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국토교통부 어린이기자단 3기 김주혜입니다. 저는 이번에 발이 다쳐서 국토교통부 기자단과 함께 전주 한옥마을에 가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대신 그 전에 다녀온 전주 한옥마을을 소개 하려고 합니다. 


(대략 7시) 아침 일찍 일어나 전주로 출발하였습니다. 휴게소에서 호두과자와 주스를 먹었습니다. 강변북로를 타고 경부고속도로를 탄 뒤, 천안논산고속도로를 타고 전주에 도착했습니다. 전주는 전라북도에 위치해 있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이 전주하면 떠오르는 게 비빔밥이죠!! 저는 비빔밥 생각에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전주에 도착하여 전주 비빔밥집에 갔습니다. 고사리, 시금치, 호두, 당근, 표고버섯, 애호박, 콩나물, 묵, 고기 등 여러 가지 나물들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음식점 위층에 비빔밥 박물관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지역별 전통비빔밥이 있었습니다. 구경한 뒤 전주한옥마을로 출발!!~

         

  

                             ▲ 비빔밥전문집에서          ▲ 전주비빔밥 



한옥마을에는 전동성당, 오목대, 이목대, 전주향교가 유명합니다. 맛집은 풍년제과, 베테랑 칼국수, 문꼬치, 다우랑 만두, 외할머니솜씨 팥빙수, 삼백집 콩나물국밥 등이 있습니다. 문꼬치는 삶은 문어를 꼬치에 꽂아서 소스를 무쳐서 먹는 것이고, 다우랑 만두는 만두 안에 새우가 들어가 있습니다. 외할머니솜씨는 팥빙수인데 흑임자를 넣었습니다. 삼백집은 콩나물 국밥인데 달걀을 풀어서 먹습니다. 마지막으로 풍년제과는 초코파이인데 딸기잼, 호두도 들어있습니다. 

  

    

                      ▲ 콩나물국밥                  ▲ 문어꼬치집              ▲ 다우랑 만두집



전주향교, 이목대, 오목대에 갔습니다. 이목대는 태조 이성계의 4대 목조가 태어난 곳이라고 합니다. 오목대와 이목대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되어있다고 합니다. 전주향교는 전주에 있는 조선 시대 향교입니다. 사적 제379호로 지정되어있다고 합니다.



    

                      ▲ 전주향교                    ▲ 게스트하우스             ▲ 한옥마을 풍경



전주한옥마을의 밤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한옥도 아름답고 관광객들과 거리 공연도 하고 맛집도 가서 먹고 정말 즐거웠습니다. 사실 요즘 한옥을 싫어하거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 계기로 한옥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아름다운지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일제강점기 전주부성이 허물어지자 서문 밖 천민 거주지역에 모여 살던 일본인들이 성 안으로 들어와 상권을 형성해 세력을 확장하자, 이에 맞서 전주 교동과 풍남동에 거주 중이던 우리 선비들이 옛 한옥을 지어나가면서 만들어지게 된 전주한옥마을은 현재 우리 멋과 역사, 문화를 품은 몇 안 되는 마을로 손꼽히고 있다. 


  



역사와 문화, 우리만의 멋을 품은 전주 한옥마을은 크게 오목대, 이목대와 자만동, 경기전과 전동 성당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오목대와 이목대, 자만동을 살펴보자면, 태조 이성계가 장군 시절 큰 전투에서 전승하고 축배를 든 오목대는 한자 ‘벽오동나무 오’ 자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오목대에는 ‘태조고황제주필유지’라 하여 태조 이성계가 머무른 곳을 뜻하는 비석이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오목대를 지나, 이목대와 전주 이씨 가문이 대대로 살아가고 있는 자만동으로 이동하였다. 신기하게도 전주 이씨인 태조 이성계는 자만동에 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함흥에 태어나 장군이 된 이성계는 전투에서 승리를 이루고 오목대를 지나 가문의 고향인 전주 자만동의 친척들과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 방문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다음으로 왕실 사당이었던 경기전을 방문하였다. 경기전은 태조의 어진이 있는 곳으로, 임금의 어진을 영혼이 깃든 사진으로 여긴 당시 사람들은 ‘임금의 영혼이 계시는 곳’이라 하여 한자 ‘전’을 붙였다 한다.

경기전은 임금의 영혼이 계신 만큼 엄격한 심사를 통과해야만 했다.


        


먼저 동물의 암, 수 특징을 재미있게 표현한 경기전 하마비 앞에서는 ‘신분과 상관없이 말에서 내려라’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또 하마비를 지나 위로 향하는 창살이 붙은 ‘홍살문’을 지나야 한다고 한다. 홍살문은 귀신, 잡귀를 쫓는다는 의미이고 위로 향하는 작은 창살들은 ‘경고한다, 귀신이나 잡귀는 창살을 이용하여 무찌른다.’ 는 조상들의 깊은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엄격한 심사를 거쳐 태조 이성계의 어진 앞에 서면 조금 색다른 점, 특이한 점 등을 발견할 수 있다.


     



보통 왕의 용포는 붉은 색이다. 하지만 그림 속의 태조 이성계는 푸른색 용포를 입고 있는 모습이다. ‘동쪽, 해가 뜨는 새로운 시작’ 등을 뜻하는 푸른색을 새로운 나라를 세운 이성계를 위한 용포의 색으로 정하였다고 한다. 태조의 어진이 비단에 그려져 있어 색이 자꾸만 바래 세 번째로 다시 그린 그림이라는 점도 너무나 새롭고 신비로웠다. 


마지막으로 전주 전동성당을 찾아 전동성당에 얽힌 역사 이야기를 들었다. 전주 전동 성당은 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중국에서 벽돌 제조 기술자를 직접 데려 오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공사 시작 7년 만인 1914년 완성되었다고 한다. 또 전동성당은 우리나라의 첫 순교자가 나온 자리이기도 하여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굉장히 의미 있는 곳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체험관을 찾아 닥나무로 만든 한지를 활용하여 예쁜 연필꽂이를 만들었다. 체험활동과 취재활동을 통해 너무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고, 예쁘고 색다른 추억과 경험을 선물 받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전주 한옥마을을 찾아 우리 멋과 문화, 역사를 이어갔으면 좋겠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전주 한옥마을을 관광하러 한 번 와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갔는데 오늘 설명을 들으니 참 많은 사연이 있었습니다. 가이드 선생님과 인사하고 저희가 처음으로 가본 곳은 오목대입니다. 오목대와 이목대로 나누어지는데, 그중에서 오목대는 이성계 장군이 전투에서 승리를 하고 승전 잔치를 베푼 곳입니다. 이성계는 이곳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목대는 시조 이한(李翰) 때부터 누대에 걸쳐 살던 곳입니다





그 다음으로 경기전을 들렀습니다. 옛날에 일본이 쳐들어왔었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그 후 광해군 6년(1614)에 중건되었습니다. 이곳에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 즉 왕의 어진이 있습니다. 임금님의 어진은 정말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만이 임금님의 용안을 그렸다고 합니다. 


임금님의 어진을 보면 파란색 옷을 입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왕들은 빨간 옷을 입는데 태조 이성계만 파란색 옷을 입었습니다. 그 이유는 파란색은 동쪽을 뜻하는데 동쪽은 해가 뜨는 쪽이잖아요 그래서 ‘새롭게 시작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기전을 지킨 동물이 있었는데 바로 거북이입니다. 2마리가 낮과 밤을 교대하며 지켰다고 합니다. 그런 후에 조선왕조실록이 보관되어있는 전주사고를 갔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정말 정밀하고 자세하게 기록되어있다고 합니다. 옛날에 왕이 말을 타고 가다가 말에서 떨어져 내시에게 이건 기록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말까지 다 기록했다고 합니다. 이 말만 듣고도 얼마나 자세하게 적혀있는지 알겠죠??? 






저희는 전성당을 들른 후에 연필꽂이를 만들러 갔습니다. 손에 풀이 많이 묻었지만 다 완성하고 보니 뿌듯하기도 했고 재미있었습니다.





전주 한옥마을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후백제의 수도이며 조선왕조의 초석이 되었던 전주 한옥마을과 주변 문화 유적지를 지난 9월 19일 국토교통부 어린이 기자단이 방문했습니다. 친절했던 문화해설사분의 안내로 탐방이 이뤄졌는데요. 문화해설사의 설명에 의하면 전주 한옥마을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1930년을 전후로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마을을 만들어 나간 것이 그 시작점이라고 합니다. 비록 나라는 빼앗겼지만, 정신은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우리의 선조들이 한옥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오늘날 전주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도심 속에 700여 채의 한옥군락이 형성된 도시로 알려질 수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방문했던 이목대는 태조 이성계의 4대조 할아버지인 목조대왕 이안사가 태어나 살았던 곳으로 전주 이씨의 발상지입니다. 결과적으로 태조 이성계의 본향인 전주는 조선의 근본이 된 땅이자 나라를 건국한 근원지였던 것인데요. 오목대는 이안사가 풍광을 즐기며 노닐던 곳이자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격퇴하고 이곳에 들러 전승 축하 잔치를 벌인 곳으로 유명합니다. 이목대와 오목대에는 고종황제의 친필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오목대 탐방로에는 500년된 느티나무인 당산나무가 서있었습니다. 전주 한옥마을 주민들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주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는데요. 전주 한옥마을은 자신의 문화와 향기를 지켜낸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마을이라는 의미인 국제 슬로시티 인증도 받았다고 합니다.









하마비는 신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비 앞으로 지나갈 때에는 누구든지 말에서 내리라는 의미를 담고있는 표석입니다. 이 경기전 앞 하마비는 암수 한쌍의 동물이 비를 받치고 있는 독특한 형태이고, 웅장하고 품위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태종 10년에 건립한 경기전은 조선의 건국자인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셔놓은 곳입니다. 백성들에게 고려에서 조선으로 나라가 바뀌었고, 왕씨에서 이씨로 임금의 성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전국 여섯 개의 도시(평양, 경주, 개경, 한양, 영흥, 전주)에 어진을 모셨다고 합니다. 태종 때 어용전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는데, '경사스러운 이 땅에 임금님을 모셨다.'는 의미의 경기전으로 세종대왕이 개명했다고 합니다.









신분제 사회인 조선 시대에는 집을 지을 때 규제가 엄격했다고 하는데요. 지름 50cm인 둥근 '두리기둥'은 궁궐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두리기둥이 많은 경기전은 단순한 사당의 개념이 아닌 왕이 사는 궁궐을 의미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두리기둥 밑에 하얀 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은 구름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 공간부터는 천상으로 이어지는 의미라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 전국의 진전이 피해를 입었는데요. 그러나 경기전 어진은 전쟁 중에도 전주의 많은 선비들이 7년동안 정읍의 내장산에서부터 북한에 있는 묘향산까지 이동하며 끝까지 지켜냈고, 현재는 국보 제317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전주사고는 조선왕조실록 등의 역사책을 보관하는 곳입니다. 임진왜란 직전까지 전국 4대 사고(전주, 충주, 성주, 서울)에 똑같은 복사본을 보관했는데, 왜군이 모두 태워버렸다고 합니다. 유일하게 전주사고의 실록만 남았는데, 그 이유는 역시 전주의 선비들이 조선왕조의 발상지라는 자부심이 강해서 어진과 실록을 목숨걸고 지키려 노력했던 결과라고 합니다. 현재 유네스코 기록 분야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태조의 60세 때 모습이며, 27개가 그려졌지만 현재 전주 어진만 남아있다고 합니다. 어진은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사람만의 분위기를 잘 표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13명의 화가가 함께 궁궐에서 생활하며 정숙한 마음으로 길일에만 조금씩 태조의 어진을 그려나갔다고 하는데요. 3개 조로 나눠 어진을 그렸고, 그 중 가장 실력 좋은 사람이 얼굴을 그렸다고 합니다.



어진은 기름종이로 본을 떠 비단에 옮겨 그렸는데요. 비단 뒷면에 색을 칠하는데, 한올씩 비단에 색을 넣기 대문에 오랜 시간 동안 그렸다고 합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입체감이 느껴지고 사실적으로 표현하는데 이러한 채색법은 우리만의 독특한 초상화 화법으로 '배채법'이라고 합니다. 어진을 그렸을 당시에는 포토샵과 같은 컴퓨터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 그대로 그리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태조의 어진에서 곤룡포가 파란색인 이유는 조선의 건국자라는 의미, 즉 시작의 의미를 표현한 색이라고 합니다. 다른 임금들은 모두 빨간색을 입었는데 태조만 파란색의 곤룡포를 입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지요. 조선 시대의 왕들은 매미의 5가지 장점을 닮아야 좋은 임금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매미 모양의 모자인 익선관을 쓰고 있습니다.





 

옛사람들은 매미를 가장 고고하고 신령한 곤충으로 생각해 최고의 지덕을 가진 곤충이라고 예찬했다. 문(文), 청(淸), 염(廉), 검(儉), 신(信)은 매미의 다섯 가지 덕목인데, 왕이 정사를 보기 위해 모자를 쓸 때 매미의 오덕을 생각하며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야만 했다. 오덕의 교훈은 매미의 입이 마치 선비의 갓끈과 같이 곧게 뻗은 것처럼 왕은 배우고 익혀 선정을 베풀어야 하며, 매미가 이슬이나 나무진을 먹고 사는 것처럼 청결해야 하고, 농부가 가꾼 곡식이나 채소를 해치지 않는 것처럼 청렴해야 하며, 다른 곤충과 달리 집이 없는 것을 본받아 검소해야 하며, 늦가을이 되면 때를 맞춰 죽을 정도로 절도를 지키는 것을 배워 신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출처 : 『익선관의 교훈』, 최요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서울에서 전주까지 가마를 타고 왔는데, 이를 '어진 가마'라 한다고 합니다. 임금님이 행차하듯 어진도 똑같이 200~300여 명이 8일 동안 모셔왔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요. 어진을 옮길 때 평상시에는 가마를 타지만, 임진왜란과 같은 유사시에는 '흑장통'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어진을 말아서 옮겨다니며 피난시키기 위해 사용된 것인데요. 조선왕조 519년 동안 27분의 어진을 그렸지만 현존하지 않고, 어진박물관에 전시된 것만 남아있습니다. 즉, 우리가 알고있는 세종대왕의 모습은 추상화인 셈이지요.









전동성당은 1908년에 땅을 사서 1931년 까지 지은 건물이며, 호남 최초의 서양식 근대 건물입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을 바탕으로 비잔틴 양식이 가미된 것인데요. 이곳에 성당을 지은 이유는 신해박해 때 윤지충, 권상현이 처형을 당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을 통해 윤지충, 권상혁 두 순교자는 복자가 됐습니다. 전동성당은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랑스 신부의 작품인데요. 마치 엄마의 자궁 속처럼 신비롭고 편안하며 따뜻한 느낌을 주는 것이 로마네스크 양식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무형문화재 한지발장 명인인 '유배근'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한지만들기 체험을 했는데요. 꽃잎 등 재료를 고르고, 닥나무 물을 양쪽으로 흔들어 평평하게 만든 뒤 물기를 빼줍니다. 그 위에 재료들로 꾸미기를 하고 다시 닥나무 물을 평평하게 펴서 올려준 다음, 꾸민 한지 위에 붙여줍니다. 물기를 말린 후 철판 위에서 천천히 말리면 한지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한지만들기 체험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대한 황실 '승광재'가 있었습니다. 고종황제의 손자이자 의친왕의 아들인 이석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곳이었는데요. 한지 만들기 체험을 기다리며 한 번 방문하고, 이후에 다시 한 번 방문해봤습니다.  비록 이석 할아버지를 만날 수는 없었지만, 승광재를 조용히 둘러볼 수 있었는데요. 예전에 TV에서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이라는 노래를 부른 가수로도 활동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승광재 입구에 있는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라는 강의 제목을 보며 아픈 역사의 산 증인이신 이석 할아버지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역사를 아직은 잘 모르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집안의 큰 어르신을 잘 모시지 못했다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졌는데요.



역사공부를 열심히 하면 세상을 보는 지혜가 생긴다는 말을 부모님께 자주 들었습니다. 승광재를 방문한 이후 우리의 소중한 역사를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될 수있었습니다.









울에 위치한 북촌 한옥마을은 도시와는 다른 평안함을 주는 곳이라 가족과 함께 자주 방문했던 곳입니다. 북촌 한옥마을과는 다른 모습의 작은 시골 마을일 것이라 생각하며 방문했던 전주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문화 유적지이자 힐링의 공간이었습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한옥의 아름다움에 빠져들 수 있었는데요.



특별히 많은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천천히 한옥마을 주변을 걸어다니거나 앉아만 있어도 마음이 평안해지고 즐거웠습니다. 그래서인지 국제 슬로시티라는 말의 의미가 더욱 와닿았는데요. 어진과 조선왕조실록을 지키려는 피나는 노력과, 나를 빼앗겼지만 정신마저 빼앗기지는 않겠다는 의지로 한옥마을을 만든 전주 선조들의 애국심에 큰 감동을 받았던 탐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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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9일, 전주 한옥마을 탐방과 함께 한지만들기 체험을 했습니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가장 먼저 간 곳은 이목대와 오목대였는데요. 태조 이성계는 황산대첩에서 왜구를 토벌한 뒤 이곳 오목대에서 개선잔치를 하며 새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을 다졌다고 합니다. 






▲ 오목대에서 바라 본 전주 한옥마을 풍경





그리고 이목대와 오목대의 가운데 글자인 '목'자는 목조대왕의 '목'자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목대와 오목대는 서로 떨어져 있어 다리가 있었지만,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이 전주 이씨의 맥을 없앤다고 연결된 길을 잘라 지금은 육교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목대는 자만마을이라고도 하며 자손이 이 마을에서 태어나면 번영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목조대왕구거유지'라고 고종이 직접 쓴 비석도 남아있습니다. 






▲ 500년된 당산나무






그리고나서 전주 한옥마을의 500년된 느티나무인 당산나무를 보러 갔습니다. 당산나무는 주로 팽나무와 느티나무를 쓰며, 마을의 안녕을 빌었다고 합니다.



당산나무 앞에서 전주 한옥마을이 만들어진 이야기를 들었는데,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한옥마을이 만들어진 것은 일제강점기 때부터인데, 나라를 망했지만 이 마을에는 일본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한옥을 한 채씩 만들었다고 합니다. 1970년대에 한창 아파트가 유행하고 있을 때에도 전주 한옥마을은 개발을 하지 않아 지금의 모습을 이뤄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700여 채의 한옥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 국제 슬로우시티로 지정돼 있습니다.






▲ 하마비





다음으로 조선 왕조를 건립한 것을 기념해 전주에 세웠다는 사적 제339호로 지정된 경기전으로 갔는데 경기전 앞에 하마비라는 비석이 떡하니 서있었습니다. 경기전은 태조의 어진을 봉안한 곳으로 왕조가 일어난 경사스러운 터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여기에 태조가 있으니 모두 말에서 내리고, 아무나 출입하지 말라고 세워둔 비석이 바로 하마비인 것이지요. 



경기전의 하마비가 일반적인 하마비와 비교했을 때 갖는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암수 두마리의 동물이 비를 받치고 있는 형태라고 합니다. 경기전으로 들어가면서 두리기둥을 봤는데, 역시 태조의 어진이 봉안된 곳이라 그런지 기둥하나도 궁궐의 양식이었습니다.






▲ 태조 이성계 어진





왕의 초상을 어진이라고 해서 어진전이라고도 불렸지만, 태종이 경기전이라는 이름을 따로 지어줬다고 합니다. 어진전은 전주 외에도 개경, 평양, 한양, 경주에도 있었지만 경기전만 남았고, 원래 태조의 어진을 27개 그렸지만 지금은 딱 하나가 남았다고 합니다. 이 어진은 13명의 화가가 나눠서 그렸는데, 제일 잘 그리는 사람이 얼굴을 담당했다고 하며, 어진을 그릴 때는 비단을 사용한 배채화 기법으로 그렸다고 합니다.






▲ 영화에 나온 대나무 숲





문 옆에는 수복청이라고 제사상을 준비하는 건물이 있었으며, 조금 더 깊이 들어가니 매화나무가 있었습니다. 매화나무는 호문목이라고 하는데 선비가 글을 읽는 것을 듣고 꽃을 피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경기전 안에는 대나무 숲이 있는데, 이 대나무 숲은 '왕이 된 남자'라는 드라마와 '역린'이라는 영화를 촬영했던 유명한 곳이라고 했습니다.





▲ 전주사고





또한, 경기전 안에는 세종 21년에 설치된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전주사고가 있었는데, 전주사고의 실록만이 임진왜란 때 남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조가 전주사고의 실록을 보고 4개의 사본을 더 만들었지만, 현재는 2개만이 남아있다네요.



조경묘는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이성계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옆에는 어진을 소장한 어진박물관도 있었는데, 이곳에는 어진을 옮길 때 쓰던 가마가 있었습니다. 엄청 길고 넓었던 가마였는데 이 가마를 신연이라 한다고 합니다. 어진은 피난을 갈 때에도 행렬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옮기기가 힘들다고 하며, 어진을 모신 건물의 정자각 돌추부에는 화재막이용 거북이 암수가 있습니다.



점심을 먹고 한지를 만들러 갔습니다.






한지만들기 체험 모습





한지를 만드는 방법은 이러했습니다. 먼저, 한지 틀을 이용해 닥나무물을 넣고 흔들어 한지의 기본 틀을 만듭니다. 그리고 틀 안에 있는 재료를 부직포 위에 올려놓은 후 원하는 꽃을 이용해 여러가지 방식으로 꾸며줍니다. 다시 한 번 앞의 과정을 반복한 뒤, 꾸며둔 한지를 다시 만든 한 겹의 한지로 덮어줍니다. 그 다음에 부직포를 기계로 탈수시킨 뒤 뜨거울 철판 위에 올려 말려주면 우리나라의 전통 한지가 완성됩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지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신 선생님이 무형문화재에 등록된 한지발장 유배근 선생님이셨습니다. 이번 체험을 통해 전주에 대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많은 전란 속에서도 어진과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지켜냈던 애국심과 국제 슬로우시티로 지정된 전주의 모습이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끝으로, 자유시간을 활용해 고종 황제의 손자인 황손 이석 할아버지를 만나뵀는데요. 짧게 인터뷰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석 할아버지 인터뷰>






▲ 이석 할아버지와 어린이 기자

 




어린이 기자 :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누구시고, 몇 번째 자손이신가요?


이석 할아버지 : 아버지는 의친왕이십니다. 아버지께서는 기골이 장대해 조선 왕실의 대를 잇기 위해 많은 자손을 두셨는데, 저는 11번째 아들이랍니다.


어린이 기자 : 조선 역대 왕 중 가장 좋아하는 왕은 어떤 분이신가요?


이석 할아버지 : 세종대왕님을 가장 좋아합니다. 무엇보다도 한글을 만드셨기 때문인데요. 그리고 광화문 앞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은 저와 효령대군의 얼굴을 합쳐 만든 것입니다.


어린이 기자 : 미래의 어린이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이석 할아버지 : 무엇보다도 어린이들은 역사를 소중히 생각해 역사 제대로 알기를 꼭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의 머리 글자를 합해 만든 지명으로, 고려 현종 때의 전라주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본 기자의 성은 나주 나씨이며, 조상님의 성함은 나봉이고 72대손입니다. 나주에 조상을 두고 살아온 본 기자는 전라도의 또 다른 대표 도시이자 태조 이성계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전주에 갔습니다.



전주는 전주 이씨의 발상지, 본향이라고 불립니다. 먼저 승암산 발치에 있는 ‘이목대’에 갔습니다. 1900년도에 고종 황제가 이목대에 친필로 ‘목조대왕구거유지’라고 쓴 비석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 뜻은 ‘목조 이안사(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가 살았던 곳’이라는 뜻인데요. 이 점을 통해 이목대에서 전주 이씨들이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경기전의 남동쪽 500m쯤 떨어진 나지막한 언덕에 오목대가 있습니다. 이 오목대에서 이성계가 놀았다는 주장이 있는데요. 1380년 고려 말 우왕 때 일본이 고려를 많이 침략하자 우왕은 이성계에게 일본을 물리치라고 명령했다고 합니다. 이에 이성계는 일본과의 싸움에서 크게 이겼는데요. 이것이 그 유명한 황산 대첩입니다. 이성계가 고려의 수도 개경으로 가던 도중 전주에 있는 오목대에 들러 승전을 자축하며 연회를 열었습니다. 이 때 이성계가 자신이 새로운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오목대에서 대풍가를 읊었다고 합니다. 고종 황제가 이를 기념해 ‘태조고황제주필유지’라고 친필로 써 비석을 세운 것입니다.









오목대에서 내려다 보면 전주한옥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데요. 한옥의 지붕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어 부드러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검은색의 한옥 지붕이 거북이 등딱지를 연상시켜 도시에서와는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전주한옥마을은 80여만 평의 땅에 700여 채의 한옥이 보존되어 있는 곳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우리의 전통을 잇기 위해 전주 사람들이 힘을 합쳐 한옥을 지었다고 합니다.









경기전 입구에 하마비가 세워져있습니다. 하마비에는 ‘지차게하마자번무득입’이라고 쓰여 있는데요. 이 뜻은 아무리 권위가 높아도 말에서 내리라는 뜻입니다. 경기전 안에 들어서면 홍살문이 있습니다. 홍살문의 기둥은 ‘둥근두리기둥’이라고도 불리는데요. 지름은 대략 50cm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궁궐에서만 사용가능한 건축 방법이라고하네요. 홍살문이 있는 곳은 신성한 곳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 홍살문 뒤에 ‘경기전’ 본전이 있습니다. 경기전에는 이성계의 어진이 있는데요. 어진은 임금님의 초상을 높이 받들어 말하는 것입니다. 원래 이름은 어진관인데 세종대왕께서 경기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이는 ‘경사스러운 땅에 임금을 모셨다’는 뜻입니다. 태종 10년(1410년)에 이 건물을 건립했는데요. 평양, 경주, 개경, 한양, 영읍, 전주에 어진을 모셨다고 합니다. 









경기전에는 3개의 문이 있었습니다. 이 3개의 문 중 가운데 문은 제사를 지낼 때만 들어가는 외신문입니다. 지금은 제사를 지내는 9월 9일에만 개방을 한다고 합니다. ‘동쪽에서 들어가고 서쪽으로 나온다’라는 개념을 가진 동입서출 사상을 지키기 위해 조상들은 동쪽에 위치한 문으로 들어가고 서쪽에 있는 문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전주 선비들이 이성계의 어진을 지키기 위해 내장산의 용접굴, 충청남도, 강화도로 피신 갔다가 묘향산 보현사에 어진을 안치했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에도 어진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주사고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곳입니다. 전주, 풍주, 서울, 성주에 조선왕조 실록을 보관했는데 임진왜란 때 전주만 빼고 다른 곳에 위치했던 조선왕조실록들은 불타 없어졌다고 합니다. 이 조선왕조실록을 지키기 위해 전주 선비들이 노력을 했다는 점에 또다시 감동의 물결이 넘쳐흘렀습니다. 조상님들의 노력 덕분에 이 조선왕조실록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마지막으로 대한 황실 승광재에 갔습니다. 이 곳에 조선의 마지막 황제, 고종의 손자인 ‘이석’님이 살고 계셨습니다. 승광재라는 뜻은 "빛을 계승한다"는 뜻으로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연호인 "광무"를 계승한다는 의미도 담고있다고 합니다. 승광재에서는 조선역사알기, 황실다례익히기, 황실예법익히기 등의 황실문화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전주가 있기에 조선의 찬란한 500년의 역사가 시작될 수 있었고 또한 조선의 역사를 간직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도시지만 볼거리와 뜻 깊은 역사가 넘쳐나는 전주! 전주의 모습을 우리가 아끼고 잘 가꾸고 보전해 세계에 널리 알리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국토교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