양, 경주에도 있었지만 경기전만 남았고, 원래 태조의 어진을 27개 그렸지만 지금은 딱 하나가 남았다고 합니다. 이 어진은 13명의 화가가 나눠서 그렸는데, 제일 잘 그리는 사람이 얼굴을 담당했다고 하며, 어진을 그릴 때는 비단을 사용한 배채화 기법으로 그렸다고 합니다.






▲ 영화에 나온 대나무 숲





문 옆에는 수복청이라고 제사상을 준비하는 건물이 있었으며, 조금 더 깊이 들어가니 매화나무가 있었습니다. 매화나무는 호문목이라고 하는데 선비가 글을 읽는 것을 듣고 꽃을 피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경기전 안에는 대나무 숲이 있는데, 이 대나무 숲은 '왕이 된 남자'라는 드라마와 '역린'이라는 영화를 촬영했던 유명한 곳이라고 했습니다.





▲ 전주사고





또한, 경기전 안에는 세종 21년에 설치된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전주사고가 있었는데, 전주사고의 실록만이 임진왜란 때 남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조가 전주사고의 실록을 보고 4개의 사본을 더 만들었지만, 현재는 2개만이 남아있다네요.



조경묘는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이성계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옆에는 어진을 소장한 어진박물관도 있었는데, 이곳에는 어진을 옮길 때 쓰던 가마가 있었습니다. 엄청 길고 넓었던 가마였는데 이 가마를 신연이라 한다고 합니다. 어진은 피난을 갈 때에도 행렬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옮기기가 힘들다고 하며, 어진을 모신 건물의 정자각 돌추부에는 화재막이용 거북이 암수가 있습니다.



점심을 먹고 한지를 만들러 갔습니다.






한지만들기 체험 모습





한지를 만드는 방법은 이러했습니다. 먼저, 한지 틀을 이용해 닥나무물을 넣고 흔들어 한지의 기본 틀을 만듭니다. 그리고 틀 안에 있는 재료를 부직포 위에 올려놓은 후 원하는 꽃을 이용해 여러가지 방식으로 꾸며줍니다. 다시 한 번 앞의 과정을 반복한 뒤, 꾸며둔 한지를 다시 만든 한 겹의 한지로 덮어줍니다. 그 다음에 부직포를 기계로 탈수시킨 뒤 뜨거울 철판 위에 올려 말려주면 우리나라의 전통 한지가 완성됩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지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신 선생님이 무형문화재에 등록된 한지발장 유배근 선생님이셨습니다. 이번 체험을 통해 전주에 대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많은 전란 속에서도 어진과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지켜냈던 애국심과 국제 슬로우시티로 지정된 전주의 모습이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끝으로, 자유시간을 활용해 고종 황제의 손자인 황손 이석 할아버지를 만나뵀는데요. 짧게 인터뷰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석 할아버지 인터뷰>






▲ 이석 할아버지와 어린이 기자

 




어린이 기자 :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누구시고, 몇 번째 자손이신가요?


이석 할아버지 : 아버지는 의친왕이십니다. 아버지께서는 기골이 장대해 조선 왕실의 대를 잇기 위해 많은 자손을 두셨는데, 저는 11번째 아들이랍니다.


어린이 기자 : 조선 역대 왕 중 가장 좋아하는 왕은 어떤 분이신가요?


이석 할아버지 : 세종대왕님을 가장 좋아합니다. 무엇보다도 한글을 만드셨기 때문인데요. 그리고 광화문 앞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은 저와 효령대군의 얼굴을 합쳐 만든 것입니다.


어린이 기자 : 미래의 어린이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이석 할아버지 : 무엇보다도 어린이들은 역사를 소중히 생각해 역사 제대로 알기를 꼭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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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혜연

    500년된 당산나무라니... 정말 대단하네요.
    살아있는 왕가의 자손을 만나뵈시다니...이석 할아버지...정말 잘생기셨네요. ^^
    역사를 소중히여기고 제대로 알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2014.09.24 15:56 [ ADDR : EDIT/ DEL : REPLY ]
  2. 이석 할아버지도 인터뷰하고 부럽네요.^^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4.09.24 17:5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이석 할아버지와 인터뷰를 하셨군요!!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4.09.24 21:58 [ ADDR : EDIT/ DEL : REPLY ]
  4. 박준성

    태조 이성계 어진을 보기위해 저도 꼭 가봐야겠습니다. 탐방에 함께 참여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저희 집 가족여행 목적지는 "전주 한옥마을"로 제가 정해봅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2014.09.24 23:35 [ ADDR : EDIT/ DEL : REPLY ]
  5. 김규태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4.09.25 17:33 [ ADDR : EDIT/ DEL : REPLY ]
  6. 김유진

    맨 처음 사진이 정말 멋지네요. 옹기종기 모인 한옥들이 아름답습니다.

    2014.09.25 18:43 [ ADDR : EDIT/ DEL : REPLY ]
  7. 전하진

    이석 할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 인상적입니다.

    2014.09.25 22:58 [ ADDR : EDIT/ DEL : REPLY ]
  8. 오현경

    기사 잘읽었고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2014.09.26 16:28 [ ADDR : EDIT/ DEL : REPLY ]
  9. 전하진

    인터뷰도 하셨어요??? 굿

    2014.10.12 23:52 [ ADDR : EDIT/ DEL : REPLY ]
  10. 김태규

    영화에 나온 대나무 숲 사진이 멋지네요~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4.10.13 21:36 [ ADDR : EDIT/ DEL : REPLY ]
  11. 이준석

    와~~ 기사 잘 봤습니다~!

    2014.10.31 21:55 [ ADDR : EDIT/ DEL : REPLY ]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의 머리 글자를 합해 만든 지명으로, 고려 현종 때의 전라주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본 기자의 성은 나주 나씨이며, 조상님의 성함은 나봉이고 72대손입니다. 나주에 조상을 두고 살아온 본 기자는 전라도의 또 다른 대표 도시이자 태조 이성계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전주에 갔습니다.



전주는 전주 이씨의 발상지, 본향이라고 불립니다. 먼저 승암산 발치에 있는 ‘이목대’에 갔습니다. 1900년도에 고종 황제가 이목대에 친필로 ‘목조대왕구거유지’라고 쓴 비석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 뜻은 ‘목조 이안사(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가 살았던 곳’이라는 뜻인데요. 이 점을 통해 이목대에서 전주 이씨들이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경기전의 남동쪽 500m쯤 떨어진 나지막한 언덕에 오목대가 있습니다. 이 오목대에서 이성계가 놀았다는 주장이 있는데요. 1380년 고려 말 우왕 때 일본이 고려를 많이 침략하자 우왕은 이성계에게 일본을 물리치라고 명령했다고 합니다. 이에 이성계는 일본과의 싸움에서 크게 이겼는데요. 이것이 그 유명한 황산 대첩입니다. 이성계가 고려의 수도 개경으로 가던 도중 전주에 있는 오목대에 들러 승전을 자축하며 연회를 열었습니다. 이 때 이성계가 자신이 새로운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오목대에서 대풍가를 읊었다고 합니다. 고종 황제가 이를 기념해 ‘태조고황제주필유지’라고 친필로 써 비석을 세운 것입니다.









오목대에서 내려다 보면 전주한옥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데요. 한옥의 지붕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어 부드러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검은색의 한옥 지붕이 거북이 등딱지를 연상시켜 도시에서와는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전주한옥마을은 80여만 평의 땅에 700여 채의 한옥이 보존되어 있는 곳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우리의 전통을 잇기 위해 전주 사람들이 힘을 합쳐 한옥을 지었다고 합니다.









경기전 입구에 하마비가 세워져있습니다. 하마비에는 ‘지차게하마자번무득입’이라고 쓰여 있는데요. 이 뜻은 아무리 권위가 높아도 말에서 내리라는 뜻입니다. 경기전 안에 들어서면 홍살문이 있습니다. 홍살문의 기둥은 ‘둥근두리기둥’이라고도 불리는데요. 지름은 대략 50cm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궁궐에서만 사용가능한 건축 방법이라고하네요. 홍살문이 있는 곳은 신성한 곳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 홍살문 뒤에 ‘경기전’ 본전이 있습니다. 경기전에는 이성계의 어진이 있는데요. 어진은 임금님의 초상을 높이 받들어 말하는 것입니다. 원래 이름은 어진관인데 세종대왕께서 경기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이는 ‘경사스러운 땅에 임금을 모셨다’는 뜻입니다. 태종 10년(1410년)에 이 건물을 건립했는데요. 평양, 경주, 개경, 한양, 영읍, 전주에 어진을 모셨다고 합니다. 









경기전에는 3개의 문이 있었습니다. 이 3개의 문 중 가운데 문은 제사를 지낼 때만 들어가는 외신문입니다. 지금은 제사를 지내는 9월 9일에만 개방을 한다고 합니다. ‘동쪽에서 들어가고 서쪽으로 나온다’라는 개념을 가진 동입서출 사상을 지키기 위해 조상들은 동쪽에 위치한 문으로 들어가고 서쪽에 있는 문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전주 선비들이 이성계의 어진을 지키기 위해 내장산의 용접굴, 충청남도, 강화도로 피신 갔다가 묘향산 보현사에 어진을 안치했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에도 어진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주사고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곳입니다. 전주, 풍주, 서울, 성주에 조선왕조 실록을 보관했는데 임진왜란 때 전주만 빼고 다른 곳에 위치했던 조선왕조실록들은 불타 없어졌다고 합니다. 이 조선왕조실록을 지키기 위해 전주 선비들이 노력을 했다는 점에 또다시 감동의 물결이 넘쳐흘렀습니다. 조상님들의 노력 덕분에 이 조선왕조실록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마지막으로 대한 황실 승광재에 갔습니다. 이 곳에 조선의 마지막 황제, 고종의 손자인 ‘이석’님이 살고 계셨습니다. 승광재라는 뜻은 "빛을 계승한다"는 뜻으로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연호인 "광무"를 계승한다는 의미도 담고있다고 합니다. 승광재에서는 조선역사알기, 황실다례익히기, 황실예법익히기 등의 황실문화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전주가 있기에 조선의 찬란한 500년의 역사가 시작될 수 있었고 또한 조선의 역사를 간직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도시지만 볼거리와 뜻 깊은 역사가 넘쳐나는 전주! 전주의 모습을 우리가 아끼고 잘 가꾸고 보전해 세계에 널리 알리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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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세한 기사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2014.09.24 18:1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주양반디오현경

    전주의 까만 한옥 기와 지붕이 멋스럽게 보이는 사진이 인상적이네요. 전주이씨의 본고장. 우리 엄마가 전주이씨입니다. 반가운 기분이네요

    2014.09.25 01:53 [ ADDR : EDIT/ DEL : REPLY ]
  3. 김유진

    이석 교수님과의 뜻깊은 만남, 정말 부럽네요. 저도 다녀왔더라면 좋았을 걸~ 멀어서 가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운 마음이 들어요.

    2014.09.25 18:45 [ ADDR : EDIT/ DEL : REPLY ]
  4. 박진

    기사가 정말 좋네요^^.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4.09.25 20:08 [ ADDR : EDIT/ DEL : REPLY ]
  5. 전하진

    정말 전주 넘 멋진 곳 같죠?

    2014.09.25 22:54 [ ADDR : EDIT/ DEL : REPLY ]
  6.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정성껏 쓰셨네요~

    2014.09.27 22:04 [ ADDR : EDIT/ DEL : REPLY ]
  7. 김태규

    전주의 모습을 보존해서 정말 세계의 자랑거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4.10.13 21:38 [ ADDR : EDIT/ DEL : REPLY ]
  8. 박경준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4.10.26 23:50 [ ADDR : EDIT/ DEL : REPLY ]
  9. 신혜연

    좋은경험이었을것 같아요.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4.10.27 11:19 [ ADDR : EDIT/ DEL : REPLY ]
  10. 이준석

    전주 참 멋지네요~!!

    2014.10.31 21:56 [ ADDR : EDIT/ DEL : REPLY ]
  11. 전주이씨인데

    나 전주이씨 양녕대군파인데, 제발 이 홍어새끼들아 너거 절라도 종자랑 엮지 좀 마라! 지겹다지겨워

    쌩판 인연도멊는 홍어족들아 니들이랑 전주이씨는 아무런 상관없다!
    이성계 이전에 고조부가 함경도 영흥으로 올 때부터 니들 절라도와 연을 끊었다잉!
    짜증난다 홍 ㅓ색히들

    2019.03.12 09:04 [ ADDR : EDIT/ DEL : REPLY ]

충남 계룡시에는 ‘신도안면’(新都案面)이라는 면이 있다. 바로 새 도읍지로 결정되어 근 열 달 동안 백성들이 죽을 둥 살 둥 궁궐 공사에 동원됐던 곳이다. 그 공사에 쓰인 돌들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이 신도안은 오늘날 육해공군 본부가 들어와 면 전체가 군사보호구역이 되어 있으니 여느 땅과는 다른 팔자(?)를 지닌 것 같기도 하다. 



           

▲ 신도 완성 추측도(출처: 계룡시)



어쨌든 하륜은 계룡산 천도에 반대하면서 국토의 남쪽에 치우쳐 있다는 것과 풍수상 오히려 계룡산 지역이 좋지 못하다는 논의를 폈다. 신도읍으로 계룡산을 점찍은 가장 큰 이유가 풍수였는데 오히려 풍수가 좋지 못하다고 하니 나라의 남쪽에 치우친 데다 큰 강도 끼고 있지 않아 교통도 불편하고 기타 등등의 여건들이 그제야 태조의 눈과 귀에 들어온 듯 했다.  


다시 고려의 남경, 즉 한양 지역이 수도 후보지로 떠올랐고 하륜이 새 도읍 후보지로 제시한 곳은 무악이었다. 무악이란 오늘날의 무악재와 안산 사이를 말하는 지역이다. 만약 이 무악으로 도성이 결정되었다면 오늘날 신촌골에 들어서 있는 것은 연세대학교 캠퍼스가 아니라 경복궁과 창덕궁일지도 모른다.


 

             

▲ 무악 지도(출처: 서울시편찬위원회)



태조 이성계는 장군으로서 전투를 지휘할 때도 그랬지만 한 번 마음먹으면 그에 대한 집착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어찌 되었든 개경을 빨리 떠나고 싶었던 태조 이성계는 몸소 그곳을 둘러보러 나선다. 


더위가 가시지 않은 음력 8월. 이성계는 무악으로 행차하여 야영을 하면서 도읍지 후보 시찰에 나선다. 한강변에 위치하고 나라의 중심에 위치하기는 했으나 무악에도 문제가 있었다. 한 나라의 도읍지가 들어서기에는 좀 협소하다는 것이 하나고, 둘째는 역시 풍수였다. 풍수지리를 맡아보던 서운관 관리들은 무악이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는 상소를 연이어 올렸다. 그러자 한때 고려를 호령하던 맹장이었던 터프가이 이성계가 드디어 분노를 폭발시킨다. 


 “그대들은 입만 열면 불가하다는 말만 들먹이는데, 그 근거가 도대체 뭐란 말이냐? 만약 이곳이 불가하면 대체 어느 곳이 가하단 말이냐?” 풍수가 어떻고 무엇이 길하고 불길하고 하는 논의에 질릴 대로 질린 빛이 역력한 왕이었으나 서운관 관리 유한우는 그 앞에서 대놓고 이렇게 대꾸한다.  


“고려 태조는 명당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후 임금들이 다른 곳에 궁을 지어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송도(개경)의 지덕(地德)이 아직 쇠하지 않았사오니 다시 궁궐을 지어 도읍을 정하심이 좋겠습니다.” 유한우의 속내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나 그 결기 하나는 알아줄 만하다. 하지만 이성계의 분노는 활활 타오를 밖에. 그는 근처에 그렇게 길한 땅이 없다면 옛 백제 수도든 신라의 수도든 그리고 갈 것이라며 어깃장을 놓으며 신하들을 압박했다.

  



▲ 정도전(문화체육관광부 지정영정, 권오창 화백)



어디가 길하고 어디가 흉한지를 주로 따지던 논쟁에서 새로운 논거를 끌어들인 것은 정도전이었다. 정도전은 중국의 고사를 들어가며 이렇게 주장한다.  


“국가의 치세가 잘 이뤄지고 그렇지 않고는 결국 다스리는 사람에 따르는 것이지 풍수지리상의 성쇠에 갈음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지기(地氣)의 성쇠를 말하는 자들은 그 마음으로 깨달은 것이 아니라 옛 사람의 말을 다시 읊는 것에 불과하며, 신의 말한 바도 옛 사람들이 경험한 것입니다. 어찌 술사들의 말은 믿고 선비의 말은 믿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스리는 사람이 어떻게 다스리느냐가 문제지 땅의 기운 따위가 무슨 영향을 미치겠는가. 가히 정도전다운 말이다. 21세기에도 어디가 터가 안 좋고 기가 세서 어떤 결과가 나온다는 소리가 횡행하는 요즘에도 귀 기울일 말일 터이고.

 


무악을 떠난 태조 이성계가 다시 주목한 것이 한양이었다. 나라를 열자마자 도읍지를 옮겨보려고 했던 바로 그 땅. 

이성계는 한양이 마음에 들었다. 한양이라는 지명의 뜻은 한강 이북 고을이라는 뜻이다. 북은 양(陽)이었고 남은 음(陰)이기 때문이다. 말썽 많은 서운관 관리들도 “개경이 제일 좋지만 그 다음으로는 이곳 한양”이라며 거들었고 임금이 왕사로 대접하던 무학대사 역시 “사면이 높고 수려하며 중앙이 평탄해서 도읍지로 적당할 것 같습니다.” 고 한양을 지지한다.  이성계는 얼굴을 편다. “이제 이곳의 형세를 보니, 왕도가 될 만한 곳이다. 더욱이 조운하는 배가 통하고 사방으로 통하는 거리도 고르니, 백성들에게도 편리할 것이다.” 즉 한양은 풍수상으로도 좋았다고 하지만 결국은 실용적인 견지에서 도읍지로 낙점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 결정이 내려진 것은 무악에 들렀다가 서운관 관리들에게 불호령을 내린 다음날이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따르면 한양 도성 성벽에는 이런 전설이 있다.  “도성을 쌓을 자리를 결정짓지 못해 고민하던 어느 날 밤 큰 눈이 내렸다. 그런데 어느 선 바깥쪽은 눈이 쌓이는데, 안쪽은 곧 녹아 사라졌다. 태조는 이를 이상하게 여겨 눈을 따라 성터를 정하도록 명했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의 성 모양이다."는 것이다. 이 전설은 하나의 진실을 담고 있다. 이 한양성을 쌓았던 것이 엄동설한의 겨울이었다는 것. 




▲ 도성 성곽(출처:서울시)



전설도읍지가 결정된 뒤 태조 이성계의 행동은 그야말로 불도저와 같았다. 성벽 공사가 시작됐고 종묘와 궁궐 건설도 흡사 ‘속도전’을 벌였다. 1395년 8월 경기좌도의 인부 4,500명, 경기우도 인부 5,000명, 충청도 인부 5,500명을 징용하여 경복궁 건설을 시작했는데 두어 달도 안 지난 9월 29일에 이를 1차로 완성시킨다. 물론 제대로 된 궁궐이 아니었지만..... 다음 해 ‘도성축조도감’이 시작됐고 그 다음 해(1396) 정월에 도성 공사가 시작됐는데 11만 8천명의 인력이 투입돼 1월 9일부터 2월 29일까지 단 49일만에 대충의 성벽을 두르는 1차 공사를 끝냈다. 엄동설한의 추위 속에 진행된 초강행군이었다. 비록 성문조차 달리지 않은 미완성의 공사였지만 인왕산, 낙산, 남산을 에두르는 한양성벽은 이때 완성됐다. 모든 성벽을 97구간으로 나누어 진행했고 각 지역을 표시하여 지역민들이 쌓은 구간에 문제가 생기면 다시 불러올려 수리를 시켰다고 하니 백성들의 고충을 알만하다. 


개경에서 벗어나려는 태조 이성계의 마음은 그렇게 조급했다. 눈앞의 욕망과 이익 때문에 밀어붙이는 개발과 공사의 뒷감당은 고스란히 백성들이 하게 마련이다. 오늘날 우리가 바라보고 거니는 18킬로미터 성벽의 기초가 단 49일만에 완성됐다는 사실을 돌이켜보자. 그 성벽이 튼튼할 리 없었다, 결국은 세종 때 30만명의 인력을 동원한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해야 했다. 예나 지금이나 부실 공사는 필연적인 재앙이 되어 후대를 덮쳤던 것이다. 하지만 한양이 수도로 굳어지기에는 아직 우여곡절이 많이 남아 있었다.       



6백 년 전 수도이전, 한양천도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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