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1일 금요일, 국토교통부 어린이 기자단은 전주 한옥마을에 다녀왔습니다. 

어린이 기자단에게 우리 전통문화의 자산인 한옥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전주 한옥마을로 현장탐방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개학을 앞두고 여름방학 마지막을 알차게 보낼 수 있어서 저 또한 유익한 시간이 되어 아주 뿌듯했습니다.


광화문역에서 버스로 3시간 정도 달려 전주 한옥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전주 한옥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어린이 기자단은 먼저 석갈비와 냉면으로 점심식사를 해결하였습니다.


전주 석갈비가 유명한 줄 모르고 먹었는데, 아주 유명한 만큼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어린이 기자단은 1조와 2조로 나뉘어 탐방을 하였습니다. 조별로 탐방 코스는 달랐습니다. 저는 1조로, 1조가 다녀온 코스를 설명 드리겠습니다.


저희 1조는 먼저 전주 한옥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한옥마을 최고의 전망대인 오목대 전망대에서 아름다운 한옥마을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전망대를 내려와 전주 전통 한지원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전주 전통 한지원에서 한지 제조 과정도 보고, 알록달록 곱고 예쁜 색의 한지와 한지로 만든 다양한 상품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전동성당으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 전동성당 내부


전동성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손꼽히는 전주의 대표 여행지라고 합니다. 전동성당은 호남지역의 서양식 근대 건축물로는 가장 오래된 성당이기도 하지요.


웅장하고, 멋진 전동성당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감탄을 하게 되었는데요.

어린이기자단 탐방으로 이번 기회에 볼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전동성당을 나와 다음 코스로 간 곳은 경기전입니다.


▲ 경기전 하마비



​경기전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곳입니다.


경기전 앞에서 하마비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마비는 조선시대 종묘 및 궐문 앞에 세워놓은 석비로 말을 타고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은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글이 적혀있습니다.


경기전 내에는 태조 어진을 봉안한 국내 유일의 어진박물관이 있습니다.




어진박물관에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어진과 어진봉안 때 쓰였던 가마, 용선, 홍개 등의 의식구를 소장ㆍ전시하고 있습니다. 


어진박물관은 태조어진을 비롯해 관련 유물을 영구보존하고, 어진을 봉안하고 보존한 역사를 담아 경기전의 가치를 드높이는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어진박물관은 지상 1층, 지하 1층의 한옥으로 건축되어있습니다. 지상에는 어진실만 있는데, 태조어진 진본을 비롯하여 영조ㆍ철종ㆍ고종ㆍ순종 어진 모사본과 세종과 정조 표준영정을 모시고 있습니다.


지하는 상설전시실(역사실, 가마실)과 기획전시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역사실에는 어진이안통, 용두, 『조선왕조실록』(복제본) 등을 전시하고 있으며, 가마실에는 어진을 이안하는데 쓰인 신연, 향정자, 채여, 가교 등을 비롯한 가마류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어진박물관에서는 조선시대 왕들의 초상화도 볼 수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도 봤는데 어진박물관에 있는 이성계의 초상화가 진짜라고 합니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있는 이성계의 초상화에는 곤룡포를 입고 있지만 

이 곳 초상화에는 청룡포를 입고 있어 다른 곳과의 차이를 나타냅니다.


마지막으로 어린이기자단은 공예 체험으로 ‘와당 연필꽂이 만들기’를 하였습니다. 한지를 이용하여 멋진 연필꽂이를 완성하는 것으로 모든 일정을 마쳤습니다.


전주 한옥마을도 둘러보고 전통문화 체험까지 할 수 있어 아주 유익하고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가족들과 전주 한옥마을로 다시 오고 싶습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일제강점기 전주부성이 허물어지자 서문 밖 천민 거주지역에 모여 살던 일본인들이 성 안으로 들어와 상권을 형성해 세력을 확장하자, 이에 맞서 전주 교동과 풍남동에 거주 중이던 우리 선비들이 옛 한옥을 지어나가면서 만들어지게 된 전주한옥마을은 현재 우리 멋과 역사, 문화를 품은 몇 안 되는 마을로 손꼽히고 있다. 


  



역사와 문화, 우리만의 멋을 품은 전주 한옥마을은 크게 오목대, 이목대와 자만동, 경기전과 전동 성당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오목대와 이목대, 자만동을 살펴보자면, 태조 이성계가 장군 시절 큰 전투에서 전승하고 축배를 든 오목대는 한자 ‘벽오동나무 오’ 자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오목대에는 ‘태조고황제주필유지’라 하여 태조 이성계가 머무른 곳을 뜻하는 비석이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오목대를 지나, 이목대와 전주 이씨 가문이 대대로 살아가고 있는 자만동으로 이동하였다. 신기하게도 전주 이씨인 태조 이성계는 자만동에 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함흥에 태어나 장군이 된 이성계는 전투에서 승리를 이루고 오목대를 지나 가문의 고향인 전주 자만동의 친척들과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 방문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다음으로 왕실 사당이었던 경기전을 방문하였다. 경기전은 태조의 어진이 있는 곳으로, 임금의 어진을 영혼이 깃든 사진으로 여긴 당시 사람들은 ‘임금의 영혼이 계시는 곳’이라 하여 한자 ‘전’을 붙였다 한다.

경기전은 임금의 영혼이 계신 만큼 엄격한 심사를 통과해야만 했다.


        


먼저 동물의 암, 수 특징을 재미있게 표현한 경기전 하마비 앞에서는 ‘신분과 상관없이 말에서 내려라’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또 하마비를 지나 위로 향하는 창살이 붙은 ‘홍살문’을 지나야 한다고 한다. 홍살문은 귀신, 잡귀를 쫓는다는 의미이고 위로 향하는 작은 창살들은 ‘경고한다, 귀신이나 잡귀는 창살을 이용하여 무찌른다.’ 는 조상들의 깊은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엄격한 심사를 거쳐 태조 이성계의 어진 앞에 서면 조금 색다른 점, 특이한 점 등을 발견할 수 있다.


     



보통 왕의 용포는 붉은 색이다. 하지만 그림 속의 태조 이성계는 푸른색 용포를 입고 있는 모습이다. ‘동쪽, 해가 뜨는 새로운 시작’ 등을 뜻하는 푸른색을 새로운 나라를 세운 이성계를 위한 용포의 색으로 정하였다고 한다. 태조의 어진이 비단에 그려져 있어 색이 자꾸만 바래 세 번째로 다시 그린 그림이라는 점도 너무나 새롭고 신비로웠다. 


마지막으로 전주 전동성당을 찾아 전동성당에 얽힌 역사 이야기를 들었다. 전주 전동 성당은 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중국에서 벽돌 제조 기술자를 직접 데려 오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공사 시작 7년 만인 1914년 완성되었다고 한다. 또 전동성당은 우리나라의 첫 순교자가 나온 자리이기도 하여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굉장히 의미 있는 곳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체험관을 찾아 닥나무로 만든 한지를 활용하여 예쁜 연필꽂이를 만들었다. 체험활동과 취재활동을 통해 너무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고, 예쁘고 색다른 추억과 경험을 선물 받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전주 한옥마을을 찾아 우리 멋과 문화, 역사를 이어갔으면 좋겠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전주 한옥마을로 지난 8월 21일 제3기 국토교통부 어린이 기자단은 탐방을 다녀왔다. 광화문에서 준비된 버스를 타고 약 3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전주한옥마을은 한 폭의 아름다운 동양화를 보는 것처럼 운치 있고 멋스러운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일본인에게 나라를 빼앗겼지만, 정신마저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한옥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도심 속에 700여 채의 한옥 군락이 형성되어 있다고 했다. 2개 조로 나뉘어 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전통의 맛과 멋이 깃든 문화공간인 전주한옥마을을 직접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태조 이성계의 본향인 전주에서 4대조인 이안사가 풍광을 즐겼던 곳으로 알려진 오목대를 방문했다. 이곳은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격퇴하고 전승축하를 했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오목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전주한옥마을의 웅장하고 멋스러운 모습을 통해 우리 조상의 여유로운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왜 이곳이 국제슬로시티로 지정되었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전통방식을 이용해서 직접 한지를 만들고 있는 전통 한지원으로 이동했다. 우리 조상이 사용하던 전통방식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한지는 닥나무로 만든다고 했다. 처음으로 닥나무를 만져 볼 수 있었다. 일일이 수작업으로 한지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며 한지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정성이 들어가고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지원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고 전동성당으로 이동했다. 전라도 최초의 서양식 근대건물인 전동성당은 외관이 독특하고 아름다웠다. 내부는 명동성당과 비슷했지만, 복층이 아니라 단층으로 지어져 있었다. 신해박해 때 윤지충, 권상연 천주교 신자가 처형당한 곳이라고 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셨을 때 복자가 되는 과정을 TV를 통해 본 적이 있다.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 지나가라는 경기전 하마비는 암수 동물이 비석을 떠받치고 있었다. 입구에 세워진 홍살문을 통해 이곳이 신성지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사스러운 이 땅에 임금님을 모셨다는 의미가 있는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셔놓은 곳이다. 어진은 임금님의 초상화를 말한다. 또한, 유네스코 세계기록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도 볼 수 있었다. 태조, 세종, 영조, 정조, 고종, 순종 등의 어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27분의 어진을 그렸지만 현존하지 않고 어진박물관에 전시된 것이 전부라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종대왕과 정조의 어진은 실제 모습이 아니라 상상해서 그린 추상화라는 사실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지를 사용해서 ‘와당 연필꽂이 만들기’ 공예체험을 했다. 전통방식으로 옛날 풀을 사용했다. 손에 풀을 발라가며 정성껏 만들어 보았다. 은은한 한지의 색상도 아름다웠고 약간 거칠거칠한 촉감도 좋았다. 공예체험을 끝으로 전주한옥마을에서의 탐방과 체험이 모두 마무리 되었다. 두 번째 방문한 전주한옥마을은 여전히 아름다운 곳이었다.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국제 슬로시티의 위상과 전통한옥의 멋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제3기 국토교통부 어린이 기자단 친구들과 함께 초등학교 마지막 6학년 여름방학을 매우 알차게 보낼 수 있어서 행복하고 뿌듯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지난 8월 21일 금요일, 국토교통부 기자단은 전주한옥마을에 다녀왔습니다. 한옥마을은 1930년을 전후로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는 일본인 주택에 대한 대립의식과 민족적 자긍심의 발로였습니다. 한옥군은 일본식과 대조되고, 화산동의 양풍, 선교사촌, 학교, 교회당 등과 어울려 기묘한 도시색을 연출하게 된 것이 바로 한옥마을입니다. 



▲ 한옥마을



기자단은 먼저 2개의 조로 나뉘었는데, 저는 2조에 속하였습니다. 저희는 먼저 오목대를 올라갔습니다. 경사가 가파른 언덕이어서 힘이 조금 들었습니다. 올라가던 도중 강사분께서 건너편에 보이는 이목대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곳은 전주 이씨가 대대로 살고 있는 곳이며, 이성계의 4대조가 살았던 곳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정작 이성계는 이곳이 본관이지만, 장군일 때 딱 한번 왜구를 물리치고 연회를 연 후 한 번도 올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 오목대                                               ▲ 이목대



오목대에서의 체험을 끝내고, 태조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으로 가는 도중, 지금은 허물어진 성벽의 터를 보았습니다. 성벽은 남문을 제외하고 모두 강제로 철거되었기 때문에 씁쓸함이 남았습니다. 



▲ 성벽 터



경기전의 문 앞에는 경기전 하마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경기전 하마비에는 ‘지차개하마(至此皆下馬) 잡인무득입(雜人毋得入)’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경기전이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곳이기에 지나가는 사람은 말에서 내리고 아무나 출입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 경기전 하마비



경기전에 들어가니 나쁘거나 부패한 사람, 악귀는 들어오지 말라는 홍살문이 있었고, 조금 더 들어가니 드디어 어진이 보였습니다. 그곳에서 어진은 2명의 화가가 그리는데, 얼굴 부분은 자신의 개성이 들어가지 않는 화가가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자신의 개성이 들어가는 화가가 그린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 홍살문                          ▲ 태조 이성계 어진

                                                                                        출처: 네이버



그런 다음 어진박물관에 가기 전, 조선왕조실록 등 국가의 중요서적을 보관했고, 4대 사고로 불리는 전주 사고에 대해 간단히 배웠습니다. 나머지 사고들은 전쟁(임진왜란 등) 통에 불에 타 없어졌다고 합니다. 


어진박물관에서는 어진이 어떻게 한양(서울)에서 전주까지 오게 되었는지 간단히 배웠습니다. 어진은 왕의 영혼이 담겨 있기 때문에 왕의 행차와 견줄만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세종, 영조, 정조, 고종, 순종의 어진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책과 사진으로만 보던 어진들을 실제로 보게 되어 경외감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 일정은 전동성당이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외형만 보고 가게 되었습니다. 전동성당의 외형을 보고 난 후 전통공예를 하러 갔습니다. 전통공예로 연필꽂이를 만들었는데, 주로 색을 입히는 작업이었습니다. 집에 있는 것보다 크고, 무엇보다 직접 만든 것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습니다.



    

                                         ▲ 전동성당                  ▲ 연필꽂이



이번 탐방을 통해 우리 문화를 재확인할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전주한옥마을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시작된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전주 부성 밖에 살다 성벽이 무너지자 성안에서 일본인들이 집을 짓고 살았다.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교동 근처에 살던 선비들도 성안에 한옥을 짓고 살았는데 그 선비들의 집, 한옥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전주한옥마을이라고 한다.


전주한옥마을 근처에서 먼저 볼 수 있는 것은 오목대인데, 벽오동나무를 따서 오목대라고 한다. 한 번은 오목대에서 1380년에 이성계가 운봉 황산에서 왜군을 무찌르고 돌아가던 중 자신의 고조부인 목조가 살았던 이곳에 들러 승전을 자축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에 오기가 힘들어서 한 번밖에 오지 못했다고 한다. 다음으로는 길가에서 성벽의 터를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성벽이 없지만, 성벽이 있었던 자리를 표시해 놓은 것은 있다.


전주한옥마을 앞에 가면 비석을 하나 볼 수 있는데 그 비석의 이름이 하마비이다. 비석 아래에 암수 해태가 있는데 오른쪽이 수컷, 왼쪽이 암컷이다. 이 비에 들어갈 때는, 신분 차이 없이 누구든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추라는 뜻이 담겨있다. 들어가면 홍살문이 보이는데 ‘이곳은 신성한 곳이므로 사악한 기운을 내쫓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특히 우리 조상들은 붉은색과 삼지창이 사악한 기운을 내쫓는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홍살문을 지나면 경기전이 보인다. 경기전으로 들어서면 첫 번째로 드므가 보인다. 이 드므 덕분에 경기전은 불에 탄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두 번째로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볼 수 있다. 원래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26점이 있었는데 많이 없어져서 경기전에 있는 것이 유일하다고 한다. 


그다음으로, 어진박물관에 갔었다. 어진박물관에는 어진을 실어나르던 가마와 여러 왕의 어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 어진을 나를 때의 행렬이 모형으로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어진박물관에서 나오면 저 멀리 전동성당이 보인다. 겉모습은 아름답지만, 안에 얽힌 슬픈 설화가 있다고 한다. 그 설화는 이렇다. 윤지충과 권상연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두 사람은 천주교를 믿었다. 그래서 가르침에 따라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신주를 불에 태웠다고 한다. 그로 인해 둘은 진산에서 체포되어 전동성당 자리에서 순교했는데, 그 둘의 피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등 여러 가지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전동성당에도 이런 슬픈 설화가 얽혀있어 놀라기도 했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슬프기도 했다.



    


    



전주한옥마을에는 이렇게 많은 볼거리들이 있고 많은 뜻도 담겨있다. 전주한옥마을에 와서 좋은 추억을 남기고 가게 되어 정말 즐거웠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후백제의 수도이며 조선왕조의 초석이 되었던 전주 한옥마을과 주변 문화 유적지를 지난 9월 19일 국토교통부 어린이 기자단이 방문했습니다. 친절했던 문화해설사분의 안내로 탐방이 이뤄졌는데요. 문화해설사의 설명에 의하면 전주 한옥마을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1930년을 전후로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마을을 만들어 나간 것이 그 시작점이라고 합니다. 비록 나라는 빼앗겼지만, 정신은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우리의 선조들이 한옥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오늘날 전주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도심 속에 700여 채의 한옥군락이 형성된 도시로 알려질 수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방문했던 이목대는 태조 이성계의 4대조 할아버지인 목조대왕 이안사가 태어나 살았던 곳으로 전주 이씨의 발상지입니다. 결과적으로 태조 이성계의 본향인 전주는 조선의 근본이 된 땅이자 나라를 건국한 근원지였던 것인데요. 오목대는 이안사가 풍광을 즐기며 노닐던 곳이자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격퇴하고 이곳에 들러 전승 축하 잔치를 벌인 곳으로 유명합니다. 이목대와 오목대에는 고종황제의 친필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오목대 탐방로에는 500년된 느티나무인 당산나무가 서있었습니다. 전주 한옥마을 주민들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주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는데요. 전주 한옥마을은 자신의 문화와 향기를 지켜낸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마을이라는 의미인 국제 슬로시티 인증도 받았다고 합니다.









하마비는 신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비 앞으로 지나갈 때에는 누구든지 말에서 내리라는 의미를 담고있는 표석입니다. 이 경기전 앞 하마비는 암수 한쌍의 동물이 비를 받치고 있는 독특한 형태이고, 웅장하고 품위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태종 10년에 건립한 경기전은 조선의 건국자인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셔놓은 곳입니다. 백성들에게 고려에서 조선으로 나라가 바뀌었고, 왕씨에서 이씨로 임금의 성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전국 여섯 개의 도시(평양, 경주, 개경, 한양, 영흥, 전주)에 어진을 모셨다고 합니다. 태종 때 어용전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는데, '경사스러운 이 땅에 임금님을 모셨다.'는 의미의 경기전으로 세종대왕이 개명했다고 합니다.









신분제 사회인 조선 시대에는 집을 지을 때 규제가 엄격했다고 하는데요. 지름 50cm인 둥근 '두리기둥'은 궁궐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두리기둥이 많은 경기전은 단순한 사당의 개념이 아닌 왕이 사는 궁궐을 의미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두리기둥 밑에 하얀 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은 구름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 공간부터는 천상으로 이어지는 의미라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 전국의 진전이 피해를 입었는데요. 그러나 경기전 어진은 전쟁 중에도 전주의 많은 선비들이 7년동안 정읍의 내장산에서부터 북한에 있는 묘향산까지 이동하며 끝까지 지켜냈고, 현재는 국보 제317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전주사고는 조선왕조실록 등의 역사책을 보관하는 곳입니다. 임진왜란 직전까지 전국 4대 사고(전주, 충주, 성주, 서울)에 똑같은 복사본을 보관했는데, 왜군이 모두 태워버렸다고 합니다. 유일하게 전주사고의 실록만 남았는데, 그 이유는 역시 전주의 선비들이 조선왕조의 발상지라는 자부심이 강해서 어진과 실록을 목숨걸고 지키려 노력했던 결과라고 합니다. 현재 유네스코 기록 분야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태조의 60세 때 모습이며, 27개가 그려졌지만 현재 전주 어진만 남아있다고 합니다. 어진은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사람만의 분위기를 잘 표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13명의 화가가 함께 궁궐에서 생활하며 정숙한 마음으로 길일에만 조금씩 태조의 어진을 그려나갔다고 하는데요. 3개 조로 나눠 어진을 그렸고, 그 중 가장 실력 좋은 사람이 얼굴을 그렸다고 합니다.



어진은 기름종이로 본을 떠 비단에 옮겨 그렸는데요. 비단 뒷면에 색을 칠하는데, 한올씩 비단에 색을 넣기 대문에 오랜 시간 동안 그렸다고 합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입체감이 느껴지고 사실적으로 표현하는데 이러한 채색법은 우리만의 독특한 초상화 화법으로 '배채법'이라고 합니다. 어진을 그렸을 당시에는 포토샵과 같은 컴퓨터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 그대로 그리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태조의 어진에서 곤룡포가 파란색인 이유는 조선의 건국자라는 의미, 즉 시작의 의미를 표현한 색이라고 합니다. 다른 임금들은 모두 빨간색을 입었는데 태조만 파란색의 곤룡포를 입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지요. 조선 시대의 왕들은 매미의 5가지 장점을 닮아야 좋은 임금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매미 모양의 모자인 익선관을 쓰고 있습니다.





 

옛사람들은 매미를 가장 고고하고 신령한 곤충으로 생각해 최고의 지덕을 가진 곤충이라고 예찬했다. 문(文), 청(淸), 염(廉), 검(儉), 신(信)은 매미의 다섯 가지 덕목인데, 왕이 정사를 보기 위해 모자를 쓸 때 매미의 오덕을 생각하며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야만 했다. 오덕의 교훈은 매미의 입이 마치 선비의 갓끈과 같이 곧게 뻗은 것처럼 왕은 배우고 익혀 선정을 베풀어야 하며, 매미가 이슬이나 나무진을 먹고 사는 것처럼 청결해야 하고, 농부가 가꾼 곡식이나 채소를 해치지 않는 것처럼 청렴해야 하며, 다른 곤충과 달리 집이 없는 것을 본받아 검소해야 하며, 늦가을이 되면 때를 맞춰 죽을 정도로 절도를 지키는 것을 배워 신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출처 : 『익선관의 교훈』, 최요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서울에서 전주까지 가마를 타고 왔는데, 이를 '어진 가마'라 한다고 합니다. 임금님이 행차하듯 어진도 똑같이 200~300여 명이 8일 동안 모셔왔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요. 어진을 옮길 때 평상시에는 가마를 타지만, 임진왜란과 같은 유사시에는 '흑장통'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어진을 말아서 옮겨다니며 피난시키기 위해 사용된 것인데요. 조선왕조 519년 동안 27분의 어진을 그렸지만 현존하지 않고, 어진박물관에 전시된 것만 남아있습니다. 즉, 우리가 알고있는 세종대왕의 모습은 추상화인 셈이지요.









전동성당은 1908년에 땅을 사서 1931년 까지 지은 건물이며, 호남 최초의 서양식 근대 건물입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을 바탕으로 비잔틴 양식이 가미된 것인데요. 이곳에 성당을 지은 이유는 신해박해 때 윤지충, 권상현이 처형을 당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을 통해 윤지충, 권상혁 두 순교자는 복자가 됐습니다. 전동성당은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랑스 신부의 작품인데요. 마치 엄마의 자궁 속처럼 신비롭고 편안하며 따뜻한 느낌을 주는 것이 로마네스크 양식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무형문화재 한지발장 명인인 '유배근'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한지만들기 체험을 했는데요. 꽃잎 등 재료를 고르고, 닥나무 물을 양쪽으로 흔들어 평평하게 만든 뒤 물기를 빼줍니다. 그 위에 재료들로 꾸미기를 하고 다시 닥나무 물을 평평하게 펴서 올려준 다음, 꾸민 한지 위에 붙여줍니다. 물기를 말린 후 철판 위에서 천천히 말리면 한지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한지만들기 체험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대한 황실 '승광재'가 있었습니다. 고종황제의 손자이자 의친왕의 아들인 이석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곳이었는데요. 한지 만들기 체험을 기다리며 한 번 방문하고, 이후에 다시 한 번 방문해봤습니다.  비록 이석 할아버지를 만날 수는 없었지만, 승광재를 조용히 둘러볼 수 있었는데요. 예전에 TV에서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이라는 노래를 부른 가수로도 활동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승광재 입구에 있는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라는 강의 제목을 보며 아픈 역사의 산 증인이신 이석 할아버지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역사를 아직은 잘 모르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집안의 큰 어르신을 잘 모시지 못했다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졌는데요.



역사공부를 열심히 하면 세상을 보는 지혜가 생긴다는 말을 부모님께 자주 들었습니다. 승광재를 방문한 이후 우리의 소중한 역사를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될 수있었습니다.









울에 위치한 북촌 한옥마을은 도시와는 다른 평안함을 주는 곳이라 가족과 함께 자주 방문했던 곳입니다. 북촌 한옥마을과는 다른 모습의 작은 시골 마을일 것이라 생각하며 방문했던 전주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문화 유적지이자 힐링의 공간이었습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한옥의 아름다움에 빠져들 수 있었는데요.



특별히 많은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천천히 한옥마을 주변을 걸어다니거나 앉아만 있어도 마음이 평안해지고 즐거웠습니다. 그래서인지 국제 슬로시티라는 말의 의미가 더욱 와닿았는데요. 어진과 조선왕조실록을 지키려는 피나는 노력과, 나를 빼앗겼지만 정신마저 빼앗기지는 않겠다는 의지로 한옥마을을 만든 전주 선조들의 애국심에 큰 감동을 받았던 탐방이었습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지난 9월 19일, 전주 한옥마을 탐방과 함께 한지만들기 체험을 했습니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가장 먼저 간 곳은 이목대와 오목대였는데요. 태조 이성계는 황산대첩에서 왜구를 토벌한 뒤 이곳 오목대에서 개선잔치를 하며 새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을 다졌다고 합니다. 






▲ 오목대에서 바라 본 전주 한옥마을 풍경





그리고 이목대와 오목대의 가운데 글자인 '목'자는 목조대왕의 '목'자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목대와 오목대는 서로 떨어져 있어 다리가 있었지만,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이 전주 이씨의 맥을 없앤다고 연결된 길을 잘라 지금은 육교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목대는 자만마을이라고도 하며 자손이 이 마을에서 태어나면 번영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목조대왕구거유지'라고 고종이 직접 쓴 비석도 남아있습니다. 






▲ 500년된 당산나무






그리고나서 전주 한옥마을의 500년된 느티나무인 당산나무를 보러 갔습니다. 당산나무는 주로 팽나무와 느티나무를 쓰며, 마을의 안녕을 빌었다고 합니다.



당산나무 앞에서 전주 한옥마을이 만들어진 이야기를 들었는데,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한옥마을이 만들어진 것은 일제강점기 때부터인데, 나라를 망했지만 이 마을에는 일본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한옥을 한 채씩 만들었다고 합니다. 1970년대에 한창 아파트가 유행하고 있을 때에도 전주 한옥마을은 개발을 하지 않아 지금의 모습을 이뤄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700여 채의 한옥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 국제 슬로우시티로 지정돼 있습니다.






▲ 하마비





다음으로 조선 왕조를 건립한 것을 기념해 전주에 세웠다는 사적 제339호로 지정된 경기전으로 갔는데 경기전 앞에 하마비라는 비석이 떡하니 서있었습니다. 경기전은 태조의 어진을 봉안한 곳으로 왕조가 일어난 경사스러운 터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여기에 태조가 있으니 모두 말에서 내리고, 아무나 출입하지 말라고 세워둔 비석이 바로 하마비인 것이지요. 



경기전의 하마비가 일반적인 하마비와 비교했을 때 갖는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암수 두마리의 동물이 비를 받치고 있는 형태라고 합니다. 경기전으로 들어가면서 두리기둥을 봤는데, 역시 태조의 어진이 봉안된 곳이라 그런지 기둥하나도 궁궐의 양식이었습니다.






▲ 태조 이성계 어진





왕의 초상을 어진이라고 해서 어진전이라고도 불렸지만, 태종이 경기전이라는 이름을 따로 지어줬다고 합니다. 어진전은 전주 외에도 개경, 평양, 한양, 경주에도 있었지만 경기전만 남았고, 원래 태조의 어진을 27개 그렸지만 지금은 딱 하나가 남았다고 합니다. 이 어진은 13명의 화가가 나눠서 그렸는데, 제일 잘 그리는 사람이 얼굴을 담당했다고 하며, 어진을 그릴 때는 비단을 사용한 배채화 기법으로 그렸다고 합니다.






▲ 영화에 나온 대나무 숲





문 옆에는 수복청이라고 제사상을 준비하는 건물이 있었으며, 조금 더 깊이 들어가니 매화나무가 있었습니다. 매화나무는 호문목이라고 하는데 선비가 글을 읽는 것을 듣고 꽃을 피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경기전 안에는 대나무 숲이 있는데, 이 대나무 숲은 '왕이 된 남자'라는 드라마와 '역린'이라는 영화를 촬영했던 유명한 곳이라고 했습니다.





▲ 전주사고





또한, 경기전 안에는 세종 21년에 설치된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전주사고가 있었는데, 전주사고의 실록만이 임진왜란 때 남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조가 전주사고의 실록을 보고 4개의 사본을 더 만들었지만, 현재는 2개만이 남아있다네요.



조경묘는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이성계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옆에는 어진을 소장한 어진박물관도 있었는데, 이곳에는 어진을 옮길 때 쓰던 가마가 있었습니다. 엄청 길고 넓었던 가마였는데 이 가마를 신연이라 한다고 합니다. 어진은 피난을 갈 때에도 행렬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옮기기가 힘들다고 하며, 어진을 모신 건물의 정자각 돌추부에는 화재막이용 거북이 암수가 있습니다.



점심을 먹고 한지를 만들러 갔습니다.






한지만들기 체험 모습





한지를 만드는 방법은 이러했습니다. 먼저, 한지 틀을 이용해 닥나무물을 넣고 흔들어 한지의 기본 틀을 만듭니다. 그리고 틀 안에 있는 재료를 부직포 위에 올려놓은 후 원하는 꽃을 이용해 여러가지 방식으로 꾸며줍니다. 다시 한 번 앞의 과정을 반복한 뒤, 꾸며둔 한지를 다시 만든 한 겹의 한지로 덮어줍니다. 그 다음에 부직포를 기계로 탈수시킨 뒤 뜨거울 철판 위에 올려 말려주면 우리나라의 전통 한지가 완성됩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지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신 선생님이 무형문화재에 등록된 한지발장 유배근 선생님이셨습니다. 이번 체험을 통해 전주에 대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많은 전란 속에서도 어진과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지켜냈던 애국심과 국제 슬로우시티로 지정된 전주의 모습이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끝으로, 자유시간을 활용해 고종 황제의 손자인 황손 이석 할아버지를 만나뵀는데요. 짧게 인터뷰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석 할아버지 인터뷰>






▲ 이석 할아버지와 어린이 기자

 




어린이 기자 :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누구시고, 몇 번째 자손이신가요?


이석 할아버지 : 아버지는 의친왕이십니다. 아버지께서는 기골이 장대해 조선 왕실의 대를 잇기 위해 많은 자손을 두셨는데, 저는 11번째 아들이랍니다.


어린이 기자 : 조선 역대 왕 중 가장 좋아하는 왕은 어떤 분이신가요?


이석 할아버지 : 세종대왕님을 가장 좋아합니다. 무엇보다도 한글을 만드셨기 때문인데요. 그리고 광화문 앞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은 저와 효령대군의 얼굴을 합쳐 만든 것입니다.


어린이 기자 : 미래의 어린이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이석 할아버지 : 무엇보다도 어린이들은 역사를 소중히 생각해 역사 제대로 알기를 꼭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이번에 탐방한 전주 한옥마을은 말 그대로 전주에 있는 한옥마을인데요. 왜 전주에 한옥마을이 세워졌는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옛날 일제강점기 때 양곡 수송을 위해 전군가도가 생기면서 전주부성이 허물어지자 서문 밖 천민 거주지역에 모여 살던 일본인들이 성 안으로 들어와 상권을 형성하며 세력을 점점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교동에 살고 있던 이씨 선비들이 '여기에는 일본인이 들어올 수 없게 막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전주 이씨가 자신들의 조상이 조선의 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을 물리치자'는 생각이 다른 백성들보다 몇 배는 강했던 것 역시 한 몫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이어져 내려온 한옥마을이 지금은 800여 채가 넘는다니 참으로 놀랍죠? 게다가 2013년 기준으로 에버랜드를 찾은 관광객이 700만 명 이라면 전주 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은 600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해 보였습니다.






▲ 오목대(좌), 고종 황제가 세운 오목대 비석(우)





이목대는 태조 이성계의 5대 할아버지인 목조 이안사의 출생지라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그리고 태조 이성계가 고려 우왕 때 황산 전투에서 왜적에게 승리한 후 개경으로 돌아오다가 잠시 쉬어가면서 승전기념으로 지은 것이 오목대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고종 황제가 친필로 오목대에 '태조고황제주필유지'라는 비석을 세웠는데, 이 뜻은 태조가 머무른 장소라는 뜻입니다. 또 다른 오목대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로는 이곳에 오동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오목대라 이름을 정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 경기전 입구, 하마비, 홍살문





신분에 관계없이 말과 가마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라는 하마비를 지나 한옥마을로 들어갔는데요. 전주 한옥마을에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보관하고 있는 경기전, 전동성당, 어진 박물관, 그리고 부채 박물관 등이 있습니다. 



먼저, 경기전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봉안한 곳으로 사적 제339호로 지정돼있습니다. 홍살문을 거쳐 외삼문, 내삼문을 지나면 경기전이 나오는데, 지금은 보수 공사 중이라 직접 볼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때문에 경기전에 있던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현재 어진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어진 박물관에는 태조 이성계, 세종대왕, 영조, 정조, 철종, 고종, 순종의 어진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철종의 어진이 처음 본 것이라 색달랐습니다. 정조의 어진은 카리스마 넘치는 용안과 수염 때문에 아주 인상적이었고요.



여기서 잠깐! 임금이 쓰던 익선관은 매미의 날개를 본따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왜 매미의 날개를 본땄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매미의 습성을 보고 좋은 정치가가 되고자 했던 바람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매미의 5덕>


① 이슬만 먹고 사는 매미처럼 먹을 것을 탐내지 말자.


② 매미의 생김새를 따라 배우고 익혀 선정을 베풀자.


③ 남이 생산한 것을 먹지 않으니 염치가 있다.


④ 집을 짓지 않으니 겸손하다.


⑤ 철에 따라 허물을 벗고 때를 알아 물러날 줄 아는 절도가 있다.







여름에 정신없이 울어대기만 하는 줄 알았던 매미에게 이런 모습이 있는 줄은 몰랐죠? 과연 조선의 임금님들은 익선관을 쓸 때마다 매미의 교훈을 잘 새겼을까요?






▲ 전동성당의 외부와 내부





다음으로 전주 전동성당은 사적 제228호이며, 성당이 세워진 자리는 원래 전라감영이 있던 자리로 우리나라 천주교 첫 순교자가 나온 곳이기도 합니다. 「약속」이라는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의 슬픈 결혼식을 올리는 장소로 더욱 유명한 전동성당은 내부의 둥근 천장과 색색깔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웠습니다. 관광객은 성당 내부로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어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전주 한옥마을의 당산나무





세 번째로 전주 한옥마을의 당산나무는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오목대 길목에 우뚝 서있습니다. 이 당산나무는 500년도 더 지난 세월을 살아오면서 전주 한옥마을을 지켜왔다고 하는데요. 주민의 무병과 평온 무사를 기원하는 당산제가 매년 1월 15일 이곳에서 열리고 있고, 당산나무 등걸에는 당산제 때 소원을 적어 놓은 소원지가 끼워져 있는 새끼줄이 감겨 있습니다. 새끼줄에 묶여 있는 모든 소원이 다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전주 한옥마을 중에는 사람들의 눈에 잘 안보이는 곳에 폐가도 있었습니다. 폐가에는 거미줄이 여기저기 붙어있어 조금은 무섭고 으스스하기도 했는데요. 조금은 엉뚱하지만, 폐가를 공포의 집으로 만들면 어떨까하는 재미있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전주는 비빔밥으로 유명한데, 전주 한옥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이 비빔밥을 얼마나 자주 먹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이석 할아버지 댁에 방문했을 때 이 점을 못 여쭤봐서 아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무형문화재 유배근 한지발장과 함께하는 한지뜨기 체험을 했습니다. 한지를 만드는 방법은 총 8단계로 이뤄져 있습니다.






▲ 한지 제작 과정





① 한지에 꽃잎과 단풍잎, 줄기 등으로 어떤 모양을 만들지 생각하고 필요한 양만큼 물에서 건져올립니다.


② 지통에 담긴 닥나무물을 틀에 퍼서 놓고, 닥나무물이 평평하게 펴지도록 양 옆으로 흔들어줍니다.


③ 틀에 있는 닥나무물을 부직포 위에 잘 펴서 내려놓은 다음, 물기가 빠지도록 손바닥으로 발 위를 잘 밀어줍니다.


④ 미리 준비한 꽃잎과 줄기 등으로 한지 위를 꾸밉니다.


⑤ 다시 한 번 지통에 담긴 닥나무물을 틀에 퍼서 놓고, 닥나무물이 평평하게 펴지도록 양 옆으로 흔들어줍니다.


⑥ 틀에 있는 닥나무물을 꾸민 한지 위에 잘 펴서 내려놓은 다음, 물기가 빠지도록 손바닥으로 발 위를 잘 밀어줍니다.


⑦ 한지와 부직포의 물기를 짜줍니다.


⑧ 뜨거운 철판 위에 올려놓고, 한지의 물기를 완전히 말려줍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지는 물에 담궈도 잘 젖지 않고, 오랫동안 보관해도 잘 썩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지를 만드는 과정은 복잡했지만, 신기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나라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애국심을 더욱 강화하고, 반듯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며 전주 한옥마을 탐방을 마칩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