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철원에 있는 노동당사는 북한 노동당이 사용하던 건물로, 남한에 남아 있는 유일한 북한 건축물이다. 현재는 철원이 남한 땅이지만, 6.25 전쟁 전에는 북한 땅이었기에 이 건물이 남한에 남게 됐다. 


문화재청은 지난 2002년 이 노동당 건물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일반인들도 관람할 수 있게 했다. 6·25전쟁의 상처를 간직한 이 건물을 잘 보존해서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일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다. 통일 기원 음악회와 같은 여러 행사도 진행되니 아픈 현대사를 간직한 노동당사를 직접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Posted by 국토교통부



1914년 경원선이 부설된 지 101년, 1945년 남북 분단으로 70년간 단절되었던 경원선 철도복원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됩니다.

 



정부는 분단 70년을 맞아 통일의 중요성을 재인식하였으며.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실질적 구현을 위한 체계적인 준비 차원에서 경원선 구간의 복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신중히 검토하였습니다. 



작년 통일준비위원회 제2차 회의에서도 경원선 복원을 가장 시급히 추진해야 할 사업의 하나로 제안하였으며, 5월 26일 국무회의 및 6월 25일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 의결을 거쳐 우리 측 구간부터 시행하기로 하였습니다.



                       (남북철도 연결사업 현황)


이번 경원선 철도복원 사업은 1단계로 백마고지역 ~ 월정리역 간 9.3km 구간의 단선철도를 복원하는 한편, DMZ 및 북측구간 연결을 위한 남북 간 협의도 진행해 나갈 계획입니다. 



실질적인 공사는 사업 추진의 필요성과 접경지역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여 설계·시공 병행방식으로 추진되며, 건설공사 시행 준비 작업을 거쳐 10월 이후 착수하게 됩니다.



경원선 남측구간 철도복원 공사 기공식은 8월 5일(수) 오전 11시에 철원 백마고지역에서 개최됩니다. 

 



                         (경원선 복원 계획도)


이번 경원선 철도복원 사업으로 인해서, 한반도 긴장완화, 남·북 간 상호 신뢰 구축, 남북 교류 확대를 도모하는 등 실질적 통일준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유라시아 철도망이 구축됨으로써 한반도가 대륙철도의 물류 전진기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안녕하세요. 영훈초등학교 6학년 민혜준 기자입니다. 지난 2년간 국토교통부 어린이 기자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제 저는 중학생이 됩니다. 초등학교와도 이별을 해야하고, 아쉽게도 국토교통부 어린이 기자단과도 이별을 해야하네요. 왜 중학생 기자단은 없는지 너무 아쉽습니다.






▲ 국토교통부 어린이 기자단 출범식





2014년에는 6학년이라 이런저런 행사가 겹쳐 2013년에 비해 많이 활동에 참가를 못해 더욱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도 가장 인상 깊었던 활동은 철원 DMZ 탐방이었습이다. 서울과는 달랐던 북쪽 철원의 너무 추운 날씨에 깜짝 놀란 것도 있지만, 평소에는 갈 수 없었던 백마고지, 노동당사 등을 직접 둘러보면서 우리나라의 통일에 대해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됐습니다. 뉴스에서만 보고 듣던 북한이 실제로 제가 서 있던 곳에서 19km정도 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습니다. '북한이 정말 가까운 곳이구나'라는 것을 실제로 느끼면서, 통일이 되면 과연 어떤 좋은 점과 어려운 점이 생길지도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 가장 인상깊었던 철원 DMZ 탐방





낯을 많이 가려 다른 어린이 기자분들과 많이 친해지지 못한 것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 철원 DMZ 탐방 열차 안에서 어린이 기자단 친구들과 함께





끝으로 국토교통부 장관님을 비롯한 관계자 분들과 다른 국토교통부 어린이 기자단 친구들에게도 이별 인사를 하고싶습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Posted by 국토교통부

국토교통부 대학생 기자단 최서진기자 입니다! 이번에 저는 국토교통부 대학생 기자단들과 함께 DMZ열차를 타고 철원에 다녀왔는데요. 그 생생한 현장을 저와 함께 따라가 보시죠!!

 


국토교통부 대학생 기자단은 9시에 서울역에서 모였습니다. 바로 9시 27분 서울역에서 백마고지로 가는 DMZ 트레인 기차를 타기 위해서 인데요. 알록달록한 기차를 보니 백마고지로 가는 길이 더욱더 설렜습니다.

 

 

 


여기서 DMZ 트레인은 서울역에서 백마고지역까지 가는 기차로 하루에 한 번 왕복운행하고 있습니다. 11시 44분에 백마고지역으로 도착한 기차는 약 4시간 정도의 관광을 한 뒤 백마고지역으로 돌아와서 6시 35분에 서울역으로 도착하는 기차입니다. 기차는 총 3칸으로 되어있고, 각 객실마다 다른 주제의 사진전을 볼 수 있습니다.

 


기차안에서는 승무원들이 예쁜 목소리로 라디오방송을 하는데요. 백마고지 안보관광상품이나 시티투어 관광상품에 대한 소개는 물론이고, 백마고지에 대한 간단한 설명, 밖의 풍경에 대한 설명, 사연소개 등 기차시간 약 2시간 내내 승객들이 지루하지 않게 다양한 코너들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기차에 내려서 철원 시티투어를 하는 버스로 탑승했습니다. 철원지역에 거주하는 관광해설사님의 생생한 스토리까지 곁들어져 즐거운 여행길이 되었습니다.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한탄강에 있는 고석정입니다. 고석정은 철원평야를 가로질러 흐르는 한탄강 중류에 위치한 철원 팔경중의 한 곳 입니다. 강 양쪽은 절벽의 중간에는 자연석굴이 있고, 조선시대 의적인 임꺽정은 이곳 자연 석굴에 은거하여 활동했다고 합니다. 수려한 자연 경관을 보니 자연의 아름다움이란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 그 이상으로 아름답고 신비롭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다음으로 간곳은 승일교입니다. 승일교는 백마고지에서 활약한 장군의 이름을 따서 만든 다리라고 하는데요.

 

 

6.25전에 북한땅이였던 철원에 북한이 놓은 다리가 반이 있고, 6.25이후 우리나라가 놓은 다리 반이 합쳐져서 남북 합작 다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이 만들어낸 협곡 위로 반반이 다른 다리를 보고 있자니, 슬픈 역사의 한 장면 인것 같아서 저절로 숙연해 졌습니다. 승일교는 현재 다리의 보존을 위해서 차량의 통행은 금지되어 있고, 사람들의 통행만 가능합니다.

 


승일교를 지나서 엄태웅길로 갔는데요. 엄태웅길..?? 이라고 의문이 드시는 분 계시죠?? 저도 처음에는 왜 엄태웅 길인지 궁금했습니다. 이 길은 엄태웅의 소속사에서 만든길이라서 엄태웅길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나무에 가려져서 이렇게 아름다운 절경이 있는 곳인지 몰랐지만, 길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아름다운 절경을 볼 수 있게 했다고 합니다. 이 기암바위에는 겨울이면 얼음 트래킹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고 합니다.

 

 

엄태웅길 바로 옆에 있는 한 팬션은 관광을 하는 시민들을 위해서 공개되어 있었는데요. 팬션 곳곳에 있는 포토존에서 국토교통부 대학생기자단들도 포즈를 취해 보았답니다.

 


노동당사로 가던길에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금강산 까지 가는 열차가 지나다녔던 철길을 볼수 있었는데요. 저 위를 지나서 다녔을 열차를 생각하니 분단된 현실이 매우 마음이 아팠습니다. 언젠간 저 철길을 신나게 지나서 달릴 열차의 모습을 볼 수 있겠죠??

 


다음으로 간 곳은 노동당사입니다. 철원이 예전에 북한이었다는 것은 앞에서 언급했었는데요. 그 때 북한 노동당의 당사입니다. 이곳은 북한이 공산독재정권 강화와 주민통제를 목적으로 건립하고 양민수탈이나 애국인사들에게 소름끼치는 만행을 했던 곳으로 우리나라를 지키려고 한 수많은 애국인사들의 아픔이 깃들어진 곳입니다. 시멘트와 벽돌로 지어진 3층 건물인데요. 6.25당시 이 주변에 있는 수많은 건물들은 없어졌지만 이 건물만 유독 남아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튼튼하게 지어져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건물은 현재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백마고지 전적지입니다. 왜 백마고지라고 하지 않고 전적지라고 할까요?? 사실 백마고지는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고지로 실제로 우리가 백마고지를 갈수는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백마고지가 보이는 이곳 전적지에서 백마고지를 바라 볼 수 있었습니다.  백마고지 전적지는 추모의 장, 기념의 장, 다짐의 장 3 가지의 코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추모의 장에는 백마의 얼이라는 시와, 아군 측 사상자의 추모비가 있었습니다. 국토교통부 대학생 기자단도 숙연한 마음으로 묵념을 했습니다.

 

 


기념의 장에는 육탄 삼총사와 전적비, 백마고지 전투를 이끈 사단장 김종오장군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짐의 장에서는 실제 전투가 이뤄진 백마고지를 볼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백마고지 전투란, 한국전쟁 기간 중에 가장 치열하게 고지쟁탈전을 벌인 곳입니다. 이곳 철원에 위치한 작은 고지를 놓고 중공군, 국군이 가장 총력을 기울여서 전투를 했고, 우리 국군이 승리를 거둔 고지입니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 까지 10일동안 불과 395m 밖에 되지 않는 고지를 빼앗기 위해 혈전을 벌이는 사이 중공군 1만 여명이 전사상 또는 포로가 되었고 국군도 35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습니다. 백마고지는 아직도 분단 국가로 휴전 상태라는 우리의 현실을 보여 주듯이 사진촬영이 금지되었고, 실제 북한의 땅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여정을 통해서 분단의 아픔을 마음 깊이 느낄 수 있었는데요. 백마고지가 있는 이곳 철원은 한반도의 배꼽에 위치한곳으로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민간인 통제구역에서 벗어난지 얼마 안되어서 자연경관이 매우 아름답게 지켜져 온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국토교통부 대학생 기자단도 이번 체험을 통해서 우리나라 국토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2014년 10월 13일, 우리 어린이 기자단이 DMZ 열차를 타고 철원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DMZ 철원안보탐방은 서울역 코레일멤버쉽라운지에서 집합, DMZ열차를 타고 백마고지 역까지 달려 두루미평화마을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노동당사-백골부대 멸공 OP-금강산 철교-월정리역-두루미전시관-백마고지 전적지 순으로 일정이 계획됐는데요. 









먼저 DMZ란, De-Militarized Zone의 약자로 우리말로는 ‘비무장지대’라 부릅니다. 우리나라는 1950년 6월 25일부터 약 3년동안,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전쟁을 치뤘는데요. 그리고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을 맺어 마침내 총소리와 대포소리가 멈추게 됐지만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질러 보이지 않는 선이 생기고, 남과 북으로 갈라졌습니다. 



서쪽의 임진강에서 동쪽의 고성까지 약 250km를 따라 군사분계선 즉, 휴전선이 세워지게 된 것인데요. 이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북쪽으로 2km 물러난 곳이 북방한계선이고, 반대로 남쪽으로 2km 물러난 곳이 남방한계선입니다. 그리고 북방한계선과 남방한계선 사이의 지역을 바로 ‘비무장지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비무장 지대에는 일반인은 물론, 군부대나 군사시설도 들어설 수 없다고 합니다.



DMZ 열차에 탑승하자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열차 내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열차는 모두 1호차(48석), 2호차(40석), 3호차(48석)으로 나눠져 있으며, 2호차에는 매점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기차로 백마고지역까지 가는 동안에, 신혜연 기자와 함께 최영지 승무원님을 인터뷰 했습니다. 



<최영지 승무원 인터뷰>






인터뷰에 응해준 최영지 승무원





Q1. DMZ 열차는 하루에 몇 번씩 운행하나요?


A1. 현재 어린이 기자단이 타고 있는 경의선은 하루에 왕복 1번씩 운행합니다.



Q2. DMZ 열차는 언제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나요?


A2. 우리나라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이러한 점을 세계에 알리고, 국민의 안보의식을 높이고자 운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DMZ 열차는 경의선과 경원선으로 나눠지는데요. 경의선은 올해 5월에, 경원선은 8월에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Q3. DMZ 열차의 내부나 외부 인테리어를 보면 무궁화나 바람개비 등으로 꾸며져 있는데요. 이러한 인테리어가 의미하는 것이 있나요?


A3. 먼저, 내부 인테리어 중 천장의 풍선은 '자유와 희망을 담고 하늘로 자유롭게 떠나가는 풍선'을 의미하고, 바닥의 연꽃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평화누리공원의 연꽃입니다. 벽면을 보면 무궁화나 세계 각 나라의 언어로 '평화', '사랑', '화합'을 의미하는 단어가 쓰인 타이포그래피와 DMZ 이미지 사진이 있습니다. 의자에는 바람개비가 있는데요. 바람개비는 전세계적으로 평화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열차의 외부 인테리어는 1, 2호차는 사람들이 손잡고 있는 것이고, 3호차는 증기기관차입니다. DMZ 열차는 60여 년 전 전쟁의 상처로 남겨진 땅에서 자연의 위대한 생명력으로 세계적 생태의 보고로 거듭난 DMZ를 세계인과 함께 평화와 사랑과 화합의 마음을 담아 달리는 테마열차입니다. 분단의 현실을 극복하고 통일을 하기 바라는, 평화통일로 달려가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Q4. DMZ 열차에 처음 탑승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A4. 저는 KTX에서 근무하다가 DMZ 열차로 왔는데, 처음에 탔을 때는 매우 설렜답니다.



Q5. DMZ 열차에 탑승하는 손님에게 부탁하고 싶거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5. 이 DMZ 열차는 분단 현실을 몸소 느끼고, 국민의 안보의식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는데요. 다른 관광열차처럼 음주를 하거나 씨끄럽게 노래를 하는 등의 소란은 자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인터뷰를 하다보니 어느새 백마고지역에 도착했는데요. 백마고지역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고 가장 먼저 점심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철원 오대쌀로 지은 밥이라고 했는데, 따뜻한 밥이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노동당사’였습니다. 2002년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2호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는 노동당사는 해방 후 1946년 김일성이 공산독재정권 강화와 주민통제를 목적으로 건립하고 한국전쟁 전까지 사용한 북한 노동당 철원군 당사인데요. 우리나라가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이곳 노동당사는 북한땅이었으나, 한국전쟁이후 우리나라 땅이 된 수복지구입니다.



북한은 이 건물을 지을 때 1개 리당 쌀 200가마씩을 착취했으며, 인력과 장비를 강제동원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건물의 내부를 작업할 때는 비밀유지를 위해 공산당원 이외에는 동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소련풍의 건축기법으로 시멘트와 벽돌을 사용해 지은 약 580평의 3층 건물 구조인데, 한국전쟁 당시 거의 모든 건물들이 파괴, 인멸되었음에도 이 건물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얼마나 견고하고 튼튼하게 지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현재 남한에 있는 유일한 북한의 건물이라고 하는데요. 가운데는 복도로, 양쪽은 사무실로 이용했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옆방에서 이야기하거나 고문을 해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방음시설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현재 지붕은 전쟁 때 불에 타서 없어진 상태입니다.



1층은 계단 밑 지하이며, 2층과 3층은 벽의 구멍으로 나무를 꽂아 나무마루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의 유일한 정당인 노동당이 공산세력의 확장을 위해 주민들을 세뇌시키기 위한 강당으로 사용했다고 하는데요. 2층에 김일성이 사용하던 수세식 화장실 변기를 볼 수 있는데, 철원은 1940년대 당시 500가구 넘게 수돗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5년 동안 북한은 이곳에서 애국인사들의 체포, 고문, 학살 등의 소름끼치는 만행을 수없이 저질렀으며, 한번 이 곳에 끌려들어가면 시체가 되거나 반송장이 되어 나왔고, 무자비한 살육을 저지른 곳이기도 합니다.



노동당사 정면의 계단을 보면, 11자로 깨져있는 자국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자국은 한국군과 미군이 북한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함을 자축하기 위해 미군전차가 올라갔던 자국이라고 합니다. 이 곳 노동당사는 총탄자국, 전차의 흔적을 통해 6·25전쟁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는데요. 6·25전쟁 직후 얼마나 참담했을지 상황을 짐작해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방문한 백골부대의 멸공 OP(Observation Post: 군사 감시초소, 관측소)에서는 백골부대를 소개하는 영상을 시청한 후, 전방의 걷힌 커튼에서 북한땅을 볼 수 있었습니다. 먼저 부대소개영화를 시청했는데요. 백골부대는 1950년 10월 1일 23연대 3대대 10중대가 3.8선을 최초로 돌파해 이날을 기념해 국군의 날이 제정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부대입니다. 영상에서 백골부대는 150여회 전투에서 한번도 패하지 않은 국군의 전설이며, 북한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대라고 소개했습니다. 국토의 최전선에서 ‘필사즉생 골육지정’이라는 백골정신으로 실전적 훈련을 진행하는 군대다운 군대라고 하는데요. 



이곳 멸공 OP는 서울에서 100여km, 평양에서 158km 떨어져 있습니다. 철의 삼각지대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방한계선이 코앞에서 보이는 곳인데요. 영상을 시청한 후 커튼을 걷자 멀리 평강공주가 온달을 장군으로 키우기 위해 훈련시켰다는 서방산이 맑은 하늘 아래 자태를 드러냈습니다.



6·25당시 김일성이 한국군 장교 군번줄을 군 트럭으로 갖다줘도 맞바꾸지 않겠다고 했다던 오성산도 보였습니다. 백마고지전투와 함께 6·25전쟁사상 2대격전으로 불리며 영화 ‘고지전’의 배경이 된 저격능선, 열흘동안 주인이 24번이나 바뀐 백마고지도 멀리 보였습니다. 지금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언제든지 적의 도발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곳이기에 한 치의 긴장도 늦출 수 없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 1. 금강산 전기 철도 교량 옆 한탄강

    2. 끊어진 금강산 전기 철도 교량

    3. 전기 철도 교량에 대해 설명하는 문화해설사님

    4. 금강산 전기 철도 교량의 모습





다음으로는 금강산 전기 철도 교량에 다녀왔습니다. 금강산 전기 철도 교량은 1926년 세워진 금강산 전기 철도용 교량인데요. 철원역을 시작으로 내금강역까지 약 116km를 하루에 총 8번씩 운행했으며, 내금강역까지 약 4시간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요금은 당시 쌀 한가마 값인 7원 56전이었으며, 1936년 당시 이용객은 연간 15만 4천여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남북분단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금강산 전기 철도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이 교량은 2004년 등록문화재 제112호로 지정됐습니다. 옛날에는 내금강역까지 부지런히 달렸을 열차의 흔적은 이제 온데간데 없고, 도중에 끊어진 교량을 보니 마음이 아팠는데요. 분단의 안타까움을 잘 느낄 수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금강산 철교 방문 후 월정리역과 두루미 전시관으로 갔습니다. 월정리역은 서울에서 원산까지 이어졌던 경원선의 간이역으로, 신탄리역의 다음 역이었습니다. 현재 폐역상태인 월정리역은 남방한계선에 근접한 최북단에 위치해 있는데요. 과거 원래 월정리역의 반 정도는 현재 비무장지대 안에 위치했다고 합니다. 



현재 복원된 월정리역 앞에는 6·25전쟁 당시 월정리역에서 마지막 기적을 울렸던 객차의 잔해 일부분과 유엔군의 폭격으로 부서진 인민군 화물열차 골격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 앞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팻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부서지고 녹슨 화물열차의 흔적은 전쟁의 상황을 실감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이번 탐방의 마지막 방문지는 백마고지 전적기념관이었습니다. 철원군 북방에 있는 백마고지는 6.25 전쟁 당시 가장 피비린내 나는 격전지였다고 합니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0월 15일까지 10일 동안에 걸쳐 대혈전이 지속된 백마고지 전투는 포탄이 30만 발이나 투하됐고, 이 10일동안 백마고지의 주인이 24번이나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은 1만4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 2개 사단이 완전 와해됐으며, 국군 제9사단은 백마고지의 대승을 계기로 백마사단이라 명명됐다고 합니다. 당시 김일성은 백마고지를 빼앗긴 것이 분해 3일동안 음식도 먹지 않고 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당시 흙먼지와 시체가 뒤엉켜 악취가 코를 찔렀으며 포격으로 산이 하얗게 변하고 본래의 모습을 잃고 말았는데, 하늘에서 본 백마고지의 모습이 마치 백마가 누워있는 형상과 같다고 해서 백마고지로 불리게 됐다고 합니다. 백마고지는 본래 396m였으나, 폭격으로 인해 1m가 깎여나가 395m가 됐습니다. 당시 백마고지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백마고지 전적기념관은 ‘회고의 장’ ‘기념의 장’ ‘다짐의 장’등 3개 부문으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아군 및 중공군 전몰장병(적과 싸우다 죽은 장병)을 추도하기 위한 ‘회고의 장’엔 위령비와 분향소가 마련돼 있었습니다. 전사자 비에는 아군 844분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아군의 전승과 전공을 기리기 위한 ‘기념의 장’엔 높이 22.5m의 전적비와 기념관이 있었습니다. 높이 22.5m의 각 자리 수를 더한 숫자 9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활약한 제9사단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또한 이 전적비는 사람이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의미한다고 하는데요. 손바닥의 비마 3마리는 제 28, 29, 30 연대를 의미합니다. 조국 통일의지를 다지기 위한 ‘다짐의 장’에는 비무장지대 내의 백마고지와 북녘땅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와 ‘자유의 종’이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DMZ 철원안보탐방을 통해,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전쟁의 안타까움과 당시의 상황을 몸소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곳에서 봤던 총탄이나 탱크가 남긴 자국, 녹슨 열차의 파편, 백마고지 등 전쟁의 흔적을 하나하나 살펴본 것이 제일 뜻깊은 경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무엇보다도 우리나라가 아직도 휴전상태이고, 서로의 한계선에서 무장을 하고 서로를 감시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안타까웠습니다. 남과 북이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더 살기좋은 나라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지난 13일, 국토교통부 어린이 기자단 현장탐방에 참가해 철원에 다녀왔습니다.



1. 경원선 DMZ 열차 탑승



어린이기자단은 오전 9시에 서울역 2층에 있는 코레일라운지 앞에 모였습니다. 부모님과 간단히 작별인사를 나누고, 오전 9시 30분경에 DMZ 열차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경원선 DMZ 열차는 2014년 8월 1일부터 운행을 시작한 '서울~백마고지'를 왕복하는 열차입니다. 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9시 27분에 서울역을 출발해 청량리→의정부→동두천→한탄강→연찬→신탄리를 지나 11시 44분에 철원의 백마고지역에 도착합니다. 돌아오는 열차는 오후 4시 6분에 백마고지역에서 출발해 오후 6시 35분에 서울역에 도착합니다.









DMZ 열차는 내부가 아기자기하고 알록달록하게 꾸며져 있어 즐거웠습니다.









2. 두루미 평화마을 점심 및 노동당사 방문



2시간 후 백마고지역에 도착했습니다. 반찬이 뷔페식으로 차려져 있었는데, 철원 오대쌀로 만든 밥과 나물, 제육볶음과 김치 등의 맛깔나는 음식들이 입을 즐겁게 해줬습니다.









점심을 먹고, 노동당사를 방문했습니다. 철원 노동당사는 1946년에 철원이 북한 땅이었을 때, 김일성이 지은 러시아식 건물입니다. 지상 3층의 건물로, 2층과 3층은 강당으로 철원 주민에게 공산주의를 세뇌시키려는 용도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노동당사는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북한 건물이라고 합니다. 전쟁의 참혹한 결과가 남아있는 건물을 보며 약간의 두려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노동당사 앞에는 <지뢰꽃>이라는 시가 적혀 있었는데요. 사진을 찍고 집에 와서 다시보니 시의 내용이 너무나 가슴아팠습니다.









3. 멸공OP 및 금강산 전기 철도 교량 관람



TV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 나왔다던 백골부대에 소속된 '멸공OP'를 방문했습니다. 1948년 북한이 가장 무서워한다는 부대인 백골부대가 설립됐다고 하는데요. 멸공OP에서 2km만 더 가면 38선이라고 했습니다. 38선에 철조망이 있어 남과 북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200m 간격으로 나무말뚝만 박아놓은 곳이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보안상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어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다음으로 금강산 전기 철도 교량을 보러 갔습니다. 금강산 전기 철도 교량은 철원역과 내금강역을 이어주는 금강산선의 흔적이며, 금강산선은 한국 최초의 전기철도로 많은 물자를 실어날랐다고 합니다.









4. 철원 두루미관과 월정리역



철원 두루미관은 두루미뿐만 아니라 철원에 오가는 철새와 철원의 자연환경을 전시해놓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흑두루미, 수리부엉이와 같은 동물의 박제 모형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두루미의 숫자는 연간 3,000마리라고 합니다. 특히 철원평야는 국내 최대의 철새도래지로 매년 2,800마리의 두루미가 찾아오고 있다고 하는데요. 흑두루미만 순천만에서 많이 관찰된다는 설명을 보자 작년 12월에 순천만 자연생태공원을 방문했을 때 망원경으로 본 흑두루미가 떠올랐습니다. 여기서는 직접 망원경으로 두루미를 관찰할 수 없어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철원 두루미관 바로 옆에는 월정리역이 있었는데요. 월정리역은 대한민국 강원도 철원에 위치한 경원선의 최북단역입니다.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폐역됐고, 현재는 철원역과 함께 민통선 이북에 위치한 역으로 남아있습니다.









여기서 서울가지는 104km이지만, 북한의 평강까지는 19km밖에 안된다는 표지판을 보고 흠칫 놀랐습니다. 지금 밟고 있는 곳이 정말 북한과 가까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월정리역 뒤에는 총알 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부서진 증기기관차가 있어 전쟁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5. 백마고지 전적지



마지막 탐방지로 백마고지로 갔습니다. 백마고지 전투는 6.25 때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10일동안 24번의 공방전을 통해 결국 우리군이 승리했다고 합니다. 포탄이 약 30만 발이 터져 고지가 모두 하얗게 변해 하늘에서 보면 백마가 쓰러져 누은 형상을 하고 있다 해서 백마고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철원은 서울과는 다르게 정말 추웠습니다. 쌀쌀한 겨울 날씨같아 오들오들 떨면서 다녔는데, 저녁 6시 30분에 서울역에 도착하자 날씨는 따스한 가을 날씨로 변해있었습니다. 문득 38선에서 우리를 위해 지금도 애써주시는 군인아저씨들이 고맙게 느껴졌는데요. 언젠가 통일이 되면 DMZ 열차를 타고 금강산까지 갈 날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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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서 백마고지까지 운행하는 경원선 DMZ-train이 지난 8월 1일 개통됐습니다. 경원선은 하루에 한 번씩 운행하며, 국민의 안보 의식을 높이는 것이 그 목적이라고 하는데요. 지난 10월 13일, 국토교통부 어린이 기자단이 경원선 DMZ-train에 탑승해 철원 지역 일대를 돌아보며 안보 탐방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노동당사는 1946년 초 김일성의 명령으로 공산정권을 강화하고, 주민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곳입니다. 러시아식 건축 기법으로 지어졌고, 지상 3층 건물로,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시멘트와 벽돌을 이용해 완공했습니다. 북한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미군 탱크가 정문 계단으로 올라갔던 흔적과, 당시 총알 및 포탄 흔적이 건물 여기저기에 흉물스럽게 남아있어 치열한 전쟁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철원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지뢰밭이라고 하는데요. 대인지뢰 사용의 전면 금지를 위해 1999년 캐나다에서 오타와 협약이 만들어졌으며, 2013년 1월 기준으로 161개국이 서명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 러시아, 중국, 파키스탄, 북한은 아직까지 서명을 하지 않고 있는데요. 한국과 미국은 휴전선 일대 비무장지대(DMZ)에 매설된 지뢰가 북한의 침략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고 가입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백골부대 멸공 OP(관측소)는 비무장지대와 북한 접경지역을 볼 수 있는 최전방 관측점으로, 북한지역으로의 사진 촬영이 금지된 곳입니다. 동영상과 생생한 설명을 통해 분단의 현실을 피부로 직접 느껴볼 수 있었는데요. 백골부대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 후방을 교란하기 위해 창설된 한국군 최초의 유격부대였다고 합니다. 북한군으로 위장해 북한의 점령지역에 침투하는 등 많은 전과를 올렸다고 합니다.









금강산 전기 철도 교량은 한탄강을 가로지르며 금강산 역까지 운행하던 열차로, 일제 강점기 지하 자원을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한 수송열차와 금강산 관광열차로 운행됐습니다. 6.25 전쟁 당시에는 북한군의 군수물자 수송에 사용됐다고 하는데요. 현재 전쟁과 분단의 상징으로 남아있고,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고 합니다.



남북 분단 이전의 월정리역은 서울에서 원산까지 운행하던 경원선의 간이역이었습니다. 지금은 더이상 갈 수 없는 남방한계선의 최북단이 됐는데요. 월정리역은 1988년 복원됐고, 6.25 전쟁의 폭격으로 골격만 남아있는 화물 열차의 잔해가 전쟁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는 평화와 장수의 상징인 두루미를 비롯한 다양하고 희귀한 철새가 두루미관에 전시돼 있었습니다.









백마고지 전적지는 6.25 전쟁 당시 가장 피비린내 나는 격전지였다고 합니다. 고지의 주인이 24번이나 바뀌었고, 국군 약 3,500명의 사상자와 중공군 약 1만 명의 사상자를 냈던 치열한 전투였는데요. 포탄만 약 30만 발이 떨어져 고지가 모두 하얗게 변해 하늘에서 보면 백마의 형상을 하고 있다 해서 백마고지로 불린다고 합니다.









DMZ-train 탑승과 안보 탐방은 파주 오두산 통일 전망대와 민간인 통제구역의 일부를 개방했을 때와는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DMZ-train이라는 다소 무거운 느낌의 열차 이름과는 대조적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열차의 모습은 통일을 바라는 우리의 희망을 표현하는 것처럼 밝고 멋진 모습이었는데요. 한탄강과 백마고지 주변의 단풍은 무척이나 아름다웠지만, 분단의 현실에 제대로 감상할 수 없을 만큼 분위기는 무거웠습니다.



최근에도 북한군과의 교전이 있었다는 속보를 접하면서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현실이 가슴아팠고, 안타까웠습니다. '오타와 협약'에 남북한이 공동 가입해서 지뢰와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백두에서 한라까지 한반도 전체뿐만 아니라,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까지 기차를 타고 세계여행할 수 있는 통일 대한민국이 빨리 오기를 희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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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는 'DeMilitarized(비무장) Zone(지대)'의 약자로 영어로 해석을 하면 비무장지대라는 뜻입니다. 우리 어린이 기자단은 서울에서 DMZ train을 타고 백마고지 역까지 갔는데요. 이 DMZ 열차는 하루에 1회 왕복 운영한다고 합니다. DMZ 열차의 내부는 아름답게 꾸며져 있고 천연기념물의 실루엣을 벽에 붙여놓기도 했습니다.









DMZ 열차를 타고 백마고지 역에 도착한 우리는 문화해설사 김정희 님의 설명과 함께 탐방을 시작했는데요. 먼저 노동당사로 갔습니다. 노동당사가 있는 철원은 8.15 광복 직후에는 북한 땅이었다고 합니다. 이 건물은 특이하게도 김일성이 직접 설계하고 공사를 한 곳이라 하는데, 이 건물을 만드는데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지하에서 지상 3층까지의 높이로 총 580평 규모로 지어졌는데요.









당시에 북한은 공산주의 체제를 받아들이면서 구 소련과 친밀한 관계를 이루고 있어 러시아를 따라 유럽풍으로 건물을 지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많은 유럽풍의 건물이 있지만, 그 시기에 유럽풍으로 지은 건물 중 지금까지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물이 노동당사라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6.25전쟁 때 수복해 지금은 우리나라 땅으로 남아있고요.









우리나라가 미국 군인의 도움을 받아 철원까지 차지 했을 때 노동당사를 차지한 기념으로 미군의 전차로 계단을 올라갔다고 하는데요. 그 흔적으로 지금도 노동당사에 가보면 계단에 11자로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이 계단은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함부로 올라 갈 수 없다고 합니다.



노동당사는 근처 주민들을 모아 공산주의 이념에 대해 세뇌교육을 시키는 장소로도 사용됐고, 김일성의 개인 사무실로도 사용됐습니다. 건물 3층은 백마고지 전투 당시 수많은 폭격으로 인해 없어졌는데요. 슬프게도 이 노동당사 지하는 고문하는 장소로도 사용했다고 합니다. 









노동당사를 뒤로한 채 차를 타고 가는 도중 주황색의 표지판이 산 중턱마다 꽃혀 있었습니다. 이 표지판은 월경방지표지판이라는 것으로 비행기가 북한 땅으로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세워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찾아간 멸공 OP에서는 <리얼 군대 프로그램 - 진짜 사나이>에서 멤버들이 보초를 섰던 G.O.P를 직접 감상할 수 있었는데요. 이 때 멤버들이 근무했던 백골부대는 1945년 만들어져 1947년 정식 군대로 승격 1965년 현위치로 옮긴 것이라고 했습니다.



백마고지는 산 이름입니다. 백마고지 전투를 하며 수많은 폭격으로 인해 해발 396m에서 395m로 높이가 줄어든 비운의 고지인데요. 10일 동안 주인이 24번 바뀐 고지로도 알려진 유명한 곳입니다. 백마고지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전쟁을 하다 폭격을 당한 자리에 회색 재가 날렸는데, 하늘에서 보니 그 재가 마치 하얀 말처럼 보인다고 해서 백마고지라 부르게 됐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으니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산을 내려다 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지금은 재마저 다 날려 없어졌을 것이라 추측했습니다.









백마고지 기념관을 들어가기 전 비석이 세워져있었습니다. 이 비석의 아래 평평한 돌이 깔려 있었는데, 이 돌의 개수는 3432개라고 합니다. 이는 백마고지 전투 때 전사한 분을 기리기 위해 전사한 군인의 수만큼 돌을 깔아놓은 것이라 하는데요. 백마고지 전투는 1950년 10월 6일부터 1962년 10월 12일까지 이어진 중공군을 상대로 한 전투입니다.









그 때 당시에 중공군의 손목에 기관총이 묶여 있었고, 대마초를 먹이고 수류탄을 들고 전장에 가서 싸우게 했다는 말을 들으며 중공군의 잔인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백마고지 기념관을 지나 백마고지 전적비를 봤는데요. 이 백마고지 전적비는 사람이 두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본 따 만들었다고 합니다. 앞면은 4개의 손가락을 형상화했고, 뒤에 튀어나온 것은 엄지 손가락을 형상화한 것이라 합니다. 백마고지 전적비의 높이는 22.5m로 이 수를 합하면 9가 되는데 이 때 9는 백마고지 전투를 치룬 9사단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북쪽이라 그런지 가을인데도 많이 추웠습니다. 외투를 입었지만 매서운 바람이 살갗을 파고 들었는데요. 모자를 가지고 오지 않아 귀가 빨개진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DMZ를 견학하며 재밌는 점도 많았고, 분단의 역사를 천천히 둘러보며 마음이 아파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루 빨리 통일이 이뤄져 분단의 아픔을 잊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지금 우리나라 여러 곳에서 통일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많이 들립니다. 통일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의 노력에 보태 열심히 통일을 위해 힘쓸 것이라는 다짐을 하며 탐방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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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 어린이 기자단은 이번에 DMZ-Train을 타고 북한이 바로 앞에 보인다는 우리나라 땅인 철원에 다녀왔습니다.DMZ-Train은 2014년 5월 4일부터 3량 편성으로 운행을 시작했는데요. 북쪽의 선두차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로 상징되는 장단역의 녹슨 증기기관차를, 중간차와 남쪽의 선두차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빨강과 파랑 옷의 동서양의 남녀노소가 손을 맞잡은 모습을 디자인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탄 열차는 서울역에서 출발해 청량리, 의정부, 동두천, 한탄강, 연천, 신탄리를 거쳐 백마고지역으로 가는 열차였습니다.









열차 내부에는 노선도가 이렇게 나와 있었습니다. 우리가 출발한 서울역을 비롯해 앞으로 거쳐갈 청량리, 의정부, 동두천, 한탄강, 연천, 신탄리역을 비롯해 최종 도착지인 백마고지역까지 나와있습니다.









열차 내부 바닥과 천장은 각각 초록색 연꽃과 푸른 하늘 위에 떠다니는 형형색색의 풍선 모양으로 꾸며져 있었는데요. 차 안의 앞면과 뒷면에는 각각 모니터가 2개씩 있는데, 이 모니터에서는 도착역 안내방송뿐만 아니라 관광정보, 심지어는 운전실의 전망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철원으로 갈 때 열차 안에서 사연과 신청곡을 들려주고 소정의 선물을 주는 이벤트 역시 함께 진행됐습니다.









이곳이 DMZ-Train의 종착역인 백마고지역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출발해 밥을 먹고, 노동당사로 향했습니다.









이곳이 바로 노동당사인데요. 노동당사는 우리나라의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과 같은 정당처럼 북한의 유일한 정당인 노동당의 당사로 사용된 곳입니다. 구조는 복도를 기준으로 양쪽에 사무실이 있고, 2층과 3층은 각각 강당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건물 곳곳에는 포탄과 총알 자국이 남아있었는데요. 철원 점령을 기념하기 위해 계단 위에 미군 전차가 올라가 남은 11자 자국도 선명하게 남아있었습니다.



다음 장소인 멸공 OP를 가기 위해 민통선을 넘는데 기분이 묘했습니다. 이때부터 북한과 가까워지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는데요. 군인 한 분도 함께 동행했습니다.



멸공OP는 유명한 TV프로그램인 '진짜사나이'에 나왔던 부대인 백골부대 소속이라고 했습니다. 백골부대는 북괴군이 가장 무서워하는 부대이며, 적에 도발에 항상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 말씀해주셨습니다. 군사 보안지역이라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는데요. 이곳에서 북한의 오성산과 북한의 '선전 마을'도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었습니다. 멸공 OP를 보고 다음 탐방지인 금강산 전기 철도 교량으로 갔습니다.









금강산 전기 철도 교량에서 보는 전경은 굉장히 아름다웠는데요. 군데군데 빨갛게 단풍도 들어있고, 유유히 흐르는 물이 지금 남북의 대치상황과 대조해볼 때 마냥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만은 않았습니다. 남북관계도 여유있고 평화롭게 흐르는 이 물처럼 평화로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으로 갔던 철원 두루미관은 두루미와 철원을 오가는 철새와 철원의 자연환경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흑두루미, 수리부엉이 등과 같은 동물의 박제 모형을 볼 수 있었습니다.









두루미관 바로 옆에는 월정리역이 있는데요. 월정리역은 대한민국 강원도 철원군에 위치한 경원선의 최북단역입니다. 1950년 6월에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폐역됐고, 지금은 철원역과 함께 민통선 이북에 있습니다. 월정리역 뒷편에는 부서진 증기기관차가 있었습니다.









마지막 탐방지로 백마고지에 갔는데요. 6.25 전쟁 당시 백마고지는 24번이나 주인이 바뀐 곳이었다고 합니다. 백마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은 1만 4천여 명의 사상자, 우리 군도 3,4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하는데요.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분들께 매우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국토교통부 어린이 기자단은 이번 탐방을 통해 우리나라의 안타까운 역사를 돌아볼 수 있었는데요. 그리고 우리나라의 안보 현실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었고, 통일의 중요성을 한 번 더 확실히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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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국토교통부 어린이 기자단은 서울역에서 백마고지역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DMZ 탐방을 했습니다. 하루에 한 번만 운행한다는 DMZ 열차는 너무나도 멋졌고, 가족과 함께 꼭 다시 한 번 타보고 싶었는데요. 기관실도 구경해볼 수 있어 더욱 좋았습니다. 백마고지역에 내리는 순간 매서운 바람이 온 몸을 시리게 만들었는데요.









백마고지역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이동했는데, 가장 먼저 두루미 평화관으로 가서 맛있는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이곳은 마을 사람들이 함께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하는데요. 철원 오대쌀로 지은 밥상이라고 했는데 밥맛이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각종 채소와 제육볶음까지 너무나도 맛있었습니다. 식당 앞에는 주민대피소가 있었는데, 지하로 내려가는 문이 마치 금고처럼 단단한 모습으로 있었습니다. 안에는 넓은 공간과, 필요한 시설들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우리의 DMZ 탐방은 노동당사→멸공OP→금강산 철길→두루미관→월정리역→백마고지 전적비 순으로 이뤄졌고, 안보에 대해 공부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노동당사>



노동당사는 북한의 유일당인 노동당이 지은 건물입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시 철원은 북한의 땅이었는데, 6.25 때 우리가 철원을 수복한 것이지요. 노동당사 건물은 1층과 2층을 지탱하는 용도로 철을 사용했고, 나머지는 시멘트와 벽돌을 이용해 건물을 지었기 때문에 아직도 그 형태가 남아있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1층은 사무실, 2~3층은 강당으로 사용했고, 주민들에게 공산주의 이념을 세뇌시키기 위한 장소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노동당사는 방음 시설이 아주 잘 된 곳이었다고 합니다.









노동당사 앞 정문의 계단이 11자로 부숴진 자국은 미국 전차가 승리해 올라간 자국이며, 이곳에는 총알자국이 그대로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안타까운 흔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멸공 OP>



1948년에 북한군이 가장 무서워한다는 부대인 백골부대의 관측소입니다. 이곳에서 2km만 더 가면 38선이라고 하는데요. 38선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철조방이 있는 곳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200m 간격으로 나무말뚝만 박아 표시를 해놨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가깝게 보이는 곳은 비무장지대이고, 우리군의 경계초소가 있습니다.


산이 많이 보였는데, 서방산은 평강공주가 바보온달을 훈련시켰던 산이고, 6.25 전쟁 때 북한군이 우리 군인을 저격해서 많이 죽였던 곳인 저격능선도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안타깝게도 군사보안구역이라 사진 촬영이 금지돼 있어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갔을 때, 단풍이 많이 들어 알록달록한 산의 모습은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금강산 철길>



지금은 끊어진 금강산 철길 다리에는 원래 전기를 이용한 철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철원에서 금강산의 내금강까지 철길이 연결돼 있었다고 하는데, 한탄강을 가로지르는 철길 다리를 걸으니 찌릿찌릿한 스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쟁 당시 돈이 될만한 것은 모두 가져가 철로 만들어진 철로는 남아있지 않고, 전기철도였다는 흔적만이 아직까지 남아있다고 합니다.









<두루미관>



철원과 DMZ의 철새와 동물들이 박제돼 전시된 곳입니다. 많은 철새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하는데요. 다양한 철원의 특산품이 전시돼 있어 홍보관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월정리역>



북한군이 군수물자를 경원선으로 옮긴 곳입니다. 지금은 끊어진 철도와 기차 부품들이 남아있는데요. 사진을 찍다가 잘못 찍었는지 목소리 굵직한 군인 아저씨께 꾸중을 듣기도 했습니다. 순간 너무 놀랐지만, 군인 아저씨의 말씀을 듣고 많이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백마고지 전적비>



마지막 탐방 장소인 백마고지 전적비는 10일동안 주인이 24회나 바뀌었고, 결국은 우리군이 차지한 곳입니다. 원래는 396m였는데, 폭격으로 인해 1m가 깎여나가 392m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 때 약 27만 5천여 개의 포탄이 이곳에 떨어졌다고 하는데요. 한국전쟁 중 단일 최대 포탄 소비 전투라고 했습니다.






▲ 백마고지 위령비(왼쪽 위)

탄피를 녹여 만든 작품(오른쪽 위)

전시관 내부(왼쪽 아래)

다섯 손가락을 형상화해 만든 전적비(오른쪽 아래)





기억에 남는 전쟁 장면은 1차 전쟁 때 중공군의 선제공격에 두려움을 잊기 위해 마약을 먹고 싸웠다고 했던 것과 4차 전쟁 때 최초로 고지를 빼았겼으나 곧바로 다시 되찾은 것, 그리고 10차 전쟁 때 전쟁 물자 부족으로 아군의 진격이 불가능해지자 강승우 소위 외 2분이 수류탄을 들거 들어가 적군의 기관총진지를 폭파한 후 전사하신 것이었습니다.









철원은 우리나라의 아픔이 그대로 살아있는 곳인 것 같았습니다. 힘들께 싸웠던 당시의 영웅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절대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 될 일이지요. 북한이 아주 먼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곳인지 처음 알았습니다. 얼른 통일이 되어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표구처럼 북한으로 기차타고 갈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여러분, 이곳이 어딘지 아시나요? ‘정지’라는 푯말을 보시니 조금이라도 감이 오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여기는 우리나라 철길의 끝이랍니다. 지금으로서는, 열차가 다니는 기찻길 중 이북에 가장 가까운 최북단의 철로가 되겠네요. 지난 11월 20일, 신탄리에서 백마고지까지 경원선이 연장됨으로 인해, 철원군은 60년 만에 열차운행이 재개되었습니다. 이로써, 열차로 이용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최북단 역은 백마고지역이 되었습니다. 


강원도 철원군은 서울과 원산을 이었던 경원선과 금강산전기철도주식회사가 운영했던 금강산선이 분기하는 철원역이 있었던 철도교통의 요지이기도 했지요. 그러나 경기 북부의 중요 철도거점이란 철원군의 번영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의 불법남침을 시작으로 말이죠.


백마고지, 저격능선, 기타 이름을 모르는 고지에서의 치열한 전투 끝에 우리나라는 철원군의 상당수를 수복하였지만, 전쟁으로 인해 ‘철도교통’의 단절이란 상처도 얻게 되었습니다. 남쪽의 기차는 더 이상 원산으로 내려갈 수 없었고, 북쪽의 기차 역시 더는 서울로 올라갈 수 없었지요. 또 전쟁의 와중에 철도교통은 철저히 파괴되어 철원군은 도로교통에 의존하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철원군이 드디어 60여 년 만에 철도운행이 재개된 것이지요.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일 수 없습니다. 2007년 12월 구간 복구 및 연장을 위한 노반공사가 착수됐고 5년 만에 완공됐죠. 물론 이번 연장으로 늘어난 정거장은 백마고지역 단 하나이며, 철로 상의 거리로도 불과 5.6km밖에 안되지만, 열차가 좀 더 북녘에 가깝게 뻗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부터 저와 함께 다시 연장된 경원선의 끝으로 달려가 보시겠어요?





저는 일단 동두천역으로 향했습니다. 수도권 지하철 중 1호선의 가장 끝단에서 두 번째, 그리고 경원선 통근열차 노선의 하행선 기점인 동두천역은 지난 달 20일부터 미묘하면서도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지금까지는 1시간에 한 번씩 오고 가는 신탄리행 열차 하나만 안내하면 되었지만, 열차 스케줄마다 간간이 종착지가 달라졌기에, 역무원들의 수고가 늘어난 것이죠.





80년대 느낌 그대로 간직한 옛 열차의 모습 보이시죠? 오래된 열차입니다. 신 경춘선이 들고 새 열차가 들어서면서 옛날 열차가 그리웠을 구 경춘선의 여행객이라면 이제 이곳이 마지막 보루가 아닐까 싶습니다. 열차 내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른 곳은 저마 장비가 새로 바뀌어 가지만 북쪽과 맞닿는 지역은 여전히 옛 정취가 남아있네요. 도리어 낡은 모습마저 정겨웠습니다. 


경원선을 타고 백마고지역으로 가는 길, 이 자체만으로 참 좋은 여행길이란 생각이 듭니다. 동두천역부터 백마고지역까지 소요시간은 약 55분. 1시간이 채 안 되는 철길 위엔 초성리, 전곡, 연천, 신탄리, 한탄강 등 조그마한 정차역들이 이어집니다. 크고 새로 지어진 현대식 역사에선 받을 수 없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아마 저희 부모님 세대에서는 다시금 경험해 보고 싶은 기차여행이 아닐까 싶네요.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역사가 정말 아담합니다. 제가 본 역사 중에 가장 작은 초미니 역이었어요. 내부를 들여다보니 더욱 놀라웠습니다. 플랫폼에서 통하는 정문 하나에 정문 반대편엔 화장실이 있고 열 명도 앉지 못할 작은 대합실. 매표소도, 역무원도 없습니다. 정말 무인역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저는 여기까지 왔으니 그래도 바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해서 한 시간가량 후에 열차를 타고 돌아갔지만, 한 아주머니께서는 볼일 없으면 그냥 타고 온 열차로 돌아가라고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백마고지역 앞 주차장은 아직도 한창 공사 중 이었습니다. 길가에 세워져 있는 대형버스들은 철원군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로 안보관광을 하려는 관광객들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밖에 나가면 뭔가 볼거리가 있겠지, 라는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허허벌판이라고 할까요,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모습이야 말로 쉽게 볼 수 없는 볼거리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시 플랫폼으로 들어가 경원선의 맨 끝단을 바라보았습니다. 저 끝에 가로막힌 철길. 날이 어둑어둑해져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철길은 끊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지’ 푯말은 단순히 기찻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기에 미묘한 감정이 오고 갔습니다. 





반면 남쪽으로 가는 철길은 시원하게 뚫려있었습니다. 예전보다 철도시공기술이 발달한 지 오래라서 경원선에서 볼 수 없었던 철도터널도 등장했고, 장대 철도교량도 등장했다고 합니다. 역무원이 없는 철도역이지만, 신탄리역에서 원격으로 관리하고 있는 것인지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었고 승강장에서 안내 방송도 나왔습니다. 





백마고지역은 별도의 유치선이 없어서 신탄리에서 출발한 열차가 승차장에서 대기한 후 방향만 틀어 다시 신탄리로 빠져나갑니다. 개통 초기의 여파인지, 박매고지역은 역 규모에 걸맞지 않게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습니다. 개중엔 어르신 분들이 상당했고요. 언뜻 듣자 하니 한국전쟁 참전용사분도 꽤 찾아오신다고 합니다. 


돌아가는 열차 안에서는 승무원은 승차권을 손님들에게 끊어주고 요금을 직접 받았습니다. 불과 한 시간가량 달려왔는데 마치 다른 세상에, 아니 문학 소설책에서나 나오는 과거의 시대상을 겪는 듯하였습니다. 짧지만 의미 있는 당일치기 여행이었습니다. 


사실, 백마고지역은 종단점이 아니라 경유지가 될 예정이었다고 하죠. 경원선 복원사업의 설계를 시작했던 초창기에는 지금의 백마고지역이 된 대마리역에서 더 북쪽으로 뻗어 철원역을 종단점으로 할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육군이 경원선 노반을 중요 군사도로로 사용하고 있었고, 주변에 중요 군사기지가 있기 때문에 건설교통부의 의견에, 당초 7.8km를 복원하기로 한 경원선 복원은 6.1km로 단축된 백마고지역에서 끝나게 되었습니다. 


백마고지역. 통일이 오기 전까지 이북에 가족을 둔 이산가족, 실향민 혹은 백마고지 전투에서 생존한 용사가 찾아와 잠시 머무르게 될 곳이 되겠지요. 언젠간 저 멀리 원산까지 힘차게 달리는 날이 오겠죠? 지금 이 곳 백마고지역이 잠시 거쳐가는 짧은 정차역이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