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티
(Almaty)는 카자흐스탄 남동부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199712월 카자흐스탄 정부가 행정수도를 알마티에서 아스타나(Astana)로 이전하였지만, 실질적인 카자흐스탄의 경제 및 학술과 문화의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도시는 바로 알마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달 기사는 카자흐스탄 제1의 도시 알마티에 대해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도시를 에워싸고 있는 톈산산맥의 정상을 하얗게 뒤덮은 만년설 아래, 도시의 중심가는 현대적인 빌딩들과 러시아 정교의 화려한 건축물, 이슬람 모스크 양식의 건축물이 기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신시가지는 근대적 도시계획에 의한 바둑판 모양이며, 일찍부터 계획적으로 정비된 넓은 도로 옆을 따라 무성한 가로수들이 길게 세워져 있습니다.

알마티의 남쪽은 해발고도
3,000m가 넘는 톈산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천산의 만년설이 녹아 형성된 계천 주위에 메데우 빙상경기장이 건설되어 있는데요. 2011년 동계 아시안게임 개최 장소일 뿐만아니라 사계절 내내 주말이면 가족과 연인들의 방문객들이 꾸준히 줄을 잇고 있는 곳입니다.

메데우 빙상장에서 더 올라가면 해발
2,200m 가량에 위치한 침불락 스키장이 나옵니다. 침불락은 천연설로 이루어진 스키장으로 개장은 따로 없고 눈이 내리면 개장입니다.

메데우 빙상 경기장


천산의 만년설이 녹아 만든 계천



                        ▲ 메데우 빙상 경기장 입구                                                         메데우 입구까지 오는 버스



▲ 케이블카를 타고 침불락에 올라가는 사람들                            자동차를 타고 침불락에 올라가는 모습 


알마티의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신광장은 공화국 광장이라고도 불리는 곳인입니다
. 광장의 중앙에는 금전사 (Sak warrior)를 모델로 만든 독립 기념상 하나가 우뚝 서있습니다. 이곳에서 축제나 기념행사를 여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 신광장 중앙에 위치한 금전사를 모델로만든 독립기념상/
카자흐스탄의 역사를 조각해 놓은 조각품/카자흐스탄 공산당 중앙 위원회 전 건물

신광장이 있다면 구광장도 있겠죠의회 광장이라고도 불리는 구광장은 이름처럼 예전에 카자흐스탄 의회가 있었던 곳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신 행정수도인 아스타나로 이동해 있습니다. 구광장은 신광장보다 크기는 작지만 남쪽에 위치한 아기자기한 공원이 제일 먼저 눈에 띕니다. 알마티는 아스타나와 다르게 산과 나무가 많을 뿐만아니라 도시 곳곳에 공원과 가로수가 많아 정원도시, 녹색도시라고 불린답니다.


▲ 건물 주변의 나무들



▲ 건물 주변의 나무들

시가지 길은 곡선이 없는 직선으로만 이루어져 있는데요. 시가지 전체가 도시계획에 의해 잘 정비되고 공원처럼 꾸며져 있으며 각 건물의 주소는 선진국에서 사용하는 넘버링 시스템(Numbering System)을 사용하며 도로는 넓고 가로수가 무성하게 잘 심어져 있습니다.

알마티는 높고 커다란 건물들과 새로 지어 올린 고층 빌딩들이 들어서 있는 아스타나와는 또 다른 느낌의 도시였습니다
. 카자흐스탄의 경제 도시답게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알마티를 중앙아시아의 금융허브로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선포하며 알마티의 도시 개발 계획의 뜻을 내비쳤는데요. 아스타나에 비해 낙후된 도시환경을 재정비하고 미래지향적이며 환경친화적인 신도시 건설을 통해 알마티시가 중앙아시아의 금융 중심지로 발전하길 바라며 이상 국토교통부 글로벌 기자단 2기 박소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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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카자흐스탄에서 활동중인 국토교통부 글로벌 기자단 박소영입니다.  앞서 5월달에 제가 소개 해드렸던 2017 세계박람회(EXPO) 개최도시인 아스타나를 기억하시나요? 

현 카자흐스탄의 행정수도인 아스타나는 과거
'알마티'에서 '아스타나'로 수도를 이전한 경력이 있는 국가인데요. 현재까지 아스타나는 완벽한 수도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건설과 인프라 확충에 노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스타나의 수도이전 배경와 이유를 알아보고, 현재 도시 건설 현황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

수도의 이미지는 국가의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수도의 발전은 국가의 성쇠와 뗄레야 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도에 대한 논의는 지금까지도 여러 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통치체제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중심지의 설립 필요에 의해 수도가 이전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그러나 오늘날은 근대국가의 형성 및 독립 국가의 수립에 따라 수도를 이전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는데요.

1991
, 중앙아시아의 나라들은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국가적 독립을 이루었습니다. 카자흐스탄 또한 소비에트 해체에 따라 근대적 민족국가 수립을 목표로, 정치 및 경제 체제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수도이전입니다.

독립할 당시 카자흐스탄의 수도는
알마티였습니다. 그러나 알마티는 수도의 입지상 너무 국토의 변두리에 위치해 있으며, 물류수송과 에너지 소비가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분분했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알마티의 지리학적 위치 및 교통네트워크, 도시개발의 한계성, 전략적 측면, 북부지역의 상대적 후진성을 부각시키며 수도이전을 추진하게 됩니다.

1997
12, 카자흐스탄 정부는 아스타나가 새로운 수도가 될 것이라고 공식 발표하였습니다. 아스타나는 카자흐스탄 중북부에 위치하고 있어 동남쪽에 위치한 알마티에 비해 확실한 이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러시아인의 비율이 높은 북부지방과 가깝기 때문에 민족 공존에 기여할 뿐더러, 카자흐스탄 전역을 연결하는 철도와 도로의 교차점이기 때문 이였습니다.

깨끗한 도시경관, 깔끔한 아스타나의 신시가지 모습

아스타나시가 신수도로 지명된 이래 다양한 도시계획이 시도되었습니다. 그 중, 정부는 새로운 수도로서의 기능과 거주민들의 삶의질 향상을 위해 2030년까지 아스타나시의 발전을 위한 마스터 플랜을 세웠는데요. 1987년에 제안된 마스터플랜을 기반으로 이심(Ishim)강 우측에 있는 기존 시가지의 노후화한 저층 주택지를 재개발하여 고차화하고, 이심강 좌측의 미.저 개발지를 신도시로 개발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였습니다.

대통령궁과 정부기관 및 주택과 빌딩
, 호텔 등이 양쪽으로 넓게 뻗어있는 신시가지는 바이테렉(Bayterek) 타워를 중심으로 기다란 직사각형의 틀 안에 세워져 있습니다. 대통령궁 뒤편으로 흐르는 이심강에는 20만평 규모의 생태공원이 조성되어있고, 공원 양쪽에는 각각 3000여 세대 규모의 고급 주거단지가 들어서 있습니다.


아스타나의 랜드마크, 바이테렉(Bayterek)타워

새로 건설된 대형 건축물 중 단연 손꼽히는 것은 '생명의 나무' 라고 불리는 바이테렉 타워입니다. 유명한 카자흐스탄 전설의 나무를 형상화한 탑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큰 막대사탕 모양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바이테렉 타워는 국가의 새로운 시작인 수도이전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는데요
. 수도를 이전한 해가 1997년이라는 점에서 착안된 이 건축물의 높이는 97m입니다. 아스타나를 대표하는 상징물답게 높이마저도 상징적인 이 전망 타워는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처럼 카자흐스탄의 유명한 랜드마크가 될 것입니다.

쌍둥이처럼 똑 같은 삼룩카지나(samruk kazyna) 펀드 건물과 중앙에 위치한 대통령궁

라이터를 닮은 카작오일(Kazakh oil) 회사와 카자흐스탄의 국영석유회사 카즈무나이가스(KazMunaiGaz)


정글비치,놀이기구, 식점 등을 포함한 종합 쇼핑몰 센터,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텐트, 칸 샤티르(Khan Shatyr)

지난 17 년간 진행되어온 대규모 도시계획을 통해 현재 아스타나나는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인구 28만 밖에 안 되던 이 도시에 650개의 공사장에서 1,700개의 기중기가 움직인 결과, 국가의 경제적 성장을 견인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수도 이전과 관련된 각종 경제활동이 아스타나시, 나아가서는 국가 전체의 경제 활성화를 가져왔기 때문인데요. 지금까지도 이심강 좌측의 신개발지구에 건설공사가 이루어지는 등 수도건설을 계속해 나가고 있습니다.

현재 건설 중인 건물의 모습

카자흐스탄 정부는 장기적으로 유럽의 아름다움과 동양의 섬세함을 접목시킨 도시로 발전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아스타나시를 개발하였습니다. 하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렬로 줄서있는 주택들과 그러한 주택을 짓기 위해 늘어선 크레인, 중심지를 벗어나면 보이는 미개발 지역과 반대되는 크고 웅장한 새 건축물들을 보며 딱딱하고 계산적이며 이질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겉만 좋게 익어 보이는 과일은 칼로 썰어봐야 실한지 썩었는지 그 속을 알 수 있듯
, 겉모습에만 치중하기보다는 속이 꽉 찬 사회를 위하여 발전해가는 카자흐스탄의 미래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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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브라질 월드컵으로 지구촌이 축제 분위기로 들썩이는 이 시점! 이번 달에는 활기찬 월드컵과 반대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말레이시아의 도시에 대해 소개 해 드리려고 합니다. 말레이시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도시인 수도 쿠알라룸푸르? 동양의 진주 랑카위? 아니면 신혼여행지 1순위 코타키나발루? 바로 신 행정수도인 푸트라자야(Putrjaya)입니다. 세종특별자치시의 모티프가 된 계획도시로 저와 함께 푸트라자야로 떠나 보실까요?

푸트라자야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를 드리자면 말레이시아의 새로운 행정 도시로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남쪽으로 약
2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답니다. 크기는 여의도의 6배 규모로 결코 작지 않답니다. 또한 전체도시의 40%가 녹지이며 60만평의 인공호수와 인공습지로 이뤄져 있습니다. 예전에는 팜나무와 고무나무가 재배되던 곳 이였지만 지금은 말레이시아의 신 행정도시 새롭게 탈바꿈 했답니다.

▲ 푸트라자야 위성 지도 (출처 : https://www.google.co.kr/maps/place) 

쿠알라룸푸르 KL Central 역에서 'KLIA Transit' 20여분이 걸려 도착한 푸트라자야! 공항철도 격인 KLIA Transit으로 푸트라자야에 갈 수 있어 실제로 KLIA 공항에 가는 도중 넉넉히 시간을 잡아 푸트라자야를 구경하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답니다.


▲ 푸트라자야 버스터미널


행정도시 로서의 푸트라자야는 어떠한 모습을 갖추고 있을까요?

대적인 감각이 느껴지는 동시에 위엄이 느껴지는 곳, 바로 말레이시아 총리부 청사인 페르다나푸트라(Perdana Putra)입니다. 총리부 청사인 만큼 모든 조직의 행정을 이끌고 말레이시아 행정 전반에 걸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 페르다나푸트라(Perdana Putra)

총리부 청사 오른쪽에는 푸트라자야의 또 다른 상징이자 제1의 이슬람사원인 푸트라 모스크(Putra Mosque)가 위치해 있습니다. 바로 앞에 푸트라자야 독립광장이 위치하고 있어 관광명소로도 인기가 높은 곳이기도 합니다. 1997년에 착공하여 2년 만에 완공한 푸트라모스크.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느낌이 나는 동시에 이슬람 문화를 잘 보여주는 곳이라고 할 수 있겠죠?


▲ 푸트라모스크(Putra Mosque)

총리부 청사를 중심으로 각 행정 부처를 담당하는 부서들과 여러 관공서들이 양 옆으로 나란히 위치해 있답니다. 중앙에 넓은 인도를 중심으로 관공서들이 서로 마주보며 있는데요. 문득 경복궁 근정전의 24개의 품계석이 생각났답니다.



▲ 푸트라자야 거리

이 건물은 ‘Jabatan Akauntan Negara Malaysia’ 로 회계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현재 교환학생 중인 대학에서 회계를 전공으로 하고 있어 더욱 반가웠는데요! 말레이시아에서 처음 들어 가보는 관공서라 긴장 되었지만 안내데스크에서 안내책자를 얻을 수 있었답니다. 홍보관련 담당자 분과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사전에 미리 연락을 드리지 않아 인터뷰를 할 수는 없어 아쉬웠습니다.

 


▲ 회계담당 부서

다음으로 간 곳은 ‘Jabatan Kastan Diraja Malaysia’로 세관을 담당 하고 있는 곳이랍니다. 딱딱하고 엄격한 공항의 세관 이미지와 달리 세관청사 안은 조금 유한 분위기였답니다. 한국에서 온 교환학생으로 푸트라자야에 대해 기사를 쓰고 있다고 말씀 드리자 환하게 반겨주시면서 응원의 말씀도 해주셨답니다.


▲ 세관청사

세관청사 (Jabatan Kastan Diraja Malaysia) 바로 옆 편에는 재정과 금융을 담당하는 청사 (Kementerian Kewangan)가 위치해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의 돈을 관리하는 부처인 만큼 그 건물 크기와 디자인 또한 다른 부처에 비해 월등했답니다.


▲ 재정/금융 청사

푸트라자야는 복잡하고 답답한 도심지와 달리 시원하고 쾌적한 거리로 수도인 쿠알라룸푸르 와는 상반된 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도로 옆에는 녹지공간 뿐 아니라 시민들이 쉴 수 있는 쉼터 또한 함께 마련되어 있어 푸트라자야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동시에 깔끔한 이미지를 선사해 주었답니다.


▲ 도로 옆 녹지공간과 벤치들

또한 전체도시의 40%가 녹지, 60만평의 인공호수와 인공습지로 이루어져 있는 만큼 어딜 가나 쉽게 자연친화적인 조경들을 볼 수 있었답니다. 인공호수와 함께 옆에는 산책로도 조성되어 있는데요 도시의 경관과 함께 자연을 생각하고 있는 푸트라자야 랍니다.


▲ 인공호수와 산책로



푸트라자야가 가진 또 다른 매력은 바로 매 달마다 축제와 행사가 개최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17일 푸트라자야에 취재를 갔을 당시에도 ‘Magic of the night’, ‘Floria Putrajaya 2014’가 열리고 있었답니다. 단순히 행정도시 로서의 푸트라자야가 아닌 떠오르는 관광도시로서도 그 명성을 떨치고 있답니다. 가족, 연인, 친구 등 다양한 단위의 사람들이 푸트라자야를 방문해 같이 축제를 즐기기도 하고 여유를 만끽하며 하루를 마감하기도 합니다.


말레이시아는 현재
‘Visit Malaysia 2014’라는 슬로건 아래 여러 나라 관광객들을 유치시키기 위해 달마다 다양한 행사들을 개최하고 있는데요! 푸트라자야는 관광객만 매년 220만 명에 이르는 말레이시아의 대표적인 행정 및 관광도시로 탈바꿈 하고 있답니다.

▲Magic of Night, Floria Putrajaya 2014, 푸트라자야 인공호수

저와 함께 푸트라자야의 여러 모습에 대해 살펴보셨는데요! 보시다시피 깔끔하고 현대적인 도시의 모습과 함께 말레이시아의 전통적인 모습 또한 공존해 있는 곳이랍니다. 푸트라자야를 한 번이라도 방문한 사람들은 그 조경과 함께 분위기에 매료되어 또 다시 찾는답니다. 세계에서도 신 행정수도의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는 말레이시아의 푸트라자야. 푸트라자야로 정부 공공기관 및 금융기관이 이전함에 따라 좀 더 효율적으로 말레이시아의 행정을 처리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도 20127월 세종특별자치시가 새롭게 출범하여 정부청사들의 이전이 시작 되고 있는데요. 푸트라자야를 모티브로 한 도시 인만큼 신 행정수도로서 성공한 요인을 바탕으로 푸트라자야와 함께 행정수도이전의 성공사례로 꼽히길 희망해봅니다. 지금까지 말레이시아에서 김유리 기자였습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말레이시아 하면 어느 도시가 생각나시나요?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 아니면 에메랄드 빛 해변의 도시, 코타키나발루?

 

제가 소개해 드릴 곳은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도, 환상의 해변 코타키나발루도 아닌 바로 ‘Putrajaya(푸트라자야)’입니다!

 

다들? 푸트라자야가 도대체 어디야’ ‘뭐 하는 곳이야?’ 라며 궁금해 하실 텐데요

푸트라자야는 쿠알라룸푸르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말레이시아의 행정수도입니다우리나라의 신 행정도시세종시가 바로 이푸트라자야를 벤치마킹 했다고 하는군요!

 

먼저 행정수도가 무엇인지 알아볼까요?


 행정수도란?

한 나라의 입법·행정·사법 기능이 도시 별로 나뉘어 있는 이중수도(二重首都)체제에서 행정부가 위치하는 도시를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수도란 한 나라의 정치·경제·산업·교통·정보·문화의 중심지로 거의 모든 중추관리 기능이 집중되어있으나, 과밀 등에 따른 비경제성·비능률성을 극복하기 위해 수도 기능의 분화를 모색하기도 하는 바, 이 때 행정부가 위치하게 되는 도시를 행정수도라 한다.

[출처] 행정학사전, 이종수, 2009.1.15, 대영문화사

 


 

무슨 말인지 어려우시다고요?

 

우리나라의 서울과 세종시를 빗대어 생각해보시면 쉬울 것 같은데요.

현재 우리나라는 수도 서울에는 입법,행정,사법 뿐만 아니라 언론, 문화 등 여러 가지 기능이 과밀하다 보니, 인구집중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야기하죠.

 

그래서 정부에서 서울에 과밀한 기능을 분화하기 위해 만든 도시가 바로 행정도시인 세종시입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세종시’의 역할을 하는 도시가 바로 ‘푸트라자야’라는 말씀! 자 그럼 이제 푸트라자야를 둘러볼까요?

 

 



 쿠알라룸푸르에서 15분 정도 지하철을 타고, '푸트라자야'역에 도착했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다시피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와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면서

교통편도 좋아서 쉽게 왕래할 수 있네요. :)

 



푸트라자야에 내리면 주말마다 이렇게 투어버스도 운행합니다.

푸트라자야는 단지 행정수도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관광지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푸트라자야 내 버스를 이용해서 푸트라자야 중심부로 이동했습니다.

길가가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고 정돈이 잘 된 모습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신도시인 일산이나 분당 같은 느낌을 풍기네요. :)

 

 

 

이곳은 'Putra Square'의 중심부입니다.

조그맣게 모스크와 말레이시아 총리부 청사가 보입니다.

 

 


고개를 살짝 돌리면 'Jabatan Akauntan Negara Malaysia'라고 써져 있는 건물이 보입니다.

뜻을 해석해보자면 '말레이시아 회계부서'라는 의미인데요.

행정 도시답게 회계를 담당하는 곳 또한 푸트라자야에 있습니다.

 

 

  

버스에 내려 조금 걷다 보면 'Putra Lake'를 볼 수 있습니다.


푸트라자야가 관광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이유가

이처럼 자연과의 조화가 잘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기 살짝 보이는 다리는 푸트라자야의 대표적인 8개 다리 중 하나입니다.

 

 


강가를 따라 걷다 보면 이슬람 국가답게

분홍색의 돔이 인상적인 'Putra Mosque(푸트라 모스크)'가 보입니다.

 

 


'Putra Mosque' 바로 옆에 있는, 이 곳은 "Perdana Putra'. 말레이시아 수상청입니다.

무슬림 국가답게 모스크를 본 따, 초록색 돔으로  지어진 건물이 인상적입니다.

 

 


이 곳은 말레이시아의 사법부 건물입니다.

건물에 써져 있는 'Istana Kehakiman'문구를 한글로 굳이 해석해보자면 '사법 궁전(?)'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곳은 'Putrajaya International convention Centre', 국제컨벤션센터입니다.

 

 

 

국제컨벤션센터 쪽으로 올라가면, 이렇게 푸트라자야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데요.

사진에서 느낄 수 있다시피, 푸트라자야는 여러 건물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푸트라자야가 추구하는 도시 이미지는 전원도시와 정보도시를 혼합한 스마트 도시인데요.

전체 도시 면적의 40%를 녹지공간으로 배치했으며, 친환경적인 도시의 모범사례로 개발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아마 깔끔하게 정리된 도시라는 인상을 받는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요.

 

 

 

이렇게 성공적인 말레이시아의 행정수도 '푸트라자야'의 시스템을 우리나라의 행정도시 '세종시'에서도 전수받고자, 지난 4 3일 세종시와 푸트라자야 관리청이 교류협약을 맺었습니다.

 

 


▲ 세종시, 푸트라자야 관리청 교류협약식(출처: 세종특별자치시 홈페이지 http://www.sejong.go.kr/) 

 


우리나라가 2004년에 행정수도 이전 계획을 세우기, 3년 전인 2001년에 말레이시아에서는 이미 쿠알라룸푸르를 대신하여 '푸트라자야'를 연방직할령으로 지정하였으니, 이 교류 협약은 세종시에서 푸트라자야가 행정수도가 되기까지의 많은 노하우들을 전수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향후 10년 뒤에는, 말레이시아의 푸트라자야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세종시 또한 멋진 행정도시로 거듭날 것이라 기대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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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최남단, 남아프리카공화국(Republic of South Africa)이 있다. 우리에게 아프리카 하면 뜨거운 태양 아래 사막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4계절이 있으며, 다양성의 조화가 있는 지역이다. 대서양과 인도양 그리고 남극해가 만나는 곳이며, 사막과 사바나도 있으며, 펭귄도 있다. 이러한 다양성과 함께 이곳에는 3개의 수도가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최대의 도시는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이지만 이곳은 수도가 아니며, 3개의 수도는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Pretoria), 입법수도인 케이프타운(Cape Town), 사법수도인 블룸폰테인(Bloemfontein)으로 구성되어 있다.




▲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 프리토리아, 케이프타운, 블룸폰테인, 출처 : google map



‘부부젤라’로 유명하고 2010년 아프리카 대륙에서 최초로 월드컵을 개최한 국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이곳에는 왜 3개의 수도가 있는 것일까?




<아프리카 속의 온화한 기후,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향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면적이 우리나라의 약 12배 이상으로 세계 25위, 인구는 약 4,860만 명으로 세계 26위, GDP는 4,199$로 세계 28위에 해당하는 국가다. 우리나라와 인구수가 비슷한 것이 특징이다. 아프리카에서는 비교적 잘 사는 국가로, 국가 규모로 봤을 때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이 있는 국가라고 볼 수 있다. 이곳은 남반구에 위치함에 따라 우리나라와 계절이 반대다. 4계절이 존재하지만 연교차가 크지 않아 쾌적한 기후를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케이프타운은 지중해성 기후(Cs)를 나타내므로 유럽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땅이 되었다.



 기온 ℃

 총 강수량(㎜) 

 강수 일 수(일)

 1일 최소

 1일 최대

1월

 14.7

25.6 

125 

15.9 

2월 

14.1 

25.1 

90 

11.2 

3월 

13.1 

24.0 

91 

11.9 

4월 

10.3 

21.1 

54 

8.6 

5월 

7.2 

18.9 

13 

2.9 

6월 

4.1 

16.0 

2.0 

7월 

4.1 

16.7 

1.0 

8월 

6.2 

19.4 

2.1 

9월 

9.3 

22.8 

27 

3.7 

10월 

11.2 

23.8 

72 

9.8 

11월 

12.7 

24.2 

117 

15.2 

12월 

13.9 

25.2 

105 

14.9 


▲ 남아프리카공화국 최대도시, 요하네스버그의 기후

(출처 : 세계기상기구 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 http://www.wmo.int/)



이곳에는 오래전부터 코이산 족(Khoisan race)이라는 원주민이 거주하고 있었고, 황갈색의 피부색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부시먼 족으로도 유명하다. 


온화하고 쾌적한 기후의 남아프리카공화국에는 일찍부터 많은 이주민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유럽인이 새로운 땅을 개척하던 이민국가 사례와는 달리 아프리카 대륙에서 온화한 기후를 찾아 이곳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많았다. 약 2000여 년 전 줄루족(Zulu)이 이곳으로 이주하여 이후 스와지(Swaz), 코사(Xhosa), 소토(Sotho)족 등으로 분화되었다. 


1488년, 포르투갈 선원이 케이프타운 반도의 희망봉을 발견하여 남아프리카가 유럽인들에게 알려졌고, 1652년 이후 네덜란드인들이 케이프타운(Cape Town) 일대에 동인도회사를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이주하였다. 이들은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들의 선조로 보어인(Boer; 농민)이라고 불린다. 


오래전부터 이곳은 다양한 인종들이 함께 거주하였으며, 현재도 11개의 언어와 고대 풍습이 남아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주요 도시들의 역사>



1899년 영국인들이 케이프타운을 점령하여 먼저 정착한 네덜란드인이었던 보어(Boer)인들은 남아프리카 북쪽 지방에 오렌지 자유국(Orange Free State; 현 남아공 자유주)과 트란스발 공화국(Transvaal Republic)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였다. 이후 1910년, 이 3개의 국가가 연합하여 남아프리카 연방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오렌지 자유국은 이후 자유 주(Free State)로 개편 되었고, 이곳에는 사법수도인 블룸폰테인(Bloemfontein)이 주도(州都)로 자리 잡고 있다. 트란스발 공화국은 트란스발 주(Transvaal)로 개편되었는데,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Pretoria)와 최대 상공업도시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가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트란스발 주는 1994년 분할, 폐지되었으며, 트란스발 주의 일부 지역에 가우텡 주(Gauteng)가 설립되었다. 새로 지정된 주도(州都)로 요하네스버그가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곳 가우텡 주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Pretoria)가 위치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역사와 주요 지역의 형성, 변천과정이 복잡하지는 않지만 아직 생소한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짧은 기간의 역사 속에서 나름대로의 굵직한 역사를 담고 있다. 




<다양성의 국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세 수도>



항구도시이자 입법도시인 케이프타운(Cape Town)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의회의 소재지이며, 희망봉과 더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 도시다. 사법수도인 블룸폰테인(Bloemfontein)은 오렌지 자유국의 수도였지만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 최고재판소를 비롯하여 자유주의 주정부, 주의회 등이 있다. 그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Pretoria)는 초기 트란스발 공화국의 수도로 건설된 곳이며,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 연방의회의사당과 대통령관저가 있으며, 정부청사가 있는 곳이다. 



 

▲ 케이프타운 의회(Parliament of Cape Town), 케이프타운 희망봉

사진제공자 : Volker5571, Achim57 

 



▲ 블룸폰테인의 사법부, 하비 로드

사진제공자 : Helgoland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유럽과 가까운 항만인 케이프타운을 중심으로 먼저 성장을 하게 되었지만, 영국과의 갈등아래 있던 네덜란드인이 내륙지역으로 옮겨가며, 요하네스버그의 금광 발견으로 인해 급격하게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내륙지방이 본격적으로 개발 되었다. 내륙 개발은 넓은 국토의 새로운 개발과 미래를 위한 발판이 되었지만, 다양한 정치적 갈등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새로운 정치적 전환점에 따라 또 다른 미래를 맞이하는 국가가 되었으며, 마침내 2010년 월드컵까지 치르는 국가로 성장하였다.




 ▲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행정수도, 프리토리아와 유니언 빌딩(Union Buildings)

사진제공자 : jmaluw, Daan Prinsloo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는 대도시인 요하네스버그의 약 50㎞ 북쪽에 위치하며, 전체 국토면적을 고려해볼 때 비교적 가까운 편이다. 요하네스버그의 인구는 약 390만 명 광역권을 포함하면 약 790만 명이며, 프리토리아는 약 130만 명, 광역인구를 고려하면 약 200만 명이다. 인접한 도시임을 고려하면 약 1,000만 여명에 가까운 대도시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케이프타운의 인구는 약 290만 명, 블룸폰테인은 약 36만 명이다. 


우리나라와 인구가 비슷한 국가임을 고려할 때 상대적으로 특정 지역에 과밀화된 느낌은 덜하다. 그리고 특히 요하네스버그의 인구와 경제력 등을 비교했을 시 수도가 3개인데 반해 경제와 정부의 기능을 엄격히 분리하였으며, 특히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3가지를 모두 분리시켜 수도가 3개인 특수성이 있다.


이때까지 살펴봤던 다른 이민국가가 해안도시를 중심으로 개발되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구구성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백인 13.6%, 흑인 75.2%, 아시아계 및 혼혈인 8.6%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를 보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상대적으로 백인의 비율이 낮은 국가다. 역으로 말하면 대부분의 국민은 백인이 아니며, 전 국토에 살고 있던 수많은 국민들의 잠재력이 인종차별정책으로 통합이 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새로운 탄생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국민 대부분이 모두 함께 성장을 누릴 수 있는 다양함을 인정하려는 노력 끝에 결과물이 최근 나타나고 있다는 느낌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가 3개인 것은 역사적인 특수배경이 있었지만, 국민통합 이후 국토균형개발을 이루어낼 수 있는 기반도 마련하였다. 따라서 이곳은 성장은 현재진행형이며, 미래가 기대되는 국가라고 생각한다.



해외의 도시계획 - 행정수도 이전편

> 남미 최대의 국가, 브라질

>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곳, 터키

> 불모지의 땅에 만든 풍요로운 공간, 호주

> 자유와 평등의 나라, 미국




주지오(朱志悟) - 1987년 1월생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나 동아대학교 정치행정학부(행정학 전공)를 졸업하여, 동아대학교 도시계획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마친 후 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국내외 도시에 관심이 많으며, 현재 주 연구 분야는 도시정책, 부동산/주택 분야이다. 현재 ‘부산사랑의 도시 이야기’라는 도시․부동산 관련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미국은 CIA기준으로 현재 세계에서 3번째 많은 면적(9,826,675, 대한민국의 98배 이상)과 3번째로 많은 인구(316,668,567명, 대한민국의 6배 이상)를 가진 나라다. 그리고 2012년 IMF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이 15조 6096$로 2위 중국보다 약 2배 가까운 생산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면적이 크고, 인구가 많지만 인구밀도는 낮고, 그만큼 토지의 여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은 단일 도시의 행정구역에서 확장되어 ‘메트로폴리탄(광역도시권)’이라는 개념으로 도시의 공간적 범위가 형성되어 있다. 


미국은 로스엔젤레스(Los Angeles), 시카고(Chicago), 필라델피아(Philadelphia),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시애틀(Seattle) 등 많은 도시가 있다. 그 중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는 뉴욕(New York)이고, 수도는 워싱턴 D.C.(Washington D.C.)다. 


뉴욕의 인구는 2009년 기준(미국 통계청) 약 840만명으로 서울보다 적지만, 실제로 광역도시권인(Northern New Jersey, Long Island) 인구를 포함하면 약 1,900만명으로 매우 많다. 그리고 기타 로스엔젤레스, 시카고 광역도시권이 각각 약 1,000만 명에 육박하지만 수도인 워싱턴 D.C.는 547만명으로 대도시권인 뉴욕, LA, 시카고 등에 비해 적은 편이다. 미국의 인구 규모로 볼 때 그렇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올해(2013년) 8월 8일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기초로 형성된 동맹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리고 2013년 5월 7일, 새 정부 취임 이후 첫 한미정상회담이 열렸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많은 일상생활에서 공유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 미국이 형성된 것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다. 미국 역시 이민으로 형성된 국가이지만, 앞서 살펴봤던 브라질, 호주와는 또 다른 역사적 배경이 있다. 미국은 어떠한 나라이며, 미국의 수도는 어떠할까?




<유럽인, 새로운 세계를 향해 대서양을 건너다>



‘아메리카 신대륙’하면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 ~ 1506)가 떠오를 것이다. 콜럼버스는 그 당시 나왔던 ‘지구는 둥글다’는 학설을 통해 스페인과 인도가 바닷길을 통하면 쉽게 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고는 스페인 국왕으로부터 후원을 받아 1492년 8월 3일 항해를 시작하였다. 긴 항해 끝에 대서양을 건너 마침내 10월 12일 현 미국 플로리다 주 남쪽 해안가에 있는 바하마제도와 쿠바 지역을 돌아다녔으며, 그 곳에서 오랫동안 기존에 알고 있었던 문명과는 또 다른 세계를 살고 있었던 인디오들과 만났다. 



 

▲ 콜럼버스, 1492년에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만나다.



사실 콜럼버스는 상업적인 목적을 위해 아메리카대륙으로 간 것이지만, 이를 신호탄으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유럽에서 이주를 하게 되었다. 종교의 자유, 약탈, 어떤 이에게는 새로운 희망인 그들의 목적지 아메리카 대륙. 

그들은 그곳에 정착하였으며,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치러 독립국가로 탄생하였다. 그리고 이후 남북전쟁을 치러 ‘평등과 자유’를 한 번 더 강조하는 국가가 된다. 그리고 현재 세계적으로 여러 가지 분야에서 많은 영향력을 지닌 국가, 미국으로 성장하였다. 




<자유의 나라 미국의 상징, 미국의 수도를 건설하다>



미국 수도는 워싱턴 D.C.(Washington District of Columbia)인데, 워싱턴은 미국의 초대대통령인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1799)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이름이다. 조지 워싱턴 및 독립군은 1776년 7월 4일, 동료인 토머스 제퍼슨이 쓴 독립선언서를 바탕으로 영국군과 독립전쟁을 벌여 독립을 쟁취하였다. 이 독립선언서에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그 권리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는 내용으로 천부인권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이 미국과 미국의 수도 워싱턴의 상징으로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 미국의 초대대통령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과 자유의 상징, 미국 독립선언서



미국의 옛 수도는 워싱턴 D.C. 북동부지역에 위치한 뉴욕(1781년~1790년)과 필라델피아(1790~1800)였다. 미국의 수도 이전 결정에는 사회적 배경이 있었다. 미국은 여러 개의 식민지가 건설되어 각각의 연방정부가 있었고, 독립전쟁의 승리를 위해 힘을 합치게 되었다. 


초기 미국은 국가보다는 영국에 대항하기 위한 연합체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독립전쟁 이후 연방국가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연방정부가 필요했고, 이에 수도를 지정하게 되었다. 유럽과 가깝고 번성했던 뉴욕(New York)이 수도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국가는 상공업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 국토 모두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따라 10년 만에 미국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독립선언을 채택한 도시인 ‘필라델피아(Philadelphia)로 수도를 옮기게 된다. 


그런데 미국은 독립전쟁을 치르는 동안 많은 시설들이 파괴되었고, 이를 재건하기 위해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당시 미국의 북부 지역에서는 노동력과 자본을 중심으로 한 산업이 성장하였고, 남부지역은 광활한 토지를 기반으로 하는 농업중심의 경제구조였다. 이에 따라 특히 북부지역에 위치한 주가 많은 빚을 지고 있었고, 남부지역은 비교적 빨리 빚을 갚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연방정부가 생기면서 남부지역이 북부지역의 빚을 떠안게 되어 불합리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연방정부에서는 북부지역의 채무를 갚는 것을 남부 주민이 동의하고, 남부지역에 수도를 건설하는 것을 북부 주민이 동의하는 정치적 타협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수도는 필라델피아에서 더욱 남쪽으로 내려와 새로이 건설된다. 


미국은 북부와 남부의 경계선이기도 했던 메릴랜드(Maryland)주와 버지니아(Virginia)주 사이에 있는 포토맥 강(Potomac River) 일원에 항구적인 수도를 건설하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고는 포토맥 강과 애너코스티아 강(Anacostia River)이 합류하는 지점에 새로운 수도의 적지로 삼아 설계를 한다. 포토맥 강 일대는 당시 초기 미국 남부 북부지역이 만나는 지점이기도 했으며, 13개 주의 중앙에 위치하는 지점이었다. 




▲ 독립 당시의 미국 13개 주와 새로운 수도로 지정된 워싱턴 D.C.(출처 : google map, 편집)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계 역사 1001DAYS'의 피터 퍼타도(Furtado, Peter)는 “1800년 11월 17일, 새로운 수도로 이전하여 의회가 열렸던 워싱턴을 기억하며, 수도건설 초기 당시 많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꼈고, 필라델피아에 비해 형편없는 시설에 많은 이들이 수도이전을 후회했다”고 하였다. 하지만 현재는 세계적인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새로운 수도 건설을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세종시에도 많은 건축물들이 새로 들어서고 있으며,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세종시는 지금부터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가야 되는 대한민국 행정의 중심지이다. 따라서 미국 수도인 워싱턴 D.C.의 설계와 수도의 기능, 상징성에 대한 이해가 된다면, 세종시의 미래도 머릿속에 그려질 것이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도시계획>



새로운 수도 워싱턴 D.C.의 설계는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건너갔었던 피에르 랑팡(Pierre L’Enfant)이 설계를 하였다. 랑팡은 새로운 국가의 중심이 될 수도에 상징성을 많이 담을 것을 인식하여 국회의사당, 백악관 등을 주변지역보다 높은 언덕위에 위치를 선정하였으며, 중심지점을 중심으로 방사형 구조로 여러 지역으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설계를 하였다. 


1800년대에 대통령관저인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이 만들어졌으며, 현재 모두 흰색을 띄고 있다. 그리고 국회의사당 제일 윗부분에는 청동으로 제작한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 흰색이 자유와 깨끗함을 더욱 강조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 백악관(좌) 미국 국회의사당(우)

출처 : google map, 사진제공자 : joaojoel, ewewlo



보통 도시계획을 하면, 토지이용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격자형(▦)으로 설계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많은 건축물들이 직사각형으로 설계되는 것에 의한 것으로, 빠른 설계와 도시를 빈 공간 없이 가득 채우는 것이 가능하며, 상업적 가치도 극대화된다. 그러나 워싱턴 D.C.는 격자형과는 다른 방사형 구조로 형성되어 있다. 이는 프랑스의 바로크식 도시계획을 본뜬 것으로,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뻗어나가는 형상을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여러 지역에서 개방감을 갖게 하여 중심부의 기능을 강조하고, 단조롭지 않은 도시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 워싱턴 D.C. 지도  출처 : google map



그리고 국가의 최고 중심기능을 하는 백악관을 기준으로 아래에는 국가의 정신인 워싱턴 기념탑이 있다. 그리고 우측 방면으로 여러 지역의 역사를 담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품은 광장과 길이 형성되어 있으며, 조금 더 지나면 국회의사당이 나온다. 그리고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는 새로운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이에 좌측 방면으로는 각 주요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기념공원들이 있다. 이민국가에서 독립국가로 탄생한 미국의 정체성, 그리고 스스로 만들어가는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이곳 워싱턴 D.C.이다.



               


▲ (위)워싱턴 기념탑(Washington Monument) / (아래)월드 워 II 메모리얼, 링컨 기념관

 (출처 : google map, 사진제공자 : roby b / 사진제공자 : Fluzão, Birol Sahinarslan)



그리고 이후 19세기 말 시카고 박람회의 영향을 받아 도시미화운동(City Beautiful Movement)이 일어나게 된다. 이에 ‘현대 도심공원의 창시자’로 유명하며, 뉴욕 센트럴파크의 설계․감독을 담당하기도 했던 프레드릭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의 제안으로 워싱턴 D.C.의 새로운 녹지계획, 동선계획과 몰(Mall)의 배치, 설계안을 마련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수도를 재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러한 노력은 오늘날까지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자유와 평등의 국가,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 느끼는 교훈>



호주와 브라질 등 전편에서 봤듯이 이민 국가는 형성 초기에 특수한 역사적 배경이 따른다. 원주민을 넘어 이주민이 주요 구성원이 되어 문화가 뒤죽박죽 섞이기도 한다. 따라서 여러 국가에서 모여들어 자발적인 이민국가가 형성되는 경우 독특한 정체성을 갖기 힘들다. 


이에 반해 미국은 그 지역에 거주하는 국민 스스로가 독립 국가를 건설했고 상징성이 있는 역사를 스스로 만들어 왔다. 그리고 그 상징성과 역사를 바탕으로 수도를 만들었고, 지금도 워싱턴 D.C.라는 공간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 


우리는 미국의 수도를 흔히 ‘워싱턴 시’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정식 명칭은 워싱턴 D.C.(Washington District of Columbia)이며, 미국의 50개 주와는 별도로 특별 행정구역으로 특별구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미국 정부의 모든 기능을 이곳 워싱턴에서 담당하고 있다. 


미국이 오늘날까지 세계의 중심국가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특정 지역에 집중된 국가 구조에서 벗어나 평등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강화하여 연방주의 자치권 보장하며, 정부의 역할에 충실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국토균형개발과 국가의 성장 두 가지 모두를 실현한 성공적인 모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해외의 도시계획 - 행정수도 이전 편]

> 남미 최대의 국가, 브라질

>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곳, 터키

> 불모지의 땅에 만든 풍요로운 곳, 호주





주지오(朱志悟) - 1987년 1월생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나 동아대학교 정치행정학부(행정학 전공)를 졸업하여, 동아대학교 도시계획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마친 후 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국내외 도시에 관심이 많으며, 현재 주 연구 분야는 도시정책, 부동산/주택 분야이다. 현재 ‘부산사랑의 도시 이야기’라는 도시․부동산 관련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2013년 1월, 호주의 한 매체가 자국의 자원개발업체인 링크에너지가 약 20조 호주달러(한화 약 2경 3,000조원)의 가치가 있는 석유 유전을 발견했다고 알렸다. 지하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매우 부러운 것이다. 


호주는 면적이 약 774만㎢으로 우리나라보다 77배나 넓은 나라다. 그러나 인구는 2,200만 여명으로 우리나라 절반도 되지 않는다. 적은 인구임에도 GDP가 약 1조 6천억 달러로 세계 12위를 차지한다. 2012년 기준 1인당 GDP를 보면 무려 68,915달러(자료:International Monetary Fund)로 23,679달러를 기록한 우리나라의 약 3배에 가까운 경제력을 자랑하고 있다.


영국 시사경제주간지인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에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Best 10을 선정하였다. 그 중 우리에게도 익숙한 호주의 멜버른(Melbourne), 시드니(Sydney), 애들레이드(Adelaide), 퍼스(Perth)까지 총 4곳이나 차지했다. 이들은 해안가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도 큰 교훈을 주는 도시들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호주의 수도는 캔버라(Canberra)로 호주의 주요 도시 중 유일하게 항만이 아닌 내륙에 위치한 도시다. 그렇다면 호주는 어떠한 국가며, 수도는 어떤 곳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 시드니(Sydney), 멜버른(Melbourne), 애들레이드(Adelaide), 퍼스(Perth)

(출처 : google map, 사진제공자 sylvain cathala, ApolloBayLaurie, itsiph, 김민석)




<불모지의 땅에서 인류의 찬란한 문명이 피어오르다>



호주는 1700년대 후반기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개발된 신대륙이다. 앞서 본 브라질과는 달리 녹지가 풍부하지 않고, 척박한 사막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렇지만 인류는 이곳을 개발하는데 성공했고, 현재 시드니를 비롯한 주요 도시들은 세계의 미항(美港)으로 발전하였다. 




▲ 호주 위성지도. 대륙의 대부분이 불모지이지만 많은 지하자원이 있다.

(출처 : google map, mininghistory.asn.au)



영국에는 1688년에 항해가 W.댐피어를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1770년 제임스 쿡(James Cook, 1728~1779)에 의해 대륙 동쪽 해안이 조사되었고, 이후 호주를 식민통치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거기에는 1776년 미국이 독립함에 따라 새로운 개척지를 필요로 했던 것도 작용했다. 1788년 1월 26일 죄수 883명, 군인 252명, 기타 선원 433명 총 1568명이 11척의 배를 통해 호주 시드니 지역에 도착하였다. 호주는 이날을 기념하여 오스트레일리아의 날(Australia day)로 규정하고 있다. 이후 지속적인 이민으로 1800년대 후반기에 이민자가 300만 명(원주민 제외)을 넘어서게 되었다. 



 


▲ 호주(Australia) 신대륙을 발견한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James Cook)

(출처: www.answers.com, kids.britannica.com)



현재도 호주는 영국 연방국가로 엘리자베스 2세를 국왕으로 한다. 그러나 국왕은 명목적인 것으로써 실제 국가는 6개의 주와 2개의 특별구역이 지정되어있다. 국기는 영국의 유니언 기(Union Flag)를 사용하며 7각별 5개와 5각 별1개로 별자리 남십자자리(Crux) 모양이다. 




▲ 호주의 국기



호주는 대륙 국가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드니, 맬버른 같은 해안가에 거주하고 도시가 발달함에 따라 섬나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수도 캔버라(Canberra)는 내륙에 있다. 이것은 모국(母國)인 영국과의 정치적 독립과 연관이 있다. 1901년에 호주 연방이 정식 출범하였고 캔버라를 새로운 수도로 지정하여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호주의 아름다운 계획도시, 수도 캔버라>



캔버라는 인구기준으로 제1도시인 시드니에서 287km, 제2도시 멜버른에서 662km 떨어져(도로 이동거리 기준) 있다. 지도를 보면 캔버라도 해안가에 건설된 것 같지만, 해안에서 약 100km정도 떨어진 거리이다. 독자적인 국가로 탄생하는 과정에서 불모지 땅에 수도를 건설한 것이다. 이를 통해 국가의 정체성과 상징성을 만들고 국가의 심장이 되는 곳을 가다듬기 위해 수많은 노력이 진행되어 왔음을 느낄 수 있다.




▲ 수도 캔버라의 위치. 다른 주요 도시들과는 달리 항구도시가 아닌 곳이다.(출처 : google map)



호주는 이민국가로서 독자적인 문화와 정체성이 다소 부족해 정체성 확립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수도는 그 나라의 이미지를 대변한다. 따라서 호주는 캔버라를 통해 역동성을 보여주려 했다.


1911년, 수도건설을 위해 국제현상설계공모를 실시하였고 시카고 출신의 도시계획가인 월터 벌리 그리핀(Walter Burley Griffin, 1876~1937)의 계획안이 선정되었다. 그리핀의 계획안은 전원도시의 개념으로 도시계획에 예술성을 극대화시켰고, 수도라는 특징을 살려 상징적이고 기하학적인 계획안을 수립하였다. 



 


▲ 캔버라의 도시계획과 위성지도, 호수를 기준으로 국가의 상징성을 나타내고 있다.

(출처 : Library of Congress, Washington, D.C / google map)



특히 중심부에 있는 설계자의 이름을 딴 벌리 그리핀 호수는 몽롱글로강(Molonglo River)을 활용한 인공호수다. 이를 통해 도시의 쾌적성을 극대화시켰고, 호수 아래위로 방사형 도로망을 구축하여 수도의 위용과 도로, 광장 계획을 잘 나타내고 있다. 


국가 규모에 비해 인구가 적은 호주는 평면적 도시 확장이 가능하다. 따라서 캔버라의 주거단지는 저밀도의 전원도시 형식을 띄고 잘 형성된 도로와 중심기능을 통해 도시의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 캔버라에 있는 국회의사당과 기타 주요 상징적 건물(출처 : google map)



캔버라의 큰 규모의 상징적인 건물들은 국가의 위상을 대변해준다. 다른 대도시는 고층건물이 많은데 비해 캔버라는 넓고 웅장한 건물이 녹지에 한 폭의 그림을 그리며 예술을 불어넣었다. 개척이 불가능할 것 같았던 황무지의 땅이 자연미와 인공미가 조화를 이뤄 찬란한 인류문명을 보여주고 있다. 




 ▲ 캔버라의 국회와 드넓은 광장 (출처 : google earth)




<여유로운 국가 호주에서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보다>



우리나라도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국가다. 넓은 땅을 가진 나라도 아니고, 많은 지하자원을 가진 나라도 아니다. 이러한 곳에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현재는 2012년 IMF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세계 15위, 무역규모 세계 8위를 차지하여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국가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고도성장에 모든 지역이 수혜를 본 것은 아니었다. 산업화 과정에서 경부고속도로를 중심축으로 발전하였으며, IMF이후로는 대기업과 수도권 중심의 개발 집중이 더욱 심해져 수도권 과밀화와 양극화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에 따라 수도권의 기능을 분산시켜 세종시와 기타 지역으로 정부청사와 혁신도시 이전을 계획하여 실행하고 있다. 이것은  고도성장을 이룩한 시대적 배경에 그늘졌던 지방에 대한 이해를 통한 풍요의 공유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한반도라는 공간(Space)에 담긴 지역특성과 문화를 느껴야 할 시기다. 그리고 이를 통해 국민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지역주민들의 소속감을 증진시켜 또 다른 미래를 향한 국토를 만들어가야 한다. 


공간은 한정되어 있지만 장소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곳이며, 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담아야 한다. 내가 살아가는 공간, 그리고 이곳에서 살아왔던 다양한 삶의 기억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아름다운 우리의 국토를 즐기고, 관찰하고, 소중히 여겨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이야기(Story)가 담긴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국민정서안정과 정신적 풍요로움을 달성하여 진정한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해외의 도시계획-행정수도 이전 편]

남미 최대의 국가, 브라질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곳, 터키 

> 자유와 평등의 나라, 미국




주지오(朱志悟) - 1987년 1월생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나 동아대학교 정치행정학부(행정학 전공)를 졸업하여, 동아대학교 도시계획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마친 후 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국내외 도시에 관심이 많으며, 현재 주 연구 분야는 도시정책, 부동산/주택 분야이다. 현재 ‘부산사랑의 도시 이야기’라는 도시․부동산 관련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프롤로그>

2012년 7월 1일, 세종시의 행정구역은 옛 충청남도 연기군 전 지역, 공주시, 청원군 일부를 세종특별자치시로 편입, 개편하면서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가 본격 출범하였다.


우리나라는 과거 1970년대부터 수도 이전 움직임이 있었다. 방위전략상 위치가 취약한 지점에 있다는 점과, 끊임없이 증가하던 수도권의 인구로 인한 도시 과밀화에 의한 부정적인 요소를 방지하기 위해 현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인근지역에 수도이전 계획이 있었다. 이로부터 약 35년이 지난 지금, 기존 경기도 과천시에 있던 정부부처가 세종시로 옮겼다. 


최근 이전한 정부청사 이전과 개발과정과 취지가 비슷하지만, 1970년대 이후 수도권의 비대화가 더욱 심해졌다는 면에서 현재 국토균형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더 높아지는 시기다.


대한민국 설립 이래 처음으로 실현되는 행정부처의 이전, 그렇다면, 해외에서 세종시와 비슷하게 행정도시를 이전시킨 나라는 어디 있을까?



1) 남미 최대의 국가, 브라질


브라질은 우리나라와는 지구 반대편에 위치하지만, 인구와 면적 세계 5위, GDP규모 세계 7위로 남미 최대국이자, 방대한 면적, 인구와 자원을 바탕으로 고속 성장을 하고 있는 국가로 불리는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국가 중 하나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국가다.


2009년 기준 브라질 전체 인구 중 약 42%는 남동부 3개 주에 몰려 있다. 브라질은 포르투갈에서 건너와 성장했던 나라로서, 국가 대부분의 주요 요소가 대서양과 인접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각각 도시별로 특징이 있다. 


광활한 면적과 풍부한 자원과 뛰어난 농업환경으로 침략의 대상이 되었던 브라질은 유럽, 그 중에서 포르투갈의 수탈 대상이 되었다. 사탕수수의 재배조건이 뛰어난 살바도르(Salvador), 많은 양의 금·다이아몬드가 매장되었던 오우로 프레토(Ouro Preto), 마나우스(Manaus)의 고무, 상파울루(São Paulo)의 커피 등으로 발달하고 산업에 따라 쇠퇴의 길을 걷기도 하였다. 그리고 브라질 정치의 중심지였던 리우 데 자네이루(Rio de Janeiro) 등 다양한 특색이 묻어나는 도시를 간직한 곳이다. 


그러나 이들 도시의 대부분은 대서양과 인접한 해안가에 위치하여 국토의 무게중심이 남동부로 몰린 느낌이 있다. 한 국가의 중추기능을 하는 수도가 특정 지역에 집중될 수 없다는 결과의 취지에 부합하는 입지로서 고원지대이지만 국가 중심부에 위치한 현 브라질리아의 입지를 선정하였다. 

우리나라도 예전부터 수도이전계획이 나왔지만, 브라질은 1822년 9월 7일, 포르투갈과의 독립선언 이후, 1823년 신도시 건설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이후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1891년, 브라질은 새로운 수도의 위치를 브라질의 중심부에 위치한 고이아스(Goias) 주에 있는 고원지대를 선정하였다. 그러나 이후 계속되는 정치적 변동에 의해 실행되지 못하다가, 1956년 대통령으로 선출된 쿠비체크(Juscelino Kubitschek) 대통령에 의해 본격 추진되었다.


당시 대통령 쿠비체크는 ‘5년 이내 50년의 진보를’ 공약을 외치며, 브라질리아로 수도 이전과 더불어 산업화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브라질은 이민자들에 의해 개발된 국가다. 따라서 국가 정체성이 유럽·아프리카·인디오 등의 혼합체로 구성되어 있다. 풍부한 자원과 환경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인 이 땅에서, 약 500년 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며, 포르투갈의 지배에서 벗어나 ‘질서와 진보‘와 함께했던 독립 200주년도 9년 앞으로 다가왔다. 


풍부한 자원으로 국가가 성장하고 발전해왔지만, 자원 수탈이라는 개인적인 탐욕에 국민들의 정체성이 약회되어있던 브라질은, 수도 이전을 통해 크게 두 마리의 토끼를 잡게 된다. 광활한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함으로써 내륙에 대한 개발 잠재력을 한 층 더 높였으며, 유럽에 의존하여 국가의 부와 정체성이 남부·남동부 등 대도시 지역을 떠나 자리 잡으며 사회통합적인 기능으로서의 역할도 부여받았다.




브라질은 국기에서 초록 바탕(농업․산림자원)에 노란 마름모(광업․광물자원), 파랑(하늘) 천구의에 별자리(공화정이 선언된 1889년 11월 15일 8시 30분, 당시 수도였던 리우데자네이루의 하늘에 펼쳐진 별자리)에 질서와 진보(ORDEM E PROGRESSO)가 적혀 있다. 따라서 국기에 인간에 의한 국가 건설과, 천혜의 자연환경을 입고 성장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 브라질의 국기



<광활한 국토와 생명력 왕성한 국가 브라질의 땅, 인간이 예술의 도시를 만들다>





1960년, 브라질의 남부지역의 해안 도시였던 옛 수도인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약 1,000㎞ 떨어진 고이아스 주의 고원지대인 브라질리아로 옮긴다. 



▲ 인위적으로 만든 도시답게 동서축은 직선으로 뻗은 상태다.      구글 지도(google.com)



루시오 코스타(Lucio Costa)에 의한 브라질리아의 계획이 선정되면서, 그의 생각이 담긴 도시가 건설되었다. 불과 60년 전만 해도 아무것도 없던 이곳에 거대한 나라의 수도가 건설된 것이다. 수도 논의는 오랫동안 이루어졌지만, 실행이 계속 미루어지면서 쿠비체크 대통령의 임기 내에 완료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수도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1956년 건설을 시작한 브라질리아는 1960년 수도가 이전하여 오늘날까지 수도에 이르고 있다. 



    

▲ 루시오 코스타    ▲ 루시오 코스타의 계획



▲ 구글 비행시뮬레이션으로 바라본 브라질리아



브라질리아의 모습은 하늘에서 내려다볼 때 더욱 아름답다. 비행기 형태로 계획된 시가지 앞에 약 44만㎢의 인공호수로 전체적으로 대서양 해안으로 나아간다는 느낌을 주고 있으며, 동서축에는 도심 및 행정업무 기능이, 남북 축으로는 주거기능을 중심으로 개발되어 효율적인 도시운영과 상징적 의미를 모두 갖춘 계획도시로 탄생하였다. 계획된 도시답게, 상업시설, 학교, 종교시설, 녹지, 기타 문화시설 등이 적절히 입지하게 되어 생활편의시설이 한 지역에 모두 위치하게 계획되었다. 




위의 지도를 확대해보면 전체적인 항공기 모양의 계획 속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단지계획이 이루어졌다.




▲ 곡선․원형․직선․마름모․날개 모양 등 기하학적인 형태를 띄는 브라질리아의 단지와 건축물



브라질리아의 단지계획을 보면 원․마름모․직사각형․삼각형과 같은 패턴의 반복 등 기하학적인 문양을 하고 있다. 따라서 유네스코는 1987년 브라질리아를 ‘현대와 미래가 어울리는 독창적인 도시’로 평가하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이는 초기 도시가 완성되어 수도로 지정된 1960년 이후 27년 만에 이루어진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루시오 코스타의 도시계획과 더불어 도시 내부의 건축물은 오스카 니마이어(Oscar Niemeyer)의 작품이 많이 있다.



▲ 브라질 국회의사당



비행기의 동체 부분에 해당하는 동서축은 많은 상징물들과 도시의 주요 기능이 되는 직선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브라질리아가 1960년 공식적으로 수도가 된 후 새로운 도시의 행정업무지구가 되었다. 수직으로 뻗은 건축물과 곡선으로 비대칭의 묘미를 보여주는 국회의사당은 문명의 자부심을 높이는 위엄을 보이고 있다.



 

▲ 동서축을 잇는 도로의 양 옆은 상징적인 장소가 많다.



▲ 삼권 광장



계획도시의 비행기 머리부에 위치한 광장이다. 천혜의 자연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만든 국가와 수도인 브라질리아, 함께 번영하자는 의미로 광장 앞 동상은 하늘을 향해 높이 뻗어 있어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 플라날토 궁전. 브라질의 행정부 기관이 입주하고 있다.



▲ 주셀리노 쿠리체노(Juscelino Kubitschek) 대통령의 이름을 딴 JK다리




 

  

▲ 직선과 곡선이 조화된 형태의 건축물이 많다.



브라질의 행정수도 이전은 그동안 방치되었던 내륙지방의 국토를 효율적으로 관리․운용하기 위해, 그리고 국가의 상징성과 사회적 통합을 위해 건설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불과 4년 안팎의 단기간에 걸쳐 무리하게 건설되면서 수많은 외채 도입 등으로 많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등 많은 문제점도 발생하였다. 이후 들어선 군부정권에서 고성장 정책을 유지하면서 경제성장을 주도했지만, 외채를 갚기 위해 무리한 아마존 강 개발과 토목공사가 진행되어 국제사회로부터 환경파괴의 우려를 나은 결과도 있었다. 



그리고 초기 계획에는 273㎢의 면적에, 50만 명의 인구를 목표로 계획하였지만,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주변부에 많은 위성도시들이 건설됨으로써 약 260만여 명의 생활권을 이루고 있다. 당초 예상 계획보다 많은 인구가 자리 잡음으로써 도시과밀화문제 등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 주거단지 내 공공공간과 도보공간이 부족하여 삶의 질이 다소 떨어지는 느낌이다.



따라서 초기부터 수용되지 않았던 계획으로 인해 도시 중심부에서 멀어질수록 주거환경은 열악하며, 이들의 도시진입으로 도시 전체의 과밀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주변지역에 다소 무리한 도시 확장과 난개발을 초래하였다. 주거단지가 계획은 되어있지만, 양적 공급에 급급하여 무분별하게 확장된 저밀 주거단지는 편의시설 부족과 교통체증이라는 도시거주민의 질적 만족도를 저하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 나무가 거의 없는 외곽의 주거단지                  ▲ 상대적으로 쾌적한 시가지 내 주거단지



▲ 도심과 떨어진 외곽에 획일적인 형태를 띠는 주거단지. 낮은 용적률과 공공용지 부족 등 도시 경관적인 문제점을 낳고 있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도시는 다양한 사람들을 위해 새롭고 화려한 건물만이 아닌 보편적인 건물, 저렴한 건물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브라질리아의 도시계획은 외형중심의 개발계획은 국가의 상징성과 브라질이라는 저력을 세계에 알리는 데는 한 몫을 했지만, 일반 서민들이 계획도시로 진입하기에는 금전적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수도이전의 성과를 관계자들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일반 국민들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가질 수 있는 포괄적인 계획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브라질은 성장 당시 수탈의 대상에서 사탕수수․금광․고무․커피 등 세계의 굵직한 자원생산지의 기능을 담당하면서 국가와 도시의 성장이 이루어졌다. 이후 지배국인 포르투갈보다 더욱 많은 인구가 형성되어 거대한 국가가 되었지만, 국가의 정체성이 다소 확립되지 않았던 역사가 있었다. 그리고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 끝에 새로운 수도의 탄생과 민주화, 유럽 문화가 아닌 다양한 이민자들에 의한 브라질만의 문화 형성 등으로 이제는 브라질이라는 국가가 세계에서 비중 있는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브라질은 국가의 상징으로서 리우데자네이루, 상파울로와 같은 해안 대도시에서 내륙 고원지대에 인공적으로 조성된 브라질리아로 수도이전을 완벽하게 실행하였고, 민주정치를 실현하고 있다. 국가의 상징인 질서와 진보에서 성장까지 모두 실현시키는 국민과 함께 하는 새로운 시도와 함께 최근 잇따른 유전 발견과 2014년 월드컵,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유치와 더불어 세계의 중심국가로 거듭나기 위한 새로운 도약을 하고 있다.


브라질의 인구는 현재 약 2억 명으로 대한민국의 약 4배, 영토 8,514,877㎢로 대한민국의 99,720㎢ 85배 이상이다. 인구밀도(인/㎢)로만 본다면 대한민국이 492여 명, 브라질 약 23명으로 국내의 인구 밀도는 매우 높다. 브라질이 많은 자원과 인구, 넓은 국토를 바탕으로 잠재력이 높은 국가지만, 우리는 국토 대비 많은 인구로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하며, 이를 제대로 실현했을 때 성장의 동력이 될 것이다. 

천혜의 자연환경에 많은 광물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국가 브라질. 그러나 우리나라는 면적은 세계에서 109번째 국가며 광물 자원도 부족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있으며 높은 교육수준과 뛰어난 기술, 근면․성실성을 바탕으로 세계 무역규모 8위와, 1조 달러를 넘어선 15위의 GDP를 자랑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행정부처의 세종시 이전으로 인간중심․국민중심, 각 지역별 잠재력을 고려한 국토균형개발의 근원지로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첫 번째 특별자치시인 세종시가 국가균형개발정책의 구심점이 되는 곳으로 거듭나 행복도시․행복국가의 실현을 앞당기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는 바이다.



[해외의 도시계획 - 행정수도 이전 편]

>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곳, 터키

> 불모지의 땅에 만든 풍요로운 공간, 호주

> 자유와 평등의 나라, 미국




주지오(朱志悟) - 1987년 1월생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나 동아대학교 정치행정학부(행정학 전공)를 졸업하여, 동아대학교 도시계획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마친 후 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국내외 도시에 관심이 많으며, 현재 주 연구 분야는 도시정책, 부동산/주택 분야이다. 현재 ‘부산사랑의 도시 이야기’라는 도시․부동산 관련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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