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일요일, 가족과 함께 다시 한 번 남한산성에 갔습니다.

 

 

남한산성에 자주 오르다보니 등산로도 잘 알게되고, 등산하는 것도 능숙해진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 정상에서 바라본 안개로 뒤덮인 시내 모습

 

 

 

 

다시 올라온 남한산성의 정상에서 바라본 시내는 뿌연 안개로 뒤덮여있어 저멀리 있는 N타워를 볼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지난 산행때 기왓장이 부서져있던 서문으로 올라갔습니다.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깨지고, 위험해보이고, 보기에도 좋지 않았던 서문의 기왓장을 찾아보려 했더니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깨진부분을 모두 걷어낸 깨끗하게 정리된 모습으로 서문이 있더군요.

 

 

 

 

 

 

▲ '균열측정'이라고 쓰인 푯말(위)과 균열측정기(아래)

 

 

 

 

또, '균열측정'이라고 크게 적힌 푯말도 세워져 있었습니다. 내용은 '서문 문루 여장(담장)의 성돌 및 석축 균열의 진행 여부를 측정하고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산행을 하며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여전히 노점상들이 있었다는 점인데요. 단속이 있어서인지 물건을 쌓아놓고만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한번에 고쳐지긴 어렵겠지만, '남한산성이 세계문화유산이 되니 나쁜 점들이 조금씩 개선되는구나'하는 생각에 기뻤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남한산성 등산할 때 주의할 점 5가지에 대해 알려드리려 합니다.

 

 

 

 

 

 

 

 

 

첫 번째, 모기를 조심하세요.

 

산에 모기가 너무 많습니다. 특히 산에 올라갈 때 사람들이 땀을 흘리기 때문에 땀냄새를 좋아하는 모기가 더 많이 몰려옵니다. 모기에게 물리지 않기 위해 올라갈 때 조금은 빠르게 올라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벌을 주의하세요.

 

벌은 보통 나무에 벌집을 만들어 놓는데요. 내려오는 길에 2번 정도 벌집을 발견했습니다. 최대한 조용히 옆으로 피해가는 것이 벌에 쏘이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보입니다.

 

 

 

세 번째, 비온 뒤의 돌과 나무에 주의하세요.

 

비가 오고 난 뒤에는 돌과 나무가 젖어있어 밟으면 미끄럽습니다. 여러분도 미끄러져 다치는 일이 없도록 비가 온 뒤에는 돌과 나무를 되도록이면 밟지 말고 피해가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네 번째,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

 

남한산성을 오르다 보면, 쓰레기가 많이 보입니다. 쓰레기를 버리다가 적발되면 10년 이하의 징역 혹은 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합니다. 엄청 무섭죠? 본인의 쓰레기를 직접 챙겨 내려간다면 불미스러운 일도 없으며, 동시에 저절로 자연보호도 실천하는 방법 아닐까요?

 

 

 

마지막 다섯 번째, 문화재를 아껴주세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남한산성입니다. 하지만 성벽과 기와가 많이 훼손되어 있습니다. 성벽 위에 올라가 있는 여성이 있어 방송이 나오는가 하면, 수어장대(특집 2화를 참고)에 앉아있는 사람들과 '들어가지 마시오' 표시가 되어있는 곳에 엉덩이를 데고 앉아있는 사람들까지 눈살 찌푸려지는 행동을 하는 분들이 아직도 있습니다.

 

 

국토교통부 어린이기자단은 절대 이런 행동 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지금까지 남한산성의 개선된 점과 함께 남한산성을 아끼는 방법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세계문화유산인 만큼 점점 좋아질 남한산성의 모습을 기대하며 알려드렸던 남한산성을 아끼는 방법을 참고해 여러분도 이번 주말에는 남한산성에 한 번 와보는게 어떨까요?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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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태규

    저도 남한산성 갈때 이 네가지를 기억해야되겠네요~

    2014.10.26 20:33 [ ADDR : EDIT/ DEL : REPLY ]
  2. 박경준

    세계문화유산인 남한산성에 가보고 싶네요~

    2014.10.30 20:01 [ ADDR : EDIT/ DEL : REPLY ]
  3. 이단영

    잘 보고 갑니다!

    2016.08.11 11:42 [ ADDR : EDIT/ DEL : REPLY ]

 

안녕하세요. 국토교통부 어린이기자단 김규태기자입니다.

 

관리 소홀로 아쉬움이 많았던 지난 남한산성 특집 1편에 이어 이번에는 남한산성 특집 제2편으로 서문에서 행궁까지를 직접 둘러보고 책을 통해 이곳의 역사를 알아봤습니다.

 

행궁은 임금이 궁 밖으로 나갔을 때 임시로 머무르던 곳으로 별궁 혹은 이궁이라고도 합니다. 고려 및 조선 시대의 역대 임금들은 전국에 행궁을 세워두고 지방순찰시 처소로 사용하거나 전란 발생시 피난처로 사용했습니다. 이번에 직접 둘러볼 남한산성의 행궁 역시 이러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입니다.


 

 

 

▲ 행궁 조감도

 

 

 

 

 

남한산성 행궁은 1624년(인조 2년) 7월에 착공하여 1626년 11월에 완공된 조선시대의 별궁 또는 이궁으로, 후금의 침입에 대비해 백제 때의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해 축조했습니다. 행궁은 유사시에 임금이 임시로 머무르던 궁궐의 하나로, 병자호란 당시에는 임시 궁궐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행궁 중에는 유일하게 종사(종묘와 사직이라는 뜻으로, '나라'를 뜻하는 말. 여기서는 선대왕의 위패를 모셨기 때문에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는 뜻)를 갖추었습니다.

 

원래는 상궐 73칸, 하궐 154칸 등의 총 3단 227칸으로 이루어진 행궁이었지만, 모두 불에 타서 없어지고 지금은 터만 남아있습니다. 지금의 산성호텔 뒤편의 언덕이 시작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일제강점기 때에는 면사무소가 있었다고 합니다. 


2001년 11월에는 이 행궁터의 서쪽 바깥 담장과 안쪽 담장 사이에서 초기 백제 시대의 토기조각이 발견되고, 2개의 저장용 구덩이 시설이 확인되면서 남한산성이 백제 영토였음이 증명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행궁은 2010년도에 복원된 모습입니다.

 

 

 

 

 

▲ 남한산성 행궁은 여기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오전 9시에 집을 나와 부모님과 남한산성으로 향했습니다.

 

 

 

 

 

▲ 서문에서 북문으로 가는 길

 

 

 

 

 

걷다쉬다를 반복하며 드디어 정상에 도착!

정상에서 김밥을 먹고 서문으로부터 약 0.7km떨어진 북문으로 향했습니다.

30분 정도 걸으니 북문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 북문을 왼쪽과 오른쪽에서 찍은 모습

 

 

  북문

   남한산성 북쪽 해발 365m지점에 있는 문으로, 이 문을 통해 세곡을 운반하였다.

   1624년(인조 2년)에 신축된 것으로 보이며, 1799년(정조 3년)에 성곽을 보수할 때 개축한 후 전승문이라 이름 붙였다.

   현재 편액은 걸려있지 않으며, 성문은 홍예기석 위에 10개의 홍예석을 쌓아 만든 홍예문으로 높이 3.65m, 폭 3.25m이다.

   성벽의 두께는 7.1m이고, 단층의 문루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주심포 양식의 민흘림 기둥을 세웠고, 겹처마를 

   두른 팔작지붕을 올렸다.

 

 

 

 

 

 

 

북문의 입구는 서문보다 더 컸습니다. 느낌만으로 약 2배 정도 더 큰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큰 문이 풀과 나무들에 뒤덮인 모습이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북문의 성벽 역시 덩굴과 풀, 나무들에 덮여있었는데요. 이런 북문의 모습을 보고있자니 덩굴과 풀, 나무가 제거된 말끔한 모습의 북문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 행궁 옆에 있는 천흥사 동종

 

 

 

 

 

북문에서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20분가량 걸어 행궁에 도착했습니다.

행궁 옆은 남한산성 그림그리기 대회가 열렸던 북문 주차장이 있고, 남한산성 종각의 천흥사 동종이라는 종이 있었습니다.

종 아래에는 동전이 수도 없이 많았는데요. 소원을 빌기 위한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이루고 싶은 것들이 참 많은가봐요.

 

 

 

 

 

▲ 정면에서 본 한남루의 모습

 

 

 

   한남루란?

   한남루는 상,하궐을 포괄하는 바깥쪽 담장의 정문에 해당하는 행궁 외삼문의 상루이다.

   1798년(정조 22년)에 광주 유수 홍억이 행궁 입구에 한남루라는 누문을 대문으로 세웠다.

   '한남루'란 한강 남쪽 성진의 누대라는 뜻이며 "남한지"의 '한남루기'에 잘 나타나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세운 2층 누문이다.

 

 

 

 

 

 

천흥사 동종을 지나 남한산성 행궁에 들어가기 위한 입장권을 받고 행궁으로 들어갔습니다.

행궁 입구의 이름은 한남루입니다.

 

 

 

 

 

▲ 연못(좌)과 임금님이 다녔던 어도(우)

 

 

 

 

 

행궁은 2010년에 복원이 완료되었다고 하는데요.


한남루를 지나 행궁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연못이 있었고 계단도 있었는데 가운데 계단이 다른 계단들보다 조금 위로 올라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가운데 계단이 임금님이 직접 밟고 올라가는 계단이었기 때문입니다.

 

 

 

 

 

▲ 외행전의 외부

 

 

 

 

연못과 어도를 지나자 외행전이 나타났습니다.


외행전 앞에서 문화해설사분이 행궁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설명에 의하면 외행전은 왕이 공식적인 업무를 보던 곳이라고 합니다.

 

 

 

 

 

▲ 통일신라 대형 건물터 전시관 외부모습(좌)과 천년을 이어주는 계단(우)

 

 

 

 

 

▲ 통일신라 대형 건물터 전시관 내부모습

 

 

 

 

 

외행전 오른쪽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건물이 있는데, 직접 내려가보니 그 계단 밑에는 천년 전의 모습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 건물이 통일신라 시기의 대형건물을 재현해 놓은 전시관이기 때문입니다. 


남한산성 행궁을 발굴할 당시, 통일신라시대의 무기와 식량을 보관하기 위한 군수창고로 추정되는 대형 건물터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자들의 논의 끝에 행궁을 복원하고, 외행전 마당에 통일신라시대의 건물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는 전시관을 세우기로 했다고 합니다.

 

1300년 동안 묻혀있던 통일신라시대의 건물을 흔적으로나마 직접 볼 수 있어서 감동적이었고, 천년을 이어주는 계단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 이위정의 편액(좌)과 후원(우)

 

 

 

 

 

외행전과 통일신라 대형 건물터 전시관을 지나 이위정으로 향했습니다. 이위정은 '군기의 집'이라는 의미로 활을 쏘기 위해 지은 정자입니다. 이위정의 편액(널빤지나 종이, 비단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건물이나 문루 중앙 윗부분에 거는 액자)은 추사 김정희가 썼는데, 2010년 행궁 복원 당시 함께 복원하여 이위정 내부에 걸어두었습니다. 경사가 심했던 이위정의 후원은 금원이라고도 하는데, 크기는 작았지만 자연과 참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후원 오른쪽에는 좌전이 있는데, 서울에 있는 종묘처럼 선대왕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만든 건물로 정전과 영녕전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한 번도 사용된 적은 없다고 합니다.

 

 

 

 

 

▲ 내행전의 모습

 

 

 

 

 

이위정을 지나 마지막으로 임금이 잠을 자는 침전으로 사용했던 내행전으로 왔습니다. 대청 가운데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일월오봉도와 야외용 의자인 교의가 놓여 있었습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47일간 머물며 굶주리고 고통받는 백성들을 생각하면서 얼마나 슬프고 괴로웠을지를 생각하니 본 기자의 마음도 아파왔습니다.

 

 


남한산성은 참 넓으면서 배울 것이 많았고, 지금까지 본 기자가 알고있던 역사가 1/100도 안되는 것임을 깨닫는 계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역사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서문에서 행궁까지의 여정을 마무리 했습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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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경준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4.10.26 22:33 [ ADDR : EDIT/ DEL : REPLY ]
  2. 김태규

    남한산성 모습이 정말 멋집니다^^ 기사 잘 보고 갑니다~

    2014.10.27 19:23 [ ADDR : EDIT/ DEL : REPLY ]
  3. 조유진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5.07.06 16:16 [ ADDR : EDIT/ DEL : REPLY ]
  4. 오구

    다양한 볼거리가 참 많은 곳 같아요ㅎㅎ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5.07.30 13:11 [ ADDR : EDIT/ DEL : REPLY ]
  5. 이단영

    수고하셨습니다!

    2016.08.11 11:32 [ ADDR : EDIT/ DEL : REPLY ]

 

 

날씨가 너무 좋아 산책도 할 겸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남한산성에 부모님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남한산성은 북한산성과 더불어 서울을 남북으로 지키는 산성 중 하나입니다.

 

신라 문무왕때 쌓은 주장성의 옛 터를 활용해서 1624년(인조 2년)에 만든 성으로, 해발 500m가 넘는 험준한 자연 지형을 따라 둘레 11.7km의 성곽에 4개의 대문과 5개의 옹성, 그리고 16개의 암문이 있습니다. 성 안에는 80여 개의 우물과 40여 개의 연못이 있어 물이 풍부하기 때문에 식량만 충분하다면 수만명의 병력을 오랫동안 수용할 수 있었던 전략적 요충지였다고 하네요.

 

 

2014년 현재, 남한산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우리 뿐만 아니라 세계가 함께 아끼며 보존해야 소중한 유적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남한산성 입구에서 올라가는 길

 

 

 

 

 

오전 9시쯤, 버스를 타고 남한산성 입구에서 내려 들어가보았습니다.

 

 

 

 

 

▲ 서문으로 올라가는 두 갈래 갈림길

 

 

 

 

 

남한산성하면 유명한 것이 바로 남한산성 둘레길인데요. 본 기자 역시 남한산성 둘레길을 가벼운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산성 둘레를 따라 걸으며 들려오는 새소리에 기분이 마냥 좋았습니다. 새소리와 함께 걷다보니 서문으로 올라가는 방향에 자연 그대로의 흙길과 계단으로 이루어진 두 갈래의 갈림길이 나왔습니다. 부모님과 저는 자연 그대로의 흙길이 좋아 흙길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 민달팽이와 남한산성에서 볼 수 있었던 식물들

 

 

 

 

 

흙길을 따라 걷다보니 민달팽이도 볼 수 있었고, 다양한 식물들 역시 함께 볼 수 있었습니다.

 

 

 

 

 

▲ 푹 패인 산길

 

 

 

 

 

남한산성 정상에 가까워질 때 쯤, 이상한 길이 있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버지께 여쭈어보니, 비가 많이 오면서 흙이 쓸려내려간 길이 원상복구가 되기 전에 등산객들이 밟고 지나다니고, 또 쓸려내려가는 것을 반복하다보니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해서, 그리고 남한산성을 더욱 보기 좋게 하기 위해서 조금만 더 신경써서 길 관리를 하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정상에서 바라본 남한산성의 모습(상)

▲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전경 표지판(좌), 전망대에서의 기자(우)

 

 

 

 

 

남한산성의 다양한 동,식물들과 어울리며 걷다보니 어느새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정상에 있는 전망대에서 사진도 찍고 잠깐 휴식을 취하다 서문으로 향했습니다.

 

 

 

 

 

▲ 서문의 외부 모습과 내부 모습

 

 

남한산성 서문은?

 

서문은 산성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정조 3년에 개축하여 우익문이라 불렀습니다.

서문은 산성의 북서쪽 모서리 부분인 해발 450m지점에 위치하며, 개구부와 문루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문의 바깥쪽에는 기와장이 깨진 채로 방치되어 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남한산성이 충분히 관리가 되지 않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 서문 앞 술파는 아저씨(좌), 방치된 기와들(우상), 서문 벽면 꺠진 기와(우하) 

 

 

 

 

 

그리고, 서문 앞에는 꺠진 기와 뿐만 아니라, 술을 파는 아저씨들도 있었습니다. 며칠 전에 TV뉴스에서 본 남한산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지만, 문화재 관리가 잘 되지 않고 있고, 노점상들이 술과 음식을 계속해서 팔고 있다고 했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뉴스에 보도되었으니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여전히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세계문화유산에서 술과 음식을 팔고 있는 곳은 한 곳도 없는 것 같았는데, 우리나라의 남한산성에서 술과 음식을 파는 것을 보니 아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 수어장대 앞에서 멋진 포즈와 함께 

 

수어장대는?

 

수어장대는 1624년(인조 2년) 남한산성을 쌓을 때 만들어진 4개의 장대 중 하나로 남한산성에서도 높은 곳인 청량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남한산성 축성 당시 동, 남, 북의 3개 장대와 함께 만들어진 장대로 처음에 단층누각으로 '서장대'라 부르던 것을 1751년(영조 27년)에 대 위에 누각을 증축해 2층으로 만들어 수어장대라 했다고 합니다.

 

 

 

 

 

서문에서 성벽을 따라 수어장대로 향했습니다.

 

 

수어장대는 크고, 화려하고, 튼튼하고, 엄숙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적힌 곳에 사람들이 앉아서 시끄럽게 떠드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계속해서 행궁까지 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다음 기회에 행궁에 가기로 하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11번째 세계문화유산인 남한산성!

등재된 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은 세계문화유산이라는 표지석이 없지만, 그래도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유산입니다.

세계 속의 남한산성, 지금부터라도 우리 모두 남한산성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게 어떨까요?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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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태규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4.10.27 19:24 [ ADDR : EDIT/ DEL : REPLY ]
  2. 조유진

    기사를 보니 저도 남한산성에 가보고 싶다는 굴뚝같아요.
    꼭 가봐야겠어요

    2015.07.06 16:16 [ ADDR : EDIT/ DEL : REPLY ]
  3. 오구

    꼭 가보고 싶은 곳인데 이렇게 기사로 먼저 만날 수 있어서 좋네요ㅎㅎ

    2015.07.30 13:11 [ ADDR : EDIT/ DEL : REPLY ]
  4. 이단영

    잘 보고 갑니다!

    2016.08.11 11:32 [ ADDR : EDIT/ DEL : REPLY ]


과거 우리나라는 열강들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성들을 축조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성 중에는 역사적 사건의 중요한 배경이 된 곳도 있고, 오랫동안 전해오는 이야기의 무대가 된 곳도 있습니다. 남한산성과 진주성, 그리고 낙안읍성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요. 오늘은 각 성지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알아봅시다. 



I 난공불락의 요새 남한산성



▲ 남한산성(출처: 남한산성문화관관사업단)



때는 병자호란.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는 강화가 함락되고 먹을 것이 부족하자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나가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하게 됩니다. 청나라 왕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굴욕을 당한 것인데요. 그 누구도 침략하지 못했던 단단한 남한산성의 문을 열고 나가 절을 했던 인조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 47일간의 기억을 쓴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


해발 500미터가 넘는 험준한 지형에 구축된 성벽은 적이 쉽게 공격할 수 없는 천혜의 요새였습니다. 우리나라 산성 가운데 가장 잘 정비된 곳으로 우리나라 성곽 축조기술의 최고수준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 남한산성(출처: 남한산성문화관관사업단)


남한산성은 신라 문무왕 때 축성되어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까지 견고함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조선시대 여러 임금들의 관심을 받은 남한산성은 인조, 숙종, 영조, 정조 때의 다양한 축성기법의 표본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종묘와 사직을 모두 갖춘 곳으로 남한행궁은 부수도의 역할도 했습니다.




논개가 일본 장군을 끌어안고 몸을 던진 진주성


 

▲ 진주성 (출처: 진주시청 http://bit.ly/1bA5T9S)



왜장을 끌어안고 물에 뛰어든 기생 논개 이야기 아시나요? 구전에 따르면 논개는 양반가의 딸로 장수현감 최경회의 후처였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에서 진 최경회는 남강에 투신자결을 하고, 이후 일본 장수들이 자축연회를 벌이자 논개는 기생으로 위장하여 참석합니다. 복수의 칼날을 갈던 논개는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가 술에 취하자 남강으로 꾀어내 손가락 마디마디 가락지를 끼고 적장을 껴 안은 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 논개와 논개가 남강으로 뛰어든 촉석루 의암 (출처: 진주시청 http://bit.ly/1bA5T9S)



진주성은 내성의 둘레1.7km, 외성의 둘레 약 4km인 성으로 위에 설명한 것처럼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이 벌어진 곳입니다. 성의 북쪽으로는 3개의 연못을 파서 연결하고, 성의 외곽으로는 못을 파서 남강에 연결되도록 했습니다. 즉 성에 접근하려면 반드시 물을 건너야만 하도록 성을 축조한 것입니다. 



 

▲ 진주성(출처: http://jjphoto.co.kr/)



진주성은 백제시대의 거열성의 터였던 곳으로 원래 토성의 형태였던 것을 고려 때 왜구의 침범을 막기 위해 석성으로 고쳐지었다고 합니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 범위가 너무 넓어 수비가 곤란해 내성을 쌓았고 그 뒤 포루 12개를 증축, 이후 광해군 시절 성 수축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지금의 모습이 완성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진주성은 단지 건축물이 아니라, 진주시민들의 기개와 절개가 담긴 상징적인 곳인데요. 촉석루에 서서 흐르는 남강을 바라보면 마치 과거 속으로 장수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을까요?^^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만나는 낙안읍성 민속마을


 ▲ 낙안읍성 민속마을(출처: 순천시)


두 성의 이야기에서 과거로 여행을 떠난다면 낙안읍성 민속마을은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입니다. 

'민속촌인가?' 라는 생각이 들만큼 과거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순천 낙안읍성 민속마을은 조선시대의 읍성으로 1,410미터의 성곽 안에 290여 동의 초가집이 있고 120세대 28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마을입니다. 

 


▲ 낙안읍성 민속마을(출처: 낙안읍성민속마을)


낙안읍성도 처음에는 토성으로 담장을 이뤘으나 조선 중기 석성으로 개축하였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허술한 당장 하나 없이 마을을 이뤄가고 있습니다. 마치 마음씨 착한 흥부가 살고 있을 것 같은 노란 초가집의 지붕은 그 시절 백성들의 생활모습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 낙안읍성 민속마을(출처: 낙안읍성민속마을)


이 곳에서는 짚풀 공예와 대장간 등을 체험할 수 있어 전통가옥의 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데요. 아파트에 익숙한 어린이들에게 집과 주거문화를 경험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건축물이라고 해서 단순히 벽돌과 흙으로 이루어진 곳은 아닙니다.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채워져야 건축물이 완성됐다고 할 수 있는데요. 오늘 소개해드린 3곳뿐 아니라 과거의 건축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곳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으며 과거의 건축물과 친해져 보는 것은 어떨까요?



Posted by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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