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이 자주 이용하는 KTX 정차 역은 어떤 모습이세요? 서울역과 부산역, 그리고 그 중간에 위치한 대구역 등 대부분 전면 유리로 되어 있거나 신식건물로 지어져 세련된 이미지가 느껴지는데요. 이와 좀 다른 역이 있어 여러분께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새로운 신 역사(驛舍)를 꿈꾸다. 신 진주역!>




작년 10월에 새로 이전 된 신 진주역입니다. 신 진주역은 진주객사의 전통성을 재해석하고 자연친화적으로 조성되어 있는데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숨은 기능들이 많이 숨겨져 있습니다.





신 진주역의 지붕은 기와지붕인데요. 지붕은 전통 궁궐 형태를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지붕의 형태가 여덟 八(팔)자로 되어 있어 팔작지붕이라고도 불리는데요. 기둥과 기둥 사이의 평방 위에 포작이 이루어진 공포형식으로 지붕구조의 하중을 골고루 전달하기위한 다포식 전통 건축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신 진주역의 기둥은 중간이 굵게 되고 위아래로 가면서 점차 가늘어지는 배흘림기둥으로 구조상의 안전과 착시현상을 교정하기 위한 전통건축 기법을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그밖에도 역사 중앙에 위치한 연꽃마당 좌위에 느티나무 숲으로 조성된 휴식공간인 익랑마당이 위치하고 있으며 자전거 도시의 기능을 살린 대나무로 조성된 죽림원이 있습니다. 죽림원은 진주역을 이용하는 이용객뿐만 아니라 경치를 즐기며 산책할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가족, 친구들과 함께 나들이하기 좋은 공간입니다.




10월 개통된 신 진주역은 작년 12월에 KTX 운영을 시작했는데요. 구불구불한 단선철도였던 경전선 구간 중 진주와 마산간 복선 전철화 사업이 완공됨에 따라, 마산역까지만 운행하던 KTX가 함안역과 진주역까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특히 KTX가 개통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누적 이용객수가 10만 명을 넘어설 만큼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 진주역으로 옮겨오기 전 진주시민의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던 구 진주역에도 숨겨진 역사적 산물이 있습니다. 


구 진주역은 진주시내에 위치하는데요. 구불구불한 단선철도로 인하여 소요시간이 길고 시내 중심에 철도가 위치해서 도시 간 발전을 단절 시킨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또 새로운 선로를 놓으려면 이미 개발된 지역을 피해서 놓아야 한다는 문제도 있어 신 진주역을 경상대학교 인근 개양역이 있던 자리로 이전 하였는데요. 남겨진 구 진주역은 여러 토의를 통하여 지금은 시민들이 운영하는 음식점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역사(歷史)가 함께한 구 진주역!>





구 진주역을 직접 찾아가 보았는데요. 구 진주역은 선로를 모두 제거한 상태여서 철도역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주역 차량 정비고는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서 있었는데요. 구 진주역과는 달리 높은 건물과 붉은 벽돌로 되어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진주역 차량정비고일제강점기인 1925년 경전선과 호남선을 개통하면서 진주역에 설치한 붉은 벽돌 건물로 지은 건물입니다. 


아치형 출입구 2개를 나란히 배치하였으며, 중앙 상부에 솟을지붕을 만들기 위해 왕대공 트러스를 변형하여 구성하였다고 합니다. 건물 정면 가운데 위쪽에는 둥근 창을 설치하였고, 왼쪽과 오른쪽 벽면에는 지붕 트러스를 받치도록 버팀목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벽면에는 한국전쟁 때의 총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해주는데요. 건축적 가치뿐만 아니라 철도사적 가치까지 간직하고 있어 2005년 9월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구 진주역과 신 진주역 모두 건축학적 가치뿐만 아니라 역사적, 철도사적 가치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진주역뿐만 아니라 모든 철도역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이 지역과 함께 살아 숨 쉬고 있을 텐데요. 여러분들이 이용하는 철도역의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 철도와 좀 더 친숙해 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시작은 프랑스의 휘브릴 사였다. 휘브릴 사는 무슨 욕심이었는지 휘청거리는 나라 조선에 들어와 1896년 서울에서 의주까지의 철도 부설권을 따냈다. 그리고는 서울에서 목포까지 내달릴 '경목선' 부설권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이 철도는 조선의 곡창지대인 논산평야와 호남평야를 관통하는 알토란 같은 노선이었고 조선 정부는 이를 거부한다. 그런데 경부선을 따낸 일본도 이 노선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심지어 경부선을 호남을 거쳐서 깔자는 건의까지 했다니 그 꿍심을 알만하다.


경목선, 즉 오늘날의 호남선만큼은 우리 힘으로 깔아보려는 움직임은 꽤 강력했다. 정부차원에서 '경목선' 부설을 시도하기도 했고 예산 부족으로 민간에게 넘어간 뒤에도 부설권은 한국인들로 이뤄진 '호남철도 주식회사'가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실제 공사에 들어갔지만, '국방상 중대한 기능을 하는 철로 건설을 개인에게 불하함은 곤란'하다는 일본의 개입으로 좌절하고 만다. 이제 철도의 완성은 일본의 몫이었다. 일본은 호남선을 시급히 완성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한국 최고의 곡창지대에서 나오는 쌀이었다.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1914년 1월 11일 3년 8개월 동안 구간 별로 시차를 두고 개통해온 대전과 목포간 철도 노선 가운데 전북 정읍과 광주 송정리를 잇는 9번째 철도구간이 완공됨으로써 ‘호남선’이라는 이름의 완성된 철도가 역사에 등장한다.


그러나 호남선의 경우는 그 출발부터 분위기가 서글펐다. 일본과 만주,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경부선과 경의선에 비해 노골적인 차별이 이뤄진 것이다. 일단 운행 횟수가 적었고, 여객의 수송보다는 쌀 같은 화물 수송이 중심이었기에 시설이 남루했고 기차 자체도 낡은 것이 투입됐다. 결정적으로 경부선, 경의선은 일본인도 많이 이용했지만 호남선은 상대적으로 '조센징 투성이'의 기차였다. 


“근일 철도에서 하는 일을 보면 아무리 지선이라도 경원선과 호남선에 대하여는 학대가 비상하여 똑같은 기차 삯을 내는데 어찌하면 철도길이 다르냐고 이와 같이 차별을 하는가 하는 생각이 자연히 승객의 마음에 일어난다.”


1920년대 동아일보 기사이니 미루어 짐작이 갈 것이다.


호남선의 서글픈 운명은 그 후로도 계속됐다. 일제의 쌀 수탈이 가속화되면서 고향을 떠나야 했던 농민들이 이불짐 싸 들고 만주라도 가려고 몸을 싣는 기차였고, 해방된 뒤에도 땅 파다가는 굶어 죽을 재간 밖에 없던 농민들, 또는 그 아들들이 열차 문간에라도 엉덩이를 붙이고 서울로, 서울로 가던 열차였다.



그래서일까 호남선은 유독 노래에 많이 등장한다. 

가수 안정애가 부르고 조용필이 리메이크하여 공전의 히트를 쳤던 노래 <대전 블루스>. 충청도 일원의 응원가로도 불리고 대전역 앞에 노래비도 서 있는 이 노래 가사에 등장하는 “대전발 0시 50분”은 목포행 호남선이었다. 그리고 0시 50분은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시간이다. 



 

▲출처: 코레일 뉴스 http://news.korail.com



1959년 2월 운행이 시작했던 제33열차는 밤 8시45분에 서울을 출발, 대전에 0시40분에 도착했고 목적지인 목포를 향해 0시 50분에 기적을 울렸던 것이다. 이 열차의 운행은 오래지 않아 중단됐고 0시 50분발 목포행 열차는 대전역에 남아 있지 않지만. 


1959년 어느 날 밤이었다. 대전에 출장 왔던 신세기레코드사 직원 최치수씨는 대전역에서 가슴을 울리는 풍경을 본다. 한 젊은 남녀가 눈물을 그렁그렁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밤 0시 40분 요란한 기적 소리가 울려 왔다. 연인 중 하나를 태우고 갈 기차였다. 그리고 눈물 어린 이별 속에 대전발 0시 50분은 떠난다. 최치수는 뭐에 얻어맞은 듯 여관방으로 달려들어갔고 노랫말을 써내린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이 노랫말을 본 작곡가 김부해씨의 머리 속에도 영감이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3시간 만에 노래 하나를 뚝딱 작곡해 냈다. 그것이 바로 <대전 블루스>다. 공전의 히트를 치며 신세기레코드사 사상 최고의 판매액을 경신하게 만든 이 노래는 호남선을 타고서 세상으로 나왔던 것이다. 


"나 떠나면 누가 할까 늙으신 부모 모실까 서울로 가는 길이 왜 이리도 멀으냐"고 김민기가 노래한 서울길도 필시 호남선을 타고 가는 길이었을 것이고, 해태 타이거즈를 응원하는 열혈 팬들은 신날 때는 "남행열차"를, 우울할 때는 "목포의 눈물"을 부르면서 기차 한 칸씩을 빼곡히 메우며 잠실벌과 광주를 왕복했던 것도 호남선이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이 철도만큼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실어냈던 철도가 있을까. 


해방 당시 인구의 1/3 내지 절반 가까이 타지로 실어낸 철도이지만, 이 철도가 복선화, 그러니까 일제가 3년 만에 후다닥 해치운 호남선 레일 옆에 레일 하나 더 까는데 36년의 세월이 걸렸다. 호남선 복선화가 완성된 것은 2003년 12월의 일이었던 것이다. 이 기구하고도 멍울진 역사를 돌아보다 보면 되면 구성진 노래 한 자락이 목구멍에 걸리게 된다. <비 내리는 호남선>




 ▲ 출처: 다음뮤직 http://bit.ly/18E99Rq  (이미지 클릭 시 노래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목이 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이 눈물을 흘려야 옳으냐

사랑이란 이런가요 비 나리는 호남선에 헤어지던 그 인사가 야속도 하더란다

다시 못 올 그 날짜를 믿어야 옳으냐 속는 줄을 알면서도 속아야 옳으냐

죄도 많은 청춘인가 비 나리는 호남선에 떠나가는 열차마다 원수와 같더란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세계에서 네 번째로 시속 300km 이상 고속열차 독자 제작, 운영
 

국내 기술로 개발된 고속열차 ‘KTX-II'가 11월 25일 현대로템 창원공장에서 출고기념식을 갖고 그 모습을 공개했습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일본과 프랑스, 독일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시속 300km 이상의 고속열차를 독자적으로 제작, 운영하는 고속열차 기술강국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이병석 위원장을 비롯해 이재균 국토해양부 차관,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 등 국내외 인사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출고기념식을 통해 첫 선을 보인 KTX-II는 설계에서부터 제작까지 모든 과정이 국내 기술을 통해 이뤄졌을 뿐만 아니라 주요부품의 국산화율을 87%까지 끌어올린 명실상부한 국내기술의 집합체이기도 합니다.
 
KTX-II는 유선형 설계를 통해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고, 알루미늄 합금소재로 차체를 경량화 하여 에너지 효율을 향상시키는 한편, 넓은 좌석 간격과 전 좌석 회전시스템 도입, 가족실 및 스넥 바 운영 등 각종 참단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어 보다 안락한 환경에서 다채로운 고속열차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고속철도 운영사인 한국철도공사는 실제 운행선로에서 6개월 이상의 충분한 시운전을 거쳐 차량성능을 철저히 검증한 후, 2009년 하반기부터 호남선 운행을 시작으로 전라선, 경부선 2단계, 경전선 등에 순차적으로 KTX-II를 투입하여 운행에 나설 계획입니다.
 


이번에 공개된 KTX-II는 국토해양부가 총괄하고 지식경제부와 교육과학기술부 등의 협조를 얻어 진행중인 국가 R&D 사업으로 개발된 ‘한국형 고속열차(HSR-350X)’를 기본모델로 하여 제작된 첫 번째 상업열차입니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오랜 노력 끝에 국내기술로 개발된 KTX-II를 통해 국내 철도의 기술력을 입증하는 계기로 삼는 한편, 이를 통해 앞으로 터키, 브라질 등 고속철도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국가들에 우리 국내기업이 진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기대를 나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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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국토교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