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10.06 [어린이 기자] 박물관이 지루하다면, 경기도 박물관으로! (13)
  2. 2013.05.22 포항제철 1편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로에 위치하고 있는 경기도 박물관은 1996년에 개관했습니다. 경기도 박물관 옆에는 미취학 아동부터 초등학생까지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어린이 박물관도 위치하고 있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견학장소로 손꼽는 곳인데요.






▲ 경기도 박물관의 외부 모습





먼저 경기도 박물관에서는 경기지역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청소년부터 어른들을 위한 경기도 박물관과 미취학부터 초등학생들을 위한 어린이 박물관이 따로 있어 서로의 공간에서 관람하고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경기도 박물관의 상설전시는 ‘역사실’, ‘고고실’, ‘문헌자료실’, ‘서화실’, ‘민속생활실’로 이뤄져 있습니다.



모든 전시실에는 전시 유물에 대한 음성 안내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다른 박물관은 안내데스크에서 음성 설명해주는 도구를 빌리는 형식이지만, 이곳에서는 경기도 박물관 스마트폰 어플을 다운받아 음성안내를 들을 수 있습니다. 돈을 내지 않고도 음성안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경기도 박물관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입니다.






경기도 박물관 스마트폰 어플 - 출처 : 여성가족부 블로그





전시실은 모두 2층 이상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층 안내데스크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과거 경기도 지역의 모습과 경기 지역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진들이 걸려있습니다. 몇 개의 사진들은 과거의 사진 옆에 현재의 모습과 비교해볼 수 있는 사진이 있어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재미있게 올라갈 수 있습니다.



전시실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역사실’은 말 그대로 경기도 지역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곳입니다. ‘경기’라는 이름의 시작부터 경기도가 포함하고 있는 지역까지의 모든 것과, 경기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경기’라는 말은 원래 ‘왕성과 도읍지를 보호하기 위한 땅’, ‘수도를 둘러싼 지역’으로 칭해졌다고 합니다. 1018년부터 이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조선시대 태종 때 한양 주위의 현을 묶어 경기라고 칭했다네요. 경기라는 이름이 1000년 전부터 생겨난 것이었다니, 정말 놀라웠습니다.






▲ 구석기시대의 대표 석기, 주먹도끼





두 번째로 만날 수 있는 ‘고고실’은 선사관과 역사관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경기도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한 눈에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석기로는 주먹도끼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주먹도끼는 타원형으로 앞이 뾰족하고 뒤로 갈수록 넓은 모양인데요. 이 주먹도끼 외에도 많은 석기들이 주로 사냥, 나무가공, 가죽 및 뼈 가공 등에 쓰였다고 합니다. 가장 오래된 석기는 약 250만 년 전의 것으로 ‘호모 하빌리스’ 단계에서 쓰였다네요.






▲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 토기





신석기시대는 토기의 제작을 주제로 전시돼 있었습니다. 현재 한반도에서 출토된 토기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것은 제주도 고산리 유적에서 나온 민무늬토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신석기시대에는 빗살무늬 토기가 가장 대표적인 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토기의 겉면에 빗살무늬를 새겨 넣었습니다. 빗살무늬는 토기를 불에 구울 때 불 속에서도 도중에 깨지거나 잘 갈라지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요. 토기의 깨짐을 막기위해 빗살무늬를 새겨넣은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지혜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기의 아래쪽이 뾰족한 이유는 토기를 암사동 움집(신석기시대 움집)과 같은 딱딱한 움집의 바닥에 토기그릇을 놓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토기를 넘어뜨려 깨지거나 열매나 음식물이 쏟아지는 일이 있기 때문에 토기를 뾰족하게 만들어 반쯤 묻어두었다고 합니다.






신석기시대에 사용하던 갈판과 갈돌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사냥이나 고기잡이 등을 하면서 식량을 보관하고, 이를 요리하기 위해 그릇을 만들었는데, 토기의 등장은 신석기 문화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합니다. 토기는 신석기시대의 주요 용기로 신석기시대가 지난 뒤에도 오랫동안 사용했다고 합니다.



청동기시대는 반달돌칼의 사용이 대표적인데요. 이 반달돌칼이 철기시대에는 철제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반달돌칼의 등부분은 직선이고 날은 둥근 모양인데, 주로 곡물의 이삭을 따기 위한 용도였다고 하네요. 철기시대가 전시된 곳의 끝에는 ‘미술실’이 연결되어 있는데, 사람만큼 큰 토기부터 다양한 무기들까지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의 다양한 유물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문헌자료실’에서는 5학년 2학기 사회교과서의 한 부분에 나오는 ‘화성능행도’ 그림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화성능행도’는 정조의 화성행차를 그린 7장의 그림인데요. 이외에도 조선시대의 의복이나 여러 문서들을 전시하고 있어, 조선의 역사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초등학생 유물그리기 대회 경기도지사 대상 수상작품




다시 1층으로 되돌아 내려오는 곳에는 초등학생 유물그리기 대회에서 수상한 작품들이 걸려있었습니다. 저마다의 색채구성과 표현력으로 그려진 그림은 실제 유물을 바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우수함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 1. 경기도 어린이 박물관 입구 모습

   2. 주차장에서 본 경기도 어린이 박물관

   3. 경기도 어린이 박물관 내부 안내도

 




기도 박물관 옆에 따로 위치하고 있는 경기도 어린이 박물관은 국내 최초로 독립적인 단독건물로 이뤄진 박물관인데요. 2011년 9월에 개관한 이래로 현재까지 약 200만명이 방문했다고 합니다.



‘소통과 참여’라는 주제로 설립된 어린이 박물관은 아이들에게 꿈과 상상력, 창의성을 키워주기 위한 박물관으로,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오감으로 체험해서 배워가는 배움터입니다. 어린이 자문단을 모집해 아이들의 발달에 적합한 전시와 프로그램을 만들고, 아이들과 함께 참여함으로써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전시와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박물관 내에는 과학, 문화, 예술 등의 다양한 주제를 대상으로 한 9개의 상설전시실과, 년 1~2회마다 주제를 바꿔가며 새로운 전시를 선보이는 기획전시실을 비롯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 1. <한강과 물> 전시관에서 체험하는 사람들

   2. <한강과 물> 전시관 내부 모습

   3. <우리 몸은 어떻게> 전시관의 입 모형

   4. <우리 몸은 어떻게> 전시관에서의 폐의 원리 관련 체험





<자연놀이터>, <튼튼놀이터>, <한강과 물>, <우리 몸은 어떻게>와 같은 주제의 상설전시실에서는 전시물을 직접 만지고 작동해보는 체험을 통해 어린이의 이해를 높여주고 있었습니다. 특히 <한강과 물>과 <우리 몸은 어떻게> 전시관에서는 직접 물을 가지고 놀거나 직접 신체를 사용하며 체험을 하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에게 강력추천하는 장소입니다.



상설전시실은 자기 주도적 학습을 해나갈 수 있는 프로그램 운영과 전시, 교육으로 미취학 아동이나 초등학생들이 학습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고안된 공간입니다. 특히 어린이 각자의 흥미와 발달 단계에 맞도록 체험과 학습을 통해 상상력과 창의성을 향상시키는데 초점을 맞춤으로써, 학부모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곳이라고 합니다.



박물관 내부에는 유명한 작가의 다양한 예술작품들이 설치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체험전시를 통한 학습의 심화를 위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 학습에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 1. '잭과 콩나무' 구조물

     2. 통화연결음 소리에 맞춰 춤추는 돌고래

     3. 구슬이 굴러가면서 소리내는 작품





작년 11월에 설치된 어린이 박물관의 ‘잭과 콩나무’ 구조물은 잎사귀들을 밟고 올라가며 길을 찾으면서 공간인지와 문제해결능력, 모험심을 기르는 세계최대규모의 교육체험 구조물이라고 합니다. 미취학 아동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까지 두루 인기가 많은 구조물이었습니다.






▲ 관람시간 및 관람료 안내 출처 : 경기도 어린이 박물관 홈페이지






경기도 어린이 박물관 연락처 - 출처 : 경기도 어린이 박물관 홈페이지





휴일이 많은 이번 10월, 경기도 박물관에서 가족들과 함께 유익하고 행복한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요?








Posted by 국토교통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박진

    경기도 박물관에 가보고 싶네요.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4.10.08 21:32 [ ADDR : EDIT/ DEL : REPLY ]
  2. 박나연

    기회가 되면 가보고 싶어요

    2014.10.10 13:11 [ ADDR : EDIT/ DEL : REPLY ]
  3. 꼭 방문해 보겠습니다!

    2014.10.10 23:45 [ ADDR : EDIT/ DEL : REPLY ]
  4. 민속촌 근처죠?

    2014.10.11 13:46 [ ADDR : EDIT/ DEL : REPLY ]
  5. 체험할수 있는 공간이 많아서 재미있겠어요.^^

    2014.10.11 21:2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전하진

    사진이 많아 이해하기 쉬웠어요.^^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2014.10.12 23:41 [ ADDR : EDIT/ DEL : REPLY ]
  7. 김태규

    경기도 박물관? 가본것 같기도 하고 안가본것 같기도 하고...
    한번 가보고 싶어요^^기사 잘읽었습니다~

    2014.10.13 21:24 [ ADDR : EDIT/ DEL : REPLY ]
  8. 신혜연

    저도 여기 어린이 박물관 개관할 때 갔었는데 정말 재미있게 잘 꾸며 놓았더라구요,
    좋은 박물관들이 많이 생겨서 좋아요. ^^

    2014.10.15 20:33 [ ADDR : EDIT/ DEL : REPLY ]
  9. 민혜준

    저도 예전에 경기도 박물관에 갔었는데, 재미있었어요.

    2014.10.20 01:04 [ ADDR : EDIT/ DEL : REPLY ]
  10. 제목이 특이해서 들어와 봤는데..
    멋진 곳이네요!

    2014.10.23 20:41 [ ADDR : EDIT/ DEL : REPLY ]
  11. 김유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박물관이랍니다. 용인시니까, 용인민속촌이랑 꽤 가까울 거예요.
    저는 개인적으로 어린이박물관이 재미있었답니다!

    2014.10.25 21:56 [ ADDR : EDIT/ DEL : REPLY ]
  12. 박경준

    무척 재미있을거 같네요 가보고 싶어요.

    2014.10.27 08:05 [ ADDR : EDIT/ DEL : REPLY ]
  13. 이준석

    저는 경기도 어린이 박물관에 가야 겠네요~~~~
    저는 이런 곳 진짜 좋아하는데^^

    2014.10.28 22:24 [ ADDR : EDIT/ DEL : REPLY ]


영화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를 기억하시는지. 싸움을 해도 소리 지르고 때리고 물고 할퀴고 정도를 되풀이하던 유인원 무리 가운데 하나가 짐승의 정강이 뼈를 주워 든다. 그리고 그 정강이뼈로 누군가를 후려치자 그는 맥없이 고꾸라져 버리고 정강이 뼈를 치켜든 유인원의 집단은 승리를 맛본다. 그 도구를 하늘로 던졌을 때 영화는 수억 달러의 돈이 들어간 최첨단 우주비행선으로 오버랩 된다. 인간이 도구를 쓰기 시작한 이래의 수백만 년의 시간을 영화적으로 압축한 것이다. 결국 정강이 뼈는, 정강이 뼈를 든 손은 ‘영장류’에서 ‘인류’로 나아가는 중대한 계기가 되었음을 표현했다고나 할까. 



 

 

▲ 스페이스 오디세이 스틸 컷(출처: 네이버 영화 http://bit.ly/11PEGhj)



그렇듯 인간은 도구를 쓰면서 비약적인 발전의 테이프를 끊는다. 하지만 구석기 시대는 그로부터 수백만 년을 헤아린다. 즉 아프리카의 원숭이에서 조금 벗어난 별종의 생물이 돌 깨서 만든 타제석기 (요즘은 뗀석기라고 부른다)를 쓴 이래 그 후예들은 수백만 년 동안 또는 수십만 년 동안 고만고만한 석기를 사용해 왔던 것이다. 그를 좀 더 예리하게 갈아 만든 석기를 사용한 이른바 신석기 시대는 1만년 전에나 겨우 시작됐고 청동기와 철기는 더욱 그보다 더욱 짧다. 그 가운데 철기의 발명은 인류 역사의 또 하나의 획을 긋는다.

 

원소명 Fe, 기호 26번인 철은 가장 안정적인 원자핵을 갖고 있고, 지구의 지각에서는 산소와 규소, 알루미늄 다음으로 많은 원소이며 지구 무게의 약 35%를 차지한다고 한다. 철은 청동기보다 녹는점이 높았다. 즉 철의 발견은 더욱 더 발전된 야금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철기를 최초로 사용했다고 알려진 중동 지역의 힛타이트 왕국에서는 제련된 철이 은(銀)의 40배 가격으로 거래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철기 제련 방법은 엄격하게 비밀로 유지되었다고 한다. 



 

▲ 상리 출토 철기 및 청동기(출처: 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



그러나 인간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으랴. 철기는 급속도로 유포되어 청동기를 압도했다. 일단 구리보다 단단했고 재료를 구하기도 쉬웠다. 인류 문명의 본격적인 발전은 철기 시대의 도래와 때를 같이 한다. 철기로 된 도구를 사용하면서 농업 생산량은 급격히 증가했으며 더 우세한 기술로 만들어진 철기 무기와 갑옷들은 그를 갖추지 못한 세력을 격멸하고 정복하는 유용한 도구가 된다. 또 철기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던 족속들은 절치부심 더 강력한 철기에 골몰했고 그러면서 철기는 점점 더 발전했다. 언젠가 방영됐던 드라마 <주몽>에서 등장한 ‘철검’의 의미를 기억해 보면 될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철의 생산지는 곧 각축의 현장이었고 동시에 번영의 초석이었다. 고구려가 오늘날 중국의 요동 지역으로 진출하려 했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당시 요동이 철의 주요한 산지였기 때문이다. 끝내 요동의 주인이 된 고구려는 기병과 말을 전부 쇠로 감싼 개마무사(鎧馬武士)들의 중기병 집단을 운용하는 동북아시아 최강의 무력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일찍이 철이 많이 나서 당시 중국인, 왜인들까지 몰려들어 철을 샀고 철기가 화폐처럼 쓰이기도 했다는 변한 지역 (낙동강 이서)은 이후 가야와 신라의 무력 기반이 되기도 했다. 병사들의 온몸과 말까지 감싼 철기는 상대편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만 명의 병사들을 철기로 무장시켰던 철 생산력은 삼국통일 이후의 역사에서 오히려 둔화된다. 특히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했던 조선 시대에서 광업은 견제와 통제의 대상이었다. 


“1430년(세종 12년) 무렵 전국에는 66개의 철광과 17개의 제련소가 있었지만 철광석 채광활동은 농한기에도 규제됐다. 구리채광은 1423년(세종 5년) 동전을 주조하기로 결정하면서 촉진됐지만 그래셤의 법칙이 적용된 동전이 화폐가치 하락 등으로 유통되지 않으면서 화폐주조도 1445년(세종27년) 막을 내렸다. 구리 채광은 무기재료를 얻기 위한 명목으로 그저 명맥만 지속했다.”

(김동욱 기자의 역사책 읽기, http://blog.hankyung.com/raj99/19126467 중) 야금 장인들의 수와 활동 또한 정부가 엄격히 통제했으니 제철 기술이 발전할 여지는 매우 적었다.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전기에 비해서는 광공업이 활성화되기는 하지만 조선의 제철 기술은 여전히 형편이 좋지 않았다. 그것이 비극적으로 드러난 것이 신미양요 때 광성진 전투였다. 조선군의 대포가 미군의 함포에 댈 것이 못되었고 광성진을 흠씬 포격한 미군은 이윽고 상륙하여 성벽을 기어오른다. 이후 벌어진 백병전에서 조선군들은 용감히 맞서 싸운다. “칼을 들고 싸우다가 칼이 부러지자 납으로 된 탄환을 적에게 던지며 싸웠으며”(황현의 <매천야록> 중) 이는 미국측의 기록에도 동일하게 나와 있다. “조선군은 용감했다. 그들은 항복 같은 건 아예 몰랐다, 무기를 잃은 자들은 돌과 흙을 집어 던졌다. 전세가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되자 살아남은 조선군 백 여명은 포대 언덕을 내려가 한강물에 투신 자살했고 일부는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 (엘버트 가스텔) 


그런데 그들은 왜 무기를 잃었으며 왜 칼은 부러졌을까. 그것은 철의 차이였다. 근대적 제철 기술의 산물인 강철 총검에 부딪친 조선군의 칼과 창은 맥없이 휘거나 부러져 버렸던 것이다. 흙을 뿌리며 덤비는 조선군은 물론 용감했지만 이는 황망하게 무기를 잃은 이들의 절망적인 몸부림이었다. 흡사 흑요석 창을 휘두르던 잉카 제국의 용사들이 철제 무기 앞에 쓰러져 가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 겸이포 제철소 (출처: 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



가내 수공업이나 동네 대장간이 아니라 근대적 제철소에서 철을 생산하는 것을 구경이나마 하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였다. 1918년 황해도 송림시에는 일본의 미쓰비시 제철이 ‘겸이포 제철소’를 건설하고 함경북도 청진에도 제철소가 서지만 철강 산업 자체가 일제 군수공업의 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제철소에선 주로 상품이 아닌 선철을 생산했고 그것들은 모조리 일본으로 실려갔다. 숙련된 기술자들은 죄다 일본인이었고 조선인은 그저 공장의 노예일 뿐이었다. 1920년 겸이포 제철소에 폭탄이 던져질 만큼 착취와 학대의 현장이었다.  그렇게 수십년을 보낸 후 해방이 왔지만 전쟁이 덮쳤고 그나마 있던 모든 시설은 잿더미가 됐다. 그것이 신생 대한민국의 현실이었다.   



포항제철 시리즈 

> 포항제철 2편

> 포항제철 3편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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