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여기저기서 인문학 강의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경북 김천 시립도서관에서도 9월 9일 우리 문화봉사회 주최의 ‘북 울림’ 프로그램 하나로 김천시민들과 함께 하는 인문학 강의가 열렸다. 그 현장을 찾아가 인문학 강의를 들어 보았다. 

‘역사를 바꾼 만남: 이순신과 류성룡’을 주제로 이순신 연구가이시며 역사칼럼니스트이신 박종평 선생님께서 열정적인 강의를 해주셨다. 





서애 류성룡 선생은 이순신장군보다 3살 많은 한 마을의 형으로 어렸을 때부터 같이 성장하였다. 그들의 인연은 깊은데, 1598년 1월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날 류성룡 선생은 영의정직을 파직 당했다. 

이순신 장군은 전쟁 중에 난중일기를 집필했고, 류성룡 선생은 파직당한 후 안동으로 낙향하여 선조 등 과거의 잘못을 짚고 후대로 하여금 경계하기 위하여 ‘징비록’ 을 집필한 공통점을 가졌다. 

류성룡 선생은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영의정으로 발탁되어 전시사령관의 역할을 했고 전쟁 1년 전에 류성룡 선생은 정5품 정읍현감이었던 이순신 장군을 정 3품 전라좌수사로 파격 기용했다. 선경지명이 뛰어난 분임을 알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은 어렸을 때 개구쟁이에 문과를 싫어하였다. 이순신 장군은 무과의 장인을 만나 그의 영향으로 문과에서 무과로 전향을 하였고 그로부터 10년 후에 29명 중 12등으로 급제하였다. 

또, 이순신장군의 사돈인 홍가신은 18세 때 관악산 절에서 류성룡 선생과 과거 공부를 함께 하였는데 류성룡 선생은 놀기를 매우 좋아 했다고 한다. 

홍가신은 전쟁 중에 ‘이몽학의 난’을 진압 하는 등 공신이다. 


박종평 강사님은 류성룡 선생, 이순신 장군, 홍가신 세 사람은 이익을 위해서 뭉친 것이 아니라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역사적 인식으로 뭉쳤기에 위대한 인물들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고 하였다.


퇴계 선생은 류성룡 선생을 “하늘이 낸 사람이다”라고 평했고, 학봉 김성일은 4살이나 많았지만, “서애(류성룡)는 나의 스승이다“라고 평했고, 허균은 ”서애가 이순신을 등용한 것이 나라를 증흥 시킨 큰 기틀이다“라고 평했고, 정조대황은 ”서애는 참으로 조선의 유후(장자방: 한 고조를 도와준 장량)“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이번 강의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바로 기록의 중요성이다. 

원균도 전쟁 초기에 장군의 전략을 수립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실제 전투에서 왜선을 격파하기도 했지만 난중일기에서 장군이 원균을 나쁜 사람이라고 평을 했기에 역사는 원균을 나쁜 사람으로 알고 있다. 원균은 일기 등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의 기록이 담긴 ‘난중일기’로 인하여 ‘글쓰지 않는 이는 역사에서  지워진다.’라는 것을 알게 해준 대표적인 사례이다. 

난중일기 곳곳에서 보여준 어머니에 대한 효와 전쟁으로 인한 그의 아픔, 그리고 오랜 독서를 통한 그의 전략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류성룡 선생과 이 순신장군의 공통점은 많은 독서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갈고 닦아 미래에 대한 준비와 기록을 통해 반성과 발전을 가지고 왔으며 개인의 이익보다 나라를 위한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에 오늘날 위대한 인물로 우리에게 배움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몇일 전, 우리 가족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결혼기념일을 맞이해 아산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아산은 충청남도에 위치한 곳인데요. 아산은 온천 및 현충사, 외암 민속마을, 은행나무길 등이 유명한 곳입니다. 우리 가족은 가장 먼저 우리가 1박 2일 동안 묵을 숙소인 도고글로리 호텔 숙소에 짐을 풀고 현충사로 떠났습니다.









현충사는 이순신 장군님의 정신과 업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고 이순신 장군님이 혼인 후 무예를 연마하던 곳입니다. 우리 가족은 일단 전시관을 둘러보면서 이순신 장군님의 몰랐던 업적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그 다음에 본전으로 가서 이순신 장군님의 영정을 보며 잠시 묵념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님께서 살았던 옛집에 들어가 경건한 마음으로 둘러봤습니다.









현충사 관광이 끝난 후, 우리 가족은 마침 우연히 공연 중인 '코미디 핫 페스티벌'에 가서 코미디를 시청하고 왔습니다. 중간 정도 공연이 끝나자, 기다리고 기다리던 개그콘서트 팀이 나와 개그를 시작했는데요. '렛잇비' 팀과 '닭치高', '힙합의 신' 등의 코너를 재밌게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는 개그맨 송필근 씨와 악수를 했는데 정말 기분좋았습니다. 저녁식사를 하고 빨리 숙소에 들어와 다음 일정을 위해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우리 가족은 일어나자마자 외출준비를 했습니다.









외출준비를 마치고 자동차를 이용해 '아산 레일바이크'로 향했습니다. 레일바이크를 처음 타다보니, 긴장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타 보니 기분도 좋고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레일바이크를 탄 후에, 스카이로드라는 재미있는 줄타기를 체험했습니다. 정말 스릴 만점의 체험이었습니다.









레일바이크 체험을 마치고, 코미디홀에 잠시 들러 코미디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다음 바로 외암 민속마을에 가서 유명한 잔치국수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외암 민속마을은 정말 많은 것을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요. 외암 민속마을은 중요 민속자료 제236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외암민속마을에서는 그네체험도 할 수 있고 팜플스테이도 할 수 있습니다. 팜플스테이는 농장에서 지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인데요. 좋은 체험 프로그램인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즐거웠던 외암민속마을을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여행은 마음 속 길이 남을 추억이자 여행이었습니다. 그만큼 정말 즐거웠던 여행이었는데요. 이번 여행 말고도 앞으로 더욱 신나는 여행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 미래는 항상 밝을 것입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여름철 많은 피서객들이 찾는 통영! 통영에는 많은 관광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관광지인 동피랑 벽화마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동피랑 벽화마을은 통영의 대표적인 어시장인 중앙시장 뒤쪽 언덕에 있는 마을로, ‘동피랑’이란 이름은 ‘동쪽 벼랑’이라는 뜻입니다. 구불구불한 오르막 길을 따라 강구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동피랑마을에 오르면 담벼락마다 그려진 형형색색의 벽화가 눈길을 끕니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統制營)의 동포루(東砲樓)가 있던 자리로, 통영시는 낙후된 마을을 철거하여 동포루를 복원하고 주변에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습니다. 이에 2007년 10월 ‘푸른통영21’이라는 시민단체가 공공미술의 가치를 들고 ‘동피랑 색칠하기-전국벽화공모전’ 을 열었고, 전국 미술대학 재학생과 개인 등 18개 팀이 낡은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벽화로 꾸며진 동피랑마을에 대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마을을 보존하자는 여론이 형성되자 통영시는 마침내 동포루 복원에 필요한 마을 꼭대기의 집 3채만을 헐고 마을 철거방침을 철회하였습니다. 철거 대상이었던 동네는 벽화로 인하여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통영의 새로운 명소로 변모하여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동피랑 벽화마을로 향하는 입구입니다. 많은 계단들이 보이지만 동피랑을 보기위해선 열심히 올라가야겠죠?

 


마을 안내도처럼 동피랑 마을은 동그란 모양을 이루고 있어요. 그래서 구경할 때는 마을을 크게 둘러가며 곳곳에 있는 예쁜 벽화들을 구경하시면 됩니다. 벽화들을 보고 있으면 눈이 즐거워지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답니다. 그럼 동피랑마을의 벽화들을 감상해보겠습니다.

 

 

▲ 출처 : flickr

 

 ▲ 출처 : flickr

 

▲ 출처 : flickr

 

동피랑은 골목골목이 아기자기한데다가 예쁜 벽화까지 더해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카메라를 든 여행객들로 가득차면서 신문과 잡지, TV에도 여러 차례 소개되었습니다.

 

 

얼마전, 세계적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빼앗았던, '렛잇고~' 의 주인공인 ‘겨울왕국’ 캐릭터가 보입니다. 주민분들께 여쭤보니 벽화는 주기적으로 바뀐다고 하는데요. 그 때문에 최신에 인기를 끌었던 겨울왕국 캐릭터가 벽화로 그려져 있었네요. 지속적으로 바뀌는 동피랑마을의 벽화! 다음 그림도 벌써 기대가 됩니다.

 


이곳은 동피랑 마을의 정상 동포루입니다. 동포루에서 내려다보면 주변경치를 둘러볼 수 있는데요. 탁 트인 바다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개운해지는 느낌이 든답니다. 

 

동피랑마을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벽화 뿐만아니라 항구까지 내려다 볼 수 있는 매력이 숨어 있기 때문인데요. 시간이 되신다면 낙후된 마을에서 관광마을로 바뀐 동피랑을 찾아가보세요!

 

 

 

 

Posted by 국토교통부

 

 

우리나라 국토교통을 빛낸 위인을 만나다.


시간을 거슬러 국토교통을 빛낸 위인을 만나는 가상 인터뷰! 


네번째 위인은 임진왜란 때 위기에 빠진 조선의 바다를 지켜낸 '성웅 이순신' 장군입니다.

 

 



처음에는 이순신 장군님이 우리나라 역사에 매우 중요한 분이지만, 바다를 지킨 분이라 국토교통과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명량'이라는 영화를 보고 다시 깨달았습니다.

 

 

위기에 처한 우리 국토를 지키기 위해 이순신 장군님은 바다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다는 것을. 한국 역사에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인 이순신 장군님을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이순신(1545~1598)

 

서울에서 태어나 아산의 외갓집에서 자랐다. 31세에 무과에 합격해 무관이 되었으나, 꼿꼿한 성품으로 인해 다른 신하들의 미움을 받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 삼도수군통제사로 수군을 이끌고 전투마다 승리를 거두어 왜군을 물리치는 큰 공을 세웠다. 처음으로 출전한 옥포해전 때 멋지게 왜적과의 싸움에서 첫 승리를 거두고, 바다의 물살을 이용해 명량대첩 때 한양의 함락 위기를 막았다.


한산대첩 때 학이 날개를 펼치듯이 왜국의 배를 둘러싸는 방법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임진왜란 때 거북선을 만들어 왜적들을 당당하게 물리쳤으나, 노량대첩 때 큰 승리를 거두고 슬프게도 죽음을 맞이했다. 


 

 



  

[기  자]

안녕하세요? 저는 국토교통부 어린이 기자단의 이주훈 기자입니다.

 


[이순신]

안녕하세요. 이순신입니다.

 


[기  자]

너무 유명하신 분을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위인 중 한 분이실 겁니다. 저는 장군님이 화살로 한 번에 적을 맞추고, 칼싸움도 잘하셔서 무척 부러운데요. 어떻게 하면 무예를 그렇게 잘 할 수 있을까요?

 

 

[이순신]

어렸을 때부터 다른 아이들과 모여 놀 때면 나무를 깎아 칼과 화살을 만들어 전쟁놀이를 했어요. 덕분에 무과에 합격할 수 있었구요. 활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아마도 전쟁놀이를 좋아했기에 잘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기  자]

임진왜란 때 임금께서 바다에서 싸우지 말고 땅에서 싸우라고 했고, 다른 장수들도 바다에서의 전투는 반대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12척밖에 남지 않은 배로 일본의 300척이 넘는 배를 이길 수 없는 상황인줄 알면서도 바다에서 싸운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순신]

바다를 버리는 것은 나라를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바다를 버리고 육지에 가서 싸우면 왜군들에게 우리나라 국토를 쉽게 빼앗길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구요.

 

 

 

 

 

▲ 한산대첩

 

 

 

 

[기  자]

그렇지만 그렇게 열심히 나라를 위해 싸웠는데도 거짓을 말한 신하들의 말을 믿고 장군님을 감옥에 보냈던 임금이 다시 나가서 싸우라고 했잖아요. 정말 저였다면 임금이라도 절대 말을 듣지 않았을텐데 다시 전쟁터에 나가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순신]

내가 나가 싸우지 않았다면 우리나라 백성들은 죄도 없이 계속해서 죽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나라의 장군된 도리로 백성을 위해 임금이 원망스러워도 나가 싸운 것입니다.

 

 

[기  자]

장군님의 말씀을 들으니 장군님이 이 나라의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칼과 창을 좋아하는 마음보다 몇 천배 더 백성을 사랑하시는 마음, 아끼시는 마음이 존경스럽습니다.

 

 

[이순신]

그런데 재미있는 소식을 하나 들었습니다. 요즘 어린이들은 위인전 말고도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도 저에 대해 알게된다고 하던데요?

 

 

[기  자]

우와! 정보가 빠르시네요.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이순신 장군님이 인기입니다. 장군님의 명량대첩을 영화로 만들었는데, 그 열풍이 굉장합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장군님의 모습을 보고 감동하고, 존경하고 있습니다.

 

 

[이순신]

우리 후손들이 저를 그렇게 생각해주고 있다니 영광입니다. 저도 한 번 그 영화를 보고싶네요.

 

 

[기  자]

장군님, 어려움에 처한 우리나라를 포기하지 않고 목숨걸고 싸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들도 장군님처럼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이순신]

마음이 대견합니다. 우리 어린이들도 모두 힘내시길 바랍니다. 저처럼 칼과 활을 잘 다루는 튼튼한 조상님들이 언제나 여러분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으니까요. 대한민국 어린이 힘내세요!

 

 

[기  자]

멋진 장군님, 인터뷰도 재미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과거로 안녕히 돌아가세요.

 

 




인터뷰를 준비하며 이순신 장군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순신 장군님을 감옥에 가둔 임금과 신하들을 벌주고 싶었겠지만, 백성을 생각하는 더 큰 뜻을 가지고 전쟁터에 나가신 마음과 목숨을 바쳐 싸우다 돌아가신 노량대첩에서의 큰 승리를 통해 지금의 우리 국토를 지킬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순신 장군님이 없었다면,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는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보니 미래에 이순신 장군님처럼 이 나라의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님을 성웅이라 부릅니다.

 

 

이순신 장군님과의 인터뷰를 정리하며 왜 그분이 그냥 영웅이 아니라 성웅인지 그 이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참고자료 1>

 

 

거북선

 

임진왜란(1592년) 직전에 이순신 장군이 만든 세계 최초의 철갑선으로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무찌르는데 크게 이바지한 거북 모양의 철갑선이다. 등에는 창검과 송곳을 꽂아 적이 오르지 못하게 했고, 앞머리와 옆구리 사방에는 화포를 설치했다. 사천해전에서 첫 출전했고, <조선왕조실록> 등에는 거북을 한자로 옮긴 '귀선(龜船)'이라고 적혀있다.

 

(자료출처 : 네이버 어린이 백과)

 

 

 

 

 

 

<참고자료 2>

 

 

난중일기

 

이순신 장군이 전쟁 중에 쓴 일기. 전쟁 중의 기록이라 하여 난중일기라 부르게 되었다.

난중일기에는 부하를 사랑하고 백성을 아끼는 마음, 날씨나 가족에 대한 그리움까지 적혀있다. 충남 아산의 현충사에는 이순신 장군이 직접 쓴 글도 보관되어 있다.

 

(자료출처 : 네이버 어린이 백과, 두산백과)

 

 

 

 

 

 

<참고자료 3>

 

 

유성룡(1542~1607)

 

조선 중기의 문신. 임진왜란 중 최고 관직을 지내며 전시 조정을 이끌었으며, 임진왜란으로 위기에 빠진 조선왕조를 재정비, 강화하기 위한 응급책으로 각종 시무책을 제기했다. 본관은 풍산, 자는 이견, 호는 서애·운암이다. 

이순신 장군과는 친구사이로 아주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유성룡이 쓴 <징비록>에는 가까이에서 본 이순신의 이야기도 있다.

"이순신은 어린 시절 영특하고 활달했다. 다른 아이들과 모여 놀 때면 나무를 깎아 칼과 화살을 만들어 동리에서 전쟁놀이를 했다. 마음에 거슬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 눈을 쏘려고 해 어른들도 그를 꺼려 감히 군문 앞을 지나려고 하지 않았다. 자라면서 활을 잘 쏘았으며 무과에 급제해 관직에 나아가려 했다.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 했으며, 글씨를 잘 썼다."

 

(자료출처 : 네이버 어린이 백과)

 

 

 

 

 

[자료출처]

 

적을 막아라 이순신 / 이경혜 / 한국 톨스토이

바다와 육지에서 외적을 물리치다 / 유현재 / 그레이트 북스

네이버 어린이 백과

두산백과

 

 

 

 

 

 

 

Posted by 국토교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