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교'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07.21 여름휴가길 교통 피크는 언제일까? (18)
  2. 2013.07.31 한강다리 7편(마지막편)
  3. 2013.07.15 한강다리 4편



국토교통부는 7월 24일(금)부터 8월 9일(일)까지 17일간을 여름휴가에 대비한 하계 휴가철 특별교통대책 기간으로 정하고 국민들이 안전하고 편안한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하계특별교통대책을 마련, 시행할 계획입니다.



하계특별교통대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특별교통대책 】



올해 여름철 교통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하계특별교통대책 기간 동안 1일 평균 철도 8회, 고속버스 279회, 항공기 34편, 선박 195회를 증회하는 등 대중교통 수송력이 증강됩니다. 





또한 여름휴가 기간 동안 실시간으로 교통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지·정체 구간 우회도로를 지정하고 스마트폰 앱, 인터넷, 방송 등 다양한 홍보매체를 활용해 이를 홍보함으로써 교통수요가 분산되도록 할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고속도로 및 국도 교통정보를 제공하는 스마트폰용 무료 앱이 제공되고, 국가교통정보센터(www.its.go.kr), 도로공사 로드플러스(www.roadplus.co.kr), 종합교통정보안내(1333) 및 콜센터(1588-2504)와 도로전광판(VMS) 1,713개(고속도로 1,133, 국도 580)가 운영됩니다.





도로의 준공 및 조기개통, 갓길 운용도 시행됩니다. 평택제천선 충주-제천 구간(42km) 신설 개통을 비롯해 남해선 냉정-부산 등 4개 구간(68km)이 확장 개통 되었으며, 일반국도 45호선  아산 신동-탕정 등 25개구간(188㎞)이 준공 개통되고, 43호선 경기 화성시 분천∼송산 등 13개구간(56㎞)이 임시 개통되었습니다. 또한, 갓길 차로제(30개 구간 215㎞), 승용차 임시 갓길차로(2개 구간 11㎞)운영하여 정체를 완화하고 연속성을 확보할 계획입니다.





피서객의 편의증진을 위하여 다각적인 대책도 마련됩니다. 7월 31(금)~8월 3(월)까지 4일간 자동차 제작사 합동으로 고속도로 휴게소 등 총 17개소(27개 코너)에서 자동차 무상 점검서비스가 실시되고 고속도로 본선 주요정체구간에 임시화장실 183칸을 추가 설치할 예정입니다.



【 교통안전대책 】




도로관리청별로 집중호우 등 기상특보 시 비상근무체계를 구축하고 항공기 및 여객선에 대한 운항 통제를 강화합니다. 또한 국민의 안전한 이동을 위하여 도로포장, 안전시설 등을 사전 점검하고 졸음운전 예방, 안전벨트 매기 등 안전운전 캠페인 등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이와 함께 고속도로 및 터널 교통사고에 대비하여 119구급대 연락체계(305개소) 구축과 구난 차량(1,904대) 신속 연락 체계 구축 등  교통사고 시 신속한 인명구조와 사고처리 체계가 구축․운영됩니다.



≪교통정보 안내전화 및 인터넷 주소≫


 ◈ 종합교통정보 안내

   - 국토교통부 홈페이지 포탈사이트 www.molit.go.kr

   - 인터넷 실시간 교통정보제공 : www.its.go.kr

   - ARS 1333(고속도로, 국도, 철도, 항공, 기상)


 ◈ 전국 대중교통정보안내

   - 국토교통부 TAGO 홈페이지  www.tago.go.kr


 ◈ 고속도로 교통정보 안내 콜센터 ARS, 홈페이지 주소

   - ARS 1588-2504, 한국도로공사 홈페이지 www.ex.co.kr


 ◈ 응급환자 수송 : 119


 ◈ 철도 ARS, 홈페이지 주소

   - ARS 1544-7788, 홈페이지 www.korail.com


 ◈ 고속버스 ARS, 홈페이지 주소

   - 통합 콜센터 ARS 1588-6900

   - 홈페이지 경부선 www.kobus.co.kr, - 호남선 www.easyticket.co.kr


 ◈ 항공기 ARS 및 홈페이지 주소

   - 대한항공 ARS 1588-2001, 홈페이지 www.koreanair.com

   - 아시아나항공 ARS 1588-8000, 홈페이지 : www.flyasiana.com


 ◈ 여객선 홈페이지 주소

   - 한국해운조합 홈페이지 : www.haewoon.co.kr,  island.haewoon.co.kr


 ◈ 기상정보  ARS, 홈페이지 주소

   - 기상청 ARS 131(해당지역 DDD+131), 홈페이지 www.kma.go.kr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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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 정보네요

    2015.07.23 16:22 [ ADDR : EDIT/ DEL : REPLY ]
  2. 최주호

    이번에 하계여행을 가게 될 것 같은데, 주어진 정보 잘 사용하겠습니다~

    2015.07.23 21:22 [ ADDR : EDIT/ DEL : REPLY ]
  3. 앨리스심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2015.07.26 15:44 [ ADDR : EDIT/ DEL : REPLY ]
  4. 유용한정보네요

    2015.07.26 21:27 [ ADDR : EDIT/ DEL : REPLY ]
  5. 이은학

    잘 읽었어요

    2015.07.27 09:08 [ ADDR : EDIT/ DEL : REPLY ]
  6. sysea47

    기사 정말 많은 도움 되었습니다.
    여름휴가 계획도 다시 조정했어요^^

    2015.07.27 09:42 [ ADDR : EDIT/ DEL : REPLY ]
  7. 공룡

    중요한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5.07.27 23:11 [ ADDR : EDIT/ DEL : REPLY ]
  8. 잘읽었어요~

    2015.07.28 09:04 [ ADDR : EDIT/ DEL : REPLY ]
  9. 오구

    유용한 정보 감사합니다~

    2015.07.28 13:34 [ ADDR : EDIT/ DEL : REPLY ]
  10. 스마트한 교통 대책이네요 ㄷㄷ

    2015.07.29 09:5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1. 씨앗

    국토교통부 덕분에 편안한 휴가를 보낼 수 있겠네요 ! ^^

    2015.07.29 13:47 [ ADDR : EDIT/ DEL : REPLY ]
  12. 공룡

    명절때하고 여름휴가철 고속도로는 어마어마하게 밀리죠.
    이럴때 아주 유용한 정보입니다.

    2015.07.30 00:10 [ ADDR : EDIT/ DEL : REPLY ]
  13. LOTTE

    휴가 떠나고 싶어지는 글이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2015.07.30 00:21 [ ADDR : EDIT/ DEL : REPLY ]
  14. 으아 지금이 딱 피크죠 ㅠㅠ

    2015.07.30 16:3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5. 요즘 한창 휴가철이라 피크더라구요..

    2015.08.07 10:0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6. 요즘 한창 휴가철이라 피크더라구요..

    2015.08.07 10:0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7. 감사합니다!! 좋은정보 덕에 휴가 잘 다녀왔습니다!!^^

    2015.08.21 12:29 [ ADDR : EDIT/ DEL : REPLY ]
  18. 고속도로의 조기개통을 통해 효과가 있었길 기대합니다.

    2015.10.14 02:5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강남(江南) 개발은 미국 서부 개척과 비슷한 면이 있다. 

허허벌판 인적 없는 곳에 철도가 놓이고 금맥이 발견되면서 “Go West!"를 부르짖으며 서부로 달려갔던 미국인들처럼, 서울 시민들은 전쟁이 터질 경우 3-40만 명을 수용할 방공호를 겸하여 지어졌던 남산 1호 터널을 지나 쭉 뻗은 한남대교를 건너 황량하게 펼쳐진 들판으로 달려나갔다. ‘강남으로!’를 부르짖으면서. 

정부가 앞장서서 땅 장사를 하고 그를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정치 자금을 조성하는 가운데 미국 서부 개척시대를 방불케 하는 토지 확보 전쟁이 벌어졌다. 미국은 ‘골드 러시’였지만 한국은 ‘랜드 러쉬’였다. 


당시 정부의 기조는 ‘강북 인구 분산’이기도 했다. 포화 상태에 이른 서울의 도심 기능을 어떻게든 분산시켜 나가고자 했던 것도 강남 개발의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72년 초 양택식 서울 시장은 이런 기자회견을 한다.


 “사치와 낭비 풍조를 막고 도심 인구과밀을 억제하기 위해 강북 주요지구 내에서는 백화점, 도매시장, 공장, 각종 유흥시설 등의 신규 시설 일체를 불허한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강남에 터를 닦은 것이 유흥업소들이었다. 대규모 유흥업소들이 연속부절로 강남에 자리잡았고 강북 도심에서 간단히 1차를 끝낸 주당들은 “2차!”를 부르짖으면서 택시를 잡아타고 제3한강교를 향해 ‘쏘았다.’ 


이윽고 75년 구자춘 서울 시장은 ‘한강 이북 지역 택지 개발 제한 조치’를 발표한다. 강북의 임야나 토지가 택지로 개발되는 일 자체를 막아 버린 것이다. 그렇게 묶인 돈과 욕망 역시 제3한강교를 통해 한강을 도하하게 된다. 



 

▲ 영동지구 주택건립공사(1973년 청담) 출처: http://bit.ly/17gNY5R



1971년 논현동 공무원 아파트를 필두로 유명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등 강변에 아파트의 성채가 쌓이기 시작했다. 

원래 이 즈음까지만 해도 아파트 이름은 마포 아파트나 와우 아파트 같은 식으로 지역명을 붙이는 것이 상례였다. 그런데 현대건설이 그 브랜드 이름을 아파트에 붙여 ‘명예를 걸고’ 만들었음을 과시하면서 이후로는 건설사들이 자신의 브랜드를 아파트 이름으로 하는 시대가 열린다. 


압구정동 현대 아파트는 1978년 한 사건을 계기로 더욱 유명해지면서 제3한강교 건설 후 변화한 강남의 위상을 웅변으로 보여 주게 된다. 바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 분양 사건. 

사원용으로 지은 900여가구 가운데 600여가구를 정치인, 언론인, 기업인 등에게 특혜 분양하여 물의를 일으킨 것이다. 70년대 이후 부유층의 주거지로 이름 높은 그 이름은 그렇게 형성됐다. 




 

 

▲ 경기고 종로구 화동 교사 마지막 졸업식(76') / 정신여고 이전 공사 기공(78') (출처: http://bit.ly/17gNY5R)



사람이 살려면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만 필요한 게 아니다. 아이들도 길러야 하고 교육도 시켜야 했다. 힘깨나 쓰고 방귀깨나 뀐다는 이들이 대거 강남으로 몰려가면서 강북에 있던 이른바 명문 고등학교들도 친구 따라 강남 가듯 강남으로 옮긴다. 

수십 년 명문이었던 경기고가 76년 강남으로 옮겼고 휘문고등학교도 그 뒤를 따랐으며 서울고등학교도 한강을 건넜다. 여고도 예외가 아니어서 진명여고, 숙명여고 등이 강남행을 단행함으로써 강남은 완전한 신천지로 변했다. 


그 신천지에 지칠 줄 모르고 사람을 풀어놓은 파이프라인이 바로 제3한강교였다. 



 

▲ 출처: 다음 뮤직 http://music.daum.net/album/main?album_id=7211&song_id=255872



작달막한 제주도 출신 여가수 혜은이가 디스코 열풍을 불러 온 노래 <제3한강교>를 발표할 무렵(1979)이면 이미 강남은 환골탈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외국같이 변한 또 하나의 서울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제3한강교를 직접 제목으로 삼았던 혜은이의 노래는 조금 불운했다.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당신과 나의 꿈을 싣고서 마음을 싣고서

젊음은 피어나는 꽃처럼 / 이밤을 맴돌다가

새처럼 바다처럼 물처럼 흘러만 갑니다.”


뒤의 가사는 원래 “어제 처음 만나서 사랑을 하고 /우리들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였다. 그런데 “처음 만나 사랑을 하는데 하나가 된다는 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의문을 제기하시는 엄숙하신 심의위원들 때문에 “어제 다시 만나서 다짐을 하고 우리들은 맹세를 하였습니다.” 하는 매우 어정쩡하고 대략 난감한 가사로 변신하고서야 대중들에게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막 태어난 또 하나의 서울. 흥청망청의 여흥과 일확천금의 욕망, 그리고 좌절과 박탈의 슬픔이 공존하던 시기의 강남, 그리고 제3한강교를 오가던 젊음들에게는 오히려 원래의 가사가 더 어울릴 수도 있었으련만 강남에 땅 한 자락 사 놓고 톡톡히 재미를 봤던 당시의 ‘지도층’들은 노래 가사에는 그렇게 엄숙했다. 


그래도 제3한강교 아래로 한강과 세월은 유구하게 흘렀고 1982년에는 ‘한남대교’로 그 이름이 개칭되어 오늘에 이른다. 




▲ 출처: http://encykorea.aks.ac.kr/

 


팍팍한 시골 생활 접고 불안하기만 한 희망을 찾아 서울로 이사 오던 가족들은 한남대교 건너 아득히 바라보이는 남산타워를 보면서 뿌듯함과 불안함을 동시에 맛보았을 것이다. 경부고속도로가 유일하던 시절에도 그렇거니와 동서로 고속도로가 뚫린 지금도 “서울에 왔다.”는 느낌을 주는 다리는 역시 한남대교와 그 너머에 우뚝 솟은 남산이다.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구역으로 곧장 연결되는 다리이자 인기 연예인들의 고백 (한남대교에서 자살하려 했다는)에서 보듯 서울 시내 다리 가운데 투신 자살 빈도가 높아 자살 예방을 위한 긴급 전화가 놓이기도 했던 빛과 그림자의 다리이며, 말년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구속 영장 집행을 거부하고 고향 합천으로 내달릴 때 지나갔던 다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구가 마지막으로 한강을 건넌 역사의 다리이기도 하다. 


한남대교는 그렇게 서울을 바꾼 다리였고 또 하나의 서울과 옛 서울을 이어주는 다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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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가사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수은등이 손짓하는 제2한강교 / 오작교 사연 싣고 강물은 굽이친다/ 

한 많은 백사장아 봄을 묻지 마라. 

아아 오늘도 기다리네. / 그 님이 돌아오실 제2한강교./ 견우성이 눈물짓는 제2한강교/ 

보라는 발자욱에 세월은 흘러간다. 

노 잃은 뱃사공아 한을 품지 마라 / 아아 불빛이 흔들리네 / 그 님이 돌아오실 제2한강교.” 


 


▲ 제2한강교(양화대교) (출처: 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



김세레나의 1966년 앨범이다. 여기서 말하는 제2한강교 건설의 첫 삽이 떠진 것은 1962년, 완공은 1965년이었다. 한강인도교가 완공된 것이 1917년이었으니 (광진교를 제외하면) 거의 반세기만에 새로운 다리가 한강에 걸쳐진 것이었다. 제2한강교는 영등포 당산동과 마포 합정동을 잇는 다리였고 오늘날의 양화대교다. 



 

 

 

▲ 절두산 / 양화진 외국인 묘지(출처: 민족문화백과사전/양화진외국인서교사묘원)



이 일대에는 서울 지역 한강의 3대 나루터라 할 양화진이 있었다. 수운(水運)을 통해 바다로부터 한강을 따라 서울에 들어오는 초입에 위치했던 이 양화진은 역사적으로, 특히 근대 이후 간간히 그 존재를 드러낸다. 천주교인들을 박해하고 목 잘라 죽인 것이 오늘날의 ‘절두산’ 아래 양화 나루터 근처였고 그들을 처형하기 전 망나니들이 칼을 씻은 우물이 있던 곳이 오늘의 합정동이었다. 


조선의 개화를 꿈꾼 재기 넘치는 인물 김옥균이 상해에서 암살당한 뒤 그 시신이 실려와 토막 났던 곳이 바로 양화진이었고 구한말 수운이 편리한 양화진에 외국인 묘지를 설치해 달라는 주한 외교사절들의 요청에 응하여 만들어진 것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양화진 외국인 묘지다. 그러니 김세레나 노래처럼 그 백사장에는 한도 많았을 것이고 나루터를 떠난 사공의 한숨 소리도 여전히 배어 있었을 것이다. 




 

▲ 서울 화력발전소(당인리 발전소) (출처: 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



합정동과 영등포 당산동을 잇는 제2한강교의 목적은 다양했다. 서울에서 김포공항이나 인천 방향으로 가려고 할 때, 또 당인리 화력 발전소에 물품을 실어 나르려고 할 때 등등 다리의 필요성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또 포화상태의 제1한강교 교통량을 분산하고 영등포 등 도시 외곽 지역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도 요긴한 다리였다. 


그러나 이 다리 건설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국방상의 것이었다. 평야지대로 인민군의 기갑 부대의 주요 공격 축선이 될 수 있는 서부전선, 즉 ‘문산 일대로의 물자 수송을 원활하게 하고자 함’이 다리 건설의 주된 이유였던 것이다. (한강다리 1백년 - 서울특별시) 그리고 전쟁이 발발할 경우 이 다리는 오로지 군사용으로만 사용되게 못박혀 있었다. 즉 ‘유사시 군용 다리’였던 것이다. 전쟁이 끝난 지 10년이 넘었지만 전쟁의 공포와 상흔은 그렇게 칼자국처럼 도시의 심장에 박혀 있었던 것이다. 


 


▲ 제2한강교 가설공사 (출처: e영상역사관 ehistory.korea.kr)



다리를 놓는다는 것은 곧 도로를 까는 일이었다. 한강이야 임자가 없으니 맘대로 공사해서 도로를 놓으면 그만이지만 그 다리의 남안(南岸)과 북안의 땅은 거의 임자가 있었다. 아무리 관(官)의 위세가 대단했다고 하지만 다리 양쪽에 널린 사유지들을 수용하는 것은 매우 큰 부담이었다. 


정부에서는 매입 단가를 평당 4천원 정도로 책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주민들은 어림도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 세 배인 1만 2천원은 받아야 한다고 공론이 돌아갔고 역시 그 일대에 땅을 일부 소유하고 있던 한 회사의 총무부장은 주민들의 위세에 묻어가 한몫 수입을 올릴 생각에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알려지자 그는 경영주에게 불려간다. 

“우리가 그 땅을 평당 얼마 주고 샀나?” 

“네? 평당 3원 주고 샀었지요. 생판 아무것도 없었을 땐데요.” 이 말을 하자마자 총무부장은 벼락같은 호통을 듣는다. 

“임자는 평당 3원에 산 것을 4000원에 가져가겠다는데 1300배의 이익을 취하고도 만족하지 못하는가. 나라에서 필요하다는데 당장 서울시에 내주지 못하겠는가.” 


회사의 이름은 유한양행. 그리고 총무부장에게 호통을 친 회장의 존함은 유일한이었다.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이다. 그 관리를 개인이 할 뿐...... 사람은 죽으면서 돈을, 또는 명성을 남기기도 하지만 그러나 가장 값진 것은 사회를 위해서 남기는 그 무엇이다. ”고 했던 그의 어록이 현실 속에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유한양행은 “땅값인상 투쟁”에서 빠졌고 다른 지주들도 대충 그에 상응하는 액수로 타협할 수 밖에 없었다고 전한다. 그렇게 제2한강교는 지어지기 시작했고 공사 3년만인 1965년 1월 27일 완공됐다. 



이로써 서울 도심에서 김포공항에 이르는 거리는 4km, 시간은 20분 정도가 단축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그리고 홍제동~신촌 구간의 도로가 개설되어 이 다리와 직결됨으로써 영등포~서부전선의 거리가 약 6km 정도 줄어들었으며, 시간도 48분이 단축되어 연간 3000만원 어치 가량의 휘발유가 절약되었다고 한다. <한국건설기네스(Ι)길> (이덕수 지음-도서출판 보성각 중) 


 


▲ 양화대교 개통식(출처: 희망서울)



또한 이 공사는 설계에서부터 준공까지 모든 과정을 오롯이 국내 기술진의 힘으로만 끝낸 최초의 다리였다. 그러다 보니 사연도 많고 기쁨도 컸다. ‘현재의 관점에서는 초보적 교량 건설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 기술력으로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특히 4~5차례에 걸친 홍수 피해로 공기가 지연돼 300만원의 상금을 내걸고 공기 단축을 위한 아이디어를 공모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제2한강교인 양화대교를 무사히 완공시킨 것은 당시로서는 대단한 경사였다. 다리 준공식에 토목계 원로 200여 명을 초청하였고 현대건설 무교동 사옥에서 대대적인 준공 파티를 열기도 하였다.’ (현대건설 60년사 중) 


그러고 보면 순수한 한국인의 돈과 힘만으로 한강을 가로지른 다리는 이 제2한강교가 처음이었다. 한강철교와 인도교와 광진교는 일본이 만들었고 끊어진 다리를 잇는 데에도 미국의 지원이 필수적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서서히 일어서고 있었다. ‘그 님이 돌아오실’ 제2한강교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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