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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기 어린이기자단/제9기 어린이기자단

대한민국 최고의 번화가 명동! 명동의 과거 알려드림

by 국토교통부 2021. 6. 2.

명동은 대한민국 최고의 번화가로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장소였으나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는데요. 여러분들은 명동에 대해 잘 알고 계시나요? 명동 이름의 유래는 조선 시대에서부터 내려오는데요. 조선 초기 명례방 또는 명례방골이라고 불리다가 명동이라고 줄여부른 것이 현재의 명동이 되었습니다. 조선 시대 명동은 주택가였는데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그들을 위한 금융기관, 백화점이 생겼고 광복 이후 서울 강남이 개발되기 전까지 금융, 상업, 문화가 집중되어 성장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명동의 볼거리 및 쇼핑에 관심이 많아 오늘날의 명동은 잘 안지만, 명동의 과거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해서 저는 이번 기회에 명동의 과거에 대해서 소개하고 싶은데요. 명동은 조선 시대, 일제강점기 그리고 근대화의 역사유물 및 위인들의 발자취를 많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명동성당

명동성당

명동하면 떠오르는 대표 유물로 명동성당이 있습니다. 명동성당은 조선 최초의 순교자였던 김범우의 집터에 프랑스 신부가 매입 후, 성당으로 설계하여 1898년에 완공되었습니다. 한반도에 처음 세워진 대규모 고딕양식의 교회당으로 지금까지 한국 천주교의 중심지입니다. 과거 민주화 운동 인사들과 학생들을 보호하기도 했습니다.

 

이재명 의사 의거터

이재명 의사 의거터

이재명 의사는 을사늑약 이후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마음으로 친일파 이완용을 명동성당 밖에서 공격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체포되어 순국하셨습니다. 그의 숭고한 뜻을 기려 의거비가 그 장소에 새겨져 있습니다.

 

윤선도집터

윤선도집터

고산 윤선도는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조선의 대표 문인입니다. 명동에 있는 윤선도의 집터는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인데요. <동국여지승람>에 풍수지리의 명당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회영 흉상 및 6형제 집터

우당 이회영 선생 흉상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 최고의 부자였으나 부귀영화를 멀리한 인물인데요. 1905년 을사늑약 채결을 무효화시키는 운동을 주도했으며 만주로 떠나면서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내놓고 망명을 떠난 우당 이회영 선생의 6형제가 거주했던 집터도 명동에 위치해 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약 600억에 가까운 자금으로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 양성에 기여한 존경스러운 인물입니다. 중국 정부에서도 항일 혁명열사 증서를 수여할 정도로 평생 독립을 위해 싸운 인물입니다.

 

장악원터

장악원터

조선 시대 음악과 무용을 담당했던 관청인 장악원도 명동에 있습니다. 지금은 표적밖에 없지만, 당시는 음악인, 무용인이 기거하여 규모가 상당히 컸을 거라고 하는데요. 장악원은 나라의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공연하였고 온종일 가락 소리가 들려왔던 예술의 공간이었습니다.

 

나석주 의사

나석주 의사 동상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나석주 의사 동상입니다. 나석주 의사는 일제에 맞서 무장 투쟁을 벌였던 의열단 소속으로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진 인물입니다. 불행히도 폭탄은 터지지 않았는데요. 나석주 의사는 일본 경찰과의 총격전 중 돌아가셨습니다.

 

이 기사를 작성하면서 우리나라를 위해 많은 분들이 희생하셨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많은 관광객들이 명동을 먹거리, 패션의 거리로 알고 있지만 이처럼 역사 깊은 곳임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9기 국토교통부 어린이기자단 / 윤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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