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스위스의 소식을 전해드리는 국토교통부 글로벌 기자단 노종화입니다. 이번 기사는 스위스의 특급열차 중 하나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흔히들 스위스에는 4대 특급열차가 있다고 하는데요, 이번 달에는 그 중에서도 베르니나 특급열차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출처 : https://www.rhb.ch/en/panoramic-trains/bernina-express>

베르니나 특급열차는 스위스 동쪽의 Chur나 Davos에서 시작해 이탈리아 북쪽의 Tirano를 잇는 열차입니다. 열차를 타고 가는 동안 아름다운 알프스의 광경을 볼 수 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특급열차이기도 합니다.



베르니나 특급열차의 모습입니다. 방학때와 같은 성수기에는 예약이 거의 필수인만큼 인기있는 열차입니다. 예약비 자체만 20CHF(약 2만 4천원)정도 되는데, 비수기에도 혹시 예약을 하지 않았다가 자리가 없는 낭패를 볼 수도 있으니 저는 예약을 하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실내에서는 이렇게 순록모양을 한 귀엽게 생긴 카트에 먹을 것이나 기념품을 담아서 승객들에게 팔고 있습니다. 기념품을 살까 생각을 했으나 생각보다 너무 비싸서 간단하게 먹을 것만 샀습니다.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 4시간이 소요되니 미리미리 음식을 사두는 것 또한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자, 그럼 이제 베르니나 특급 열차에서 볼 수 있는 하이라이트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스위스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동안 베르니나 특급은 자그마치 교량을 196개나 지납니다. 교량 또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하나하나 지날 때 마다 그 광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드넓은 초원과 눈덮인 산 속에 있는 아기자기한 마을들을 보는 것 또한 하나의 재미였습니다.

다음으로는 두 번째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루프교입니다. 루프교라 하면, 다리가 동그랗게 되어있는 형태인데요, 가장 대표적인 베르니나 특급열차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직접 열차를 타고 있으면서 찍은 사진인데요, 열차가 동그랗게 되어있는 다리를 따라 빙 돌아서 그 밑으로 지나가는 형태입니다.

이렇게 보면 잘 알기 힘들기때문에 위에서 본 사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출처 : https://www.rhb.ch/en/panoramic-trains/bernina-express#highlights>

이렇게 위에서 보니 정말 특이하게 생긴 다리인걸 알 수 있으시겠죠?

이 루프교를 지날 때 열차에 탄 승객들 모두가 일어나서 사진 찍고 구경하느라 열차가 시끌벅적했습니다.




또한, 베르니나 특급은 알프스 산맥을 지나기 때문에 584m정도의 해발고도인 Chur에서 출발하지만 최고 2253m가 되는 알프스 산 위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형태이기 때문에 스키나 스노우보드등의 장비를 가지고 온 사람들을 많이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베르니나 특급열차는 2등석이 편도 9만6천원 정도로 조금 비싼 가격이지만 
스위스를 여행하실 관광객이 가지고 계실 스위스패스나 유레일패스로는 예약비만 내면 탈 수 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이용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이상 스위스에서 전해드렸습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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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유진

    자연 경관도 멋지고 가보고 싶어지네요

    2015.05.24 16:14 [ ADDR : EDIT/ DEL : REPLY ]
  2. 앨리스심

    와~~~~ 감탄사만!!! 꼭 가보고 싶어요.
    정말 이뻐요.

    2015.07.29 22:37 [ ADDR : EDIT/ DEL : REPLY ]


경부선이 완공되던 즈음 나라는 멸망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철도 노선은 시시각각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경부선이 완공된 지 1년 뒤에는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달리는 경의선이 완성됐고 1908년에는 융희호 (순종 황제의 연호)라는 특급 열차가 부산에서 신의주까지의 한반도를 종단하게 된다. 


시속 40킬로미터의 속도로 초량(부산)에서 서대문까지 11시간 걸렸으니 신의주까지도 그만큼의 시간이 소요 되었겠지만 그 정도만 해도 당시 대한제국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문화적 충격이었다. 부산에서 신의주까지의 수천 리 길이 하루면 족하게 된 것이다. 물론 철도에서 문화적 충격을 누린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철도가 앗아간 목숨과 재산 때문에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테지만. 




▲ 압록강 철교(출처: 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11년 대한제국이 완전히 멸망하고 일본의 일부가 된 다음 해 일제는 또 하나의 공사를 마무리 짓는다. 그것은 압록강 철교였다. 대륙 침략의 야욕을 불태우던 일본은 철도를 신의주에서 맺음 할 생각이 꿈에도 없었다. 일본이 머리 속에 두고 있었던 것은 중국의 철도 안봉선. 신의주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중국 도시 안동과 만주의 중심 봉천을 잇는 철도였다. 원래 이 철도는 러일 전쟁 당시 일본의 필요로 인해 날림으로 깔았던 협궤 철도였다. 


일본은 이를 경의선과 연결하기 위해 협궤에서 표준궤로 바꾸는 공사를 했고 이로써 압록강 철교로 경의선은 광활한 대륙으로 나아가는 관문이 된다.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가 거리낌없이 봉천․장춘까지 내달리게 된 것은 물론 1930년대 이후에는 시베리아 철도와도 연결되어 부산에서 유럽행 열차표를 사고 서울에서 마드리드 행 기차표를 끊는, 2013년 분단된 나라에 사는 우리의 상상 속에서는 완전히 거세돼 버린 광경이 경의선과 압록강 철도를 통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상상해 보시라. 동네 국철 역에 가서 “파리 두 장하고 베를린 넉 장이요!”를 주문하는 장면을. 


수많은 사람들이 철도를 타고 대륙으로 퍼져 나갔고 또 많은 사람들이 독립의 꿈을 품고 그 철도를 통해 국내로 잠입했다. 의열단 단원들이 폭탄을 품고 콩닥거리는 가슴을 어루만지며 서울행을 감행하던 것은 경의선이었고 의열단 단원들이 처음으로 폭탄을 던지며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은 곳은 경의선에서 경부선으로 갈아탄 뒤 그 끝자락 부산과 밀양에서였다. 베를린 올림픽의 영웅 남승룡과 손기정은 경의선을 타고 만주로 가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유럽으로 가며 세계 제패의 꿈을 꾸었고 일본군에 강제 징집된 젊은이들이 피눈물 흘리며 기차에 올라타고 맘에도 없는 일장기를 휘둘러야 했던 곳도 경부, 경의선의 각 역이었다. 


 


▲ 이원수와 최순애(출처: 디지털 양산)



그 중 <고향의 봄>의 작사자 이원수와 동요 <오빠 생각>의 작사자 최순애의 만남에 얽힌 사연 하나를 끄집어내 보자. 두 사람은 모두 잡지 <어린이>에 동시를 투고하여 등단했다. 그러나 최순애의 집은 수원이었고 이원수의 집은 마산. 천리 밖에 떨어져 있었다. 한 잡지에 등단한 인연으로 그들은 펜팔 친구가 됐고 꾸준히 편지가 오가며 그 속에서는 연정이 싹텄다. 그리고 둘은 제대로 얼굴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결혼을 청하고 그를 응낙한다. 원조 접속 커플이라고나 할까. 


마침내 둘이 얼굴을 마주하기로 한 날, 이원수는 경부선 기차를 타고 최순애가 기다리는 수원으로 향했다. 무슨 색 옷을 입고 갈 것이라는 007 미팅 식의 약속까지 철석같이 한 상황. 그런데 목을 학처럼 늘이고 기다리던 최순애 앞에 이원수는 나타나지 않는다. 제 시간 열차의 손님들이 다 빠져나간 뒤에도 최순애는 플랫폼을 떠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날아든 것은 또 하나의 청천벽력이었다. 이원수가 독서회를 통해 불온한 움직임을 보였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이원수는 그로부터 거의 1년간 옥에 갇히게 되는데 최순애의 집에서는 ‘빵잽이’ 사위를 달가와하지 않았고 최순애에게 다른 혼처를 제시하지만 최순애는 완강하게 고개를 젓는다. 출감 후 이원수는 최순애의 집에서 몸을 회복했고 이윽고 결혼식을 올린다. 이원수는 영원한 최순애의 ‘오빠’가 되었고 최순애는 이원수 평생의 ‘봄’이 되었다.



 

▲ 막스 데스퍼의 '대동강 철교를 지나는 사람들'



일제 강점기 조선 땅에 위치했던 것치고 사연 없고 아픔 없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마는 그나마 철도, 특히 경의선의 경우는 차라리 그때를 더 추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대륙을 향해 힘차게 연기를 내뿜고 달리던 시절은 분단으로 마감됐기 때문이다. 휴전선 남쪽의 경의선은 그 끄트머리만 뚝 잘린 채 서울의 교외선으로 전락했다. 경의선 최대 난공사 지역으로 꼽혔던 청천강과 대동강 철교는 폭격으로 박살났고 그 끊어진 철교의 잔해에 죽을둥살둥 매달려 목숨을 건 피난길에 나서던 사람들은 종군기자 막스 데스퍼의 사진으로 영원히 남게 된다. 그리고 지금도 압록강에는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옛 압록강 철교가 끊어진 모습으로 서 있다. 마치 끊겨버린 대륙으로의 길을 상징하듯이. 


경부선 또한 전쟁의 홍역을 치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수도 없는 사람들이 부산에서 피난살이의 설움을 톡톡히 치르고, 또 그 와중에 사랑도 엮어가면서 세월을 보낸 후 경부선 열차로 서울행을 택하던 모습을 노래한 것이 바로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 정거장> 아니었던가. 그 유명한 1절과 2절은 제쳐 두고 3절 가사 일부만 소개해 본다. “가기 전에 떠나기 전에 하고 싶은 말 한마디를 유리창에 그려보는 그 마음 안타까워라 / 고향에 가시거든 잊지를 말고 한 두자 봄소식을 전해주소서 / 몸부림 치는 몸을 뿌리치고 떠나가는 이별의 부산정거장” 


 


▲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출처: 파주 관광정보)



이렇듯 역사의 슬픔과 아픔을 두루 아로새긴 철도의 단면을 우리는 임진각에서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지금 임진각에서 녹슬어 가고 있는 증기기관차가 멈춰 선 것은 1950년 12월 31일이었다. 경의선을 이용하여 평양에서 군수물자를 싣고 오다가 경의선 장단역에 정차한 이 열차는 미군의 사정없는 폭격을 받는다. 불리해진 전황 속에 혹시 북한에 노획될 것을 두려워한 탓이었다. 아니나다를까 북한군은 기관차 뒤의 25량을 탈취해 갔고 1,020발의 총탄을 맞은 기관차는 지금도 임진각에서 우리를 맞고 있다. 요즘은 그 앞에 가면 5분마다 한 번씩 증기기관차의 경적 소리를 들려 준다고 하는데 모르긴 해도 그 소리는 무척이나 구슬프게 들릴 것 같다. 이 나라 철도가 숨기고 있고 간직하고 있는 슬픈 사연과 억울한 마음들이 연료가 되고 식민지와 분단, 전쟁의 역사가 연통이 되어 만드는 소리일 것 같기 때문이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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