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전주부성이 허물어지자 서문 밖 천민 거주지역에 모여 살던 일본인들이 성 안으로 들어와 상권을 형성해 세력을 확장하자, 이에 맞서 전주 교동과 풍남동에 거주 중이던 우리 선비들이 옛 한옥을 지어나가면서 만들어지게 된 전주한옥마을은 현재 우리 멋과 역사, 문화를 품은 몇 안 되는 마을로 손꼽히고 있다. 


  



역사와 문화, 우리만의 멋을 품은 전주 한옥마을은 크게 오목대, 이목대와 자만동, 경기전과 전동 성당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오목대와 이목대, 자만동을 살펴보자면, 태조 이성계가 장군 시절 큰 전투에서 전승하고 축배를 든 오목대는 한자 ‘벽오동나무 오’ 자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오목대에는 ‘태조고황제주필유지’라 하여 태조 이성계가 머무른 곳을 뜻하는 비석이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오목대를 지나, 이목대와 전주 이씨 가문이 대대로 살아가고 있는 자만동으로 이동하였다. 신기하게도 전주 이씨인 태조 이성계는 자만동에 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함흥에 태어나 장군이 된 이성계는 전투에서 승리를 이루고 오목대를 지나 가문의 고향인 전주 자만동의 친척들과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 방문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다음으로 왕실 사당이었던 경기전을 방문하였다. 경기전은 태조의 어진이 있는 곳으로, 임금의 어진을 영혼이 깃든 사진으로 여긴 당시 사람들은 ‘임금의 영혼이 계시는 곳’이라 하여 한자 ‘전’을 붙였다 한다.

경기전은 임금의 영혼이 계신 만큼 엄격한 심사를 통과해야만 했다.


        


먼저 동물의 암, 수 특징을 재미있게 표현한 경기전 하마비 앞에서는 ‘신분과 상관없이 말에서 내려라’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또 하마비를 지나 위로 향하는 창살이 붙은 ‘홍살문’을 지나야 한다고 한다. 홍살문은 귀신, 잡귀를 쫓는다는 의미이고 위로 향하는 작은 창살들은 ‘경고한다, 귀신이나 잡귀는 창살을 이용하여 무찌른다.’ 는 조상들의 깊은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엄격한 심사를 거쳐 태조 이성계의 어진 앞에 서면 조금 색다른 점, 특이한 점 등을 발견할 수 있다.


     



보통 왕의 용포는 붉은 색이다. 하지만 그림 속의 태조 이성계는 푸른색 용포를 입고 있는 모습이다. ‘동쪽, 해가 뜨는 새로운 시작’ 등을 뜻하는 푸른색을 새로운 나라를 세운 이성계를 위한 용포의 색으로 정하였다고 한다. 태조의 어진이 비단에 그려져 있어 색이 자꾸만 바래 세 번째로 다시 그린 그림이라는 점도 너무나 새롭고 신비로웠다. 


마지막으로 전주 전동성당을 찾아 전동성당에 얽힌 역사 이야기를 들었다. 전주 전동 성당은 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중국에서 벽돌 제조 기술자를 직접 데려 오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공사 시작 7년 만인 1914년 완성되었다고 한다. 또 전동성당은 우리나라의 첫 순교자가 나온 자리이기도 하여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굉장히 의미 있는 곳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체험관을 찾아 닥나무로 만든 한지를 활용하여 예쁜 연필꽂이를 만들었다. 체험활동과 취재활동을 통해 너무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고, 예쁘고 색다른 추억과 경험을 선물 받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전주 한옥마을을 찾아 우리 멋과 문화, 역사를 이어갔으면 좋겠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안녕하세요?! 국토교통부 대학생 기자단 최서진, 황외성 기자입니다

지난 919일 국토교통부 어린이 기자단들이 전주 한옥마을을 방문 했는데요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학생 기자단이 그 길을 함께 따라가 보았습니다.

이른 아침 양재역에서 출발한 버스는 오전
10시경 전주 한옥마을에 도착했습니다도착하자마자 한옥마을 탐방이 시작 되었는데요. 먼저 태조 이성계의 정기가 서려있다는 오목대로 향했습니다.



오목대는 1380년 고려 우왕 때 왜구를 물리친 태조 이성계가 승전잔치를 벌인 곳입니다. 조선왕조를 개국 하고 나서는 이곳에 정자를 짓고 오목대라고 이름을 정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본강점기 시절에는 조선의 맥을 끊는다는 일본군의 탄압으로 오목대의 중간에 길을 만들었다는 슬픈 역사도 함께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목대에서 내려와서 한옥마을 중심에 있는 전동성당으로 향했습니다
. 최초의 순교지로도 유명한 전동성당은 프랑스 신부인 보두네 신부가 순교의 뜻을 기르고자 부지를 마련했습니다.



서울에 있는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가 일제강점기에 설계해서 건물이 명동성당과 매우 흡사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군이 전주읍성을 헐면서 버린 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지었다고 하는데요. 아름답지만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 이였습니다.


이 붉은 벽돌을 이용해서 지은 건물은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한 건물로 전주읍성의 풍남문 인근 성벽에서 나온 돌로 주축돌을 삼았다고 합니다
.



호남지역 최초로 건립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전동성당과 대조적으로 그 앞에는 태조 이성계의 영전을 모시고 있는 경기전으로 향했습니다.



1410년 임금은 전주, 경주, 평양에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보관하고 제사를 하는 전각을 짓고 어용전 이라고 했습니다경기전은 이씨 성을 가진 이성계의 발상지로 전주 이씨인 이성계의 왕조인 조선의 발상지라고 여겨졌습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어진을 보니 늠름하고 위엄이 돋보이는 인상을 받았습니다점심식사 후 무형문화재 명인 유배근 선생님의 지도와 함께 한지발 체험을 했습니다.



한지발을 짜는 시간은 고됨의 연속이고 담양에서 사온 대나무를 일일이 얇게 깎아 좀이 슬지 않도록 소금을 넣어 5시간을 삶아 내야 하며 이를 다시 3번에 걸쳐 앏고 깔끔하게 다듬어야 비로소 발을 짜는 준비가 끝납니다.



일단 발을 짜기 시작하면 쉴 틈도 없다고 합니다말총을 일일이 엮어 짜는 전통 한지 발은 유배근 선생님이 더욱 정성을 쏟는 품목 이였습니다.

유배근 선생님은 판지의 우수성을 위해서 평생을 고민하며 우리 전통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한지를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국내 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 일본에서 한지만들기 체험에 대한 문의가 들어와서 일본에서도 우리 한지의 우수성과 명인의 솜씨를 널리 펼치고 있습니다.



어린이 기자들도 한지를 직접 만들어 보았는데요한지의 제작과정은 첫째 닥다무를 채집하고, 닥나무를 증기로 찌고, 질을 벗기는 작업 후에 물에 담가 불려서 겉 껍질을 벗깁니다.

그 후 잿물에 삶고 닥메로 두들기고 물통
(보걸이)에 넣어 잿물을 빼냅니다.



건져서 물기를 빼낸 후 표백통에 넣은 후 지통에 넣고 닥풀과 함께 혼합합니다.



다음 발로 뜬 다음에 철판에 만들어 완제품으로 창호지나 백선지 피지 등을 생산합니다열심히 집중해서 나만의 한지를 만드는 어린이 기자단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어린이 기자단들과 함께 하면서 어린이 기자단들의 취재열정에 저희도 더욱 더 취재를 열심히 해야 겠다고 생각했는데요. 앞으로도 어린이 기자단들의 활발한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의 머리 글자를 합해 만든 지명으로, 고려 현종 때의 전라주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본 기자의 성은 나주 나씨이며, 조상님의 성함은 나봉이고 72대손입니다. 나주에 조상을 두고 살아온 본 기자는 전라도의 또 다른 대표 도시이자 태조 이성계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전주에 갔습니다.



전주는 전주 이씨의 발상지, 본향이라고 불립니다. 먼저 승암산 발치에 있는 ‘이목대’에 갔습니다. 1900년도에 고종 황제가 이목대에 친필로 ‘목조대왕구거유지’라고 쓴 비석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 뜻은 ‘목조 이안사(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가 살았던 곳’이라는 뜻인데요. 이 점을 통해 이목대에서 전주 이씨들이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경기전의 남동쪽 500m쯤 떨어진 나지막한 언덕에 오목대가 있습니다. 이 오목대에서 이성계가 놀았다는 주장이 있는데요. 1380년 고려 말 우왕 때 일본이 고려를 많이 침략하자 우왕은 이성계에게 일본을 물리치라고 명령했다고 합니다. 이에 이성계는 일본과의 싸움에서 크게 이겼는데요. 이것이 그 유명한 황산 대첩입니다. 이성계가 고려의 수도 개경으로 가던 도중 전주에 있는 오목대에 들러 승전을 자축하며 연회를 열었습니다. 이 때 이성계가 자신이 새로운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오목대에서 대풍가를 읊었다고 합니다. 고종 황제가 이를 기념해 ‘태조고황제주필유지’라고 친필로 써 비석을 세운 것입니다.









오목대에서 내려다 보면 전주한옥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데요. 한옥의 지붕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어 부드러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검은색의 한옥 지붕이 거북이 등딱지를 연상시켜 도시에서와는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전주한옥마을은 80여만 평의 땅에 700여 채의 한옥이 보존되어 있는 곳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우리의 전통을 잇기 위해 전주 사람들이 힘을 합쳐 한옥을 지었다고 합니다.









경기전 입구에 하마비가 세워져있습니다. 하마비에는 ‘지차게하마자번무득입’이라고 쓰여 있는데요. 이 뜻은 아무리 권위가 높아도 말에서 내리라는 뜻입니다. 경기전 안에 들어서면 홍살문이 있습니다. 홍살문의 기둥은 ‘둥근두리기둥’이라고도 불리는데요. 지름은 대략 50cm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궁궐에서만 사용가능한 건축 방법이라고하네요. 홍살문이 있는 곳은 신성한 곳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 홍살문 뒤에 ‘경기전’ 본전이 있습니다. 경기전에는 이성계의 어진이 있는데요. 어진은 임금님의 초상을 높이 받들어 말하는 것입니다. 원래 이름은 어진관인데 세종대왕께서 경기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이는 ‘경사스러운 땅에 임금을 모셨다’는 뜻입니다. 태종 10년(1410년)에 이 건물을 건립했는데요. 평양, 경주, 개경, 한양, 영읍, 전주에 어진을 모셨다고 합니다. 









경기전에는 3개의 문이 있었습니다. 이 3개의 문 중 가운데 문은 제사를 지낼 때만 들어가는 외신문입니다. 지금은 제사를 지내는 9월 9일에만 개방을 한다고 합니다. ‘동쪽에서 들어가고 서쪽으로 나온다’라는 개념을 가진 동입서출 사상을 지키기 위해 조상들은 동쪽에 위치한 문으로 들어가고 서쪽에 있는 문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전주 선비들이 이성계의 어진을 지키기 위해 내장산의 용접굴, 충청남도, 강화도로 피신 갔다가 묘향산 보현사에 어진을 안치했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에도 어진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주사고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곳입니다. 전주, 풍주, 서울, 성주에 조선왕조 실록을 보관했는데 임진왜란 때 전주만 빼고 다른 곳에 위치했던 조선왕조실록들은 불타 없어졌다고 합니다. 이 조선왕조실록을 지키기 위해 전주 선비들이 노력을 했다는 점에 또다시 감동의 물결이 넘쳐흘렀습니다. 조상님들의 노력 덕분에 이 조선왕조실록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마지막으로 대한 황실 승광재에 갔습니다. 이 곳에 조선의 마지막 황제, 고종의 손자인 ‘이석’님이 살고 계셨습니다. 승광재라는 뜻은 "빛을 계승한다"는 뜻으로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연호인 "광무"를 계승한다는 의미도 담고있다고 합니다. 승광재에서는 조선역사알기, 황실다례익히기, 황실예법익히기 등의 황실문화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전주가 있기에 조선의 찬란한 500년의 역사가 시작될 수 있었고 또한 조선의 역사를 간직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도시지만 볼거리와 뜻 깊은 역사가 넘쳐나는 전주! 전주의 모습을 우리가 아끼고 잘 가꾸고 보전해 세계에 널리 알리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